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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ㅣ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평점 :
방구석 미술관 1권의 대히트로 2권이 나왔다. 몇년 전에 나온 1권은 어쩌다보니 강제로 보게 되었는데 큰 임팩트가 없었다. 서양의 주요 미술가들에 대해(물론 저자의 내공은 깊겠지만) 간단히 대중적으로 다룬 느낌이었고, 어설프게 서양미술책을 몇 권 본 나는 그로 인해 크게 인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건 작가가 1권에 비해 수준을 높였다기 보다는 전적으로 내가 한국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많이 무지하게 때문이었다. 방구석 미술관 2편은 바로 최근 100년간의 한국 현대미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남북의 분단기를 관통해 살아온 한국의 미술가들 10인을 모셨는데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구, 정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이다. 이중 7명은 이름과 작품을 들어봤다. 하지만 유영구와 정욱진은 정말 처음 듣는 분들이었고, 이우환은 어설프게 들어본 분이었다.
10인의 작가들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그에 걸맞는 강렬한 10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아낸 만큼 공통점이 있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해 서구문화가 침투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하지만 일본을 통해 서구를 접하다 보니 왜곡된 부분이 많았고 소위 왜색이란게 생겨났으며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와 전통은 물질적인 후진성으로 인해 함께 경시되고 퇴색되었다. 이들 작가들은 이런 환경에서 전통미술과는 단절되고 먼저 일본, 혹은 한국에서 수련을 거쳤고, 더 나아가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미술의 제대로된 영향을 받았으며, 그 와중에서도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한국의 미와 전통성을 현대미술의 경향성과 함께 융합하거나 살려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작가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전체적으로 든 느낌이었다.
작가 모두가 강렬한 삶을 살고 그것을 예술로 남겼지만 조금 더 내게 인상깊었던 사람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그 삶이 파란만장하고 여성이기에 그의 행보에는 웬만하면 다 한국최초라는 수식어가 이상하리 만큼 자주 붙는다. 일단 그는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불행했다. 일본 유학시절 만난 최승구와 결혼까지 하려했지만 그는 이미 조혼을 한 유부남이었고,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고생을 하던 혜석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그를 돕고 변호한 우영 역시 사별하긴 했지만 애가 딸린 남성이었다. 우영의 지극정성에 혜석은 그에게 마음을 열고 우영은 혜석의 매우 현대적인 조건을 받아들여 둘을 결혼한다. 아이 셋을 낳았지만 유럽여행을 나선 혜석은 자유분방함속에서 실수를 저질러 최린과 불륜을 저지른다. 이에 우영에게 버림받고 그의 예술과는 다르게 사회적으로 매우 지탄받아 거의 모든 관계를 잃게 되고, 아이들과도 만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불행함 속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고 작품세계를 이어가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갔고,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던 시기에 날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비운의 작가였다.
다음은 이응노다. 구글이 만든 사이트은 아트앤 컬쳐란 사이트나 앱을 이용하면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그 사람의 생애시기별로 볼수 있는데 아마 이응노를 살펴본다면 이 만큼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사람도 드물거란 생각이다. 이응노는 서당훈장 아버지를 둔 사람은 전통전 환경에서 자라나 미술을 배우기 위해 경성으로 홀로 상경한다. 당대 최고의 전통화가 및에서 전통미술을 배우고 입선하나 근현대 미술을 접하고 일본에서 유학해 서양화를 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서양화기법을 토대로 동양화를 접목시켰고, 이후에는 한국전을 겪으며 강렬한 인상주의적 그림을 보이도 단색조의 추상미술로 접어든다. 그는 추상미술에 한자와 한글을 사용했고, 그것이 그 만의 문자추상으로 자리잡는다. 이응노는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이 작품에 등장하는 군상이란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수없이 작품세계가 변한 사람이며 백남준보다 앞서 한국에서 등장흔 월드클래스 아티스트였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모진 고초를 당하며 한국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백남준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은 박수근이다. 나혜석은 최초라는 점과 여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았다는 점, 그리고 이응노는 끊임없는 혁신이 인상적이었다면 박수근 가장 한국적이었다는 점이 인상싶었다. 박수근은 여기 나온 다른 모든 미술가들과 달리 철저히 국내파다. 당시 미술은 일본 그리고 서구의 영향이 많았고 당연히 유학파가 득세했다. 국내파는 찬밥신세였는데 그런 국내파들끼리 모여 주호회를 만든다. 주호회는 판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때의 영향으로 박수근의 회화에는 판화적 특지이 많아진다. 박수근은 주호회 멤버들과 함께 경주를 많이 찾았는데 여기서 우리나라 화강암으로 만든 석물문화재의 질감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박수근의 그림이 하나같이 단색조에 돌같은 질감을 갖게 된 것은 이 석물의 질감에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이 질감은 물감을 수차례 덧칠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박수근은 회색물감에 다량의 흰색물감을 많이 섞어 사용했다. 또한 박수근의 작품은 매우 평면적인데 저자는 그가 기하학적 추상을 강조하는 피카소의 영향을 다소 받은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박수근의 작품이 인상적인 것인 이런 기법이외에도 주제자체가 일상의 사람들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의 작품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대중적인 만큼 매우 재밌고, 이번엔 특히 한국의 현대미술가들을 다뤄 인상깊었다. 제법 두꺼워 400페이지 정도 되었는데 부담스럽지 않게 볼수 있었다. 내용은 재밌었지만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가지고 간 것 같아 안타깝다. 시대가 우울하고 예술가의 삶은 불우한 경우가 많다지만 하나같이 가진 재능에 비해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산점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