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그분은 존대하기 힘든 대상이다. 농부들이 구슬땀 흘려가며 일군 밭을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도시 한복판에까지 들이닥쳐 인명 피해까지 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이그분이라 존대해 불러주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 산하에서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곰 늑대 등이 산하에서 멸종된 현재 그분이 남아 있는 산짐승들 중 최상위 포식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비록 산짐승이긴 하나 존대해 불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선조들이 무서운 호랑이를 산신령’‘산중왕등으로 존대해 불러줌으로써 호환을 피하고자 한 역설적 두려움이 무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이번에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정감 있는 첫 인상 탓이다. 먼저 글에서 밝혔듯이 우리 밭에 접근하다가 동네 사람이 소리 지르는 데 기겁하여 산으로 달아나던 모습무거운 엉덩이로 뒤뚱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며 달아나던 모습에 무심은 왠지 정감을 느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희화화한다면바람피우는 현장이 발각되자 허둥지둥 뒤도 안 돌아보며 달아나는 중년 사내뒷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산으로 달아나는 그분을 보며 가슴이 벌벌 떨렸다는 아내가 알면당신 미쳤어?!’하고 외마디 비명처럼 타박하겠지만 말이다.

지난번그분이란 글에 선배 작가 한 분은 부모님 묘소를 헤집어 놓고 가기 일쑤인 깡패 같은 놈들이라는 악 경험을 전했고 시인 한 분은재작년 그분들이 나타나 이틀 동안 옥수수를 4접 넘게 식사하고 갔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울타리처럼 2-3줄은 남겨 놓고 그 안을 초토화 시킨영악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또 다른 선배 작가는 무심에게 직접 전화해서그분들 하는 짓이 자네 창작에 좋은 소재가 되려고 종사(從事)하는 것이라며 한바탕 웃었다.

이런 상황이니 무심은그분이 우리 춘심산촌에 또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마음 한편으로는그 모습을 멀리서라도 한 번 보이곤 얼른 사라질 수는 없나?’바라기도 한다. 이 이상한 내적갈등. 좀 더 지켜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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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서로 모습을 보이면서 이뤄지는 게 아닌가. 혹 전화 통화나 이메일로 첫 인사를 건네면서만남이 시작됐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제대로 된 만남은 못된다. ‘만남이 시작됐다는 표현 자체에서 알 수 있듯 만남의 완성을 위한 출발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만남의 시작은 어느 시점에 서로 모습을 보이면서 소멸될 게다.

 

우리 내외와 그분과의 만남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처음에 그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취로써 선보였다. 2012년 여름 어느 날, 우리 내외가 땀 흘려 농사짓는 고구마 밭을 일시에 폭탄 맞은 듯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흔적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 짓인지 몰라 인근에서 농사짓는 분한테 그 요절난 고구마 밭을 보였더니 이렇게 말씀했다.

멧돼지 짓이네. 그러잖아도 이 지역은 산골짜기라 산짐승들이 자주 내려온다고 알려드리려 했는데. 우리처럼 상주하면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면 고구마 농사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아요. 산짐승들도 사람들이 고구마를 맛있어 하면 똑같이 맛있어 하니까 말입니다. 수박 참외 같은 농사를 이 동네에서 엄두내지 못하는 게 그 때문이죠.”그럼 여기는 뭘 농사지어야 합니까?”

옥수수 농사가 무난하죠. 그놈들이 옥수수를 따다 쪄 먹을 것도 아니니 밭의 옥수수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내외는 이듬해 봄, 밭에다 옥수수 모종을 사다 심었다. 고추도 겸해서 심었다. 그랬더니 밭에 별일 없이 그 해가 갔다. 다시 해가 바뀌었다. 가을 어느 날 우리 밭 바로 아래 집에 들러 동네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밖에서 누군가 소리 질렀다.

멧돼지다!”

얘기 나누다 말고 뛰쳐나와 그 쪽을 봤더니 우리 밭 가까운 산 쪽으로 뒤뚱거리며 달아나는 '그분' 이 보였다. 50미터가 넘는 거리에, 엉덩이만 보이는지라 그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못됐다. 하지만 멧돼지인 것은 분명했다. 흑갈색 털빛이며 돼지 특유의 뒤뚱거리는 걸음이며. 그분은 우리 밭에 먹을 작물이 없나 해서 옥수수 밭에 접근했다가 동네 사람이 소리치자 기겁해 달아난 것이다.

가슴이 벌벌 떨린다는 아내 옆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산으로 달아나다니, 그럼 자기가 잘못했다는 도덕적 관념이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도덕적 관념이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강한 자(사람)과 맞닥뜨렸다는 두려움에 달아난 거겠지.’

여하튼 결론은 그렇게 내렸지만 그분의 뒤뚱거리며 산속으로 피하는 모습 자체는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뒤 달아나는 행동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냥 사람도 아니다. 엉덩이가 무거워 바삐 움직일 때마다 뒤뚱거리는 중년 느낌의 사람이다.

그 후 몇 년 간 그분이 우리 밭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라니는 간간이 옥수수 밭에 숨어 있다가 달아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고라니는 옥수수를 먹으러 숨어든다기보다 산에서 지내다가 답답해서 옥수수 밭으로 바람 쐬러 나오는 느낌이었다. 옥수수도 별로 훼손되지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런데 지난 주그분이 느닷없이 옥수수 밭을 휘젓고 간 것이다.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밭을 폭격 맞은 듯 마구 휘젓고 특히 여물지도 못한 옥수수들까지 씹었다 만 꼴로 방치하고 한 행태로 봐 분명히 그분이었다. 옥수수는 그분이 잘 건드리지 않는다더니 어쩐 일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내외는 하는 수 없이 울타리 망을 농협에서 사다가 옥수수 밭에 쳐야 했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종일 망을 쳤는데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비닐 울타리 망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저돌적으로 울타리에 달려든다면 금세 찢어지거나 무너질 텐데.’

그건 그렇고 한 번도 제대로 서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우리 내외와 그분. 이런 경우는 수많은만남중 어떤 만남에 속할까?

그리고 참, 이번의 그분이 몇 년 전의 그분과 같은 존재일까 다른 존재일까? 밭의 피해는 피해이고 이제는 의문까지 더해지는 신비스런 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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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문세는 정감 어린 노래를 많이 부른다. 나는 그의옛사랑노래를 듣다가 이상한 대목의 가사에 놀랐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란 대목이 그것이다. 아무리 지나간 옛사랑이어도 그렇지 지겨울 때가 있다니,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인들의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이어야 할 듯싶은데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건 잘못된 표현 같았다. 결국 작사한 이(이영훈이란 분이 이 노래의 작사는 물론 작곡까지 했단다. 고인이 되셨지만 정말 대단한 분이다.)의 악수(惡手)일 거라 결론 내렸다. 악수란 바둑이나 장기에서 잘못 두는 수를 말하는데장고(長考) 끝에 악수란 말이 있듯 그가옛사랑가사를 쓸 때 너무 골몰하다가 실책을 저지른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지겹다란 단어의 정의를 사전에서 이렇게 풀이한다.‘지겹다: 같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지루함과 싫증을 느끼는 상태에 있다.’

 

하지만 요즈음 그런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감정이란 여름하늘의 구름처럼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사랑하는 마음 또한 지겨울 수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그런 경우를 나타낸다. 아무리 효심 깊은 자식이라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집안의 남은 재산마저 다 날리고야 세상을 뜰 것 같은 부모님 병치레가 있다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어서 세상을 뜨시지 않고 뭐하는 거야?’ 같은 나쁜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물며 지나간 옛사랑의 연인을 대상으로 여태 간직하고 있는사랑감정이야 오죽하랴. 솔직히 옛사랑의 연인은 지금 다른 좋은 연인과 사랑에 빠져 당신과의 사랑 추억은 몽땅 쓰레기통에 내버렸을 수 있다. 그렇기도 하고 당신 또한 옛사랑보다는 지금의 사랑에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그 길이 인생길의 정답이다.

맞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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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에 우리 집을 지었다. 직장에 매여 직접 지을 수는 없기에 건축청부업자한테 맡겼다. 나는 시간이 날 때 집 짓는 현장을 잠깐씩 구경하곤 했는데 각 방의 벽과 문을 건축하는 과정을 보며 조금 놀랐다. 내 상식으로는 먼저 벽을 만든 뒤 문을 내는 거로 알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먼저 문의 틀을 지지대로 세워놓은 뒤에 벽을 쌓는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깨달았다. 벽을 쌓는 일은 단순하고 쉬운 작업이지만 문을 다는 일은 벽에 비해 무척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어서 그리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벽이야 벽돌들을 줄에 맞춰 쌓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문이 어디 그런가. 문짝도 있어야 하는데다가 문틀이 벽과 빈틈없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천생 벽보다 문이 먼저였다.

 

춘심산촌에 고라니니 멧돼지니 하는 분들이 예고 없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결코 반갑지 않은 그분들의 방문을 막고자 울타리 망을 밭에 두르기로 했다. 울타리 망도 여러 종류이지만 우리 내외는 저렴하고 보기 좋은 푸른색 비닐 울타리 망을 농협에서 사다 쳤다. 집 지을 때와 달리, 급한 대로 먼저 벽 같은 울타리부터 쉬 둘러쳤는데 문제는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히 여겼다. 울타리 한구석을 문으로 여겨 그곳을 젖혀두었다가, 밭일이 끝난 뒤 다시 복원시키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쉽게 여닫는 문이 되니 쉽게 쓰러지는 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문틀 같은 것도 없이 벽의 한 부분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식이었으니. (지금도 밭에다 비닐 울타리 망을 친 분들은 대개 이런 방식이다. 말 그대로 임시방편 울타리다.)

철학적인 깨달음이 왔다. ‘벽은 문이 있어야 존재한다. 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벽도 제대로 존재 못한다. 비닐 울타리 망이더라도 제 구실하기를 바란다면 문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문을 목공소에 의뢰해서 해결하기는 멋쩍었다. 돈도 돈이고 그런 문을 달아야 할 만큼 대단한 울타리가 아니지 않은가.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우리 밭 울타리 망에 어울리는 문을 만들어다는 데 성공했다. 들어간 재료는 '남은 울타리 망 일부와 폐()고추지지대 열 개 정도, 농사용 가느다란 끈 정도이다.

원리는 안방 벽에 거는 족자처럼거는 방식이다. 밭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는 그저의 아래 부분을 손으로 잡아 위로 올려 걸어놓으면 된다. 밭일을 마치고 나올 때는 위로 올려놓았던 문을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중력의 원리로써 당연히 문은 아래 땅바닥까지 쉬 내려온다. (첨부해 올린 사진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금도 반갑지 않은 고라니 멧돼지 분들. 당신들이 밤에 내려와 우리 밭의 작물들을 맛보려다가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울타리 망을 두고 아무리 돌아도 밭으로 들어갈 구멍 하나 없는 현실. 울타리 중 이상한 데()가 있어서 왠지 그곳으로 출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러나 네 발 짐승이라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없으니 결국 입맛을 쩝쩝 다시며 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그렇다. 당신들이 네 발 짐승이길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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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하수도 공사를 지켜봤다. 골목길을 파서 헌 하수도관을 꺼낸 뒤 그 자리에 새 하수도관과 흙을 채워 넣는데 이상한 것은 그 상태로 사나흘 간 공사를 않고 내버려두는 광경이었다. 즉시 흙을 다져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것은일부러 내버려두는광경이었다. 새 하수도관과 함께 새로 채워 넣은 흙들이 자연스레 알아서 빈 공간을 메우도록 일부러 시간을 두는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하기는 집을 지을 때도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을에 기초공사까지 하고 그냥 겨울을 나는 것이라 했다. 기초공사한 것이 알아서 대지(大地)와 한 덩어리가 되도록 긴 겨울이란 시간을 일부러 부여하는 것이다. 대지와 한 덩어리가 된 이듬해 봄, 그만큼 기초가 든든한 집이 어디 또 있을쏜가.

 

가슴 아픈 실연도 묘약이 따로 없다. 그저 세월이 흐르기를 바랄 뿐. 가수 송대관이 일찍이 노래 부르지 않았나?

세월이 약이겠지요 당신의 슬픔을/ 괴롭다 하지 말고 서럽다 울지를 마오/

세월이 흐르면 사랑의 슬픔도 잊어버린다/이 슬픔 모두가 세월이 약이겠지요/

세월이 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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