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말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풀이하자면 자연은 조금도 너그럽지 않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로 그러잖아도 힘든데 태풍까지 잇달아 불어치는 바람에 고통이 가중된 지역의 주민들을 보면 실감나는, 노자의 말이다. 제발 태풍을 멈춰달라고 기도한들 하늘(자연)이 들은 척이나 했겠는가

 

실존주의 소설가 까뮈가 지은 소설 페스트도시에 역병이 창궐하면서 이에 대처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보여주는데신앙의 힘으로 대처하는 모습과 과학(의학)의 힘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까뮈는 후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병이라는 재해는 결코 신앙의 힘으로 누그러워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역설했다.

 

현대 프랑스 실존주의 소설가 까뮈와 수천 년 전 중국의 노자는 전혀 무관한 사이. 하지만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저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사람의 모든 힘을 다 기울이는 수밖에.



사진= https://www.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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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를 8년째 짓고 있다. 산속에 있는 밭이라 그런지 잡초가 극성이다. 내가 위험한 예초기까지 장만한 건 그 때문이다. 예초기로 잡초들을 깎은 지 5년째.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잡초가 1년 내내 기승부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는 4월 중순경에서 시작되어 9월 하순까지 잡초는 기승을 부린다. 반년간이다. 9월을 지나면 잡초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일조량이 부족해지는데다가 날씨가 추워진 탓일 거라 추측한다.

 

지랄 맞은 코로나 역병이다. 하지만 머지않았다. 끝날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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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맛비에 농장에 가지 못했다. 웬일로 어제는 비가 그치며 해까지 잠시 났다. 나는 집에 가만있을 수 없어 차를 몰고 20리 넘어 있는 농장에 갔다. 역시 농장은 잡초들이 기승을 부려 얼마 안 되는 작물과 아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화초들을 쉬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록적인 50일 장맛비의 결과였다.

다행히도 예초기가 작동했다. 예초기를 들고 잡초들을 쳐나가다가 순간 강렬한 통증에 작업을 중단했다. 내 왼손의 손등 한 군데에서 발생한 통증.

누가 그랬는지, 잡초더미로 달아나버려서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벌의 소행 같았다. 예초기를 든 손의 높이로 봐, 그런 높이에서 뱀이 깡총 뛰면서 저지르기 만무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의 반응이다. 그 통증에 순간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하루 지나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50일이나 계속된 지루한 장맛비와, 그 이상 지루하고 답답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나는 갑갑해 죽을 뻔했다가 그 벌에 쏘였기 때문이다. 강렬한 통증은, 기나긴 갑갑한 생활을 순간 잊게 해주는 쾌감 같았다. 하루 지난 오늘 손등이 부어올라 약을 발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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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직생활 30년 중 27년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을 중학교에서 보냈다.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시골 읍에 있는 중학교인데도 대도시의 중학교 못지않게 학력제고에 극성이었다보통 6시간 본수업 후에도 보충수업을 두 시간씩늦도록 학생들을 공부시켰다그러니초등학교에서 편히 지내다가 막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은 아주 힘겨워했다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원래 중학교는 그러는가 보다’ 체념하며 적응들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생이 하나 있었다나는 몇 십 년 지난 지금도 그 학생의 이름을 기억한다○○이었다.

 

산의 진달래꽃들이 아름답던 봄날에 녀석은 느닷없이 학교를 결석했다부모도 그 사실을 몰랐다가 담임선생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니 사유(事由)가 딱히 없는 무단결석이었다.

대개 학생이 무단결석한다 해도 하루쯤이며해 저물녘 자진 귀가해서 부모님한테 호되게 야단 맞고는 다음 날부터 정상 등교를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러질 않았다하루이틀사흘무려 일주일이 되도록 무단결석이 이어졌다부모가 파출소에 실종인 신고를 할 만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녀석이 동네 산에서 지내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된 때문이다학교의 담임선생 또한 녀석과 친한 학생들을 찾아 녀석의 행방을 알아봤는데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걔가 혼자 산에서 진달래꽃들을 따며 놀다가 우리가 이름을 부르며 가면 얼른 다른 데로 숨어버린다니까요산이 우거져서 찾을 수 없어요.”

결국 부모가 결정을 내렸다. ‘학교 다닐 생각이 전혀 없는 아들이니까 학교를 자퇴시키자.’

 

그 후 전개된 녀석의 행로가 흥미로웠다녀석은 자신이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하산(?)하더니 아는 중국집의 배달원이 된 것이다부모가 시킨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진 일이라 했다.

놀랍게도자기가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에도 철가방을 들고서 배달 온 녀석작은 몸에 철가방은 무거워보였다선생 한 분이 짓궂게 물었다.

일이 힘들지 않니?”

말없이 미소만 짓는 녀석.

공부보다 이런 게 더 좋아?”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깨달았다녀석은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하기보다는 철가방을 들지언정 여기저기 바람 쐬며 다니는 게 좋은천생 자유인(自由人)이라는 사실을.

 

이제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지금쯤 잘 됐다면 그 시골 읍의 어느 중국집 사장님이 돼 있지 않을까그러면서 계산대만 지키지 않고 가끔씩 직접 철가방을 들고 밖으로 배달도 나갈 것이다. 오토바이를 신나게 타고서 말이다.

틀림없는 내 예감이다.   

 

사진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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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였다.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지만 교실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보다는 무덥고 끈끈한 공기를 휘젓는 짓에 불과했다. 초보교사인 나는 교단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다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선생에 대한 예의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뿐 더위에 지쳐서 반쯤 졸고들 있었다.

본보기로 한 학생을 일으켜 세워 한바탕 야단침으로써 수업 분위기를 일신시킬까 했지만그래 봤자 그 효과가 몇 분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워낙 무더운 날씨였으니까. 나도 모르게 신세한탄을 했다.

나 참, 이렇게 수업해먹기 힘들어서야!”

그러자 1분단의 뒤쪽에 앉아 있는 녀석이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봉급이 나오잖아요?”

순간 교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학생들이 졸다 말고 확 잠이 깨서 과연 이 불의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까두려운 눈빛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된 초보교사로서 나는 판단을 잘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런 판단을 한 것이다. ‘저 녀석이 날씨가 하도 무더워서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일게다. 괜히 문제 삼으면 일만 복잡해진다.’ 그래서 이런 말로 넘겨버렸다.

허허허그러게 말이다.”

긴장했던 학생들 모두 와하하! 웃어버렸다. 그 바람에 녀석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고 교실은 아연 활기가 살아났다. 나는 수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어언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 지금 어떻게 지낼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있는 회의석상 같은 데에서 불쑥 난감한 소리를 하진 않을까? 예를 들면 마을 회의 중에 이장님이 한창 얘기하는데 불쑥 이장님은 배도 고프지 않소? 밥 먹고 합시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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