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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두루마리 휴지를 다 쓰면 심지가 남는다.
그 심지는 대개 버려진다.
다른 쓸 곳이 없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의외로 유용한 게 많았는데,
그 중에는 이런 게시물이 있었다.
http://www.mjnuri.com/281137
내가 어릴 적,
포경수술 후 상처 부위가 팬티에 닿을까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그 심지는 복음이었다.
나 역시 그 심지를 고맙게 잘 썼던 기억이 나는데,
노르웨이 작가가 쓴 스릴러 <헤드 헌터>를 보면
그 심지를 이용하는 또 다른 방법이 나와 있다.
정확히 말해 심지는 아니고 심지가 포함된 화장지 롤이지만,
심지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으니 심지라 해도 그렇게 틀린 건 아니리라.
스포일러는 아닌 것 같아 여기서 언급하자면,
주인공은 킬러를 피해 똥이 가득찬 똥통 속으로 들어간다.
얼굴까지 다 넣어야 하니 숨을 어떻게 쉴까?
[나는 화장지 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롤을 감싼 입술 주변으로 틈이 생기지 않게 단단히 물어 보았다.
...나는 목을 뒤로 굽혀 화장지 로이 수직으로 위를 향하게 한 다음 눈을 감았다
...화장지 롤을 통해 숨을 쉬었다 (195-196쪽)]
문제는 이 자세로 오래 있을 수가 없다는 것.
“화장지 롤의 두꺼운 종이가 점점 젖으며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지나면 구겨지고 구멍이 생겨 결국 찌그러지고 말겠지(196쪽).”
이럴 땐 심지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휴지가 더 좋을 것 같다.
이대로 끝난다면 괜찮을 텐데, 이 소설은 여기서 한 가지 엽기를 더 만든다.
바로 킬러가 그 똥통 안으로 변을 본다는 것.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위로 치켜 올려진 얼굴 위로 새로운 무게가 더해졌다.”
내가 비위가 좋은 사람이긴 해도, 이 대목을 읽을 땐 속이 메스꺼웠다.
주인공은 오죽하겠는가?
“차라리 이것보다 죽음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킬러의 변이 정확히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 구멍은 막혀 버리고 만다.
킬러가 나간 뒤 주인공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무언가 하얀 것이 롤을 막고 있었다. 킬러가 쓰고 버린 화장지였다.”
덕분에 주인공은 살아날 수 있었는데,
이런 방법도 유사시엔 써먹을 만하다.
주인공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했지만,
그가 책 말미에 웃을 수 있었던 건 그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휴지 심지를 가벼이 여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