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도시, 베이징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 3
신경란 지음 / 보고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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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중국 수도 베이징을 역사상 처음 도읍으로 삼은 왕조는 고려를 침입한 금나라였다. 그들은 베이징의 이름을 중도라 했고 이후 베이징은 금을 멸한 원, 그리고 그 원을 멸한 명, 또 명을 멸한 청, 그 청을 멸한 지금의 중화민국까지 무려 천 년간 중국의 수도로 자리잡아 왔다. 이러면 마치 베이징이 오랫동안 중국의 중심지였던 것 같지만 사실 중국의 중심지 중원은 황하 중상류지역이다. 지금은 고도로 크게 발달하지 못한 뤄양이나 시안이 그곳이다. 

 중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에게 베이징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힘이 뻗치지 못하는 변경지역이었다. 베이징은 과거엔 연경이라 불렸는데 이 지역은 오래전엔 지금과는 해안선이 달라 북쪽으로 지역이 열려있어 유목민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연경에는 유목민인 산융문화유적이 지금도 다수 남아있다. 추후 농경민들의 힘이 이 지역까지 도달하며 산융은 밀려나는데 이들으 흉노문화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한족, 즉, 농경문화의 힘이 베이징을 본격 흡수한 것은 주나라 때의 일로 처음으로 베이징에 제후국을 설치한다. 연과 계나라다. 연경이란 이름도 연나라에서 비롯되 것이다. 계가 백여년이 지나 연에 흡수되고 연은 인구가 150만 정도에 달할 정도로 강성해진다. 하지만 진이 통일한 후 끝까지 정항하던 연과 조, 제나라의 수만 가구가 조선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조선과 가장 인접한 연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조선으로 넘어와 훗날 왕위까지 찬탈하는게 위만이다. 

 베이징은 수당대에 이르러서는 유주의 중심지역으로 수와 당군이 고구려를 침략할때 군사집결지로 활약하게 된다. 당 말기엔 베이징을 근거지로 큰 난리를 피운 안록산이 등장한다. 삼국지의 동탁과의 혼동때문인지 난 이전엔 안록산도 동탁처럼 서북면의 군웅으로 착각했었다. 하여튼 안록산의 난으로 큰 고생을 치룬여파인지 훗날 상당기간 연경지역은 배반자의 땅으로 낙인을 찍혀 조정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된다. 

 세월이 흘러 거란이 등장한다. 거란은 세력을 뻗쳐 발해를 멸하고 연경 지역까지 확장한다. 중국 역사에서는 한족의 입장에서 거란에게 송이 연운 16주를 할양한 것을 굴욕으로 여긴다. 연운 16주란 만리장성과 상건하를 따라 동서 600km 남북200km에 달하는 지역으로 한반도의 절반가까이 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베이징이 그런 것처럼 농경문화와 수렵문화의 접점이다. 농경에엔 북방 최후의 보루, 수렵민에겐 물산이 풍부한 남으로 진출하는 지역이다. 저자에 의하면 송의 연운 16주 할양은 사실 이미 2주를 빼앗긴 상태에서 14주를 넘긴 것이고 이미 14주 역시 송이 아닌 다른 세력에 빼앗긴 상태에서 그가 거란과 협력하에 거란의 힘을 통해 차지한 14주를 넘긴 것이기에 할양은 과도한 한족 중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거란은 송과 계속 대치하다 999년 거란의 남하에 송이 반격하여 무려 10년의 대치끝에 절연의 맹이란 강화를 맺고 100년의 평화기간을 맞이한다. 송은 평화를 대가로 거액의 물품을 매년 거란에 상납했고, 거란과의 무역을 통한 이문으로 바친 물품 이상의 혜택을 누리는 양자가 성공하는 거래였다. 평화 후 거란은 발해의 5경제도를 본따 베이징에 남경을 설치한다. 남경이 발전하는데는 여성인 소작의 힘이 컸다. 거란은 황제는 야율씨 그리고 황후는 소씨에서 배출하는 나라였는데 소작은 어려서 남경에서 자라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농경문화를 잘 이해하여 곡물생산량을 늘리고 과거제를 실시한다. 

 여진의 금이 등장하자 평화는 깨진다. 여진의 금은 125년 역사동안 115년을 송과 전쟁한다. 송은 처음에 숙적 거란을 멸하는데 금과 협조하기로 맹약한다. 대가는 오래전 잃은 베이징 지역인 연운 16주의 획득과 평화였고, 금이 얻는 것은 요의 나머지 영토와 매년 대량을 물품상납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지주의 토지겸병과 이에 따란 농민 반란으로 송은 군대 동원에 어려움을 겪는다. 간신히 협력하여 금과 송에 의해 요가 망한다. 금의 완안아골타는 연운 14주를 넘겨주지만 완안아골타의 뒤를 이은 금 태종이 송의 허약함을 목도하고 공격한다. 송은 형편없는 전쟁실력으로 황제 휘종과 그 아들 흠종이 금에 사로잡힌다. 수도 개봉 역시 함락되고 지금의 항주로 수도를 이전하며 새황제가 등장하는데 이름이 남송으로 바뀌는 계기다. 하여튼 연운 14주와 송의 북부를 차지한 금은 베이징을 중도라 개명하고 수도로 삼는다. 

 세월이 다시 지나 1234년 몽골에 의해 금도 멸망한다. 전쟁은 무려 20년간 지속되었는데 송은 원수같은 금을 멸망시키는데 역시 몽골에 협조한다. 하지만 몽골 역시 송의 허약함을 알고 경제력이 풍부한 강남을 차지하기 위해 송과의 45년 전쟁에 돌입한다. 이 전쟁은 처절했는데 최후까지 항전한 송나라 사람이 무려 20만이었고 최후의 황제는 자살한다. 중국전토를 차지한 몽골은 국호를 대원으로 고친다. 원은 중국 역경의 첫 괘이자 하늘을 상징한다. 몽골 민족 역시 텡그리 신앙으로 하늘의 뜻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원이란 글자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모두를 만족시키는 명칭으로 양자에세 손쉽게 채택되었다. 

 원은 베이징을 대도라 명명하고 대대적 수도 건설에 임한다. 금의 중도와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였다. 커다란 외성을 사막의 느낌으로 흰색으로 채우며 자금성을 완성한다. 그리고 물이 부족한 베이징 내로 수로를 내기 위해 베이징 동서북의 계곡물을 모두 뒤지고 찾아내고 수로를 연결해 옹산박이란 거대한 호수를 조성하고 여기에 물길을 내어 베이징 시내로 끌어내었다. 이 물길은 방향과 형태가 조금씩 바뀌지만 명청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원은 사막민족의 나라이므로 물이 귀해 궁의 한가운데 호수를 조성한다.

 원이 망하고 명은 대도를 손쉽게 차지한다. 원의 순제가 생각보다 손쉽게 대도방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명은 처음엔 북방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수도로 삼지 않는다. 이민족인 북방왕조의 수도이기도 했고 아직 강성한 몽골세력과 워낙 근접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원장은 아들중 가장 전투력이 막강한 넷째 주체를 연왕으로 삼아 연경에 배치한다. 연경을 세력권으로 둔 주체는 훗날 조선의 이방원과 매우 비슷하게 왕위를 찬탈하며 수도 역시 다시 베이징으로 옮긴다. 물론 원대의 거대한 자금성은 크기가 줄어든다. 자금성의 중심이었던 호수는 바깥으로 밀려나고 좀더 조밀해져 생활 및 활용이 더욱 편리해지게 된다. 자금성의 역사는 사실 화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명 230년동안만 무려 화재가 47번으로 평균 5년에 한번이었다. 자금성 자체가 워낙 거대하고 매 화재마다 명황제들은 중건을 반복하지만 국운의 쇠퇴와 재정난으로 원하는 수준의 중건은 이루지 못한다. 

 또 세월이 지나 마지막 왕조 청이 등장한다. 금이 중도를 건설하고 수백년이 흘러 다시 여진이 베이징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금을 세운 여진과 만주여진은 매우 다르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청은 강력한 군사국가인만큼 전 왕조들과는 다르게 베이징을 병영도시 개념으로 세운다. 청의 막강한 군사력은 팔기에서 나왔는데 이 팔기가 베이징에 주둔하도록 도시 전체를 8로 나누어 팔기를 주둔시킨 것이다. 팔기는 1기가 무려 7500명의 병력으로 상비군으로 유사시 무려 5-6만의 친위군 동원이 가능한 셈이었다. 팔기는 황제 직속의 2기와 황족과 귀족이 이끌며 경쟁하는 6기로 서로간의 경쟁으로 전투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흥귀족인 팔기는 평생 급여가 보장되고 평화가 지속됨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유명무실화한다. 훗날 외세의 침략에 대포 소리 한번 듣고 가장 먼저 도망간게 팔기들이라고 한다. 청대엔 자금성 내에 원명원이 생겨난다. 원명원은 중국의 원림과 서양식의 다양한 궁전들이 총망라한 대규모의 정원이다. 하지만 아편전쟁때 불타고, 의화단 전쟁때 완전히 망가져 지금까지도 복원이 되고 있지 않다. 

 베이징은 유목과 수렵문화가 만나는 지역이고 국제적 도시여서 매우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베이징에서 제1의 종교는 불교지만 제3의 종교는 이슬람교다. 이슬람 신자는 카타르인, 위구르 인 이외에도 회족이란 이름으로 중국 각지에 분포하며 베이징에만 무려 20만이 산다. 중국 왕조, 특히 개방적이었던 북방왕조들은 이슬람을 인정해주었는데 지금도 중국 각지에 기와를 얹은 독특한 중국식 모스크가 각지에 존재한다. 원대에 널리 퍼진 무슬림은 고려에도 꽤 많았던 듯 하다. 고려말은 물론 조선 세종때까지만 해도 이슬람의 대표적 송축 의례가 있었다고 한다. 세종9년에야 중지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책은 300쪽 정도로 짧지만 베이징엔 대한 역사, 지리, 인물, 왕조의 흥망이 자세히 수록되었다. 베이징에 대한 정보와 지식으로 꽉 찬 셈이다. 도시 아카이브 세 번째 시리즈인듯 한데 나머지 책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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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닷슈님 베이징에 제1종교가 불교였어요 !유사시에 상비군을 오천 육천명도 아닌 만단위로 ㅋㅋ베이징이라고 하면 자금성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아직도 중국에대해 역사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네요 닷슈님 포스팅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 많이 알게 되네요닷슈님 크리스,메리 메리
ᒄ₍⁽ˆ⁰ˆ⁾₎ᒃ♪♬

닷슈 2020-12-24 16:37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보고 중국과 베이징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가깝고 중요한데 아직 많이 모른단 생각입니다. 스콧님도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이전 호빵글은 참 좋았습니다.

shingrr 2020-12-24 1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쓴 신경란입니다. 책을 읽어 주시고 이렇게 소개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닷슈 2020-12-24 16:38   좋아요 0 | URL
헉, 저자님이 왕림해주시다니. 놀랍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차기작 기대해봅니다.

shingrr 2020-12-24 17: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선생님께 알라딘 편지 보내는 기능을 이용해서 편지를 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같은 시리즈 난징 책도 제가 썼습니다. 한 권 부쳐 드리려고 합니다. shingrr@163.com으로 주소 보내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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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구석 미술관 1권의 대히트로 2권이 나왔다. 몇년 전에 나온 1권은 어쩌다보니 강제로 보게 되었는데 큰 임팩트가 없었다. 서양의 주요 미술가들에 대해(물론 저자의 내공은 깊겠지만) 간단히 대중적으로 다룬 느낌이었고, 어설프게 서양미술책을 몇 권 본 나는 그로 인해 크게 인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건 작가가 1권에 비해 수준을 높였다기 보다는 전적으로 내가 한국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많이 무지하게 때문이었다. 방구석 미술관 2편은 바로 최근 100년간의 한국 현대미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남북의 분단기를 관통해 살아온 한국의 미술가들 10인을 모셨는데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구, 정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이다. 이중  7명은 이름과 작품을 들어봤다. 하지만 유영구와 정욱진은 정말 처음 듣는 분들이었고, 이우환은 어설프게 들어본 분이었다. 

 10인의 작가들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그에 걸맞는 강렬한 10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아낸 만큼 공통점이 있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해 서구문화가 침투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하지만 일본을 통해 서구를 접하다 보니 왜곡된 부분이 많았고 소위 왜색이란게 생겨났으며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와 전통은 물질적인 후진성으로 인해 함께 경시되고 퇴색되었다. 이들 작가들은 이런 환경에서 전통미술과는 단절되고 먼저 일본, 혹은 한국에서 수련을 거쳤고, 더 나아가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미술의 제대로된 영향을 받았으며, 그 와중에서도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한국의 미와 전통성을 현대미술의 경향성과 함께 융합하거나 살려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작가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전체적으로 든 느낌이었다. 

 작가 모두가 강렬한 삶을 살고 그것을 예술로 남겼지만 조금 더 내게 인상깊었던 사람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그 삶이 파란만장하고 여성이기에 그의 행보에는 웬만하면 다 한국최초라는 수식어가 이상하리 만큼 자주 붙는다. 일단 그는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불행했다. 일본 유학시절 만난 최승구와 결혼까지 하려했지만 그는 이미 조혼을 한 유부남이었고,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고생을 하던 혜석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그를 돕고 변호한 우영 역시 사별하긴 했지만 애가 딸린 남성이었다. 우영의 지극정성에 혜석은 그에게 마음을 열고 우영은 혜석의 매우 현대적인 조건을 받아들여 둘을 결혼한다. 아이 셋을 낳았지만 유럽여행을 나선 혜석은 자유분방함속에서 실수를 저질러 최린과 불륜을 저지른다. 이에 우영에게 버림받고 그의 예술과는 다르게 사회적으로 매우 지탄받아 거의 모든 관계를 잃게 되고, 아이들과도 만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불행함 속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고 작품세계를 이어가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갔고,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던 시기에 날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비운의 작가였다. 

 다음은 이응노다. 구글이 만든 사이트은 아트앤 컬쳐란 사이트나 앱을 이용하면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그 사람의 생애시기별로 볼수 있는데 아마 이응노를 살펴본다면 이 만큼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사람도 드물거란 생각이다. 이응노는 서당훈장 아버지를 둔 사람은 전통전 환경에서 자라나 미술을 배우기 위해 경성으로 홀로 상경한다. 당대 최고의 전통화가 및에서 전통미술을 배우고 입선하나 근현대 미술을 접하고 일본에서 유학해 서양화를 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서양화기법을 토대로 동양화를 접목시켰고, 이후에는 한국전을 겪으며 강렬한 인상주의적 그림을 보이도 단색조의 추상미술로 접어든다. 그는 추상미술에 한자와 한글을 사용했고, 그것이 그 만의 문자추상으로 자리잡는다. 이응노는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이 작품에 등장하는 군상이란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수없이 작품세계가 변한 사람이며 백남준보다 앞서 한국에서 등장흔 월드클래스 아티스트였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모진 고초를 당하며 한국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백남준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은 박수근이다. 나혜석은 최초라는 점과 여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았다는 점, 그리고 이응노는 끊임없는 혁신이 인상적이었다면 박수근 가장 한국적이었다는 점이 인상싶었다. 박수근은 여기 나온 다른 모든 미술가들과 달리 철저히 국내파다. 당시 미술은 일본 그리고 서구의 영향이 많았고 당연히 유학파가 득세했다. 국내파는 찬밥신세였는데 그런 국내파들끼리 모여 주호회를 만든다. 주호회는 판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때의 영향으로 박수근의 회화에는 판화적 특지이 많아진다. 박수근은 주호회 멤버들과 함께 경주를 많이 찾았는데 여기서 우리나라 화강암으로 만든 석물문화재의 질감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박수근의 그림이 하나같이 단색조에 돌같은 질감을 갖게 된 것은 이 석물의 질감에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이 질감은 물감을 수차례 덧칠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박수근은 회색물감에 다량의 흰색물감을 많이 섞어 사용했다. 또한 박수근의 작품은 매우 평면적인데 저자는 그가 기하학적 추상을 강조하는 피카소의 영향을 다소 받은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박수근의 작품이 인상적인 것인 이런 기법이외에도 주제자체가 일상의 사람들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의 작품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대중적인 만큼 매우 재밌고, 이번엔 특히 한국의 현대미술가들을 다뤄 인상깊었다. 제법 두꺼워 400페이지 정도 되었는데 부담스럽지 않게 볼수 있었다. 내용은 재밌었지만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가지고 간 것 같아 안타깝다. 시대가 우울하고 예술가의 삶은 불우한 경우가 많다지만 하나같이 가진 재능에 비해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산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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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구석 팬인데 이번편은 이응노-박수근-나혜석 편이네요 400페이지면 전생애와 작품까지 전부 보여줬을거 같아 기대^기대^^

닷슈 2020-12-21 23:44   좋아요 1 | URL
전 세 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다름 예술가들 삶과 작품세계도 상당했습니다. 작가 하나하나 세세히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분량을 할애한 느낌입니다. 그러다보니 분량도 좀 많아 진 것 같구요.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 세계 3대 투자자 짐 로저스가 말하는 새로운 부의 흐름
짐 로저스 지음, 전경아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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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짐 로저스의 책이다. 트럼프의 재선에 대한 우려와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올해초나 작년 말쯤에 쓴 책이 아닐까 싶다. 로저스는 북한 경제 개방 가능성과 이후 한국과 북한의 통일, 그리고 이어지는 러시아, 중국, 일본을 잇는 경제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반면 일본은 완전 한물 갔다는 혹평가 아베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아주 걸맞는 주장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책 내용은 조금 실망스럽다. 구체적인 대책과 세계적 동향의 분석보다는 모호하고 총체적이고 당연한 의견을 많이 내놓는다. 뭐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책을 사보는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그정도의 수준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양적완화버블을 설명하면서 왜 이런 양적완화가 생겼는지 그 한계와 위험성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해주기보다는 버블이고 위험하며, 버블의 끝은 어딘지 알수가 없다란게 다다.

 로저스 개인의 삶의 이야기 같이 조금 재미있는 부분도 있긴 하다. 그가 미국의 완전 시골에서 자라나 명문대인 예일대를 가고, 옥스퍼드에 간 일. 그리고 조지 소로스에게 채용되 그와 함께 전설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퀀텀 펀드를 만든 일화등은 볼만했다. 전설의 투자자가 된 그가 사실 월가일 일도 관심이 없었고 역사전공에 철학이나 정치학등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의외였다. 월가에 본의 아니게 취업하면서 뒤늦게 세계 경제와 흐름에 관심이 생겼고 이를 분석하는 눈을 갖게 된게 거의 삶의 결정적 터닝 포인트였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을 하나 꼽는다면 중국과 러시아 경제에 대한 밝은 전망이다. 러시아는 국가채무가 다른 주요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건전하고, 드넓고 개발 가능성을 충분히 가진 국토에 비해 인구는 적어 아직 발전 잠재력이 높고, 독재자인 푸틴 역시 외국 자본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점차 가지고 가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반면 각종 규제와 외국 자본에 대한 비 개방성으로 인도는 개발이 어려울것으로 보고 있으며 과거 재무가 매우 건전했고 경제가 튼튼했던 유럽의 독일, 스위스 등도 재정 건정성이 악화되고 버블 주식에 투자하는등 위험한 상황으로 나간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은데 이는 트럼프의 영향이 많아 보인다. 바이든이 당선된 지금은 시각이 좀 달라졌으리라 본다. 반면 중국은 매우 높게 평가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일당독재에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않는 편협한 인권탄압국가라는게 서구 민주사회 국가들의 시선이다. 하지만 실제 중국은 역사상 매우 짧은 시기만 공산주의를 실현했고 역사상 꾸준히 자본주의를 실현해온 국가로고 본다. 거기에 미국을 넘어설 만한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본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도 중국에 긍정적으로 본다. 홍콩을 물론 중국 본토로 강한 경제력을 가진 중심도시이지만 민주화 요구로 홍콩이 흔들린다면 오히려 중국의 선전이나 다른 도시로 홍콩이 가진 이점이 이전되어 오히려 중국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로저스의 시각에서 사실 한국정부와 한국시민이 배울 시각도 많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드배치와 중국의 경제적 부흥 이후 한국정부에 대한 무리한 정치 경제적 압박과 중국의 낮은 민주성 수준과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최근 코로나19사태에서의 비투명성은 우리로 하여금 중국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쌓게 만드는데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는 중국이 가진 분명한 부정적 모습과 정체성이지만 이는 서구 선진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적 대항마인 중국을 바라보는 모습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그들에게 경제의 30%정도를 의지하고, 지정학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붙어 있어 어떻게든 더불어 살수 밖에 없는 한국정부와 한국민은 이런 비판적 시각이외에도 중국을 이해하려는 시각까지 갖고 있어야 진정한 균형자론을 갖고 있을수 있다는 생각이다.

 홍콩민주화와 관련되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중국의 대응이며 민주주의라는 세계전체가 공통적으로 지향해야할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다. 하지만 중국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온 중국에게 홍콩은 대만과 마찬가지로 100년전 일어난 아픔을 딛고 일어서 하나가 되어야 하나는 존재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분열되면 크게 흔들렸고 망국의 길로 들어섰으며 하나였을때 강하게 힘을 떨쳤다. 중국인에게 하나가 되는 것은 이전의 위대한 중국으로 돌아가는 필수적 과정이며 그런 모든 것이 이뤄져야 일당독재와 민주주의 문제도 해결할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난 중국인이 민주주의 자체에 반대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현재 그것이 그들에게 후순위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로저스가 말하는 것처럼 수많은 경제국가들이 그것이 반드시 필수적이고 윤리적이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당독재를 겪었다. 싱가포르, 대만, 일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홍콩에 대한 중국인의 시선을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한국에 대입해보는건 어떨까? 80년정도 전으로 돌아가보자. 2차대전 때 미국 정부는독일을 굴복시킨 후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한다. 여기엔 일본의 강한 저항도 있었지만 동아시아로 생각보다 빠르게 진군해나간 소련에 대한 견제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미국이 원자탄을 투하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미군이 극렬한 저항을 뚫고 일본 본토를 점령하는데는 몇달의 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 결과 소련군이 무기력해진 일본 관동군의 항복을 빠르게 받아내고 한반도 전체를 장악해버렸다. 다행히 미국은 한반도에서 제주도 하나는 건져낸다. 일본본토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장악이 선제조건이었고, 소련군에 비해 미군이 해상을 장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역사는 흐른다. 한반도는 중국처럼 공산화가 되어 하나의 나라가 되었고, 제주도는 일본의 지배후에 미국령이 된다. 하지만 자신들의 턱밑에 적의 전선기지가 있음을 불편히 여긴 중국과 한국정부, 그리고 소련의 강한 압박에 제주도는 미국령이 되지 못하고 협상후 50년의 조차후 2000년에 한국으로 반환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50년의 세월동안 공산주의 한국에서는 사회주의가 민족주의가 만연하지만 사실상 미국령인 제주도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넘쳐나고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가 공용으로 혼재되며, 심지어 미국식,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 마져 일반화 된다. 하지만 한국본토에서는 제주도는 영원히 잃어버린 아픈 자식이다. 다시 예전의 위대한 하나의 한국으로 되기 위해 반드시 합쳐져야만 하는.

 하여튼 2000년이 되었고,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로 중국과 함께 20년전부터 자본주의로 돌아선 한국은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제주도를 차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극렬한 체제의 차이로 인해 향후 20년간 일국양제를 허용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제주도의 부가 모조리 일본으로 날아갈 판이었으니까, 그런데 2020년이 되자 자연스레 하나가 될거란 제주도민들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인 하나의 한국이라는 민족주의와 국가사명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우리의 적인 미국, 심지어 일본에 까지 붙어 저항했다. 더 기가 막힌건 과거 우리 한국을 침략하고 제주도를 찢어놓은 국제사회란 것들이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차리고 한국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제주도를 다시 분리시키려는데 지지를 보내기 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괘씸한 역사적 상상은 중국을 이해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강제적 이해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경험하듯 국제사회에서 힘이 받쳐주지 못하는 도덕적 윤리적 선택은 생존앞에 무의미하다. 과거 인조반정 정권은 도덕성을 내세워 국제정치를 살피지 못하고 청에 저항하다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강화를 당했고, 수십만의 백성을 노예로 내주고, 수십년간 잔혹한 내정간섭을 당했다. 구한말 역시 국제정치를 살피지 못해 나라가 망국으로 들어서 역사상 최초로 36년간 역사가 사라지는 고통을 당했다. 

 이런 현실정치를 살핀다면 로저스처럼 이익과 생존의 입장에서 우리는 국제정치와 경제흐름을 살피고 가장 고려해야할 중국을 이해하고 살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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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5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중국은 이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한 수 아래의 나라로 보고,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미국보다 더 까다로운 나라
라는 점에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닷슈 2020-12-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이 한국을 한수 아래로 얕잡아 보는 것은 실제적 관계 보다는 오랜 역사와 편견속에서 굳어진 것이라 봅니다. 최근의 중국굴기로 인한 민족주의 발흥과 나라이름에 걸맞는 오만함도 한몫하죠. 하지만 그게 자기들을 위해서도 좋은게 아니란걸 조금씩 깨닫고 있는다는 느낌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게 미국 정책은 사실 별로 까다롭지 않다고 봅니다. 무조건 친미로 거의 나라안의 여론이 굳어져있기 때문에 정부가 실질적인 주고 받기만 잘 조율한다면 거의 할게 없죠. 트럼프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혹은 협상을 결렬시켜야한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명에 대한 사대처럼 하나의 도그마입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크게 왔다갔다 하죠. 나라안 여론과 인식이 이러니 실질적 균형자론이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중국의 입장을 더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은 이미 마치 미국인인양 너무나도 그 입장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주고 있으니까요.
 






























 이 두 이미지는 오랜 영화포스터다. 나홀로집에와 패밀리맨이다. 하나는 20년 하나는 30년 된 것이지만 난 지금도 크리스마스면 얘네들과 함께한다. 지금은 결혼했지만 아직 애들은 어리고 잠이 많은 아내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당일이던 일찍 자버린다. 그러니 할께 뭐가 있겠는가? 녀석들과 함께하는 수밖에. 크리스마스면 서울시내 주요거리는 걷기도 힘들정도로 인사인해가 된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면 이런 녀석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인산인해는 소수지만 그저 모아놨으니 많을 뿐 일 것이다. 물론 올해는 코로나로 그 소수가 더욱 작아질 것이라 믿는다. 


 얼마전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를 읽었다. 모지스 할머니를 알게 된 계기였다. 할머니는 아름다운 미국의 대자연에서 성장했다. 미국 역시 중위도에 나라의 대부분이 위치한 국가이니 사계절이 풍부하고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할머니가 자란 지역이 북부지역이다 보니 겨울의 색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실제로 할머니는 눈의 흰색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오래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며 인생의 역경을 겪은 굴곡진 사람의 평범한 인생이 주는 깊이가 이 책엔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초년생이 그린 것 같은 그림. 그러면서도 사람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고, 자연의 아름 다운 변화와 동물들, 사람들간의 관계와 살아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 좋은 그림들이 이 책에 가득했다. 원치 않게 오래살아가며 같이 살아온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했던 일들, 그리고 그것들을 담담히 말하는 할머니의 말에서 깊은 슬픔과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패밀리맨과 케빈을 다시 만나기전 또 다른 친구로 모지스 할머니를 보기로 했다. 검색해보니 모지스 할머니의 책은 두 개가 더 있었다.












 바로 "모지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였다. 책을 구매할 때 사실 두 권 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처럼 애나 모지스가 직접 쓴 글과 그림을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책은 아쉽게도 원전을 가공한 제 2저작물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책은 할머니가 그린 그림 중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부분을 짧게 추려내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물론 크리스마스에 볼만한 책이지만 얇고 상업성이 짙다)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는 미술학도인 저자가 미술사를 공부하며 우연히 발견한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그의 삶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곁들여 에세이처럼 구성한 책이다. 

 그런면에서 두 책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는 저자가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많이 써놓아 할머니의 삶을 객관적으로 알아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애나는 미국 뉴욕주 버몬트에서 태어났다. 지도를 찾아보니 캐나다와 인접할 만큼 미국에서 최북단 지역이다. 이러니 겨울이 길고 추울수 밖에. 애나는 유년의 기억을 그의 인생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을 그 시기를 상당히 많은 그림작품을 통해 강렬하고 자세히 그리고 재밌고 아련하게 표현했다. 아마도 자연과 가족, 친구 및 이웃과 함께 보낸 그 시절이 애나가 길고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일 듯 하다. 애나의 그림 중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이 슈거링 오프인데 겨울에 단풍나무 수액으로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먹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남북전쟁의 여파로 북부의 사람들은 남부의 사탕수수와 설탕을 사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메이플에 더 집중했음은 후문이다.   

 애나는 즐거운 유년을 보내다 12세 무렵 인근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다. 다행히 애나는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한때 서로 숨기는 것이 없을 만큼 친했다고 할만큼 주인집 부부 및 자녀들과 친했다. 당시 미국도 살림이 넉넉친 않았는지 여자아이가 일정 나이가 되어 가계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다른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는 일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애나는 그 집에서 형편을 봐주었는지 그 집에 아이들과 함께 14세까진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무려 27세의 나이에 남편 토마스 모지스를 만나 결혼한다. 토마스는 당연히 연하였고, 애나는 당시로선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미국 남부로 향한다. 막 남북전쟁이 끝나 흑인이라는 노동력을 대거 북부에 빼앗긴 남부는 마치 서부개척시대처럼 기회의 땅이었다. 일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농장이 임대되었고 일한 만큼 벌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래서 애나와 토마스는 남부에 정착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아름다운 10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중 다섯이 죽었다. 이후 다섯 아이를 키우며 20여년을 그곳에서 살아가다 애나의 고향과 가까운 북부의 이글 브릿지로 이사한다. 그것은 오랜 농장일에 지친 애나의 향수병때문이었다. 그래서 애나는 아름다운 셰넌 도어 밸리에 조그만 다섯 무덤을 두고 왔다고 담담히 말한다. 애나는 젊을 적 무척 농장일 솜씨가 좋았는데 자신이 만든 토마토 통조림이 지역 대회에서 일등을 하여 부상으로 자동차를 받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글 브릿지로 이사하고 몇 년 후 아름다운 유년 시절을 만들어주었던 양친이 죽는다. 그리고 거기서 20년을 살다 40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 토마스가 협심증으로 죽는다. 모지스의 나이 67세의 일이다. 그리고 딸 애나가 결핵에 걸려 고향 버몬트 주로 다시 이사한다. 딸 애나는 관절염으로 더이상 자수를 할 수 없게 된 모지스 할머니에게 그림을 권유한 아이였다. 딸 애나는 모지스의 간호에도 몇년 후 죽는다. 그리고 그 남편마저 곧 사망해 모지스 할머니는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 그 지역에 더 거주한다. 

 이글브릿지로 다시 돌아온 것은 75세에 이르러서였다. 이글브릿지에서는 막내 아들 휴와 함께 살았다. 그림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린 그림을 지역 박람회나 자선바자회 등에 팔았는데 신통치가 않았다. 하지만 1938년 수집가 루이스 칼더가 약국에 걸린 모지스의 그림을 발견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뉴욕 에티엔 미술관의 소유주인 오토칼리어의 눈에 들자 할머니의 그림은 대중적 관심과 찬사를 받게 된다. 애나 모지스의 그림은 당시 대공황으로 신음하고, 농장을 떠나와 도시에서 살아가던 많은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들이 좋은 시절 걱정없던 시절 미국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함께 하며 살아오던 순간이 그 그림에 있었기 때문이다. 

 애나 모지스의 전국적 스타가 되었고, 연하장과 작품집에 인기를 끈다. 1946년 애나 모지스의 그림이 실린 크리스마스카드는 무려 6000만장이 팔린다. 1948년엔 모지스 할머니 10주년 회고록이 에티엔 미술관에서 열렸고 너무 오래살았는지 그리고 인생엔 항상 좋은 일만은 없는 일인지 1949년 막내아들 휴가 먼저 세상을 등진다. 1951년엔 다리가 불편했는지 단층주택으로 이사하고 딸 위노나와 함께 살아간다. 1952년엔 후원자 오토칼리어가 내 삶의 역사(이게 인생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책인듯 하다)라는 모지스의 회고록도 출간한다. 1958년 98세가 되자 딸 위노나도 사망한다. 새년도어 밸리에 두고 온 이름도 지어주지 못해준 다섯 아이들과 양친, 남편 토마스, 딸 애나와 막내아들 휴에 이어 딸 위노나를 먼저 보낸 것이다. 이 모든 죽음을 애나 모지스를 담담하게 회고록에 묘사했다. 

 101세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 해를 맞아서도 애나 모지스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생의 마지막 해에도 그의 작품이 있을 정도다. 페이퍼를 마무리하며 할머니의 인생과 글을 보는 내 마음을 돌아본다. 분명 이전에는 반응하지 않았을 글과 그림일 듯하다. 같은 것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나이가 든 증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음을 생각하게 되고 변화했음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 케빈과 케이지가 차지 하던 자리 한켠을 내줄 정도로 애나 모지스의 인생과 그림은 내게 울림이 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보게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분들에게도 크리스마스에 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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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리커버 에디션)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전쟁은 인류 전체가 하나이고 같은 동종이며 같은 인격체이고 같은 생명체라는 분명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망각시키는 수단이다. 전쟁과 동시에 적국의 모든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거나 다른 개체이자 증오의 대상으로 박멸시켜야할 존재로 전락한다. 그리고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적과의 전투로 수많은 전우의 죽음과 전쟁자체의 참상을 목격하고 스스로가 적으로부터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되므로 이런 인식이 더욱 강화된다.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적이 아군으로부터 당한 비인간적 공격을 문제시할수 있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인 그 무언가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인 커트 보니컷은 2차대전에 참전했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독일 도시 드레스덴으로 끌려가 노역에 동원된다. 당시 연방군의 무차별 폭격에 시달리던 독일의 주요도시와는 다르게 드레스덴은 문화유산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폭격 역시 한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방심의 상태에서 일어난 드레스덴 폭격은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포로였던 보니컷은 이렇다할 숙소도 없어 형편없던 도살장에서 작업장이자 쉼터였던 형편없던 도살장에 머물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설에 의하면 폭격이후의 도시는 마치 달의 표면과 같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전개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처음 읽을 때에는 작가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순차적으로 소설로 구성하여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과 전쟁중 함께 있었던 것 같은 혹은 자신을 투영한 듯한 가상의 인물 빌리 필그림을 만들어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그리고 빌리 필그림이 진행해나가는 이 소설은 전쟁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소설은 빌리가 1967에 라디오에 출연하여 자신이 과거에 외계인에 납치되었고, 수년간 외계행성에서 생활했지만 그들이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 실제로는 몇백만분의 1초만 지구에 없었기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인지할수 없었으며 심지어 그 기간중 유명 여배우의 같이 납치되어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여튼 빌리는 이 납치사건 이후, 자신의 외도할순 없지만 시대를 살아가며 계속 자신의 과거 시간대로 이동하여 그 시절을 살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론 길게 어쩔땐 짧게, 그리고 어느경우느 먼 과거로 어느 경우엔 약간의 과거로 가기도 한다. 

 그렇게 2차대전때의 빌리와 현재와 근접한 빌리, 그리고 현재의 빌리, 아주 어릴적의 빌리가 계속 나타난다. 그래서 이 책은 반전소설인 것 같기는 한데 과학소설 같은 느낌도 강하게 나타난다. 빌리를 납치한 외계인은 트랄파마도어인이다. 그들은 4차원 이상의 존재로 시간을 다룰수 있다. 빌리는 시간이동능력을 갖게 된 후, 그리고 트랄파마도어인의 영향을 받은 후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뭐 그런 거지."라고.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마지막에 시공을 초월해 과거의 시간을 볼 수 있었던 것 처럼 언제든 과거의 순간을 볼 수도 거기에 들어가 생활할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어떤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죽는다는건 일정 순간에 그 개체가 그져 상태가 나쁜 것이고 죽기전의 과거로 가서 그를 얼마든지 만나고 이야기하며 함께 지낼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걸 이해하고 어느정도 할수 있게된 빌리에게 죽음은 뭐 그런거지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죽음에 대한 이런 장치를 보니 그것이 마치 컴퓨터의 영화파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지만 난 그걸 언제든 재생할수 있고, 볼수 있다. 그러면 그 영화에 끝에 주인공이 죽더라도 그는 죽는게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다시 재생해서 그의 삶을 보고 경험할수 있으니 말이다. 트랄파마도어인처럼 언제든지 그의 과거에 참여해 같이 생활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처음 납치되었을때 왜 나라는 말을 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수많은 유인행성을 돌아다니며 왜, 어째서, 목적은 목표는 등처럼 항상 이유를 찾는 존재는 인간이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우주의 과거에서 마지막을 볼수 있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모든 것인 그저 이유없이 정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정해진 것에 이유를 찾는 행동은 무척이나 무의미해진다. 네가 이유를 찾는 그것마저 정해진 행동이기 때문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이 과거에 들어가 생활을 참여해도 그건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도덕이나 윤리니 하는 것들도 무의미해진다. 그건 애초에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었고, 매우 어지럽고 나쁜 순간이지만 그것역시 그들이 쭉 나열해 동시에 총체적으로 경험할수 있는 시간의 단지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전체중 한 부분이 좀 이상하다고 해서 그걸 나쁘다고 하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빌리는 자유의지도 묻는다. 그런데 그것도 무의미하다. 모든게 정해졌는데 자유의지란것 역시 무의미해진다. 빌리가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정하는 모든 것들도 역시 사실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도 자유의지는 착각이라는 걸 암시하는 연구결과를 보여주는데 인간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기전 이미 무의식 차원에서 그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단지 무의식이 이미 결정을 한 아주 짧은 시간후 의식적으로 그것을 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사실상 없는 셈이 된다. 다만 무의식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평소 나의 생각과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할텐데 그런 부분에서 자유의지를 어느정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처럼 자유의지도 없이 그저 우주에서 정해진 시공간에서 정해진 수순의 일을 정확히 수행해내니 트랄파마도어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결국 '기계'에 불과하게 된다.

 빌리는 전쟁 후 아내 발렌시아와 결혼한다. 검안사였던 그는 돈이 많은 아버지를 둔 발렌시아를 실질적으로 공략한 셈인데 그녀는 무척 뚱뚱한 여자로 스스로도 자신이 결혼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빌리는 아내 발렌시아와 결혼하는 장면으로 돌아갔을때 자신의 결정이 정말 형편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40대 후반까지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과거 자신의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서 선택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트랄파마도어인에겐 그건 그저 결정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걸 알고, 변해서 인생을 조금더 높은 곳에서 보게된 자신이 보기에 과거의 결정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어리석고 부끄럽지 않을까나. 물론 빌리는 그것도 그저 결정된 것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긴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소설의 주제가 뭐랄까 무척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전을 주제로 독특하고 재밌는 과학 소설을 쓴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과학적인 부분을 들여와 전쟁의 참상을 강조하면서도 외계인의 시각을 빌어 세월의 힘으로 그것 역시 인간사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관조하게되는 부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이 책의 가치는 높게 생각된다. 재밌는 서술과 자신과 세계, 인생사를 소중히 하면서도 별것 아니것처럼 이야기하는 외계인의 시각을 빌려온 관점은 오래된 소설임에도 무척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대한 평가가 높은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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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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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2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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