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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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미인>에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미인이 여럿 나온다. 그 미인들을 분석하고 순위를 매김으로써 미모만을 따지는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1. 오아키, 17세

귀신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 인물로 미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듯 싶다.

그릇가게 딸의 증언이다. “참 예쁘다 싶어 감탄했어요. 살결이 희고 눈매는 시원하고 몸매는 날씬하고...아아, 정말 부럽다, 하고 생각했죠.(191쪽)”

물론 오아키는 자기가 예쁘다는 걸 안다. 그가 별로 안예쁜 다른 여자에게 했던 말, “내가 예쁘다고 그렇게 주눅 들 필요 없어요. 그쪽도 그쪽한테 어울리는 남자랑 새살림 차릴 거잖아요. 그러면 됐죠.”(196쪽)

이런 자신감은 웬만한 미녀가 아니고선 가질 수 없다. 단연 우승후보다.


2. 오하쓰, 17세

남이 못보는 걸 보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로, <식스센스>를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우쿄노스케라는 남자가 좋아하는 걸로 보아 웬만큼 미모가 되는 듯하다.

오하쓰의 미모를 짐작케 해주는 단서는 다음과 같다.

“기대 이상으로 예뻐졌어.”(74쪽) <--어릴 적은 별로였고 기대를 안했다는 뜻도 되니 대단한 미녀는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어여쁜 아가씨께서 무슨 일이지?”(75쪽)

결정적으로 젊고 총명한 남자 우쿄노스케의 말, “오하쓰 씨처럼 출중한 사람이 저한테 시집을 온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죠. 아버지는 꿈을 꾸시는 겁니다.”(504쪽)

하지만 이 말만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게, 우쿄노스케가 오하쓰를 좋아하니까 예쁘게 보이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말은 반만 믿자.


3. 오리쓰

청과물점 집안의 맏딸로, 미모와 더불어 성격도 좋은 모양이다. 오리쓰 동생의 증언이다.

“언니는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다들 귀여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326쪽)

오리쓰가 가진 미모의 비결은 뭘까?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절에) 참배하러 가서 예쁜 딸을 점지해 달라고 기도했고요..그래서 언니가 그렇게 예쁜 얼굴로 태어났대요. 마음씨도 착하고.”(336쪽)

미모에다 성격도 좋고 착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여기선 미모만 따지기로 했으니, 성격은 제외하자.


4. 오미요

그릇 가게의 딸로 거의 유일하게 미인이 아니다.

[“뭐, 우리 딸이야 오아키처럼 예쁜 얼굴을 타고 나지 못했지만...”

“당신을 닮았잖우!”

“허튼 소리! 오미요는 당신을 쏙 뺐어.”

“어머 세상에, 당신의 말상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갔잖우”.(185쪽)]

부부가 서로의 탓을 할 정도라니, 마음이 아프다. 조금 더 읽다보면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말상이라고 하면 딱하지만, 긴 얼굴에 턱이 살짝 주걱턱이고 키는 여자치고는 훤칠한데...”

더 마음이 아픈 건, 스스로도 그걸 안다는 사실.

“나는 빈말로라도 예쁘다고 할 수 없잖아요.”(192쪽)

아까 오아키한테 못생겼다고 면박을 당한 여자가 바로 오미요인데, 성격이 좋은데다 총명하다는 게 외모를 상쇄시키지만, 이번 대회는 미모만 보기로 했으니 아쉽게 최하위다.


5. 오쿄

1-3번 후보 중에서 우승자가 나올 것 같았지만 300페이지를 넘어서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오쿄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아내가 있는 남자의 정부로, 미모가 어마어마한 모양이다.

경쟁자인 오하쓰의 증언, “넋이 나갈 정도로 예쁘고 몸놀림도 기민했다.”(313쪽)

이 여인이 가진 미모의 비결은 역시 혼혈파워가 아닌가 싶다.

“천녀처럼 예쁘죠? 남만 피가 섞여 있는 여자라는데...”(313쪽)

미녀 중에는 가까이서 보면 별로인 사람도 있지만, 오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까이서 본 오쿄는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웠다.”(362쪽)

그러다보니 오쿄는 자신감이 넘치고, 누군가가 “오늘은 더 고우십니다”라고 하자 이런 반응을 보인다.

“오쿄는 미소만 지을 뿐...뭐라고 대답하지도 교태를 부리지도 않았다. 자신이 미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굳이 겸손을 떨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362쪽)

그래서 결정했다. <미인>배 쟁탈 미녀대회의 우승은 오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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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진정 미인은 교태를 부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군요.
가만히 생각할수록 정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통찰해내신 마태님, 대단하세요~

즐거운 주말되셔염.

마태우스 2011-08-09 14:57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평소부터 미모에 관심을 가졌던 게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온 듯합니다^^

blanca 2011-08-07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완전 재미있는 리뷰입니다. 가까이서도 이쁜 여인이 정말 미인이지요.

마태우스 2011-08-09 14:57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멀리서만 미녀는 진정한 미녀가 아니죠ㅕ^^

하이드 2011-08-0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제는 <미인> 아니고 <천구바람>이었는데, <미인>으로 바꿨다고 들었는데, 이 리뷰를 보니, 원제를 바꾼 출판사가 원망스러워지려고 하는군요. ㅎ

마태우스 2011-08-09 14:57   좋아요 0 | URL
천구바람이었다면 제가 이런 리뷰를 절대 쓰지 않았을 겁니다^^ 롯데 화이팅.
 
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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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트 샤말란을 유명하게 만든 <식스센스>는 막판 반전이 돋보이는 영화여서,

마음에 안드는 이한테는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야!”라고 말해주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반전을 알고 모르건 간에 그 영화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무서웠던 영화로,

유령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의 볼륨을 높이는 장면은 어찌나 머리칼이 쭈뼛하든지, 오래오래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반전을 안다고 영화나 책이 재미가 없다면

그건 그 작품에 반전 말고는 볼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반전에 목숨을 걸며,

마키 사쓰지가 쓴 <완전연애>도 특별한 사건 없이 막판 반전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책이다.

하지만 반전까지 가는 길이 무지하게 지루한 과정이라,

중간에 책을 던져버리고픈 유혹을 열 번쯤 느꼈다.

게다가 겨우 다다른 그 반전이란 것도 시시하기 그지없어,

겨우 이거였냐,는 허탈함만이 내 몸을 휘감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을 워낙 많이 접한 탓일 수도 있다.


처음엔 그래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도모네’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이 미녀였던 것.

‘이제 뭔가 좀 되려나보다’는 기대를 한 건 당연지사,

하지만 책을 10분의 1쯤 읽었을 때 도모네가 그만 죽어 버리자

도대체 어디다 마음을 두고 읽어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도모네의 딸인 ‘히라’가 미녀라기에 또 기대를 해봤는데

그녀 역시 별다른 로맨스 없이 가버린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나란 놈은 책을 읽을 때 미녀가 나오고 야한 장면도 적당히 있어야 ‘좋은 책이다!’라고 열광하는 놈 같은데,

스토리가 무미건조하니까 미녀를 찾게 되는 거지 내가 원래 그런 놈은 아니다.

나이든 화가와 그 남자 제자, 그리고 미술잡지 남자사장만 죽어라 나와서

별로 시덥잖은 얘기만 하고 있는데 재미가 있겠는가?


이건 뭐, 어디까지나 내 얘기일 뿐,

리뷰를 보면 “중독성이 있다”는 식의 호평이 훨씬 더 많으니

미녀가 안나와도 괜찮다는 분은 선택하셔도 좋을 것 같다.

취향이란 건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라,

<히어 애프터>를 보고 “해운대보다 CG가 후지다”며 별 반개를 준 분도 있고,

“역시 거장의 영화”라며 다섯 개의 별을 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기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임을 만들어 정보를 주고받는 게

실패를 안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를 해보는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예시다).


A님: 해운대 (별 셋) 히어애프터 (별 넷) 글러브 (별 둘)

B님: 완전연애 (별 둘) 체포왕 (별 넷) 고백 (별 다섯)

C님: 해리포터 (별넷) 모비딕 (별하나) 127시간 (별 셋)


이런 식으로 정리된 데이터가 있다면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이렇게 만들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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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6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9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1-07-1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책 소개만으로는 읽어보고 싶은데 마태님 리뷰를 읽고 보니 망설여지네요.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책인가봐요.

2011-07-19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르헨 2011-07-1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너무 치우친 책읽기를 하고 있다 싶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그냥 내가 읽고 싶고 궁금하고 그런 책에 손이 가고 눈이 가는걸...^^
저런 데이터...마태님께서 한번 해 보심이..ㅎㅎㅎ

마태우스 2011-07-19 11:00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먼저 메르헨님과 저의 공통점부터 찾아볼게요^^

재는재로 2011-09-03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지만 중반쯤 되는까 반전트릭이 뭔지 알게된니 시시해저서 그래도 끝까진 읽어는데 그냥 연애소설이데오
 
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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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휴지를 다 쓰면 심지가 남는다. 
 

그 심지는 대개 버려진다.

다른 쓸 곳이 없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의외로 유용한 게 많았는데, 

그 중에는 이런 게시물이 있었다.

http://www.mjnuri.com/281137
 



내가 어릴 적,

포경수술 후 상처 부위가 팬티에 닿을까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그 심지는 복음이었다.

나 역시 그 심지를 고맙게 잘 썼던 기억이 나는데,

노르웨이 작가가 쓴 스릴러 <헤드 헌터>를 보면

그 심지를 이용하는 또 다른 방법이 나와 있다.

정확히 말해 심지는 아니고 심지가 포함된 화장지 롤이지만,

심지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으니 심지라 해도 그렇게 틀린 건 아니리라.

스포일러는 아닌 것 같아 여기서 언급하자면,

주인공은 킬러를 피해 똥이 가득찬 똥통 속으로 들어간다.

얼굴까지 다 넣어야 하니 숨을 어떻게 쉴까?

[나는 화장지 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롤을 감싼 입술 주변으로 틈이 생기지 않게 단단히 물어 보았다.

...나는 목을 뒤로 굽혀 화장지 로이 수직으로 위를 향하게 한 다음 눈을 감았다

...화장지 롤을 통해 숨을 쉬었다 (195-196쪽)]

문제는 이 자세로 오래 있을 수가 없다는 것.

“화장지 롤의 두꺼운 종이가 점점 젖으며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지나면 구겨지고 구멍이 생겨 결국 찌그러지고 말겠지(196쪽).”

이럴 땐 심지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휴지가 더 좋을 것 같다.


이대로 끝난다면 괜찮을 텐데, 이 소설은 여기서 한 가지 엽기를 더 만든다.

바로 킬러가 그 똥통 안으로 변을 본다는 것.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위로 치켜 올려진 얼굴 위로 새로운 무게가 더해졌다.”

내가 비위가 좋은 사람이긴 해도, 이 대목을 읽을 땐 속이 메스꺼웠다.

주인공은 오죽하겠는가?

“차라리 이것보다 죽음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킬러의 변이 정확히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 구멍은 막혀 버리고 만다.

킬러가 나간 뒤 주인공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무언가 하얀 것이 롤을 막고 있었다. 킬러가 쓰고 버린 화장지였다.”


덕분에 주인공은 살아날 수 있었는데,

이런 방법도 유사시엔 써먹을 만하다.

주인공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했지만,

그가 책 말미에 웃을 수 있었던 건 그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휴지 심지를 가벼이 여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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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7-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맙소사!

마태우스 2011-07-15 22:06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ㅠㅠ

울보 2011-07-1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마태우스 2011-07-15 22:06   좋아요 0 | URL
읽기 힘드셨죠ㅠㅠ

pjy 2011-07-1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점심먹고 글을 읽었습니다......
뭐, 살아남았으니 소중한 경험으로 포장하자구요ㅡㅡ;

마태우스 2011-07-15 22:07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타이밍이 안좋았습니다

Mephistopheles 2011-07-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킬러는 미션 수행 중...똥을 싸고 있데요...프로로써 자격미달이네..ㅋㅋㅋ

마태우스 2011-07-15 22:07   좋아요 0 | URL
좀 그렇죠? 미션 전에 용변보기! 킬러의 철칙입니다

cherub 2011-07-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에게 어울리는 책 같아요.

마태우스 2011-07-15 22:07   좋아요 0 | URL
그, 그렇죠?^^

무스탕 2011-07-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킬러의 이미지가 확 깨는 글이군요;;;

마태우스 2011-07-15 22:08   좋아요 0 | URL
사실 킬러라고 했지만 완전히 프로급 킬러는 아니랍니다. 킬러에 대해 오해가 없으시길!

moonnight 2011-07-1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뭐 이런 책이 있나요. ㅠ_ㅠ

마태우스 2011-07-15 22:08   좋아요 0 | URL
그, 그러게 말입니다

twoshot 2011-07-1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코 읽었는데 도저히 추천은 못하겠네요;;

마태우스 2011-07-15 22:08   좋아요 0 | URL
댓글이라도 달아주신 거 감사드리옵니다^^

레와 2011-07-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으으윽...>_<

마태우스 2011-07-15 22:08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물의를 빚었네요

비연 2011-07-15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마태우스 2011-07-15 22:08   좋아요 0 | URL
면목이 없습니다 비연님

건조기후 2011-07-15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에 좋겠어요. 식욕 돋을 때마다 휴지 심지 보기. ;;

마태우스 2011-07-15 22:08   좋아요 0 | URL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빗방울꽃 2011-07-1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남깁니다. 제겐 무척이나 슬픈 장면으로 다가오네요.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든 취해야 하는 행위들이..

마태우스 2011-07-19 10: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렇게 해서라도 사는 게 더 좋다고, 저도 그 상황이면 그렇게 했을 거라구요.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르헨 2011-07-1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마구 상상되는 리뷰란....ㅠㅠ살짝 쉬고 와서 읽는 리뷰가 하핫...^^;;

마태우스 2011-07-19 10:59   좋아요 0 | URL
호홋 상상하시면 안되요 밥 못드세요^^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 여자와 아이도 바로 따라할 수 있는 가정상비 재난매뉴얼
성상원.전명윤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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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대구 지하철 객차 안에 있던 50대 남자가 휘발유가 든 페트병에 불을 붙였다. 다행히 지하철이 정차한 덕분에 승객 대부분은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반대편에서 열차가 진입해 정차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로 옮겨 붙은 불길은 객차 안에 있던 승객들의 인명을 무참하게 앗아갔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의 대형 참사였다.


이 사건에서 아쉬웠던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하철 기관사의 미숙한 대처가 많은 사상자를 낳은 원인인 건 틀림없지만, 그 객차에 방화관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모든 지하철 객차에는 소화기가 있으니 그걸 집어 들고 뿌렸다면 웬만한 불길은 잡을 수 있었을 거다. 또한 연기는 옆으로는 잘 안 퍼져도 위로는 금방 올라가는 속성이 있으니 지하철 선로를 따라 다음 역으로 대피했다면 질식해 죽는 일은 없었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객차 안에 일어난 불길에 놀라 달아나기 바빴고, 또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고만 했는데, 이는 재난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난 예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극장에서 화재시 도망칠 비상구 위치를 말해줄 때 관객들은 대부분 애인과 대화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비행기에서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비행기가 떨어질 때 행동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을 때, 남자들의 시선은 그저 스튜어디스의 얼굴과 가슴에만 가 있을 뿐 그걸 새겨듣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집 안에 소화기 하나 갖추지 않은 집이 천지에 널렸는데,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숱한 재난을 겪어온 나라의 사람들치곤 지나치게 태평한 거 아닌가? 이게 6.25라는 국난을 겪어서 웬만한 재난은 재난으로 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대부분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딴지일보에서 오랜 기간 재난 관련 글을 쓰던 성상원님이 여행작가 전명윤님과 같이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을 내놨으니, <공공의 적> 강철중의 표현대로 “좋은 기회지 않은가?”


저자가 딴지일보 기자라는 선입견은 잊어버리자. 이 책은 정말이지 재난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보기 쉽게 요약해 놨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재난이란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라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라든지, 깊은 물에서 수영하다 쥐가 났을 때, 아이가 음식물을 먹다가 숨을 못 쉴 때 등등은 살다보면 한두 번씩은 다 겪는 일이지 않을까? 더 중요한 건 저자들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대충 쓴 게 아니라는 거다. ‘들어가는 말’에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소방안전협회 교수, 응급의학 전문의를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고, 해외여행에 관한 부분은 16년째 해외에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전명윤 씨가 집필했다니 믿어도 된다. 예를 들어 건물이 무너져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휴대폰을 통해 연락을 취하려 할 테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최소한 몇 시간 정도는 전화가 폭주해 통화가 어려울 수 있단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터리는 충분하나 안테나가 뜨지 않을 때는 휴대전화 전원을 일정한 주기로 끄고 켠다. 붕괴사고가 나면 통신사에서 사고 인근 지점에 기지국을 추가로 배치한다(21쪽).”

이 때 자기 소변을 먹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건 절대 해선 안되는 일이란다. “바로 속에서 탈이 나고 탈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니 말이다. 누군가가 물에 빠졌을 때 무리하게 직접 구조를 시도해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 거다. 하지만 이럴 때 생수통의 내용물을 비우고 마개를 막은 후 던져주는 게 도움이 된단다.

“1.8-2리터 플라스틱 통이면 성인남자 2명이 뜰 수 있을 정도의 부력이 생긴다(89쪽).”


책 후반부에 나오는 여행 관련 재난 대처법은 해외여행이 활성화된 요즘 시대에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것들이다.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올 초 이집트처럼 여행지에서 소요가 일어났을 때, 아플 때, 물건을 분실했을 때, 성폭행을 당했을 때 등등은 여행객이라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것들이잖은가? 개방적인 네덜란드에 갔다고 해서 대마초를 피우고 싶을 때, 이 책에 나온 다음 구절을 떠올리며 참도록 하자.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은 현지법 외에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다.(194쪽)”

우리나라는 대마초를 금지하는 나라라는 건 다들 아시겠지만, 다음 구절도 꼭 기억해 두자.

“머리카락 한 올만 뽑아서 검사해도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마약의 흔적이 남는다.(195쪽)”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며, 책을 한번 읽는다고 온갖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사들은 응급상황에서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심되는 진단이 떠오르면 그 후부터는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는데, 이건 평소 수많은 훈련을 통해 대처법이 매뉴얼로 저장된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각종 재난에 대비한 훈련을 한다면 상황이 닥쳤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행기 추락 같은 걸 훈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책을 여러 번 읽고 머릿속에 행동 요령을 저장해 놓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빌려봐선 안된다. 일단 사서 갖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어두자.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지인들의 안전도 책임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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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6-3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려보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빌려보지 말래서 찔끔^^ 그런데 전 책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메모하거나 문서로 저장해놓으니까 빌려봐도 되지..(뭐래, 찌릿)
좋은 책이에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의학 관련 마태우스님이 추천한 책은 거의 다 사거나 읽었던 것 같아요.

2011-07-01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4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1-06-3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중요한! 책이로군요.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우왕좌왕 하다가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위험에 대해 무감각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식민지배나 전쟁, 민간인 학살 이런 거 때문일까요??

마태우스 2011-07-01 10:0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요정님 저도 그걸 잘 모르겠더라구요. 소화기가 대부분 아파트 복도에 있는지라 소화기를 찾아서 뿌리려고 할 때는 이미 불이 다 번진 뒤라, 현관 앞에만 뿌리고 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소화기가 2만원 정도 하는데, 하나씩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암튼...무감각한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민세민석아빠 2011-07-0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사고 사진을 보니, 얼마 전에 갔었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영화 본즈의 촬영무대였다고 하는데 너무 실감나게 지하철이 탈선하고 역이 무너지는 장면을 꾸며 놓아 남들에게 지하철에서 사고가 나면 말이지...라고 훈수를 둘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태우스 2011-07-01 10:02   좋아요 0 | URL
아. 거기서 훈련하면 되겠군요^^ 근데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다녀오셨군요 와 부럽습니다.

Mephistopheles 2011-07-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그럼 마태님이 출연하는 한국의 베어그릴스같은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프로그램 진행은 기생충과 연관하여.. 야생이걸 이걸 섭취하면 어떤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등등...이렇게요.

위엄돋는기생충 2011-07-09 21:0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설명할때 직접 드시면서

마태우스 2011-07-10 20:28   좋아요 0 | URL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서민의 기생충 앤 크라이!

위엄돋는기생충 2011-07-11 17: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런 프로그램 있으면 정말 유익하고 재밌을거 같아요 언제 방송에 마태우스님 사모님도 함께 동반출연 한번?ㅋ

마태우스 2011-07-11 22:30   좋아요 0 | URL
위엄돋는 기생충님/호홋 집사람은 그런 데 잘 안나가려고 해서 제가 그냥 기생충 몇마리 목에 감고 나갈게요. 울 때까지 기생충 가지고 괴롭히는 그런 프로지요^^

다락방 2011-07-0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알았어요. 제가 네덜란드에 가서 대마초 피면 안되는군요!!!!!
생수통을 던져주는 건, 이 리뷰가 준 살아남는 방법이네요. 생수통 하나에 성인남자 두명을 살릴 수 있다니 말입니다.

마태우스 2011-07-10 20:28   좋아요 0 | URL
근데 그 성인이 저같이 무게가 나가는 사람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더군요 기생충 잡으러 갯벌에 들어갔을 때도 저 혼자만 빠졌거든요

blanca 2011-07-0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이런 생각했었어요. 지난 주 영화 상영되는데 비상구 얘기하는데 아무도 안 보더라구요. 그리고 저는 바보인지--;; 그 방송을 보고 바로 탈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재난교육이라는 것을 받아 본 기억이 없으니 조금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우왕좌왕하고 더 흥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구지하철참사 다시 돌이켜 봐도 참 비극적입니다. 다음 역으로 간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할 것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2011-07-1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1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0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7-0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생존의 방법을 나눠주시네요. 꼭 소장하고 새겨 읽겠습니다!!

마태우스 2011-07-10 20:25   좋아요 0 | URL
리뷰계의 거장 마노아님께서 친히 와주시니 감사드리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1-07-04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0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엄돋는기생충 2011-07-0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패트병은 정말 유용하네요.ㅋㅋ 발암물질과 환경오염만 일으키는건줄 알았는데...

마태우스 2011-07-10 20:23   좋아요 0 | URL
글게 말이어요 저도 페트병 차에 하나씩 둬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민세민석아빠 2011-08-2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이 되셨네요... 선생님의 글은 마법같은 중독성이 있어 꼭 들러보게 되네요..^^
 
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나홀로 집에>가 3,400억원을 벌어들인 건 매컬리 컬킨의 연기 덕분이었다.

특히 두 손을 뺨에 대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연기는 두고두고 기억될만큼 귀여웠다.

이듬해인 1991년 무슨무슨 코믹배우상을 받았던 그의 필모그래피는 거기서 중단됐고,

최근 공개된 그의 사진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최근 모습 완전 아저씨, 귀엽던 케빈의 모습은 어디에?”

잘 나가던 아역이 스타로 자리잡는 게 흔해진 요즘이지만,

미달이나 컬킨처럼 엄청난 스포트라이를 받았던 배우가 나중에 그와 비슷한 인기를 누리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한윤형은 안티조선으로 유명해진 친구다.

당시 아흐리만이라는 필명으로 수준높은 글을 썼던 그는

고3 시절,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논술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안티조선을 선언하며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어떻게 고교생이 그럴 수 있을까 존경스러웠고,

그런 친구 덕분에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할까 생각하던 2009년, 그의 첫 번째 책이 나왔다.

반가움에 그 책을 샀고,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성실함에, 생각의 깊이에

진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나온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친일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명저였고,

그 후부터 난 거리낌 없이 “한윤형은 내 스승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의 세 번째 책 <안티조선 운동사>의 마지막 책장을 오늘에야 덮었다.

18,500원의 책값이 좀 비싼 게 아닌가 싶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깨알같은 글씨에 담긴 내용의 묵직함과 매 페이지마다 묻어나오는 성실함은

그가 참 잘 자랐구나,며 감사하게 만든다.

안티조선 운동을 주제로 우리 사회의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지난 십여년의 역사 그 자체인데,

소름끼치게 객관적이고, 분석의 깊이는 석유시추선 저리가라다.

근 일주일간 이 책을 읽느라 밤에 잠도 잘 못잘 정도였는데,

앞의 두 책보다 이 책이 훨씬 더 재미있었던 건

나 또한 안티조선에 열광해 ‘우리모두’ 사이트를 밤새 클릭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당시 난 조선일보만 없어지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믿을만큼 순진했었는데,

그런 희망이 있었기에 그 시절엔 살맛이 났던 것 같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윤형은 앞으로 글쟁이로 살겠다는 뜻을 비췄다.

그런 말이 부끄럽지 않게 블로그에 올라오는 그의 글들은

한편 한편이 다 주옥같은 명문으로 그것만 엮어도 책이 될 것 같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책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글을 썼다.

그런 성실함 덕분에 <안티조선 운동사>는 지난 10여년에 관한 한

어느 책보다도 뛰어난 역사책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책들이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진 못할지라도,

향후 역사는 한윤형을 ‘현대사의 아버지’로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한윤형의 십분의 일만큼만 성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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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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