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깔끔 떠는 성격이다. 방바닥에 흘린 머리카락 한 점 그냥 못 둔다. 방비를 갖고 와서 그걸 쓸어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거실에 있는, 소파 밑의 먼지는 어쩌기 힘들다. 그 먼지를 쓸어내려면 소파를 들어내야 하는데 여자 힘으로는 소파가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천생 내가 나서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소파를 들어낸 뒤 그 밑의 먼지를 쓸어내는 편이다. 문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라고 짐작하는 것일 뿐 어쩌면 두 달 혹은 석 달인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소파 밑을 오래 방치하다 보면, 세상에, 그냥 먼지라기보다 큼지막한 먼지덩이가 돼서 자발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 모습은 어두운 잿빛에다가, 바다 밑 해삼 닮아서 흐물흐물하다. 결코 정이 가는 모습이 아니다.

오늘도 그런 놈이 자발적으로 소파 밑에서 기어 나왔다. 기겁해서 그 놈을 방비로 쓸어버렸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놈이 그 동안 소파 밑에 숨어 지내면서 우리 집 식구들의 이런저런 얘기는 물론이고 개인정보까지 몰래 엿들어왔던 게 아닐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하지만 세월이 하수상한지라 의구심을 어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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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낡은 담벼락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을까?

도시 재생사업이라 하여 낡은 담벼락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이, 나는 영 마뜩치 않다. 속은 낡았는데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안팎의 부조화를 목격하는 것 같아서다. 낡은 담벼락은 낡은 담벼락대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까?

도시의 세월 속에 풍화되는 빛바랜 낡은 담벼락을 나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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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이 내게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 이상한 낯섦이라니.

그 순간 혹시 내가 아버지가 아닌 오래 전 방황하던 청년으로 되돌아갔던 게 아닐까? 또는 이른 아침부터 굴렁쇠를 굴리며 동네를 누비던 개구쟁이로 되돌아갔던 게 아닐까?

할 말을 잃고 잠시 얼떨떨해 있는 나를 아들은 눈치 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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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 있다. 가끔씩, 어쩌다가 영어 문장이 내 귀에 쏙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유튜브로 지나간 팝송을 별 생각 없이 아무 곡이나 듣고 있었는데 ‘Once there was a love’하는 영어 노랫말이 선하게 들리던 거다.

아쉽게도 그 뒤로 이어지는 영어 노랫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30년간 국어 선생을 한 토박이 한국인이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어쨌든 호세펠리치노라는 가수의 입에서 나온 Once there was a love란 노래구절이 귀에 들리는 순간 나는 전율했다. ‘어느 한 때 사랑한 적이 있었네라 하질 않던가!

“Once there was a love

내 비록 머리 센 노년이지만 젊어 한 때 뜨겁게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음을.


https://youtu.be/wqkwTjSZN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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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는

어디 가지 않았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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