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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평점 :
21세기 들어 금리는 철저히 외면 받았다. 저금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가 상승률이나 경제 성장률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금리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일본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이론상 도무지 불가능해보이는 마이너스 금리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사람들에겐 나날이 폭등하고 자산을 불려주는 주식, 코인, 금, 부동산, 펀드 같은 것들이 훨씬 주 관심사였다. 도무지 어디 어디가 금리를 얼마나 더 주니 하는 이야기는 부모님 세대의 일인 것만 같았다. 돈도 마구잡이로 빌렸다. 금리가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부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상 최대 수준이다.
그러다 조금 반전이 일어났다. 코로나 19 이후, 미중 경제 전쟁과 러-우 전쟁 등으로 공급망에 차질을 빚자 세계적인 물가 상승이 있었던 것이다. 물가가 심상치 않자 미국은 매우 오래 간 만에 금리를 크게 인상했다. 물론 그 올린 금리라 봤자 종국에는 5%정도 였다. 하지만 그 정도 수치는 다른 여타 자산들의 가치를 깎아 내렸기에 모처럼 금리는 다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책 '금리의 역사'는 금리의 개념과 탄생, 역사적 역할을 살펴보고 지금의 경제를 꼬집는 내용이다.
1. 금리란 대체 무엇일까?
지금은 금리를 당연시 여기며 그 수치 정도가 문제지만 오래 전에 금리는 동아시아나 서아시아에서 하나의 금기였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보다 도덕적 잣대를 우선시 한 것으로 하나의 죄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돈을 빌려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선 빌려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그런 측면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 대한 대가인 금리는 실질적 필요성에 의해 점차 받아 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금리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다. 우선 절제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레버리지의 비용이자 리스크의 대가로 보기도 한다. 또한 자연성장의 관점에서 금리를 보기도 한다.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더 생겨나고 동물도 새끼를 낳는다. 즉, 지금의 토끼 두 마리가 가까운 미래에 새끼를 쳐서 서너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인데 금리는 그런 미래에 대한 대가다. 실제로 고대세계에서 금리는 출산이나 동물의 새끼를 어원으로 갖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금리는 대부자에 대한 혜택의 나눔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대출한 사람이 그 돈으로 이익을 얻었다면 마땅히 그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빌려준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자연스런 생각에서다.
현대의 금리는 이런 개념들을 어느 정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현대의 통화정책 입안자들은 금리를 주로 소비자 물가를 조절하는 수단 정도로 파악한다. 이런 관점이기에 디플레를 막기 위한 마이너스 금리나 제로금리도 시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금리는 외환에서 나라 간 오가는 자본 흐름의 균형을 맞춰주기도 하며 책의 주장에 의하면 소득과 부의 분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고대의 금리
금리의 역사는 화폐보다 오래되었다. 화폐보다 물물교환이 먼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뭔가를 서로 빌리는 일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빌려주는 것에 대한 대가는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태초의 이자다.
고대메소포타미아에서는 채권, 채무자, 대출금, 상환기한, 이자 내역을 적은 점토판이 다량 존재했다. 계약의 이행과 동시에 채무의 증거인 점토판은 파괴되었기에 오늘날 남아 있는 것들은 채무 이행이 되지 않은 것들이라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용대출은 매우 많았고 이유도 다양했다. 그 지역은 부족한 원자재가 많아서 삼나무, 대리석, 구리, 석고 등을 수입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출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자를 계산하려면 시간과 가치가 표준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자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수메르 달력은 한 달 30일, 1년 12개월이었다. 그래서 시간, 거리, 무게, 돈과 이자는 모두 60을 기준으로 측정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복리도 개발했다. 복리로 인해 채무자는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 지역의 사회 문제였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새로운 정부들이 들어서면서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기원전 1750년 함무라비는 관례적인 이자율을 역사상 최초로 법문화한다. 은대출의 경우 최고 이자율을 20%, 보리는 33.33%로 정한 것이다. 다만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일부 대부업자들은 짧은 기간에 최고 이자율을 적용하는 편법을 부릴 수 있었다.
고대 세계의 금리는 지금처럼 변화무쌍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고정이었다. 경제요인보다는 측정기준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60진법을 쓰는 바빌로니아는 매달 60분의 1, 10진법인 그리스는 연10%, 12진법의 로마는 12분의 1인 8.33%를 이자율로 정했다.
실제 국제결제은행은 지난 100년 간의 금리는 저축이나 투자 같은 경제적 요인보다는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브레턴우즈체제 같은 통화체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했다.금리는 고대 세계 건, 그 이후 이건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별로 없었다. 기원 후 1000년 간 세계 경제는 연간 0.01%성장했다. 하지만 그 기간 금리는 무려 6-12%에 달했다. 그리고 금리는 인구와도 상관이 없다. 인구가 증가하면 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금리가 증가할 것 같지만 역사적 연구는 인구증가와 금리는 오히려 반대방향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세계의 금리는 정치와 관련이 깊었다. 금리는 대개 문명의 진로를 따라 U자형이었다. 문명이 막 시작한 후 번창할 때는 하락했다가 쇠락하여 멸망하게 되면 급상승하는 형국이다.
3. 중세의 금리, 시간과 이자의 결합
이자는 필요와 탐욕의 결합이었다. 이자는 문명초기부터 있었는데 이는 자본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대출이자는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했다. 자본이 산업이나 무역, 생산에 묶여 있을 때 이자는 생산에 사용된 시간과 관련이 깊었다.
중세가 되어 시계가 개발되자 시간의 세속화가 시작디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간의 상업적 중요성이 부각된다. 효율적인 화폐공급에 새로운 금융관행이 더해지면서 중세부터 금리가 하락한다. 120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금리는 20%였으나 르네상스 때가 되자 제노바는 7%, 베니치아는 5%까지 하락한다.
시간에 가치가 부여되고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확산하며 고리대금을 도덕적으로 금지하는 성직자들의 제재는 거의 유명무실해진다. 상인이 대출로 이득을 얻는다면 대출자가 그 이익의일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즉, 이자에는 대부자를 손해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기게 되었다.
이처럼 이자와 시간이 관련되자 이자란 시간에 따른 화폐 가치의 차이로 현재 소비가 미래소비로 교환되는 비율이란 생각이 생겨났다. 이자가 돈의 시간적 가치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실제 이자율은 사람의 시간 선호도를 반영한다. 노인은 소득이 더 이상 늘지 않기에 시간선호도가 낮고 대출도 잘 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령화 국가에서는 대출수요가 적이 금리가 낮다. 미래의 만족은 언제나 현재의 만족과 비교해 값이 할인된다. 이자는 특정 양의 가치를 특정 시간 동안 사용한 가격이 된다. 이로 인해 돈의 시간 가치인 이자는 가치 평가의 핵심이 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투자는 수익률이 투자자들의 시간선호와 최소한 같을 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4. 금리의 영향
이상적인 금리는 다음과 같다. 상품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빌려주고 빌리는 개인이 정하는 이자율이다. 지나치게 많이 빌리거나 적게 저축하지 않은 자본을 반드시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이자율이다. 토지와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부여하는 이자율이고, 저축자들에게 공정한 수익을 제공하고 은행가와 금융계에는 보조금을 줄 정도로 낮지 않으며 차입자에게 지나친 고통을 주지 않는 이자율이다.
지나치게 높은 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줄인다. 채권자는 채무자를 희생시켜 부당이득을 얻는다. 자본가치가 떨어지고 노동자는 실직하며 경기가 침체한다. 채권수익률이 국민소득을 웃돌면 기존 부채가 부담스러워지고 파산이 시작된다.
반면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자산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대출이 급증하며, 금융이 노력을 밀어내고 저축이 붕괴한다. 은행에 돈이 쌓여 유통속도를 늦추어 오히려 디플레를 유발하기도 한다. 초저금리는 생산성 증가를 낮추고, 자산가격을 부풀리며, 부채 수준을 높이고 저축률을 하락시키고 저축에 불충분한 수익을 주어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금융취약성을 높인다.
5. 저금리로 인한 금융 붕괴의 역사
로는 프랑스에서 미시시피 주식회사의 주식을 액면가 500리브르로 발행한다. 그리고 처음 몇 년간 회사의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로는 발행가능한 돈의 양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다. 그러자 1719년 1년 간 주가는 20배가 상승한다. 풀린 돈은 광란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는데 물가지수가 2배 상승하고, 지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자 돈이 해외로 유출되어 버린다. 로는 여기서 돈을 더 찍어내어 문제를 해결하느냐 아니면 회수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돈의 회수를 선택한다. 주가는 결국 붕괴되고 90%를 폭락 후에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1826년에도 심각한 금융위기가 있었다. 남미 신생 독립국들은 금광을 비롯한 여러 투기 산업을 위해 발행한 채권투기 열풍이 일었다. 그 배경에는 금리하락이 있었다. 1825년 이전 런던으로 막대한 금이 유입되었다. 재무장관 윌리엄 로빈슨은 수익률 하락을 이용하여 미지급 정부부채를 더 낮은 수익률의 새로운 채권으로 전환한다. 금리의 감소로 고객들은 예금을 인출해 합자회사투자나 형편없는 담보로 건설업자에 직접 대츨한다. 전국에 은행이 증가했고 낮은 금리로 안전한 투자처를 빼앗긴 사람들이 해외 증권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다 1825년 12월 런던에 맹목적 공포가 일어나 신용이 고갈하게 된다.
6. 새로운 경제 질서의 탄생
19-20세기 초반의 금본위제에서는 금은 이자율 조정 역할에 충실했다. 경제 과열로 총지출과 투자가 소득과 저축을 초과하면 금이 국외로 유출되었다. 그러면 금보유고 확보를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여 사태를 되돌렸다. 반면 금보유고가 충분하고 경기가 부진하면 저금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금본위제에서는 유통되는 신용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1914년 1차대전으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대부분 금지급을 중지한다. 결국 1922년 금본위제를 수정하여 중앙은행이 보유한 정부증권이 금과 더불어 준비금으로 수용된다. 이것이 금환본위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금리는 국제적인 금의 흐름과 무관하게 되었다.
금환본위제로 인해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처음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구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금리설정이 정치화한 것이다. 새로운 금융질서는 금의 절약과 소비자 물가의 하락 예방이 목표였다. 디플레이션의 회피가 주 목적인 것이다.
1920년대 미통화정책의 목표 중 하나는 농업 사이클로 인한 계절적 금리 변동의 억제였다. 특정 시기에 대출 수요가 몰려 돈이 고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개입은 이자율을 낮춰 투자붐을 낳아 광란의 20년대 거품으로 이어진다. 1920년대 미국의 경제는 연 8% 성장했지만 금리는 과도하게 낮아 경제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행히 경제성장으로 대출공급이 늘어나 생산성 향상으로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었다. 하지만 투기가 과잉되어 초고층건물과 폰지사기가 성행한다. 주식시장에도 돈이 쏟아져 들어와 주가도 폭등했다.
미국의 상대적으로 나은 이자율로 인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그리고 외국인의 미수출상품 소비로 미국의 거품을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 연준은 1928년 할인율을 3.5%에서 5%로 인상한다. 이 긴축이 국제 자본 흐름을 돌려 미투자자들이 유럽에서 대출을 하게 되었다. 유럽의 미국산 상품 수입이 감소하고 신용공급이 감소하여 미경제가 위축해 붕괴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월가의 투기 광풍에 겁이 난 연준의 긴축통화정책이 급격한 경기침체를 유도한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경제는 탄탄대로로 제 2의 경제 대국이었다. 일본 GDP는 1980년대까지 매년 5%성장했다. 1987년 협정으로 달러 약세를 위해 할인율을 전후 최저치인 2.5%까지 내렸다. 그리고 1987년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일본은 내수 진작과 세계경제성장을 목표로 신용조건을 크게 완화한다. 금리가 실제 성장률보다 낮게 유지되자 통화공급과 대출, 기업투자가 급증한다.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상승이 일어난다. 1989년 일본 중앙은행 총재인 미에노 야스시는 거품을 끄기로 결정한다. 그는 그해 3차례 할인율을 인상한다. 그러자 경기가 급격히 둔화한다. 그는 6%까지 올렸던 할인율을 1995년 다시 0.5%로 내리나 경제의 활력은 사라진 후였다.
1995년 이후 일본 경제는 부동산 가치하락, 부실대출을 한 허약한 은행, 자본 수익 감소, 과도한 레버리지 차이으로 기업의 부채 부담을 줄이려던 지속적 디플레이션에 짓눌리게 된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실책은 공통점이 있다. 양국 모두 처음엔 낮은 물가상승률에 경제가 탄탄했다. 물가안정에만 관심을 두고 강력한 신용성장과 투기에 무관심했다. 자국의 인플레를 통제한 상황에서 국제협력을 위해 국내통화정책을 조정했다가 호황 말기 거품이 지나치게 심해졌고 이를 통제하려고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그리고 거품 경제 붕괴 후 디플레이션을 방치한다.
7. 미연준의 정책 전환
미국은 1970년대 후반까지 인플레이션의 통제가 어려웠다. 경제성장 둔화로 사회가 불안정했고 스태그 플레이션에 빠져있었다. 1979년 말 카터는 폴볼커를 연준의장으로 임명하고 그는 통화공급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그의 체제하에서 연방기금금리는 10%에서 19%까지 상승했다. 장기국채는 15%수익률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경제는 살아날 수 있었다.
1987년 주식시장의 붕괴 이후 볼커의 뒤를 이은 그린스펀은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하며 유동성 홍수로 위기에 대응한다. 그리고 이후 연준은 은행 차입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서 방향을 전환해 금리 자체를 목표로 삼기 시작한다. 통화정책은 이제 눈앞의 인플레이션만 통제 수단으로 다루었다.그린스펀 풋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는 주식 시장이 하락할 때마다 연준이 개입한다는 월가의 불문율이다.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2002년 버냉키가 취임한다. 그는 디플레이션에 대해 선제적 공격을 주장한다. 2003년 봄 연준의 지급금리가 1%로 인하되었고 이지머니의 시대를 알리게 되었다.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통제되었다. 선진국 전역이 2000년대 초반 낮은 물가상승과 완만한 경기침체를 겪었는데 이를 대안정기라 부른다.
하지만 위기는 누적되고 있었는데 2006년 BIS의 수석 경제학자 윌리엄 화이트는 '물가안정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논문에서 물가 안정만으로는 거시적인 경제 혼란을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이테크처럼 생산성 향상에서 발생하는 좋은 디플레이션과 신용 붕괴에 의한 나쁜 디플레이션을 구분하였다.
결국 이런 경고가 무시되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미국에서 발행한 부실한 모기지 증권을 유럽이 대량으로 사고 이것이 부실화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1990년대 부터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근거 없이 2000년대 들어 그것은 2%로 정해지고 이 수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딱히 근거가 없는 이런 기계적 설정은 단기주의, 관료주의로의 자원 전환, 리스크 회피, 정당하지 못한 보상, 창의성과 혁신을 억압한다. 2%타케팅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극도로 낮추고, 투기적인 차입과 리스크를 감수하게 하였다. 수입가격이 하락하면 중앙은행 총재들은 일반 물가 수준이 하락하지 않도록 의료, 교육, 건설 같은 비무역 상품의 가격을 부풀려야 했다.
결국 2008-2009년의 대침체 이후 5년이 지난 2014년에도 미국의 생산성 성장률은 역사상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게 되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세속적 정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세속적 정체는 미국와 유럽의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여 노동력이 고령화하고 신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투자를 덜 요구하여 기존 기술보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세계가 글로벌 과잉저축으로 인해 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에서 정체의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실질경제를 살피면 세속적 정체이론은 힘을 잃는다. 오히려 세속적 정체 내러티브는 경제학자들이 저축, 인구, 투자의 실질 요인에서 경제의 원인을 찾고 통화와 금융요인은 간과하게 만든다.
8. 부채사이클과 창조적 파괴
2013년부터 BIS 통화경제부장을 역임한 보리스는 금융시스템이 자원배분에 그치지 않고 구매력까지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스는 이자율이 실질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흄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역사적 자료를 찾았지만 연구결과 금리와 저축, 투자, 이익, 인구와의 관련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BIS는 금리는 통화체제의 영향을 받는다고 결론내렸다.
BIS는 이자를 레버리지 가격으로 정의 내렸다. 그리고 부채 수퍼사이클을 제시했다. 금리가 내리면 부채가 급증한다. 그리고 더 많은 부채는 상환의 어려움 혹은 자산 가격등의 폭등으로 더 낮은 금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부채는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렇게 경제가 일단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금리 인상이 사회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에 금리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초 저금리 정착의 원인이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의 현실이다.
저금리에는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그 중 하나인 부동산이 폭등해 건설로 자금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설업은 생산성 향상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실좀비기업이 급증한다. 좀비기업은 낮은 신용으로 연명하는 기업으로 생산성 향상에 거의 기여하지 않으며 자원을 차지해 경제의 효율적 자원 배분도 막는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가 낡고 비효율적인 것을 대체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자가 가장 유능한 고용주와 가장 좋은 과정을 채택하고 덜 유능한 고용주와 나쁜 과정의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자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효율성을 추진하는 힘이고 투자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공황도 창조적 파괴를 촉진한다. 미국의 대공황은 산업수준을 고통이었으나 산업수준 전반을 향상시킨 사건으로 이후 미국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저금리로 생산성 성장이 붕괴한다. 미국의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0.5%로 20년 전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좀비기업이 자리한다. 이들은 경제전반에 생산과잉과 낮은 수익률을 퍼뜨린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줄어든다. 또한 신기술의 혜택이 그로 인해 감소하기까지 한다.
또한 사모펀드도 문제다. 이자는 금융비용의 대분을 차지한다. 저금리는 이지머니를 낳고 기업합병과 레버리지 매수가 성행한다. 그 결과 2018년 사모펀드는 1조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들은 금융붕괴의 화약고이기도 하면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수익을 빠르게 얻기 위해 단기적 안목에 집착해 회사를 사자마자 쥐어짠다. 장기적 기업 운영이나 사업전략은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저금리는 기업자체의 화력도 떨어뜨린다. 21세기 미국의 부채비용은 자본비용보다 낮게 유지되었다. 이러한 펀딩갭은 자사주 매입을 부추겼다. 기업이 자금을 기업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에 쓰게 되면 주가가 상승하게 된다. 그러면 경영진과 회사는 단기적으로 큰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그 기업자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의 향상이나 비전, 기술개발, 연구개발도 없게 된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6년간 미국의 가장 큰 상장 기업을은 총이익의 절반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이런 초저금리로 금융은 결과적으로 실물 경제를 몰아내고 있다. 대출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좀비기업, 자사주매입에 사용되고 기업의 효율성 개선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제조업과 연구개발이 필요한 사업은 오히려 당장의 수익성이 낮아 대출에 굶주리게 된다.
9. 금융억압과 불평등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단기금리의 유지를 금융억압이라 한다. 미국은 저축률이 낮은 국가로 금융억압으로 인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저금리는 자산가격을 상승시키는데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주가가 하락하면 시총 수십조가 증발했다 표현하는데 이는 가상의 심리적 돈에 가깝다. 일부 상승기에 자산을 판매하는 자산가가 거액의 자본이득을 얻을 뿐이다. 투자자 전체가 이런 거액의 자본이득을 얻는건 불가능하다. 모두 거액에 파려는 순간 자산가치는 폭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은 이익이 낮은 투자수익을 보이게 된다.
연금업계는 정부채권과 기타우량채권에 투자한다. 금융위기 이후 채권의 수익률이 크게 하락해 연금소득도 동반 하락했다. 2016년 미공공기관의 연금적자는 3조 달러였다. 연금적자의 팽창원인은 금리하락이다. 연금적자는 큰 구름이 되어 수조 달러의 지방채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확정 급여연금은 더 이상 신규가입자를 받지 않는다. 모든 연금 상품은 혜택이 적은 상품으로 대체중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 연금적자가 커서 금리 상승은 연금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늘어나 연금은 진퇴양난이다.
이지머니 시대는 불평등의 시대다. 1987-2013 전세계 억만 장자는 10배 증가했고, 이들의 전 세계 자산 점유율은 4배 늘었다. 2015년 세계 총재산의 절반을 고작 62명이 차지했다. 2018년 미국의 실업률은 반 세기만에 하락했다. 하지만 내용이 좋지 못하다. 저임금 일자리가 고임금 일자리보다 두 배 넘게 상승하며 달성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비를 포함한 기타 생활비가 물가상승으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
자산가격과 저금리로 젋은 세대는 주택구매를 못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무려 46세였다. 역사상 최고령이다. 주택은 선진국에서 빠르게 전문직의 전유물화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 가격상승으로 새로운 일을 위해 이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줄어 들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사업 비용이 오르고 내부 이주가 줄면서 수도권은 밀폐형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출산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학자금, 미미한 소득 증가, 과도한 부동산 가격으로 가정꾸리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의 출산율은 부동산 가격고 반비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10. 새로운 불평등 공식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거부하고 근본적 법칙을 제시했다. 그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큰 경우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책은 이를 반박한다. 불평등의 철칙은 반대로 자본수익률(금리, 이익, 임대, 배당 등)이 경제성장률보다 작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금융억압과 같다.
중국은 금융억압을 실시했다. 자본을 국내에 묶어 저금을 통제했고, 가계는 몇몇 대형 은행에 예금을 예치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작아 은행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고,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이 저금리로 혜택을 얻었다. 가정이 피해자가 된다. 중국은 수출을 위해 위안화의 절상을 막고자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매입했다. 이런 미증권의 대량 매입은 미국의 장기금리의 하방압력이 되었다.
금융억압으로 중국의 은행과 기업은 연간 GDP의 3-8%의 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금융억압이 신용성장을 자극한다. 2008년 위기에 4조위안을 은행에서 조달하여 대규모 부양정책을 펼친다. 2009년 신용은 GDP의 30%에 달한다. 이 막대한 자금으로 거대 국영기업들은 과잉생산을하여 대규모 미분양 유령도시를 건설한다.
중국의 부동산 가치는 2016년 43조 달러라 GDP의 4배다. 중국은 도시외에도 인프라도 과도하게 건설했으며 각종 산업에도 과도한 투자를 실행했다. 그 결과 좀비기업이 크게 늘어 2016년 국제통화기금은 중국 11개 성에서 3500개의 좀비기업을 확인했다. 중국의 경제는 부채로 가득하여 은행시스템의 부채는 경제규모의 3배에 달한다. 2012년 이후 총부채상환비용이 경제성장을 넘어섰다. 즉, 성장으로 부채탕감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부실채권은 탕감되지 않는다. 국유자산 관리회사에서 이 부채를 액면가로 판매한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국영은행에서 인수한 10년물 채권을 발행하여 대금을 지급한다. 사실상 지급 불가능한 단기채권을 장기부채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채로 인해 항상 저금리가 필요해진다.
서구에서도 금융억압은 자행되었다. 서구는 전후 인플레가 두 자리수임에도 국채수익률을 낮게 유지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며 부채가 탕감되는데 서구 국가들은 이런 식으로 전쟁의 빚은 제거했다. 오랜 양적완화로 정부와 각 지방의 부채가 많아지자 금리가 조금만 상승해도 큰 문제가 되었다. 때문에 금융억압은 정치의 필수조건이 되어 버렸다.
신용은 놀랍게도 민간이 아닌 정부가 창출하고 조정한다. 신자유주의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금의 머니 마켓은 국채로 가득한 정부한정 펀드로 가득하다. 중앙은행은 단기 이자를 설정하여 장기금리를 조정하고 경제전망의 신용 배당에도 관여하고, 국가 신용의 최후의 중재자다. 그리고 유럽의 중앙은행은 원내의 특정 국가를 지원할지 말지도 결정한다. 사실상 권력이 선출직에서 비선출직 경제전문관료로 넘어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