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랑 있을 때 그네들이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난 그에 질세라 벤지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내가 벤지를 사랑하는 게 그들의 아이 사랑에 별로 뒤질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정색을 하고는 “사람이랑 개랑 같냐?”고 따지기도 했다. 사람과 개가 다르다 해도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 줄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었다.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모르겠지만, 친하다고 생각한 애가 그러면 서운했다. 개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날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벤지도 좋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가 그들의 자녀를 싫어하면 그들이 불쾌한 것처럼, 벤지를 개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난 불쾌했다.
언제부터인가 난 벤지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친구간의 친소를 정하게 되었다. 벤지가 오늘 내일 할 때, 난 “벤지가 죽으면 술집을 빌려서 사흘간 술을 마실 거니 그때 문상을 오라”고 친구들한테 얘기했었다. 막상 벤지가 죽었을 때 같이 슬퍼해준 사람들은 내 친한 친구들이 아닌, 인터넷에서 만나 친분을 다져온, 다시 말해서 알고 지낸지 2년도 안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내 사이트에 댓글로 달아준 한마디 한마디는 날 울게 했지만, 그럼으로써 난 벤지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친한 친구 중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알고도 별 반응을 안보인 사람도 제법 있었다. 오랜 기간을 사귀었다고 해서 친한 정도도 높으리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 중 주말마다 테니스를 같이 치는 친구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너 이제 좋겠다? 벤지 밥 안 챙겨줘도 되니까 얼마나 편해?”
그 친구의 자식이 죽었을 때, “너 이제 편하겠네? 돈 들어갈 일이 줄었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한다면 필경 난 두들겨 맞고 절교를 당할 거다. 중요한 건 개냐 사람이냐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 그것(사람 또는 자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냐 하는 것이다. 예컨대 골치만 썩히는 망나니 자식이고 부모 또한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일지라도 부모의 친구들로부터 사랑받을 가능성은 없으며, 그게 부모의 친구들이 나쁘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벤지는 내게 자식이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기쁨을 준 녀석이었다. 그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벤지 밥을 챙겨주는 게 짐스러운 적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벤지 때문에 해외연수를 갈 마음도 없었고, 1박2일 이상의 여행을 기피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난 대부분 벤지 밥을 기쁜 마음으로 챙겼고, 벤지가 밥을 맛있게 먹었을 때마다 행복감을 느꼈다. 그 친구가 자식에게 장난감을 사주며 기뻐한 것처럼.
오는 6월 10일이 벤지의 1주기다. 벤지가 죽고나면 어떻게 사나 심난했었는데, 벌써 1년이 다 된 거다. 벤지가 죽은 작년에 혼자 맥주를 쳐마신 것처럼, 올해 역시 난 어느 술집에서 혼자 술을 쳐먹을 생각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벤지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니까. 그리고 내 친구들 대부분에게 벤지는 ‘개’일 뿐이고, 벤지가 여느 개와 다르다는 걸 설득하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니까.
* 또하나 잊혀지지 않는 사실. 벤지가 죽고 나서 내 형제들 중 어느 누구도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었다. 그들은 살아생전 벤지와 같이 산 경험이 있고, 벤지에 대한 내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난 친구들 관리는 물론이고 형제들 관리도 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