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가 차 뒤쪽에서 났다. 실내 후시경을 보니 웬 교통경찰차가 사이렌에 경광등까지 번쩍이며 차 뒤로 따라붙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를 세웠다. 교통경찰차도 따라서고 이윽고 경찰관 한 명이 내렸다. 내 차의 열린 운전석 창 가까이 와 말했다.

범칙금을 내셔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서류에 뭘 적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결코 과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지 한 장 떼이면 몇 만 원인데 가만있을 수 없었다.

아니, 제가 뭘 어겼습니까?”

운전 중 전방주시태만입니다.”

아니, 조심해서 천천히 달렸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건 어째 이상하다. 그렇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빨리 깨자.’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거실 아랫목이었다.

늙어서일 게다, 새벽 4시경에 잠이 깬다. 그러면 컴퓨터를 켜서 하룻밤 새 뉴스도 보고 그러다가 6시경에 혼자 주방에서 아침밥을 먹는다. 곤하게 자는 아내를 깨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식후 30분에 혈압약과 통풍약을 먹는다. 전에, 약봉지를 달고 사는 노인들을 참 한심하게 여겼는데 내가 바로 그런 노인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약 기운에다가 식곤증이 복합적으로 밀려오면서 다시 아침잠을 30여 분 잔다. 오늘은 그 순간에 교통경찰한테 혼나는 꿈을 꾸다 깬 것이다. 꿈이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참 어이없다는 생각도 든다. 꿈속에서이라는 걸 의식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은 물론이고 한 10년 전만 해도 자면서 꾸는 꿈은 조금도 의심 없는 완전한 꿈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꿈과 현실이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

모처럼 꾸는 꿈조차 순수함을 잃다니!’

정처 모를 실망감에 거실 창밖을 망연하게 내다보았다. 어제는 종일 흐린 것 같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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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성각 후배(소설가. 현재는 환경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를 한 번은 만날 거라 생각했다. 다른 데도 아닌 춘천의서면 어느 마을에 와 살고 있다니(박기동 시인이 전한 소식이다.) 머지않아 만나게 되겠지 한 것이다. 그러면서 삼사 년이 그냥 흘렀다.

 

나는 티베트 불교의 김규현 법사를 한 번은 만나고 싶었다. 2016년에 첫 작품집을 낼 때 티베트 천장사를 주인공으로 한 라싸로 가는 길을 쓰면서부터다. 티베트 관련 서적들을 구해 그 지역의 문화(특히 천장 풍습)를 공부한 뒤 썼지만 아무래도 미진한 마음이었다. ‘룽다타르쵸는 어떻게 다른지, ‘티베트 불교를 밀교라고도 하는데 왜 그런지등등 김규현 거사를 직접 만나 봬야 해소될 물음들이었다. 하지만 김 거사는 무슨 일인지 저 먼 네팔에 가 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2018년에 두 번째 작품집을 내면서 먼동이라는 티베트 천장사의 행로를 썼다. 티베트에 가보지도 않고 관련서적의 지식에다가 상상력을 보탠 그 먼동에 지인들이 두 번째 작품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좋아하는 데 나는 놀랐다. 하긴 첫 번째 작품집의 라싸로 가는 길역시 반응이 좋았다. 그 때문에 2년 지나 먼동을 쓴 것이지만.

이래저래 나는 김규현 거사를 한 번은 만나봐야 했다. 하지만 네팔이란 먼 나라를 그 용건 하나로 찾아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결론 내렸다. ‘연이 닿으면 만나겠지.’

 

나는 마임이스트 유진규씨를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다. 물론 그를 TV에서 자주 봤고 내가 사는 춘천 어느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지만실제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나의 이런 말에 누군가가 질문할 수 있다.

아니, 춘천에 살면서 유진규씨 마임공연 한 번 못 봤단 말이오?”

그렇게 됐습니다.”

 

202076일 밤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서면에 있는 나비야 게스트 하우스에 갔다가 그 세 사람을 한꺼번에 만났다. 40여 년 전 강릉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 어느 카페에 마주앉아 대작하던 추억이 여태 생생한 최성각 씨. 티베트 천장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쓰게 되면서 한 번 만나 뵀으면 한 김규현 거사.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 그리고 다른 좋은 분들.

모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숲이 가까이 있어 모기들이 성가시긴 했지만 즐거운 밤이었다. ()들이 모인 기념비적인 밤.

그 밤의 장면들을 내 아내가 사진으로 담았다.

 

 

덧붙임: 내 평생 게스트 하우스라는 데를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우리말로 나그네들이 묵는 집이 아닐까?

그 날 밤 나그네들이 연을 따라 그 집에서 만났다. 나그네. 우리는 사실 이 세상에 온 나그네다. 세상 뜰 때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한다. 하긴 세상에 태어날 때도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던 것을.

공수래공수거.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202076일 나비야 게스트하우스의 밤이 추억으로 깊게 남을 거라 여기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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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물이라도 먼데 있으면 작게, 가까이 있으면 크게 그려야 한다는 원근법.

이 원근법을, 우리는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다. 그런데 원근법을 확인할 수 있는 실제 풍경이 별로 없다. 줄맞춰 가는 군 트럭들이라든가, 똑같은 높이의 수십 여 동 아파트 풍경이라면 모를까.

 

나는 서현종의 어느 겨울그림을 보는 순간 먼데 있는 산일수록 커다란 산인데 비해 가까이 있는 산은 자그마한 산인, 원근법이 무시되는 실제 풍경을 확인했다. 그렇다. 산들은 그런 모습이 정답이다. 사람들이 기대며 사는 산은 부근의 나지막한 산일 터. 그런 산기슭이라야 집을 짓고 밭을 꾸미고 우물을 팔 수 있었다. 먼데의 높고 큰 산은 산신령(호랑이)이 사는 곳이라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어느 겨울그림에서 도시(都市)는 나지막한 산들의 기슭에 기대어 있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산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첩첩이다. 시민들이 평소에 잊고 있는 나지막한 산들 뒤편으로 엄청나게 높은 산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걸까?

문명의 총화인 도시조차 대자연의 한 구석에 불과함을 에둘러 말해주는 걸까.

 

서현종이 자기 그림의 브랜드처럼 한편에 올리는 그믐달 대신에, 이번에는 작지만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시민들이 잊고 있는, 높은 산들의 존재만큼이나 의외다.

어쨌든 첩첩 산들을 검푸른 색조로 묵직하게 그려낸 그의 심중(心中). 무슨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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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숲이 푸른 것을 ‘GREEN', 바다가 푸른 것을 ’BLUE'라고 분명히 구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같은 푸른색으로 표현하는데 말이다.

나는 오늘 춘심산촌에 왔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같은 푸른색으로 표현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주위의 짙푸른 녹음이 바닷물처럼 넘실거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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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 춘천에 미미(美美) 다방이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던 거북당빵집 건물의 맞은편 건물 2층에 있었다. 이름이 얼마나 예쁘나. 한자로도 예쁘지만 그냥 우리말로도 예쁜 미미’.

2층에 있으므로 지상의 입구에서부터 층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야 했다. 다 올라가서 문을 열면 연한 꽃무늬 장식의 30여 평 공간에 팝송이 흐르고 있었다. 폴모리아 악단의 ‘LOVE IS BLUE'라든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가 자주 나왔다. 한편에 뮤직박스가 있어서 전문 DJ가 희망음악을 신청 받았다. 딴 음악다방과 다른 점이라면 신청 받은 음악을 항상 나지막하게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톰존스가 우렁차게 불러 세계적인 팝송이 된 딜라일러조차 폴모리아 악단의 경음악으로 나지막하게잔잔하게 틀어주었다.

나는 1971년에 한동안 미미 다방 가기를 좋아했다. 커다란 엠프스피커가 설치된 구석이 내 자리였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그 자리에서 점심도 거르면서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사랑문제도 쉬 풀리지 않고 학교 다니기도 따분했다. 따분한 것은 둘째고 어려운 집안 형편상 다음 학기부터 휴학할지 몰랐다. 서툰 줄담배를 피우면서 고뇌에 잠겨 보내던 미미 다방의 날들.

어느 날이다. 빈속에 줄담배를 태우며 음악을 듣다가 오줌이 마려워졌다. 뮤직박스 앞을 지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기 앞에 섰는데 눈높이에 작은 창이 나 있었다. 소변을 보면서 바깥 풍경도 즐기라고 창을 그리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요즘 같으면 다른 건물들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당시는 그럴 만한 건물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번쩍하며 창밖 하늘을 번개가 지나갔다. 나는 오줌 누다 말고 얼떨떨해서 계속 하늘을 지켜보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른번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기장에 한 줄 적었다. 의미 없는 듯, 있는 듯한 한 줄.

창밖으로 번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내 젊은 날 춘천에 미미 다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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