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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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교수는 정말 책을 많이 낸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인데 사실 올해 읽은 것이 아니라 작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서평을 쓰려고 책 제목을 연상했는데 그새 한해가 지났다고 책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알라딘 상품검색을 눌렀는데 강준만이라고 치니 무려 21줄이 나왔다. 강준만 교수가 얼마나 다작하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참고로 장난삼아 검색했는데 알라딘 상품검색으로 유시민씨는 6줄이 나온다. 이분도 책 많이 낸분인데 이 정도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라는 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에 들어보고 해봤을 말이다. 강준만교수는 이 말이 지금의 한국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것 같다. 그리고 제법 그러하다. 책의 논의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은 당시 남북한 총 인구의 거의 10-20%를 죽음에 이르게 할만큼 거대한 비극이었다. 이 전쟁은 이런 물리적 손실외에도 사회구조에도 큰 변화를 남겼는데 책에 의하면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사회질서의 붕괴로 기존의 기득권세력이 한 방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극적인 사회계층이동이 가능해졌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기반이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전쟁이전 유교적 질서로 인해기회주의, 돈의 추구, 협잡등의 경제적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강하게 질타받아 쉽게 시도하기 어려웠던것이 전쟁을 겪으며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아 상당히 현실적으로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6.25정신인데 이것도 역시 개천에서 용이나는 것의 기반이 되며 향후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속 성장 시대를 맞아 개천에서 용이나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방 시골 출신들이 서울로 상경하여 정치인이 되거나, 판검사, 의사가 되고 유명한 기업에 취직했다. 책이 지적하는 문제는 이러한 용들이 자신이 떠나간 개천을 죽이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서울에 자리잡아 한국이 서울 공화국으로 나아가는데 일조했다. 자신의 토대인 고향은 개발과정에서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와 이용의 대상이었다. 오히려 막판에 정치판으로 나가는데 자신의 지역구로 끝까지 이용만 해먹을 뿐이었다. 평생 남으로 살았으면서 막판에 '우리가 남이가' 한 것이다.

 개천의 미꾸라지들 역시 문제다. 미꾸라지들은 자신들이 용이 되기 이미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또한 용을 지나치게 동경한 나머지 개천 미꾸라지 시절을 기억도 추억도 하지 않는 용들을 위해 개천의 자원을 쏟아 붇는다. 미꾸라지들이 죽어나든 말든. 지방에서 sky대학 합격이나 정부요직에 임용될때 붙는 플랜카드들. 지방의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했을때 서울에 기숙사를 지어주고 명문대 학생만 수용하는 행위, 지방의 우수학생을 지방에 남기는게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에 가야 발전한다는 착각등이 그러한 대표적 예이다.

 미꾸라지들 끼리도 문제다. 강준만은 땅콩회항 사건으로 화제가 된 한국사회의 갑질문제에 대해서 용의 갑질 뿐만 아니라 미꾸라지들 간의 갑질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실제로 을들은 언제든지 갑질을 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지위에 따라 얼마든지 갑질을 해덴다. 식당이나 상점에서 마구잡이로 점원에게 갑질을 하는 행위,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부에게 하는 행위,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는 행위, 소규모 점포 주인이 알바생에게 하는 행위들이 그러하다.

 이는 미꾸라지들 역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화에 빠져 자신도 역시 그러할 수 있다는 착각과 용들이 하는 행위와 신화에 메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천에 이런 미꾸라지들만 사는 이상 신화는 멈추어질수 없으며 갑질 역시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개천용신화를 느껴본적이 있다. 하나는 어렵게 취득한 학벌에 대한 갑부심. 그리고 드라마'하얀 거탑'을 보면서다. 하얀거탑에서 천재적 외과의사 장준혁은 수단과 방법그리고 실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대학병원 외과과장의 자리에 오르게된다. 환자순시하면 뒤에 따까리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구름처럼 따라 다니는 그 직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장준혁이 미꾸라지중 하나에게 사소한 의료 미스를 저지르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인턴에 의해 재판에 휘말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장준혁이 재판과정에서 제발 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응원하는 마음을 갖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제법 충격이었다.

 그리고 용들은 예전처럼 더이상 치열하게 경쟁하지도 않는다. 과거 처음 승천했을땐 모르겠지만 이미 용이된이상 자신들의 사회에선 경쟁은 없다. 재벌 2세가 손쉽게 탈세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받는 일이나. 경쟁없이 계열사들을 통해 커나가는 회사를 물려받는일, 막대한 교육예산을 투입해 자신을 손쉽게 승천시키는 것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용들은 미꾸라지들에게 신화는 심어주면서 그들을 무한경쟁시킨다. 이런 무한경쟁은 용신화를 존속시키는 방편이 된다.

 이런 사회하나하나의 개인에게 깃들어 있는 개천용신화가 벗겨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책은 뭐 이렇다할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같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결국은 공동체 정신의 회복과 지방중심주의가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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