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이 지극히 평온한 어떤 할머니의 일기를 보며 묘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오래된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잔에게는,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도, 별 공감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야 한다는 압박도, 끊임없이 나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다. 그저 날씨에 따라, 몸 컨디션에 따라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갈 뿐.
문득 전에 봤던 일본 영화(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김태리 배우 주연으로 리메이크를 했었던) “리틀 포레스트”라는 작품도 떠오른다. 시골 마을에 내려온 젊은 여성이 혼자 생활하면서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이야기일 뿐이었는데도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었던.
요샌 이런 걸 힐링이라고도 부르지만, 사실 그런 걸 본다고 뭔가 치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안에 있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일깨울 뿐. 현대인의 삶이란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손에서 빠져나간다. 우리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그렇게 흘려보낸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곤 한다.
물론 잔의 모습이 우리 모두가 따라가야 할 삶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너무 각박하게,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잘 산다는 건 하루하루를 뭔가로 꽉꽉 채우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깨다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노인의 통찰도 인상적이고, 노인 특유의 고집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내는 부분도 재미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아, 왜 책 제목이 “체리토파토파이”냐면... 할머니가 파이에 넣을 체리를 냉동실에서 꺼내려다가 실수로 작은 체리토마토(방울토마토)를 꺼내 넣어버렸던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토마토 파이라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