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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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우영우가 큰 인기를 몰고 난지 얼마 후 충격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자폐인의 평균수명에 관한 기사였는데 놀랍게도 23.8세에 불과했다. 이는 자못 충격적인 수치였는데 한국의 다른 장애인과 비교해도 평균 수명이 과하게 짧았기 때문이다. 지적 장애도 낮긴 했으나 50대였으며 인지능력이 정상인 시청각 장애도 70대로 거의 천수를 누리고 있었다. 자폐인의 수명이 이렇게 과도하게 낮은 이유로는 학습 능력이 우수한 경우 외부 자극과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률이 높게 형성된다는 점, 그리고 학습 능력과 인지 능력이 낮은 경우는 판단 능력 부족으로 사고사가 잦다는 점이다. 또한 유일한 보호자인 부모가 나이 들어 사망하거나 경제적 능력을 잃는 경우 건강 관리가 안되 각종 질병에 취약하다는 점도 꼽힌다. 아파도 그런 표현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다.

 물론 다른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자랑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 높은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수준을 보이는 다른 나라들은 자폐인의 경우도 평균 수명이 40-50대에 이른다. 이는 일반인에 비하면 30년 정도 낮은 수준이나 그래도 한국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것은 이번에 읽은 책과 관련이 있다.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영국계 자폐인 과학자가 쓴 책이다. 물론 일반 자폐인에 비하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과학자가 될 만큼 인지 능력을 가졌고, 자신이 일반인들과 매우 달라 외딴 혹성에 떨어진 외계인 같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로 외부 인지와 타인에 대한 고려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저자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라 성장 과정에서 무척 큰 고통을 겪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자폐인으로서 자신의 특징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과학적 현상에 대한 비유로 재미나게 풀어냈다. 물론 자폐인이 쓴 책인지라 일반인인 나로서는 초반 분위기 잡는 게 쉽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의도를 이해하고 나니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깨어 있는 시간은 항상 강박 관념과 공포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안감이 가장 절정에 달하는 시간은 밤이었다고 하는데 자폐인들의 상당수가 수면 장애를 앓는 것에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ADHD이기도 했는데 이 상태는 특정 상황에 걸맞는 뇌의 파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공간 감각이 붕괴되어 전체적으로 기능이 엉망인 상태가 되고 만다. 오랜 시간 집중이 어렵고 매우 충동적이고 감정 변화가 심한 사람으로 만들어 한 순간에 매우 행복해하다가 곧 매우 우울하고 절망적이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 조울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것과 관련한 것이다.

 저자의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재미나고 인상적인 이야기는 에르고딕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는데 이는 특정 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은 전체의 평균적인 특성을 갖는 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론적으로 특정한 미시 상태는 무엇이든 간에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쉽게 말하면 브라운 효과처럼 물에 담긴 꽃가루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도무지 예측 불가하나 전체적인 움직임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즉, 아무리 독특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하나의 움직임이더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체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어느 것이든 평균적인 표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무리 이상한 자신이더라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의 평균적인 표본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진 듯 하다. 책에 등장하는 다른 예처럼 물론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파장을 가진 사람을 가장 편안히 여기고 선호한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파장을 가진 피곤한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수용하는 것 역시 더불어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중요하다.

 하여튼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남과 다른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른 사람들(재밌는 일화가 많다. 저자는 자폐인이라 또래 압력을 거의 겪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또래 압력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복장이나 문신, 행동 등을 하는 것에 시달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하고 친숙해지기 위해 일부러 그런 행동을 따라하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리고 한 번인 집에 전화가 왔는데 상대의 통화내용은 저자의 어머니가 집에 있느냐 였다는 것이다. 쉽게 아무개야 엄마 집에 있니?라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그 내용을 듣고 네라고 호기롭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척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며)로 인해 많은 고충을 겪으며 내린 저자의 결론은 책 제목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끔 사회와 각 개인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의 폭력으로 지나치게 일찍 사망하는 자폐인들도 하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주어진 천수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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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16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폐인을 위한 사회의 도우미 역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ㅠㅠ

닷슈 2023-05-16 10: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장애인은 최저임금조차 보장이안되고 취업도 어렵더군요 자폐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것같습니다
 
표류하는 세계 - 미국의 100개 팩트로 보는 새로운 부의 질서와 기회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 리더스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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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두말할 것 없는 초 강대국이지만 강력한 위기에 봉착해있다. 물론 그들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생 약소국으로 최강국인 모국 영국과의 독립 전쟁, 그리고 큰 희생을 감내한 내전인 남북전쟁, 세계 1차, 2차 대전이 큰 위기였다. 그 후 강력한 소련과의 냉전이 이어졌으나 미국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예전과 다르게 안과 밖이 다 불안하다. 밖으로는 가까운 시일 내에 경제 규모면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이 확실한 중국의 도전이 그리고 안으로는 중산층의 붕괴와 정치 갈등으로 인한 내부 분열이 자리한다. 

 책 '표류하는 세계'는 100가지 데이터로 이런 미국의 불안함을 표출한다. 처음엔 하나하나 지나치게 짧은 장으로 이뤄져 불만이 있었지만 읽을 수록 일관된 문제 의식과 책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사회 및 전 세계에도 상당 부분 투영할 수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최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역동적인 경제에서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안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후 미국은 매우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했는데 이는 당시 사회 복지 수준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더 안전하고 후한 대접을 받았고, 국가는 이들을 강력하게 지원했다. 당시 최고세율은 무려 91%에 달했다. 공교육의 수준도 높아져 무려 수백 만의 가구가 번듯한 집 한 채와 자동차,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 지역사회의 공동체에 참여하여 높은 삶의 질을 누렸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성장률이 둔화되고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고 1981년 신자유주의자 레이건이 집권하며 방향이 바뀐다. 레이건의 대표 정책은 감세였다. 그가 취임한 1981년 최고한계세율은 70%였으나 그가 후임인 부시에게 배턴을 넘겼을 땐 무려 28%까지 줄어든 상태였다. 부의 재분배가 크게 약화한 것이다. 여기에 대규모 감세로 레이건 취임 당시 9300억 달러 였던 부채규모는 임기를 마칠 무렵엔 2조 7천억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레이건 집권기엔 전쟁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국가의 부를 그대로 민간 부유층에 넘길 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중산층은 약해졌다. 1950년 비농업부분 노동자의 1/3이 노동조합 소속이었고, 당시만 해도 1천명이 넘는 파업 건수가 연간 424건데 달했다. 하지만 1988년이면 고작 40건으로 줄어든다. 권력이 노동에서 자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1973-2014년 사이 노동 생산성이 73%증가했음에도 임금은 9%증가에 그친다. 잉여분은 자본가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부유층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 상위 1%가 미국 주식의 50%를 보유하고 있으며 하위 80%는 고작 13%를 갖고 있다.

 부유층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는데 1965년 최고 경영자와 노동자의 임금 비는 21:1이었으나 2020년엔 351:1로 벌어졌다. 최근 기술 기업의 창업자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강한 통제력을 갖는다. 그 방법은 차등의결권 구조에 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가 자신의 기업을 상장 시킬 때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특정 주식에 2표 이상의 의결권을 주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그는 회사운영의 통제권과 외부 주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현재 미국 기술 기업의 46%가 차등의결권구조로 기업을 상장한다. 

 미국의 기술 기업들 역시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로비 비용을 11배나 급증시켰다. 2000년 기업의 로비 비용은 700만 달러였으나 2020년엔 8000만 달러가 되었다. 우버나 리프트 같은 회사들은 미국의 노동자들을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는 법안인 주민 발의안 22의 홍보에 2억달러를 썼다. 

 반면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분열하고 분노하고 있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2021년 8.5달러 정도다. 노동생산성과 비슷하게 임금이 상승되었다면 현재 최저임금은 22달러가 적당하다. 미국에서 주거비와 기본생활비의 충당을 위해서는 최소 15달러 정도의 최저임금이 필요하다. 이 정도가 되면 전체 노동력의 21%인 3200만의 근로소득이 증가해 370만명의 빈곤 탈출이 가능해진다. 노동자가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고학력이 필요한데 미국의 학자금은 지난 30년간 169%증가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에 빠져들고 있다. 2010년 사람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3%만을 휴대폰 사용에 썼지만 지금은 무려 33%를 사용한다. 이런 인간의 사용시간은 그대로 기술 기업의 수익이 된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광고가 수익의 80%이며 메타는 98%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들여 보는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쓸모 없기 그지 없다. 사용자가 보기에 거북함을 느끼는 유튜브 영상은 70%나 조회수가 높아지며, 트위터에 도는 거짓 정보는 진실보다 6배나 빠르게 퍼지며 메타에서 도는 뉴스의 15%가 신뢰도가 없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 기업들은 이것들을 딱히 검열하지 않는다. 

 중산층의 붕괴는 젋은 세대에게 큰 타격을 주나 남여는 이것에 다르게 반응한다. 교육 측면에서 미국의 부모는 남아보다는 여아에 더 큰 기대를 한다. 남학생은 대개 낮은 성적으로 여학생보다 정학 가능성이 2배나 된다. 미 전역에서 남학생은 고등교육기관에 여학생의 2/3수준 정도만 등록되어 있다. 남성들의 낮은 학력은 향후 무능으로 이어져 그들의 경제력과 혼인, 출산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고립화하고 빈곤해지고 있다. 미국의 데이트 앱에선 남성과 여성의 신체조건과 나이, 직업,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들을 서열화하는데 지니계수로 이를 측정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여성은 0.38인데 비해 남성은 무려 0.54에 달한다. 국가와 비교하면 남성의 수치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브라질의 그것을 상회한다. 남성의 빈곤정도가 여성보다 극심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사회에 현재 그리고 앞으로 큰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지난 2017-2019년 미국 내 총기 난사사건 인구통계를 살피면 범인의 92%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의 불우함을 반자동무기로 표출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미국은 세계 경제규모의 25%를 차지한다. 그들의 통화인 달러는 기축통화인데 국제통화 보유액에서 달러는 미국의 경제규모를 상회하는 59%에 달한다. 물론 결제 건수나 세계 국가들의 최대 교역국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쳤다. 미국의 국방력은 인도와 중국, 러시아의 국방비를 합친 것 보다 많이만 실제 지수인 국방구매력지수로 비교해보면 중국은 이미 미국의 2/3수준이다. 미국의 연구개발투자는 1960년 세계 69%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30%수준이다. 이처럼 미국은 객관적 지표상에서 중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미국이 가장 강력했던 시점은 2차 대전 이후 10-20년 간으로 그 때는 매우 야만적이지만 역동적인 자본주의를 운영하면서도 그 밑바탕을 지지하는 배의 밸러스트 역할을 하는 강력한 중산층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당시 그들은 교회나, 로터리 클럽, 스카우트 등의 지역 공동체에 소속되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많았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기술 기업들이 제공하는 소셜미디어 등에 포획된 지금은 정치적으로 양극화하고 텍시트(텍사스+엑시트) 같은 용어와 국회의사당을 공격할 정도로 분열이 심각하다. 저자는 다시 사회적 제도를 강화하고 기술기업의 제재와 공공정책의 재수립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미국의 문제는 한국 사회와도 상당히 닮아있다. 얻을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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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5-07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텍시트라는 말이 있군요.

오늘 처음 알고 기사를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저물어가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보고서가 아닐까 싶네요.

닷슈 2023-05-07 23:5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보고 이 용어를 처음 알았습니다. 가능성이 작아 크게 주목 받진 못하는 용어인 듯 합니다. 저물어 가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지만 모국에 대한 많은 애착과 희망을 갖고 냉정하게 지적한 책이었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23-05-08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닷슈 2023-05-08 13:3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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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나온 지 거의 10년 만에 그의 다음 책이 이번에 나왔다. 경제학 레시피가 제목인데 경제학을 요리법에 비유한 것 뿐만 아니라 정말로 여러 식자재의 역사와 그와 관련한 경제학 개념과 의견을 제시하는 형태로 책이 펼쳐진다. 장하준 교수가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보니 한국 사람인데도 영어로 책이 발간되어 이번에도 번역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의 책임에도 외국인 같은 느낌이 드는 묘한 맛이 있다. 

 그는 우선 경제학이 신고전주의 학파 일변도로 가는 것에 대해 과거처럼 우려를 표명한다. 1970년대만 해도 경제학에는 매우 다양한 학파가 존재했으나 1980년대 들어 신고전주의 학파 일변도로 변했으며 그들은 과거 학파를 깡끄리 무시하거나 그들의 사상을 일부 흡수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장하준이 보기에 이는 매우 건강하지 못한 사태다. 

 왜냐하면 경제학은 인간의 정체성은 물론 사회에도 영향을 강하게 미치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경제 사조는 정부의 세금, 복지 지출, 노동 시장 규제 정책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경제학 사조가 정의하는 인간 상도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신고전주의 학파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데 행동주의 학파는 보다 복합적으로 파악한다. 

 세계 경제는 현재 서부유럽과 극동아시아가, 북미대륙이 성공적으로 산업화하였고, 열대지역과 이슬람지역이 산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편견이 있는데 열대지역은 강한 태양에너지로 인해 먹을 것이 넘쳐 게으로고 이슬람 역시 전근대적 종교로 산업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다. 그리고 극동아시아는 근검, 절약, 강한 교육열을 가진 전통을 지녀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유럽을 압도했다. 법학과 수학, 과학이 발달했고 그 증거로 알코올, 알칼리, 알제브라, 알고리즘 등의 현대 용어가 이슬람에서 유래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상인 출신이기에 그들은 상인계급을 우대하였고 계약법을 중시했다. 또한 이슬람은 아시아나 유럽과는 달리 계급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모두 하나 같이 경제적 발달에 상당히 유리한 문화적 요소다. 열대지역도 마찬가지다. 열대지역은 게으르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 열대 지역 사람들의 근무 시간은 현재 선진 사회를 훨씬 상회한다. 이들은 노동간도와 기간 마저 긴데, 이는 늦은 생산성과 급여로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은 편견과는 달리 유럽인들의 초기 기록에 의하면 게으르고 시간 관념이 부족하며 자유분방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의 교육열인 높은 것은 유교적 전통이 아닌 토지개혁으로 인해 모두가 교육에 의한 신분상승이 가능해져서이고, 공학과 과학 계열의 선호는 그 분야에 군 혜택을 주거나 자금등의 혜택을 몰아주고, 국가 주도의 산업화로 해당 분야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서이다. 또한 높은 저축률은 급속 성장으로 소비가 소득을 미쳐 따라잡지 못한 것과 국가가 담보대출과 소비자 금융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식 학교 교육으로 근면성과 애국주의가 학습된 것도 요소다. 

 미국은 노예로 일어선 국가다. 미국은 노예의 노동력을 통해 목화와 담배를 재배했는데 산업화 이전 19세기 미국에 이는 주력 상품이었다. 미국은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선진화한 유럽의 기계와 기술을 수입하여 산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또한 노예는 자본의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노예는 담보대출의 수단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미국의 산업자본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인근의 아이티에서 노예 혁명이 일어나 처음으로 해방국가가 되었다. 아이티의 사탕수수 지주들은 미국 루이지애나로 피신하였는데 이후 여기는 전 세계 사탕수수의 25%를 재배하는 지역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아이티에서 망신을 당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 주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을 미국을 팔아 넘겨 미국은 순식간에 영토가 2배로 늘어났고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다른 지역마저 강제로 헐값에 구매하게 되며 지금의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호밀은 튀르키예에서 유래한 것이다. 척박한 북쪽에서 잘 자라기에 북유럽 국가의 대표 식품이다. 러시아가 가장 많이 호밀을 소비하며 1인당 소비량이나 1위 수출국은 폴란드다. 하지만 호밀생산량 전 세계 1위는 독일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절 영국에 밀리는 자국 중공업과 미국에 밀리는 농업을 보호했다. 그리고 비스마르크는 사실상 인류 최초로 복지국가를 수립한다. 1883년 공공의료보험, 1889년 공공연금제정이 그것이다. 복지국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비해 시민 모두가 공동구매하는 사회보장 상품이다. 복지국가의 중요한 점은 그 국가의 시민이 모두가 동일한 보험 패키지를 대량구매하여 싸게 얻는 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수준이 낮은 미국 시민은 비슷한 소득 수준의 유럽 국가의 시민에 비해 40에서 250%비싼 의료비를 지출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건강수준이 낮아 평균수명이 낮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 역동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개인들의 불안을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유럽의 대항해시대에는 유한책임회사가 최초로 등장한다. 그 전엔 무한책임회사가 보편적이었는데 그래서 대항해시대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의 항해는 성공하여 향신료를 싣고 오기만 하면 수십배의 이문을 남겼지만 실패할 경우 투자금은 물론 보상으로 전재산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투자한 만큼만 책임지는 유한회사가 등장하였고 이는 향후 더 큰 자본이 필요한 중화학 공업으로도 이어져 현대 자본주의의 기틀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엔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제재의 완화로 주식을 매우 쉽게 처분할 수 있게 되면서 1960년대만 해도 5년에 달하던 주식 보유 기간인 지금은 1년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주주친화적 경영을 위해 극도로 기업 이윤을 주주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198년대 기업 이익의 50%정도가 주주에게 돌아갔다면 지금은 무려 95%에 달한다. 이는 기업의 유보이윤을 고갈시켜 장기투자능력을 상실하게 한다. 이는 경제 전체는 물론 국가의 발전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 저자는 향후 주식 보유 기간을 길게 유도하기 위해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경우 1주 1표에서 1주 2표로 해주는 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주주권한을 제한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노동자와 하청기업, 기업이 소재한 지역 지방정부의 관계자를 경영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보며 장하준 교수가 이토록 요리와 여러 식자재에 박식하구나라는 생각과 이를 자신의 전공에 맞게 각국의 경제학 역사 및 개념과 연결시키는 부분이 재밌었다. 다양하고 유익한 상식이 많은 책이어서 경제학 외에도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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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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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의 종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분명히 문학일 것이다.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문학은 가장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인공지능마저 문학을 창작할 미래에도 이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언젠가 인공지능도 자신이 또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학을 보며 이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책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보면서 나한테 문학이란 뭔지, 내가 왜 문학을 보는지 생각해봤다. 난 책을 꾸준히 보는 편이지만 문학과 지식으로 책의 주제를 아주 거칠게 두 개로 나눈다면 단연 나의 관심사와 분야는 '지식' 책 쪽이다. 매년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읽은 책의 70-80%는 항상 지식 책이 차지한다. 분야는 과학과 교육, 사회, 지리, 경제, 역사, 예술, 철학 등의 순이지만 사실 분야는 잘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보려고 한다. 

 내가 지식 책을 편식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그것을 알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주로 영감을 얻는 분야는 우주와 진화, 지리를 다룬 책들인데 인간을 설명하는 근원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지식 책을 읽을수록 아쉬운 점은 경제학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처럼 영혼을 뒤흔들거나 머리를 도끼로 깨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들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처럼 지식 책이 주는 효용은 상대적으로 분명한데 비해 문학은 개인적인 측면에선 아리송하다. 문학을 보면서 느낀 개인적 효용은 아무래도 재미였다. 책을 읽으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과 이야기, 그것을 둘러싼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간혹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는 경우도 있었다. 천명관의 '고래'나 '삼체', '7년의 밤' 같은 소설이 그랬다. 그리고 현실이나 과거의 세태를 비판하는 책들도 나름의 재미를 주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도 그렇고 문학을 좋아하는 몇몇 분들은 아름다운 문장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실 문학을 많이 보지 못한 지라 그런 느낌은 많이 받아 본적은 없다. 물론 대단히 멋진 표현이고 많은 것을 담아냈으며 날카롭게 인생사를 파악한다는 느낌의 문장은 더러 본적은 있지만 내가 그런 것들에게 아름답다란 느낌을 받으려면 개인적 노력이 더 필요하단 생각이다.

 그래도 문학이 필요한 시간은 아름다운 문장이 제법 많았다. 문학을 보면서 이런 감수성과 생각을 할 수 있구나란 점에서 많이 배웠다. 볼만한 책들의 추천도 좋았다. 내가 본 것들은 조금 있었고 봤지만 보면서 저자 같은 관점과 생각은 미쳐 갖지 못했기에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나는 문학을 통해 내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과 만난다."라는 표현이 좋았다.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한 번쯤 가고 싶었던 길을 버린 적이 있다. 특히 어릴적에 그랬기에 더 가슴에 남는데 문학으로 그 가능성을 다시 지펴보는 것. 대리 만족이든 아니면 다시 불을 지펴주는 것이든 문학은 그런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문학 작품 속의 문제적 개인은 단순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라는 표현도 인상 싶었다. 나와 비슷한 문제적 개인을 책에서 만나면 왠지 너무 부끄럽고 피하고만 싶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런 개인을 등장시키는 것은 그런 개인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 표현은 정말 정곡을 찌른단 생각이다.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누구에게든 상처를 입힐 것 같지 않는 사람조차도 끝없이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것의 생의 본질적 조건이다"라는 표현에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제 아무리 자기 성찰 지능과 대인관계 지능이 높아도 개인은 타인이 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문학은 그런 다양한 개인과 상황을 접해서 그런 상상력을 넓혀준다. 그렇게 개인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내가 주는 상처를 줄이고 받는 상처에 대한 내성을 문학을 키워주지 않을 까 싶다. 

 이 책은 소개한 표현 외에도 좋은 문장과 소개하는 괜찮은 문학 작품이 있다. 책에 나온 표현을 곱씹어 보며 관련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겉 같다. 나는 '소유의 문법'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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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 Manifesto - ChatGPT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SF 앤솔러지'
김달영 외 지음 / 네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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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4.13일 KBS 다큐 인사이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주의 회차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소재가 바로 챗 GPT를 이용해 국내의 소설가들이 SF소설 단편 모음집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챗 GPT를 대부분 처음 접하였는데 초기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만들어가면서 챗 GPT가 사실 한 방에 소설을 길게 쓰진 못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뭔가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내진 못하고, 여러 개의 주제나 인물, 사건은 쉽게 많이 만들어 내나 개성있는 한방은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이구 동성으로 지적했다. 바로 이 점이 인간 작가가 챗 GPT를 이용해 채워나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책 '매니페스토'는 그렇게 발간되었다. 심지어 이 책은 표지도 인공지능이 만들었다. 작가들의 소설 내용과 구성의도를 입력하고 그에 따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여러 표지를 편집진이 고르는 장면이 다큐 인사이트에 나왔다. 하나같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었지만 편집자들은 너무 무난해서 이것다 하는게 없어서 고르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면 이 책의 단편은 무척 재미나진 않다. 일단 내용이 실험적이어서 그런지 너무 짧은 편이다. 읽을 만 하면 대부분 끝인데 7편의 단편집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소설 한 편당, 작가들이 챗 GPT를 어떻게 활용하여 소설을 완성해나갔는지가 매 단편 바로 뒤에 수록되어 있다. 즉, 단편 7개와 챗 GPT를 통한 소설 구성장면 7개가 책에 수록되어 있는 셈이다. 챗 GPT를 활용하는 방법은 작가가 주제를 어떻게 잡았는가 그리고 작가가 어떤 활용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공통점은 챗 GPT가 써내는 분량자체가 짧아 여러 차례의 작업 지시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챗 GPT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은 잔혹하거나 어둡게 써내는데 약점을 보였다. 아무래도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어 개발사에서 차단한 듯 하다. 또한 어떤 이야기든 한 방에 써내는 분량이 적었는데 이 역시도 챗 GPT로 무언가를 길게 한 방에 생산할 경우 미칠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개발사에서 막아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들은 큰 구성을 챗 GPT로 부터 얻거나 또는 원하는 구성이나 인물, 플롯이 나올때 까지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원하는 작업이 나올때까지 챗 GPT에게 명령을 구체적으로 다시 하달하고 정 안되면 작가가 채워 넣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역시 아직까진 그럴듯한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챗 GPT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다. 작가들은 챗 GPT를 좋은 어시스턴트, 구조나 캐릭터를 빠르게 편성하는 사람, 분량을 순식간에 채워주는 사람 등으로 파악했다. 

 이 책의 시도는 매우 재밌고 의미 있는 것으로 작가들 처럼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챗 GPT를 잘 사용하면 모두 효율적이고 완성도 있는 글을 구성하는게 가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글을 구성하는 능력이 매우 모자라다면 이와 같은 작업은 할 수 없고 챗 GPT의 글을 그대로 표절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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