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에 있는 녀석의 얼굴은 이상하다. 무표정하고 약간 사람을 내려다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저런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다지 호감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비호일 것이다. 문제는 주인공이 평생 이런 얼굴이라는 것이다. 어떤 녀석이 나를 모멸하는 말을 하여도, 엄마와 할멈이 생일축하파티를 해주어도 그렇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은 윤재다.

 윤재가 저런 얼굴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작기 때문이다. 편도체 기능 저하로 윤재는 다른 사람의 감정 파악을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이렇다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공포감도 기쁨도, 즉 희노애락애오욕이 없는 것이다. 편도체가 아몬드를 닮았기에 윤재의 엄마는 윤재의 증상을 알고서는 아몬드를 매일 먹였다. 동종동식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윤재는 엄마와 할멈과 함께 산다. 할멈은 엄마의 엄마다. 두여자는 매우 박복한데, 할멈은 남편이 젊어서 암으로 갔고, 할멈이 노점을 하며 기껏 대학까지 보내 놓은 윤재의 엄마는 하필 학교앞 노점상과 눈이 맞는다. 할멈은 기가차 배가 불러온 윤재 엄마와 절연하지만 엄마의 노점상 남편은 하필 도로를 덮친 오토바이에 부딪혀 죽는다. 

 거기에 태어난 윤재는 감정불감자니 이로 인해 두 박복한 여자는 절연한지 7-8년만에 다시 같이 살게된다. 할멈은 윤재를 예쁜 괴물이라고 불렀다. 세 식구는 나름 행복하게 헌책방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매년 사진도 찍는다. 윤재눈엔 아름다운 엄마와 기골이 장대한 할멈은 늘 그대로이고 자신만 변해간다. 그러다 어쩌다 청계천에서 맞이한 성탄절이 문제였다. 한 정신나간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망치와 칼을 휘둘러 그날 만난 행복해 보이는 불특정 다수를 공격한다. 불행이도 거기에 할멈과 윤재의 엄마가 있었다. 범인은 자신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할멈은 죽고 엄마는 살았다. 하지만 엄마의 뇌가 죽었다.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윤재는 매일 병원에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 엄마의 헌책방도 이어받아 운영해나간다. 건물주이자 위층에서 빵집을 하는 심박사는 엄마와 친했었는지 자신에게 경제적 그리고 사회생활적 자문도 준다. 그러다 엄마 병원을 드나들며 알게된 윤교수란 사람이 자신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의 아내가 곧 죽게생겼는데 최근 어릴적 잃어버린 아들을 찾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 아들을 보여줄수 없게 되었으니  윤재가 대신 아들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본과 상황은 보다 윤교수가 만들어주었다. 윤재는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한다. 평생 연기만 하고 살았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이 연기한 녀석이 며칠전 우리반으로 전학온 곤이란 녀석이라는 점이다.

 곤이는 원래 엘리트로 자라날 녀석이었다. 엄마는 유명 언론사 기자에 아빠는 해외 유학파 대학교수다. 그런데 어릴적 모처럼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간을 낸 엄마가 놀이공원을 같이 간게 화근이었다. 잠시 전화를 받는새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곤이는 입양과 파양, 소년원을 전전하며 거칠게 자라난다. 

 자신을 대신한게 같은 반 윤재란걸 안 곤이가 보일 반응은 뻔했다.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런데 이녀석이 어떤 욕과 험악한 짓거리에도 반응이 없다. 곤이의 욕과 폭력은 더욱 심해져간다. 이런 녀석은 정말 처음 인 것이다. 쫄지도 않고 적개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급해진진 곤은 급기야 윤재에게 린치를 가한다. 그런데 남자는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이상스레 그 사건 이후 곤은 윤재의 상태를 알게되면서 윤재의 헌책방을 매일 같이 찾아간다.

 어찌보면 둘은 극과 극이다. 윤재는 감정이 없으며 곤은 폭발하는 활화산 같다. 윤재가 반응없이 본질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던지니 곤은 쓸데없는 민감함과 폭력으로 자신을 감추지 않게 되었고, 이런 활화산 같은 곤으로 인해 사막같던 윤재의 마음도 변화가 시작된다.

 소설은 뒷부분에 더 윤재와 곤의 이야기를 더 남겨둔다. 여자애도 하나 등장한다. 그부분 역시 재밌으며 결말은 뻔한 것 같지만 그래서 극적이다. 

 작가는 후기에 자신이 워낙 평탄하고 결핍없이 사랑받고 자라나 글을 쓰기 힘들었고 했다. 잘생기고 이쁜 개그맨들이 갖는 고민이다. 난 왜 못생기지 않았는가 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작품을 써냈고, 자신도 이젠 더이상 그런게 컴플렉스가 될수 없음을 안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로 알려지고 한정되어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입문하고 상을 받은 계기일뿐이다. 읽으면서 청소년 소설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을 위한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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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8-01-18 08:17   좋아요 1 | URL
네 많이 재밌습니다 시간도 오래안걸려요강추입니다

taegeol90 2023-01-2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담비 얼굴에 댄디컷 한 과민성 생각이 많은 남자아이. 보는거 같음. 그리고 지 처럼 세상이 불필요한 걱정과 고민 그리고 잡생각 많게되길 바라는거 같은 사람.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거 같은 사람. 아니면 손담비 얼굴에 댄디컷 한 사람 바닷가도시에서 평생 바람이나 쐬고나 있어야 치료가 될 병자 같은 느낌 이네요.
 
[eBook]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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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니...... 책 제목이 이리도 나를 직접 찌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내가 정말 관심갖고 봐온 책들은 이상하게도 나의 생활과 거의, 어쩌면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 생활과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지 않는 책들에 더 많은 재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다니 갑자기 그런게 이상스레 느껴졌다. 물론 그건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지만.

 시에 대한 나의 수준은(수준이라 하기도 민망하지만) 사실상 고교 시절이 마지막이다. 시는 해석이란게 잘 안되서 늘 어려웠고, 하다못해 고전시가라도 나오면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시에는 뭔가 해석이란게 있었는데 그것도 참 재미가 없었고, 어쩌다 시를 보며 흥분하는 국어선생님이라도 만나면 정말 이해가 안갔다. 시의 맛을 모르고 살아온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시 전공자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공대생이 주 타켓이다. 그래도 나름 문과출신이라 조금 더 찔렸다. 

 책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시가 등장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46편의 시라는데 그래도 한국 주입식 교육과정이 한몫했는지 어디서 본듯한 느낌의 시가 절반을 된 듯하다. 작가는 나름 주제 12가지를 가지고 시를 엮어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 영화, 심지어 광고와 유행가 가사까지 동원해나가며 재밌게 독자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나간다. 12개의 주제도 시적이어서 사실 읽어보고서야 무슨 내용인지 알수 있다. 저자가 교수이고 나이가 있으신지라 인용하는 광고나 유행가 가사, 영화들이 좀 많이 올드하다. 나 정도 나이도 간신히 알듯말듯 한게 말았는데 비교적 최근 예로 든 유행가 가사가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고 광고라고 등장하는 것 용각산 광고다. 강의시간에 이런 예를 요즘 학생들이 알아먹을진 미지수다.

 공감이 가는 주제도 있고, 아닌 주제도 있었지만 마음이 가는 부분이 두군데 있었다. '노래를 잊은 사람들'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분이다. 노래를 잊은 사람들 부분에서는 젊어서는 노래를 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속세와 자본에 찌들어 이젠 이야기를 하는 내용의 시가 등장한다. 노래는 순수한 열망과 개혁, 정의, 예술 이런 것들을 의미했을 것이다. 반면 이야기는 다커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노래보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식 이야기, 직장 이야기, 월급이야기 아마 이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노래보단 이야기가 어울린다. 노래를 잊은 사람들에 등장한 시중 인상적인 것은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였다. 내가 작가였다면 이 부분에서는 유행가로 넥스트 4집의 hero를 썼을 것 같다. 둘은 내용이 많이 비슷하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아버지라는 숙명과 굴레에 관한 내용이다. 이 부분의 시 작가들은 모두 불우한 삶을 산 아버지를 뒀다. 그래서인지 그 반동으로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반동 자체가 아버지의 그늘이자 그로부터 받은 숙명인 것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시에는 그렇게 아버지와 다르게 살아온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했고,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나와 좀 찡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여기 나온 시인들은 삶이 불우했다. 천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고, 가정형편이 좋지 못하거나, 결혼했음에도 다른 이를 사모하며 앓았거나, 건강이 나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또한 집안의 기대나 과거 부모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예술가적 삶이 아닌 속세적인 삶을 억지로 살려고 노력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 불행이 그런 시들을 낳을 것일까? 과거 한 방송에서 노래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이별했다는 가수 김범수의 사례가 생각났다.

 책에서 인상적인 시인은 개인적으로 신경림과 기형도, 김광규였다.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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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메이션 -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
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김태훈 옮김, 김상욱 감수 / 동아시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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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들어 알라딘 북플러들의 리뷰가 무섭다. 새해라는 것이 주는 효과가 이런 것이다. 리뷰의 숫자도 늘어난 것 같고, 웬지 읽는 책들의 수준도 높아진 것 같다. 평소에 보지 않던 무거운 책을 새해라는 마음으로 잡은 것으로 지리짐작한다. 내가 잡은 이 책도 그렇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 부터 북플러간에 비밀글이 좀 많아 진 것 같다. 사적인 것일수도 있고, 뭔가 다툼을 막기위함도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다.

 책 인포메이션은 글자그대로 정보라는 것을 인류가 다루고 발견해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찾는 역사를 다룬 책이다. 뭔가 커다란 결론을 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정리에 그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인류의 발전과정을 다룬 좋은 책들이 많다.  어떤 책은 지리적 우연에 어떤 책은 사고의 도구를 발전 시키는 과정, 어떤 책은 과학의 발전으로 어떤 책은 경제적 발전과정을 중심내용으론 잡곤한다. 이 책 인포메이션에게 인류와 세계의 발전과정의 중심에는 바로 정보가 자리한다. 의외로 정보가 세상을 구성한다는 생각은 오래되었고, 책이나 영화등에서 적잖게 구현되었다. 영화라면 13층과 매트릭스가 떠오르며 책은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의 멀티유니버스가 생각난다. 

 인간에게 정보의 시작은 바로 '말'이었다. 하지만 말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으니 바로 기록이 되지 않고(물론 오늘날에는 기록이 가능하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로 인해 말을 통해 어떤 정보가 제대로 표상화되기 힘들었으며 인간의 사고 방식 역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책에는 아직 구술문화 수준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대한 연구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원이나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범주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삼단 논법의 예를 들어도 이를 논리연역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구어가 문어로 전환되어 문자인 기호가 논리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는 예이다. 

 이어 문어, 즉 문자가 등장한다. 말은 처음엔 상형문자로 그리고 표의문자에서 표어문자로 발전해나간다. 상형문자의 대표적 예가 한자이며, 표어 문자로는 알파벳과 한글이 있다. 기록이 가능한 문자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에 기대어 사고를 발전시켰고, 논리가 가능해졌다. 묘하게도 구어일 경우에는 직접 경험에만 의존하여 지식을 구축해나가다가 말이 등장하고 나선 이로부터 해방되 글 자체에서 새로운 지식을 쌓아나가는 방법이 발견된다. 형식논리학이 그것이다.

 하지만 논리가 개발되지마자 글을 가진 문화권에서는 역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손룡의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역설과 삼단논법에 등장하는 크레타인의 거짓말 역설이 그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역설이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글이 의미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위에 제시된 역설들을 의미가 없는 다른 기호로 바꾼 경우 문제는 사라지게 된다. 때문에 역설을 없애는 방법은 바로 매개체를 정화하는 것이고 이렇게 정화된 또다른 정보 표기 방법을 인류는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숫자다. 

 숫자에 의한 정보논리가 본격화 되기 이전 정보의 발전은 중간단계를 거치는데 바로 사전의 발명과 인쇄술의 등장이다. 놀랍게도 사전이 등장하기 전 영어권에서는 사람들이 쓰는 철자가 제 각각이었다. 영어의 발음과 표기가 분명히 일치하지 않으니 생긴 문제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해 보이는 철자를 썼다. 오늘날 한 영어단어에 여러 표기법이 있는 것은 이때의 흔적일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전의 등장은 이런 표기법을 일치시켜서 단어의 지속성을 보장하였고, 사전을 통해 다른 단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한 단어의 의미가 다른 단어로부터 나온다는 즉, 모든 단어가 총체적으로 맞물린 구조를 형성한다는 닫힌 계의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목록화의 사고방식도 사전에서 촉발되었는데 두 가지 목록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단어의 주제별 목록화로 이는 사고를 자극하고, 불완전하며, 창의적인 방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알파벳 목록화로 이는 기계적이지만, 효율적이고 자동적인 방식이었다. 승자는 당연히 오늘날 채택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정보에서 다룸에 있어 의미를 분리하는 것에 대한 초기 시도중 하나로 보인다.

 인쇄술을 통해서 인간은 언어를 세밀하게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언어를 독립적인 검토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단어의 의미가 상호의존적이고 심지어 순환적이란 인식을 하게 되었다. 즉, 단어가 사물에서 분리되어 다른 단어를 표상하는 단계로 갔던 것이다. 문자언어를 통해 시작된 단어와 의미의 분리가 본격화 된 것이며 결국 사전과 인쇄술은 이러한 성향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영국 찰스 베비지의 차분기관과 해석기계이다. 차분기관은 로그를 이용해 큰수의 곱셈을 덧셈으로 변환해주는 기계였고, 해석기계는 정보를 처리하는는 기계였다. 당시 둘다 기술적 한계로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베비지의 기계는 기호를 다른 기호로 표기하는 인코딩에 관한 화두를 던진 것이었다. 또한 구체적 물질세계와 추상적인 기호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최초의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이어 전기통신의 발달로 전신이 등장한다. 전신은 회로를 열고 닫는 즉 0과 1의 상태로 인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계였다. 전신은 통신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정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언어나 세계의 모습을 숫자라는 기호로 표현하려고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철학자들은 논리학과 수학을 결합함으로써 일종의 완성된 체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는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괴델에 의하면 수학에서는 연산불가능한 수가 있으며 이때문에 수학이라는 체계는 불완전하다. 이러한 불완전성의 정리는 기호를 통한 온갖 방법으로 역설을 피하던 철학자, 논리학자들에게 절망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은 그 한계안에서 계속 발전해나간다. 

 기술적 한계와 시대적 한계로 의미를 찾지 못했떤 베비지의 기계는 튜링의 사고안에서 튜링기계로 창안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안긴다. 튜링기계는 긴 직사각형으로 기호를 표기하기 위한 테이프를 갖고 있으며 그 테이프에 0과 1로 기호를 표기하는 것이다. 이 기계는 논리연산자와 전기회로를 대수함수의 관계지시서처럼 엮었으며 최초로 자기 자신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호, 즉 정보의 표현방법으로써 인간 언어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었다. 섀넌은 언어에서 본질적인 것은 단순한 말소리가 아니라 범주화와 형식적 패턴화라 보았다. 언어에는 패턴에 따른 잉여성이 따른다고 보았는데 잉여성이란 굳이 없어도 의미 파악, 즉 정보전달에 문제가 없는 것을 말한다. 가령 영어의 q뒤에는 거의 u가 따라오며 t의 뒤에는 상당한 확률로 h가 붙는다. 실제 언어의 잉여성은 무려 75%정도에 달한다. 

 섀년은 이런 잉여성에서 정보량의 측정 개념으로 엔트로피를 도입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법칙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우주의 엔트로피는 질서정연한 매우 작은 상태에서 가장 무질서한 큰 상태로 나아간다. 이는 거스를수 없는 것으로 결국 우주의 끝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낳기도 했다. 섀넌에게는 무작위적 정보는 엔트로피가 큰 정보량의 큰 것으로 불확실 한 것이며 언어처럼 의미가 있는 패턴화된 정보는 잉여적인 것으로 엔트로피가 작은 정보량이 작고 비교적 확실한 것이다. 

 섀넌은 또한 게놈이 비트로 측정할 수 있는 정보저장소를 사상 처음으로 제시하여 정보의 개념을 생물학에도 적용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사람의 유전자는 유전 정보가 AGCT네가지의 염기로 인코딩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물의 기원이나 형성방식을 정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후성 유전학에 의하면 생물체는 발생과정에서 유전자를 켜고 끄는등의 단계적 연산을 실행한다. 이에 브렌레너는 새로운 분자생물학은 고도의 논리적 컴퓨터,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보는 밈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킨스에 의해 주창된 밈에게 인간은 조력자이자 운반자이다. 밈은 인류 역사 대부분 동안 입을 통해서만 전달되었기에 아주 잠시만 존재했었으나 글이 등장하고, 이를 기록하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그 생명력을 달리 하게 된다. 정보의 발전과 밈은 매우 밀접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밈은 정보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밈은 언어(정보의 표기방법)의 등장이전에도 있었다. 정보는 태초에 존재한 것이다. 하지만 밈의 경우처럼 인간이라는 즉,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해 우주에 널린 이 정보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유기체가 발생하면서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마지막은 정보의 복잡성이다. 메시지의 규칙성이 클수록,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면, 예측가능성이 높을 수록, 잉여성이 커지며, 그럴 수록 정보는 줄어든다. 무작위적인 영어단어 한 글자와 완전 무작위적인 영어단어 하나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체이틴은 이러한 패턴과 질서를 갖춘 것 자체가 연산가능성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연산가능성이 무작위성의 기준이라고 했다. 콜모고로프는 복잡성은 그 대상을 생성하는데 필요한 가장 짧은 알고리즘의 비트단위 크기로 보았다. 

 또한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우주 전체의 정보는 보존된다. 이는 양자역학에 의한 것으로 호킹이 블랙홀에 의해 정보가 소실된다고 보았으나 현재 이는 그 자신에 의해 철회된 상태다. 책 인포메이션이 갈수록 결론이 확실해지지 못하고 두루뭉실 서술 된 것도 바로 이 양자역학과 카오스 이론이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거지로 정리한다고 하긴 했지만 책은 사실 많이 어려웠다. 반 정도 이해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약간 감을 잡을 듯 말듯한 정도로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몇가지 생각은 든다.


1. 세계는 정말 정보로 구성되었을까?

 책 인포메이션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생겨나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고 의미하는 정보를 발견하고 역설적이게도 이 정보에서 의미를 제거해나가면서 정보이론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과연 세계가 정보로 구성되었다는 의문을 어느 정도 하게 되었다. 이미 인간은 과학의 발전을 통해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중 강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 약한 핵력 등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상태다. 또한 생명에 있어서도 유전자와 진화론을 통해 그 근원을 알아가고 있는 상태다. 아직 멀었지만 언젠가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 즉 알고리즘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2. 정보에 있어서 의미란?

 인포메이션에서 정보의 발전과정은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언어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그 발전과정에서 의미는 버려졌다. 하지만 의미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잉여성과 패턴성을 갖춘 것으로 정보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압축에 사용되기도 하는데 결국 의미를 가진 정보는 서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는데 있어 큰 경제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우리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의미는 결국 정보수신 쌍방간에 정보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있어 의미 있는 정보라는 것이 다른 외계 생명체에겐 아무것도 아닌 정보량만 많은 것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패턴과 잉여성이 있으니 결국 알수 있을 것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의미는 세계를 구성하는 알고리즘과 정보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의미있는 정보를 인간이 구성하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이미 상당히 잉여적이고 패턴화된 정보로 구성된 존재라 그런것이 아닐런지.


3. 정보는 물질적인 것인가?

아인슈타인에 의해 물질과 에너지는 근원적으로 하나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정보는? 책은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정보 역시 물질적인 것으로 보는 뉘앙스가 다분하다. 에너지와 물질처럼 그것의 구성원리이자 표현 방법인 정보역시 보존된다면 역시 깊은 관련이 있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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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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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교수는 정말 책을 많이 낸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인데 사실 올해 읽은 것이 아니라 작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서평을 쓰려고 책 제목을 연상했는데 그새 한해가 지났다고 책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알라딘 상품검색을 눌렀는데 강준만이라고 치니 무려 21줄이 나왔다. 강준만 교수가 얼마나 다작하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참고로 장난삼아 검색했는데 알라딘 상품검색으로 유시민씨는 6줄이 나온다. 이분도 책 많이 낸분인데 이 정도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라는 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에 들어보고 해봤을 말이다. 강준만교수는 이 말이 지금의 한국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것 같다. 그리고 제법 그러하다. 책의 논의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은 당시 남북한 총 인구의 거의 10-20%를 죽음에 이르게 할만큼 거대한 비극이었다. 이 전쟁은 이런 물리적 손실외에도 사회구조에도 큰 변화를 남겼는데 책에 의하면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사회질서의 붕괴로 기존의 기득권세력이 한 방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극적인 사회계층이동이 가능해졌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기반이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전쟁이전 유교적 질서로 인해기회주의, 돈의 추구, 협잡등의 경제적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강하게 질타받아 쉽게 시도하기 어려웠던것이 전쟁을 겪으며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아 상당히 현실적으로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6.25정신인데 이것도 역시 개천에서 용이나는 것의 기반이 되며 향후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속 성장 시대를 맞아 개천에서 용이나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방 시골 출신들이 서울로 상경하여 정치인이 되거나, 판검사, 의사가 되고 유명한 기업에 취직했다. 책이 지적하는 문제는 이러한 용들이 자신이 떠나간 개천을 죽이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서울에 자리잡아 한국이 서울 공화국으로 나아가는데 일조했다. 자신의 토대인 고향은 개발과정에서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와 이용의 대상이었다. 오히려 막판에 정치판으로 나가는데 자신의 지역구로 끝까지 이용만 해먹을 뿐이었다. 평생 남으로 살았으면서 막판에 '우리가 남이가' 한 것이다.

 개천의 미꾸라지들 역시 문제다. 미꾸라지들은 자신들이 용이 되기 이미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또한 용을 지나치게 동경한 나머지 개천 미꾸라지 시절을 기억도 추억도 하지 않는 용들을 위해 개천의 자원을 쏟아 붇는다. 미꾸라지들이 죽어나든 말든. 지방에서 sky대학 합격이나 정부요직에 임용될때 붙는 플랜카드들. 지방의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했을때 서울에 기숙사를 지어주고 명문대 학생만 수용하는 행위, 지방의 우수학생을 지방에 남기는게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에 가야 발전한다는 착각등이 그러한 대표적 예이다.

 미꾸라지들 끼리도 문제다. 강준만은 땅콩회항 사건으로 화제가 된 한국사회의 갑질문제에 대해서 용의 갑질 뿐만 아니라 미꾸라지들 간의 갑질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실제로 을들은 언제든지 갑질을 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지위에 따라 얼마든지 갑질을 해덴다. 식당이나 상점에서 마구잡이로 점원에게 갑질을 하는 행위,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부에게 하는 행위,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는 행위, 소규모 점포 주인이 알바생에게 하는 행위들이 그러하다.

 이는 미꾸라지들 역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화에 빠져 자신도 역시 그러할 수 있다는 착각과 용들이 하는 행위와 신화에 메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천에 이런 미꾸라지들만 사는 이상 신화는 멈추어질수 없으며 갑질 역시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개천용신화를 느껴본적이 있다. 하나는 어렵게 취득한 학벌에 대한 갑부심. 그리고 드라마'하얀 거탑'을 보면서다. 하얀거탑에서 천재적 외과의사 장준혁은 수단과 방법그리고 실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대학병원 외과과장의 자리에 오르게된다. 환자순시하면 뒤에 따까리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구름처럼 따라 다니는 그 직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장준혁이 미꾸라지중 하나에게 사소한 의료 미스를 저지르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인턴에 의해 재판에 휘말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장준혁이 재판과정에서 제발 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응원하는 마음을 갖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제법 충격이었다.

 그리고 용들은 예전처럼 더이상 치열하게 경쟁하지도 않는다. 과거 처음 승천했을땐 모르겠지만 이미 용이된이상 자신들의 사회에선 경쟁은 없다. 재벌 2세가 손쉽게 탈세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받는 일이나. 경쟁없이 계열사들을 통해 커나가는 회사를 물려받는일, 막대한 교육예산을 투입해 자신을 손쉽게 승천시키는 것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용들은 미꾸라지들에게 신화는 심어주면서 그들을 무한경쟁시킨다. 이런 무한경쟁은 용신화를 존속시키는 방편이 된다.

 이런 사회하나하나의 개인에게 깃들어 있는 개천용신화가 벗겨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책은 뭐 이렇다할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같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결국은 공동체 정신의 회복과 지방중심주의가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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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 지식인마을 16
최훈 지음 / 김영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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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윤리시간에 배우는 것이지만 서양윤리의 흐름은 크게 두갈래로 나눈다. 하나는 의무론적 윤리이며 다른 하나는 결과론적 윤리이다. 의무론적 윤리는 윤리를 의무로서 보는 것으로 저자는 책에서 칸트의 윤리학과 종교의 윤리를 예로 든다. 그리고 다른 갈래인 결과론적 윤리의 대표는 벤담과 밀 그리고 그 계승자인 싱어의 공리주의다. 저자는 윤리의 기본 전제조건으로 보편원칙이 되어야함을 말하며 의무론적 윤리설과 결과론적 윤리설을 살핀다.

 먼저 의무론적 윤리의 하나로서 우선 저자는 종교를 말한다.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윤리가 의무가 되는 것의 바로 신 때문이다. 그것이 신의 계시이지 말씀이기 때문이다. 즉, 도덕적으로 살아야하는 것의 근거가 신이되는 것이다.

 이것을 논파하기 위해 저자는 발칙하게도 그렇다면 신이 나쁜 말을 지시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묻는다. 신자들은 정의로운 신이 그렇게 나쁜 말을 할리 없다고 항변한다. 신은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이말은 자체가 모순이되어 그렇다면 나쁜말과 좋은 말이란것 자체, 즉, 도덕과 비도덕이 애초에 신 이전에 있었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종교는 도덕에서는 이제 분리되어야 할때라고 말한다. 종교가 인간이 만든 것임을 인정한다면 도덕에 우선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된다.

 다음은 칸트다. 칸트행위의 결과나 경향성을 통한 도덕을 부정한다. 결과는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이며 경향성은 글자그대로 사람의 성향을 의미한다. 착하거나 악한 성향이 그것이다. 칸트가 이것들을 도덕의 잣대로 삼지 않은 이유는 이것들이 통제불가능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무리 도덕적 의도를 가지 행위라도 그 결과는 정반대일수 있으면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사람의 선하고 악한 성향은 타고나거나 환경적인 것으로 어찌보면 개인의 손을 많이 떠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가 강조한 것은 이성에 의한 의무감을 통한 도덕의 실현이다. 이것은 앞의 것과는 다르게 통제가 가능하여 개인의 도덕적 행위에 대해 상을주거나 벌을 주는 등의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있다. 선하고 악하고의 경향성은 기본적인 도덕적 감정으로 어찌보면 이성에 앞서 형성된 것일 수 있다. 이런 감정도덕에 대한 무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에 이성에 의한 도덕적 의무의 실현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과 저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로 저자는 칸트에게서도 간단히 떠나간다. 

 결국 의무론적 윤리설은 글자그대로 보편원칙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지만 역설적으로 의무가 어째서 의무가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토대가 약한 셈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남은 것은 공리주의다. 벤담과 밀에의해 발생한 공리주의의 문제점은 결과에 대한 계산을 기초로 도덕성을 판단하기에 의무론적 윤리와는 다르게 어떤 보편적 원칙이 생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론적 윤리설이라고 부르기도한다. 하지만 저자는 싱어의 실천윤리학을 통해 공리주의로서도 충분히 이러한 보편적 원칙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항변한다.

 피터싱어가 말한 보편적 원칙은 이익들에 대한 평등한 고려 원칙이다. 벤담과 밀의 시절에는 사회가 비교적 단순하여 사람들의 이익의 총합을 계산할수 있었을거란 착각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사회처럼 복잡하게 이익관계가 얽히고 사람의 주관이 판단되는 사회에서는 질적이든 양적이든 이익의 총합 계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기에 나비효과같은 것까지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이건 신의 영역이 된다.  

 그래서 싱어가 제시한 이익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한 존재가 고통으로 인해 행복을 겪을 수 없게 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죽음이나 감금, 기아 등이 이런 고통에 포함되는 것이며 싱어가 말하는 이익은 이런것을 피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이익이 된다. 즉, 고통을 피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것이며 이것으로 계산을 하는 공리주의자이기에 싱어는 부정적 공리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이런 최소한의 이익추구는 보편성을 쉽게 갖출수 있다.

 최소한의 이익이외에도 싱어는 보편적 원리로 응분의 원리를 제시한다. 응분의 원리는 각자가 자신의 책임이 아닌 종교나 성, 국적, 지능, 집안등의 이유로 행복의 차등이 결정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싱어는 사실상 평등할 수 없는 기회의 평등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결과적 평등으로까지 간다. 하지만 결과적 평등을 강조한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알기에 싱어는 결과를 평등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되 그 이상적이고 강제적 실현이 오히려 사람의 자유를 억악합고 비효율성을 낳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인센티브는 허용하는 사회를 주장한다. 즉, 타고난 집안이나 지능에 의해 누군가는 의사가 되고 그렇지 않은 누군가가 청소부가 되는 것은 불공평하지만 의사가 되기 위해 거치는 지난한 과정에 대한 노력의 대가는 어느정도 인정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청소부의 의사가 보이는 20여배의 급여차는 수용할수 없으며 타고난 조건으로 의사가 되기에 유리한 사람이 충분히 노력하거나 용인할정도 수준의 급여차만 인정하자는 것이다. 다소 애매하다. 어느정도까지 가능할까? 2배 5배? 북유럽사회에서 고소득층이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헌납함에도 자기 이익과 계발을 위해 매진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기도 하겠다.

 피터 싱어는 자신의 윤리의 적용대상을 동물로까지 확대한다. 사실 인간 역사에서 윤리의 대상은 점차  확장되어 왔다. 처음엔 자신, 가족, 타인과 사회, 민족과 국가, 지구인 전체로 말이다. 싱어는 여기에 동물이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으며 동물역시 최소이익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러함을 역설한다. 흔히 인간이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들어 동물이 도덕의 대상이 될수 없음을 역설하지만 싱어가 보기엔 그 차이가 애매한 부분이 있으며 동물 역시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최소이익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이 도덕적용이 될수 있다는입장중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싱어는 지능이나 언어 등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사실 애매한 부분이 있으며 사람의 나이나 장애 및 신체적 특징 여부에 따라 오히려 동물보다 지능이 낮거나 언어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을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싱어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보다는 도덕 적용의 대상으로 인격체의 개념을 말한다. 인격체는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고통과 쾌락을 분명하게 느끼며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개념이 있고 이것이 현재로 이어지는 어느 정도의 자의식을 갖춘 존재를 말한다. 

 흔히 공리주의는 상대론적 윤리설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에서 보편적 원칙을 세우고자 한 피터싱어의 시도는 흥미로웠다. 물론 완전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싱어가 말한 것을 수용하더라도 결국 어느 것이 인격체고 아니냐의 구분은 역시 분명히 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완전해야 할  도덕이 이렇게 완벽하지 못한 이유는 인간의 도덕성이 결국 근원적으로 진화상 협력이 주는 적응도상의 이점에서 생겨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이 인간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더욱 확장되어나갔고, 이렇게 되는데는 도킨스가 말하는 밈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찌보면 오늘날처럼 범위가 크게 확장된 인간의 도덕성은 오랜 협력이 준 적응도상의 이점이 진화에 반영된 결과가 설계를 넘어서 적용된 결과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도덕범위의 확장은 기본적으로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먹기 살기에 충분한 식물식량이 제공되기에 동물을 도덕적 범위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처럼 먹고살기가 어렵다면 이런 주장이 과연 오늘날처럼 설득력이 있을까? 그것은 인간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진화상의 호혜성원칙은 초기엔 관대하되 배신시에는 응징하는 것이다. 이는 무한한 관용은 없으며 물질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상황이 악화될수 있는 근본적 원인이다. 또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선관용 배신후 응징 다시 선관용의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진화의 원칙으로 자리잡았음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협력적 상황이 더 큰 이득을 주는 제로섬 상황이 아닐때만 가능하다. 극도의 결핍으로 인해 협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실제로 자연계에서는 수많은 생물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공존하면서도 상대가 틈을 보이거나 면역계통에 문제가 생길경우 호전적으로 돌변하는 사례를 무수히 보여준다. 

 또한 다른 동물에게는 인간과 같은 도덕적 원칙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여성이나 유색인종, 사회적 하층계층에게로 도덕적 범위가 기본적으로 확장될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결국 다른 계층처럼 도덕원칙을 갖고 적용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 도덕원칙을 동물에게 적용한다하더라도 동물이 서로간에 그것을 적용할수 없고, 사람에게도 그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저자 역시 이런 문제때문에 결국 동물의 실상을 그렇게 파헤쳤으메도 채식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또한 동물의 권리를 비교적 많이 보장해나가는 서구사회에서도 동물이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하는 경우 처리하는 방식은 그 동물을 죽이는 것이다. 제발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덕은 기본적으로 언제든지 배신에 의해 무너질 우려가 있으며, 이기적인 이익의 관점에서 생겨난 것이고 풍요와 힘에의해 그 범위가 확장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토대가 매우 빈약한 셈이다. 인류의 도덕이 계속 확장되고 꽃을을 피우기 위해서는 풍요와 번영이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도킨스의 말처럼 어느정도 유전자를 벗어날수 있는 존재이다. 실제로 남이 배신을하더라도 내가 굶어죽을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동물을 먹지 않거나 타인을 해치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적지 않게 존재한다. 거기에서 도덕의 토대가 단단해질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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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12-28 00:27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도덕은 정말 어려우면서도 자꾸생각하게되는것같습니다

2017-12-30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12-30 14:14   좋아요 1 | URL
연말 잘보내시고 새해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