내일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37
백혜영 지음 / 고래뱃속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처럼 보이는 동글동글한 민트색 캐릭터가 앞서 달려가는 노란 새 모양을 쫓아가는 이야기다. 민트색은 노란색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지만, 아무리 열심히 달려가도 녀석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고, 주변의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누구도 속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쫓아가다 어딘지 모를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간 주인공. 어둠 속에서 모든 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금씩 자신과 그 주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깨달은 자신의 이름. “오늘”.



사실 이 그림책의 스포는 제목이다. 제목에 떡하니 “내일”이라는 이름을 붙여놨으니.... 아무리 따라가려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은 노랑이의 정체가 ‘내일’이라는 건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책의 색감이 전반적으로 어둡다. 연필로 그린 그림으로 보인는데, 앞에서 말한 민트색과 노란색을 제외하면 나머지의 경우는 연한 파스텔 색상만 살짝 보인다. 특히 어묻 속으로 빠져 들어간 부분에서는 몇 페이지에 걸쳐서 검은 바탕만 나오기도 하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을 텐데, 현재가 느끼고 있는 답답함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


주인공 캐릭터가 워낙에 단순한 이미지다보니 큼지막한 페이지의 나머지 공간을 채우는 것도 일이었겠다 싶다. 그런데 이쪽도 조금은 몽환적인 느낌이랄까, 그런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나무도, 풀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모양과는 다르다. 꿈속에서 볼 법한 환상적인 형태의 사물들이 잔뜩 놓여있다. 그리고 언뜻 잘 보이지 않지만, 배경에는 소소한 캐릭터들도 보인다.



내일에 목을 매로 쉴 새 없이 달리느라,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지적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진리다. 우리 손에는 언제나 ‘오늘’만 쥘 수 있는데, 우리는 쥘 수 없는 내일에 모든 걸 걸려고 한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소중한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일은 어리석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일도 큰 문제고. 사실 우리의 삶이란 그리 길지 않고, 하루하루를 그저 소비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 피터의 고백 -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마히 그랑 지음, 서준환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늘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원에 전시하기 위해 밀림에서 잡아온 고릴라 한 마리가 있다. 놀랍게도 녀석은 유럽으로 실어오는 배 안에서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기를 한참, 어느 날 “안녕”이라는 사람의 말을 내뱉는다.


곧 이 신기한 원숭이는 서커스단에 팔려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좀 더 큰 (경제적인) 잠재력을 알게 된 사람들에 의해 대도시로 옮겨와 사람의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어느 덧 5년 만에 성공한 유명인이 된 그가, 학술원의 회원들 앞에서 자신의 진화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한다는 내용의 이야기.



흥미로운 소재다. 사람이 된 원숭이라...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걸까. 이 책은 그래픽 노블로, 원작은 프란츠 카프카가 쓴 소설이다. 만화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대사가 그리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책 전반에 걸쳐서 뭔가 부조리하고, 조금은 이상하기도 한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생각해 보면 이게 카프카 소설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이런 ‘이상함’의 가장 큰 이유는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라는 주인공 때문일 것이다.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존재인 유인원이 사람의 옷을 입고 말하는 건 동물원의 공연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하면서 유쾌하기까지 한 모습이겠지만, 그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면(그와 비슷한 배경을 지닌 소설 속 캐릭터라면) 확실히 조금은 어색할 것 같다.


당연히 소설 속 사건(5년 만에 고릴라가 인간처럼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작품의 내용 역시 이런 특별한 일이 어떤 과학적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어차피 작가도 독자고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보는 거니까. 그리고 이런 불합리한 사건에 관한 묘사 속에 당연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주인공 피터가 굳이 인간처럼 사고하려고 애쓴다거나,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이 진화의 과정에 무슨 역사적인 의미라든지, 철학적 사유가 들어갈 자리를 없애 버린다. 학술원에서의 그의 마지막 멘트는 그저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는 것뿐이었다.


강연 내내 피터는 인간의 ‘자격’이라든지 ‘조건’이라든지 하는 게 실은 별거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피터는 자신의 진화를 자유를 향한 열정이나 도전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반대로 애초에 자신은 자유를 갈구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창살 안에 갇힌 답답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을 뿐. 그가 인간의 행동을 따라했던 건 다시 갇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피터는 스스로 “인간 사회에서 중간쯤 되는 문화적 수준”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그 수준이란, 너무 현란하지도 않고, 너무 빈약하지도 않은 사고 수준에, 여흥을 적당히 즐길 줄 알고, 별다른 소란을 피우지 않으면서 순리대로 적응해 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다. 피터가 그렇게 살아갈 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우리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엔 인간의 장점, 혹은 특별한 점이라고 꼽는 창의성이나 철학적 사유, 도덕이나 윤리 등이 전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 없이도 충분히 인간 사회는 돌아간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작가는 그런 것들에 관한 인간의 허위의식을 지적하고 있다고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니들 사는 걸 보면 딱히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 뻐기고 있냐 라는 식의.



물론 이건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 속 인간 사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을 빼놓고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아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사고와 그 피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 그런 가치들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실제로 우린 이 부분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릴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저 평범한 중류층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런 가치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또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건 인간을 흉내 내는 고릴라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일지도 모르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6-1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노란가방 2022-06-11 16:3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는 제목을 보고 손에 든 소설집이다. ‘선릉 산책’. 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고, 소설 속 선릉역 인근은 내가 가장 자주 돌아다니는 지역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돌아다녔던 거리의 풍경을 읽으면서, 기억 속 내가 봤던 골목들 어디쯤일까 하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좀 더 몰입이 됐다.


이 책은 일곱 편의 중편 소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표제이기도 한 ‘선릉 산책’은 그 중 세 번째로 실려 있는 작품. 각각의 이야기들은 등장인물도 내용도 독립적인데, 한 가지 공통적인 소재가 있는 것 같다. 모두 어딘가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게 그렇게 계속 어딘가로 걸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소설 속 ‘걷는 일’은 ‘살아가는 일’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일곱 개 이야기 속 인물들과 그들이 마주하는 사건들이 모두 개성이 있다. 다들 삶의 무거운 무게를 어깨에 지고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리 대화가 진행되어도 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벽에 부딪힌 건 아닌데, 뭔가 좀처럼 서로의 생각이 만나지 않는 달까.


예를 들면, 표제작이기도 한 ‘선릉 산책’ 속 주인공은 아는 형의 부탁으로 하루 아르바이트를 대신하게 된 인물이다. 그가 하게 된 일은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한 소년과 함께 선릉역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겨우 하루 동안의 시간이지만, 그리고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둘이 함께 선릉역 인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공감을 이루는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변주를 준다.


소년의 보호자로부터 세 시간만 더 맡아달라는 연락이 온 것.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주인공은 급격히 짜증이 치솟았고, 어둑해질 무렵 공원 어딘 가에서는 동네 양아치 청소년들과 사건도 발생한다. 서로 친해진 줄 알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투명한 장벽이 생겨버린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거기에 담긴 무게는 얼마나 가벼운지...



그렇게 모든 이야기 하나같이 말끔하게 끝나는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영 어영부영 밋밋하고 찝찝하게 끝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나름의 결말이 있는데, 그게 썩 공감이 되는 측면이 있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결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가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가볍거나 하지도 않다. 읽던 도중 다른 생각이 들거나 하지 않게 재미도 있고.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재능있는 작가 같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흥미로워서 집어 든 책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내용 역시 흥미로웠다. 책 표지에는 ‘에세이’라는 문구가 써있지만, 내용은 마치 잘 짜인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물론 모든 에세이가 100% 있었던 일만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리 두껍지 않기도 했지만, 온갖 표정을 마스크 속으로 지으면서, 지하철 안에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


책은 작가 자신이 겪었던 연애담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 그 중에서도 연애 이야기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도 없으니까. 문제는 보통 그런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길 때, 꽤 많은 각색과 과장이 섞이기도 한다는 점인데(그리고 그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경우 좀 더 윤색이 더해지기도 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리얼’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연애에 있어서 호구라고 부를 정도로, 일방적인 포지션에 자주 선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분명 좋지 않은 표지가 보이는데도 관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물론 사랑의 감정에 빠졌을 때 그걸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때로는 좀 안쓰럽기도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어이가 없어 나오는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가, 거리를 두게도 만든다. 한 사람의 연애 이야기에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나보다 겨우 몇 살 어린 작가인데도, 연애관이나 방식에 있어서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느낌도 준다. 분명 같은 세대니 세대차이까지는 아닐텐데, 정말 이렇게도 한다고? 하진 내가 보통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약간 고립되어 있긴 하지만서도.



무슨 대단한 ‘주의’를 내세우는 대신 담담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씩씩해 보인다. 실제 작가가 어떤 모습일지 살짝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시인이자 작가인 저자와 도무지 시에 대한 감수성이라고는 메마른 논바닥 같은 나 사이에는 그리 많은 공통점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한 번 대화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던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집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38
진주.진경 글.그림 / 고래뱃속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니가 글을 쓰고, 동생이 그림을 그려서 만든 그림책이다. 큼지막한 판형에, 재미있으면서도 잘 구성된 그림이 가득 채워져 있고, 페이지마다 한 줄 정도의 짧은 글이 덧붙여 있다. 글씨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과도 함께 볼 수 있을 만한 책.


물론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이나 볼만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어른들이 볼 가치가 없는 책은 어린 아이에게도 별 가치가 없는 책이니까. 사실 제목부터가 중의적으로 붙어있는, 단지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책 제목이 ‘우리 집’이다. 그리고 내용은 1차적으로 보면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처럼,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린들의 키에 맞춰 아주 높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나, 하얀 헤어밴드를 두르고 러닝머신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치타처럼, 재미있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제목을 정확히 보면 ‘우리’와 ‘집’ 사이에 쉼표가 하나 찍혀있다. ‘우리, 집’.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집’을 수식하는 게 아니라 집과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동물들이 사는 ‘우리’ 말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그림이 좀 다르게 보인다. 도시 한 가운데 담장을 둘러싸고 여러 채의 집들이 배치되어 있는 마을 공간. 그건 어쩌면 동물 우리들이 한데 모여 있는, 동물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동물들은 그 안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고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안 그래도 큰 판형인데,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그 두 배의 사이즈를 책날개처럼 접어서 양쪽으로 활짝 펴면 거대한 화폭이 나타난다. 맨 첫 장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구도의, 하지만 훨씬 더 넓은 (도시가 아니라) 평원을 배경으로 거대한 호수가 중앙에 앉혀있다. 동물들에게는 울타리 속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이런 자연이 진짜 ‘우리 집’이라는 걸 말하려고 했던 걸까.



그림 한 컷 한 컷에 꽤 신경을 썼구나 싶다. 큰 그림에도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고, 특히 동물들이 집에 있는 장면들에서는 은근 개그 욕심도 있었던지 재미있는 배경들이 많이 보인다.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천천히 읽어나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