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다가 단독주택을 짓고 이사왔다. 이삿짐들을 풀어 새 방과 거실 등에 배치하고 마무리가 미흡한 부분은 업자를 불러 손질하는 등 바쁜 한 달이 지나갔다. 과연 아파트에서 살  때와 차이점이 뭔가 생각해  봤다. 위 아래로 다른 집도  살고 있다는 외형적인 측면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가장 분명한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관리비 고지서가 사라진 것이다. 오랜 세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매달 납부하던  관리비가 더 이상 내게 부과될 수가 없다는 극히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사실이라니!
  그 후 20년이 흘렀다.
  많지 않던 관리비였지만 그래도 매 달, 20년 간이나 낼 일 없이 살아왔다면 그 만큼의 돈을  절약했거나 모았을 거라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아파트 관리비는 사라졌지만 대신 살고 있는 단독주택을 관리하는 비용이 대략 그만큼 든 것이다. 외벽에  방수처리도 하고 페인트도 두 번인가 칠해야 했다.마당의 수도도 한겨울에 얼어터져 땅 파고 관을 다시 깔아야 했다. 물론 업자들한테 돈을 주고 했다. 내가 돈 아낀다고 나섰다가는 돈은 돈대로 들고 일은 일대로 커질 게 분명했으니까. 
  늘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새벽에도 나는 겉옷을 걸치고 나가 집의 외벽부터 마당의 수도 상태까지 살폈다.아파트 관리 사무소의 관리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내 스스로 사는 집을 괸리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떠오른다. 일단 어떤 에너지가 발생하고 나면  형태는 바뀔지언정 그 총량은  변함없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하기는, 내가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어느 시점이 되자 그때부터는 연로해진 부모님이 내 보살핌을 받게 되던 것이다. 부모 자식간의 보살핌조차 형태만 바뀔 뿐 끊이지 않고 계속됨을 절감했다.

​  세월이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는 퇴직했다.
  어려서 내 보살핌을 받던 아들애는 다 커서 회사에 취직했다. 장가 갈 준비도 하는 아들애를 보면서 부모자식 간의 보살핌이란 에너지가 서서히 옮겨지려 함을 느끼는 추석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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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복 차림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있다. 우선은 모 우체국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언뜻 보면 경찰복 비슷한 차림으로 일하는데 둥글둥글한 얼굴형이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

두 번째 청년은 모 식품매장에서 일한다. 주로 주부들을 상대하는 식품매장의 분위기 상 대부분 여 직원들인데 그만 혼자 남자 직원이다. 말하자면 청일점이라 할 만하다. 그는 회사의 제복 차림인 것은 물론이고 동료 여 종업원들처럼 앞치마까지 두른 모습으로 항상 상냥하고 성실하게 손님을 맞는다.

세 번째 청년은 세탁소 사장이다. 물론 혼자 하는 자영업이다. 아무 옷이나 걸치고서 근무해도 될 듯싶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이다. 특별한 제복차림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에서 제복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는 도시가 아직은 좁은 것일까? 그 제복 차림의 청년들을 잇달아 밖에서 목격할 줄이야.

우체국 청년은 경찰복 비슷한 차림 대신 청바지 패션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어딘가로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식품매장의 청년은 앞치마를 두르는 회사 제복 대신 멋진 선그라스까지 쓴, 산뜻한 야외복 차림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세탁소 청년은 식당에서 보았는데 친구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세탁소에서 입는 옷이 아닌, 간편복 차림이었다.

 

세 청년들을 밖에서 잇달아 목격하게 되면서제복 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제복 차림으로, 밖에서는 편안한 차림으로 열심히 사는 젊은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침체의 늪에서 결국은 일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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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사진 찍히면 그  순간 영혼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요즈음  원주민들의  주장이  왠지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현 세상을 어지럽히는 "외모지상주의"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닌가.  오직  외모 다듬기에  전념해 사진 찍히기를  즐기는 순간  맑던 영혼이 흐려지며  결국은 머리 빈 사람의 꼴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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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도내 여러 지방의 학교에서 근무했다. 동해안의 작은 읍에 있는 학교부터 영서지방의 대도시에 있는 학교까지, 일곱 학교나 된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어느 지방의 학생들이든지 첫눈이 내리는 날 연인들이 만나는 그곳을 한결같이 얘기하더라는 거다. ‘그곳은 그 지방에 있는 바닷가이거나, 강가 제방 길이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진가. 첫눈이 흰 꽃잎들처럼 날리는 바닷가나 강가 제방 길에서 만난 연인들의 모습. 둘이 눈길을 걸어가는 장면…….

그래서 첫눈 내리는 날은 수업하기 무척 힘들었다. 학생들이 오늘 같은 날은 그곳에서 연인들이 많이 만날 텐데하는 생각들로 뒤숭숭해 앉아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첫눈 내리는 날 연인들이 바닷가나 호숫가에서 데이트하고 있을까?”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궁금증을 품다. 그래서 첫눈만 내리면 눈을 맞아가며 그곳에 부리나케 가 보았다. 몇 번을 가 보았다. 이제 결론을 말한다.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는 연인들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곳에는 나 혼자만 와 있기도 했다. 연인들은커녕 사람 비슷한 존재도 안 보이는데 나 혼자 쓰잘데없이 눈을 맞는 처량함 내지 머쓱함이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것이다.

 

내가 퇴직한 뒤에도, 해마다 겨울이면 첫눈이 내린다. 물론 이제는 첫눈 할아비가 내린다 해도 그곳에 가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학교에 재직할 때 학생들은 왜,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서 만나는 연인들의 환상을 가졌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답이 나왔다. 학생들은 학교와 집만 오가며 공부해야하는 숨 막힐 것 같은 생활에 그런 아름다운 환상이라도 갖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힘들여 써야 하는 손 편지 대신 쉽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쳐 보낼 수 있는 요즈음 같은 시대에도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 가면의 환상이 여전히 학생들에게 남아 있을까? 이제 나는 다른 궁금한 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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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수업이나 참관수업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기를 전제로 한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교사 질문에 답변할 학생들을 미리 정해놓는 각본 구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어교사인  나는 그런 관행에 저항감을 느꼈다. 학생들이 평소 수업 때  모습 그대로  하도록  당부하고 국어 연구수업을 한 것이다. 끝나고 평가회 때 학생들의 발표가 틀리기도 하는 등 매우 자연스런 수업이었다는 호평이 뒤따랐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 호평 받은 연구수업을 다시 생각해 본다. 과연 그 수업이 자연스러웠을까?  글쎄, 회의적이다. 당시 학생들이 아무리 평소 수업 때 모습  그대로를  보이려 했어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예로써, 평소 수업 때 수시로 장난 치다가  야단 맞는 학생이 있었는데 당연히 연구수업 때에는 똑바른 자세로 성실히 수업에  임했던 것이다. 외부손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히 장난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모든  학생들이 외부손님들의 눈길을 의식한 순간 평소의 실제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다.

   타인의 눈길을  의식한 순간 평소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기 앞에 서는 순간 절대 평소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뿐만도 아니다. 동물도 사람의 사진기가 자신을 향했음을 인식한 순간 실제 모습에서 벗어난다. 허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거나  획 달아나거나 아니면 놀란 모습이라도  보인다.
   주변에 cctv가 사방에 설치되었다. 속성상 몰래 카메라이기에  설치돼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느 곳에  cctv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반쯤은 주눅들어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하긴, 숨 거두는  순간까지 남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는 게 우리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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