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잔혹한 어머니의 날 1~2 - 전2권 타우누스 시리즈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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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 인상적인 제목의 책을 2년전에 보았다. 아니 작년인가. 하여튼 상당히 흡입력 있는 책으로 기억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인 넬레 노이하우스라는 이 독일 작가는 추리시리즈물을 꽤 많이 내고 있었다. 그의 책을 이번에 다시 보았는데 제목은 좀처럼 잘 입력되지 않는 '잔혹한 어머니의 날'이었다. 우리식으로 '어버이날의 비극','어버이날 연쇄살인마' 이렇게 했다면 제목이 좀 더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시리즈물은 아니지만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산더 형사가 그대로 나오고 타우누스라는 독일 소도시도 그대로 등장해 뭔가 친숙한 느낌을 주긴 한다. 물론 내용은 전혀 상관없다. 어쩌면 이것도 좋은 방법인것 같다. 매번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고 뭔가를 붙이면 되는 것이니.

 매우 흡입력 있는 이 책은 한 독일의 고저택에서 테오란 늙은 노인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얼굴에 상처를 입고 죽었는데 부패가 오래되어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 타살인지 구분이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에겐 개가 하나 있었는데 왜인지 뒷마당 견사에 갇혀있었다. 개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개가 먹은 뼈가 발견된다. 인골이었다. 개가 파먹을 견사 아래 부분을 살펴보니 무려 3구의 시체가 더 나왔다. 개는 그 중에 하나를 먹은 것이다. 시체들은 모두 여자였고 옷을 모두 입은체 랩에 꽁꽁 싸여있어 죽은 지 오래되었음에도 썩지 않고 시랍화 되어 있었다.

 사건을 조사해보니 테오 라이펜라트라는 사람은 가세가 기울자 아내인 리타 라이펜라트와 더불어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는 아이를 위탁받으면 적지 않은 돈을 준 듯 한데, 이들은 아이를 더 쉽게 받기 위해 주로 문제아들을 위탁받았다. 진정성 없는 위탁이고 아이들도 힘들다보니 위탁과정은 아동학대로 이어졌다. 특히, 자신도 어려서 학대를 받은 듯 한 리타는 남편마저 압도하는 강력한 힘과 체격으로 아이들을 학대한다. 우물에 빠뜨려 꺼내주지 않기, 아이스 박스에 가두기, 찬물의 욕조에 집어넣기, 랩으로 묶기등 이 잔혹한 방법에 아이들은 고통받았다.

 그리고 한 아이가 망가진다. 이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노라라는 여자아이를 같은 위탁 아동인 클라스가 물에 빠뜨리고 떠나버린걸 목격한다. 노라는 수초에 발이 묶여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아이는 노라는 구해주긴 커녕 물속으로 집어 넣어 죽인다. 과정은 생각보다 쉬웠고, 평소 드세고 아름답던 아이를 지배하고 죽음에 모습을 보는게 몹시 즐거웠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 어머니는 위탁한 후 얼마간은 매년 어머니의 날에 찾아왔지만 언젠가부터 오지 않았다. 어머니로부터의 버림받음, 위탁 가정으로부터의 잔혹한 학대, 타고난 사이코패스 기질이 결합해 아이는 연쇄살인마로 자라난다.

 그는 매년 세심한 관찰로 어머니날을 앞두고 여자를 선정해 납치해 죽였다. 먼저 상대를 관찰했다. 동선, 직업, 가족, 모든 변수를 고려한다. 만일의 사태도 대비했다. 그리고 어머니날이 다가오면 납치를 실행한다. 상대방에게 접근해 변장이나 연기로 상대를 안심시켰다. 전기충격기로 기절시키고, 가둔후 물뽕을 탄 물을 먹게 해 자신이 납치된 것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를 분간조차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즐기다. 어머니날이 다가오면 의식을 치뤘다. 랩으로 묶어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물가로 끌고가 서서히 익사시켰다. 상대가 느끼는 공포와 무력감의 그의 즐거움이었다. 죽은 상대를 기념하는 전리품은 미리 챙기고, 머리칼도 약간 보관한다. 시체는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아이스박스에 넣어 냉동시킨후 나중에 버렸다. 물론 그는 아무나 죽이진 않았다. 하나같이 '어머니'를 노렸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든 버린 어머니를.

 이 괴물이 만들어지는데는 많은 사회의 공헌이 있었다. 우선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버렸다. 그리고 보육기관의 담당자는 라이펜라트 집안으로부터 충분한 학대의 정황이 있었음에도 실적우선주의에 이를 묵인했다. 그리고 리타라이펜라트와 테오 라이펜라트는 학대와 무관심으로 아동학대를 한다.

 이렇게 하나의 악이 탄생한 과정과 그 끔찍함, 그리고 그것의 해결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 이 책이 보여주는 이야기다. 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사회적이었지만 개인적이기도 했다. 살인마와 같은 조건의 아이들은 비슷한 악조건이었지만 아름다운 삶은 살지는 못해도 결국 살인마가 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하딩이란 프로파일러가 말한 것처럼 악이 만들어지는 조건은 범죄를 설명하긴 해도 범죄의 이유나 변명은 당연히 되지 못한 셈이다.

 무척 재밌는 책이었고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모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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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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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0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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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소설가 카뮈의 페스트는 유명한 고전이다. 워낙 유명해 막상 읽어본 사람은 적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무척 드물텐데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최근 많아졌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듯 아무래도 현 코로나 사태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나왔던 영화 컨테이젼이나 감기 같은 영화도 최근 새삼스레 인기다.

 책의 배경인 아프리카 북부의 거대한 국가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프랑스 유명 축구선수중엔 알제리 출신들이 좀 있는 편인데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 월드컵을 안기고 감독으로선 사상 초유의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이룬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 출신이다. 소설 페스트는 프랑스 식민시대 이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한다. 아프리카라 경제적으로도 낙후하고 여름엔 무척이나 더운 열풍이 사막에서 불어오는 이 도시에 페스트, 흑사병이 번진 것이다.

 과거 중세시대 유럽의 흑사병도 쥐들이 매개체가 된 것처럼 이번에도 갑작스레 쥐들이 죽어나간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이걸 악마의 소행이나 저주같은 것으로 여겼겠지만 소설의 배경은 2차대전이 막 끝난 1940년대인지라 흑사병의 정체와 대처법이 어느 정도 나와있는 상태다. 물론 그래도 거의 3중 하나가 죽어나가는 치사율은 무지막지하다.  

 하여튼 소설에선 초반에 쥐들이 마구 죽어나간다. 평소에 보이지 않아 잡기도 힘든 쥐들은 사방에서 굴러나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사람들은 불길함을 느끼지만 아직 쥐들의 일일 뿐이었다. 워낙 많이 죽어나가는 쥐를 치우는게 문제시될 무렵 사태는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죽어가는 쥐들은 사라졌지만 쥐를 치우던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젠 사람의 차례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페스트의 증상을 드러내며 빠르게 죽어간다. 사타구니가 붓고, 어깨나 겨드랑이 쪽도 부었으며 열이나고 몸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입술이 까매지며 죽었다. 의사들은 페스트를 의심하지만 너무나도 무서운 결과이기에 초기엔 조심했으나 결국은 병을 페스트라 단정짓고 그에 대응하는 조치를 해나간다. 병에 걸린 사람은 격리되었고, 가족들도 격리되었다.

 가장 먼저 호텔등의 관광업이 마비되었고, 사람들은 도시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사태전에 들어온 사람은 갇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겁을 먹고 집에만 갇혀있을 것 같았지만 이미 사망선고라도 받아놓은 것처럼 이상스레 향락을 즐긴다. 영화관이나 카페, 술집이 의외로 호황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도시 봉쇄로 재료의 수급문제로 영업이 어려워지고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도시는 을씨년스러어진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보며 행정과 의료 등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자 몇몇 사람들은 자원봉사대를 조직한다. 그들은 환자를 격리하고, 시체를 옮기는 등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시체는 주로 밤에 옮겼는데 공동묘지가 부족해지고 땅이 있어도 제대로 묻을 인력이 부족하자 마구잡이로 시체를 뒤섞어 묻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 결국 시체를 태우게 된다.

 사회질서를 잃은 몇몇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갑작스레 방화나 약탈이 생겨났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창문을 닫아버린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범죄자였던 인물은 이 기회에 돈을 벌기도 하고 신부는 이 사태를 신의 벌이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그러다 판사 오통의 아들이 혈청을 맞았음에도 고통스레 죽고, 이 아이의 죽음은 신부의 종교적 태도와 자원봉사대 일원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래서인지 오통도 병에 걸리고 자원봉사대를 결성한 중심인물 타유도 죽고 종교적 변화를 일으킨 신부도 죽는다.

 그리고 병은 사그라 든다. 모든게 정상화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한다. 페스트는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소설은 명성에 비해 생각만큼 재밌진 않았다. 하긴 고전 소설치고 재밌는건 많지 않았던거 같다. 작가가 말하려던건 글쎄. 잘은 모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애를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정신이 아닐런지. 결국 자원봉사대가 결성되고 그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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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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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한때 제법 인기있던 음식프렌차이즈점과 같아 눈을 끌었다. 책도 얇고 문장이 다듬어진 느낌은 좀 적지만 소재가 독특해서 볼만했다. 여러개 단편 모음집인데  그중 하나가 재밌었다. 주인공은 갑자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엔 자신만 그런줄 알았는데 바깥에 나와보니 자기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 이 불행이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고 잠시 기뻐한다. 불행은 역시 다 같이 겪어야 한다.

 그런데 사태가 조금더 지나고 보니 깨달을 일이 더 남았다. 소리가 안나는 지역은 오직 마포구와 서대문구 뿐이었던 것. 그리고 재밌게도 지상 1000km와 지하1000km까지만 그런 현상의 지배를 받았다. 서울에서도 유명한 대학들이 즐비하고, 상권도 강하며 한강변을 낀 나름 축복받은 이 지역은 순간 저주받은 지역으로 바뀐다. 일단 대학들은 사태 10일만에 휴교에 들어간다. 방송국들도 이 안에 제법 있었는데 재밌는게 이 지역에서 방송을 하면 자신들이 소리를 못듣지만 다른 지역에선 정상적으로 소리가 들린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이어끼고 자기 소리 들으면 하는 방송에서 소리를 못들으니 정상적인 방송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부동산 가격도 폭락한다. 상권은 비어가고, 한강변을 둘러싼 아파트도 저렴해진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렇지만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아진 사람들이 있다. 청각장애인들이다. 청각장애인들과 소음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이 지역은 천국이 된다. 들리지 않는 다는게 더이상 불편하지 않은 지역일 뿐더라 좋은 집과 상가가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나오게 된 것. 주인공은 우연히 청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가게되고 주인이 맘에 들어 수화도 배우게 된다. 주인공은 수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작은 몸짓으로 여러 말이 갈리는 것을 보고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날 일상이 돌아온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단편 모음집은 많은 작품이 있진 않지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살짝 뒤틀어 재밌게 구성한게 많다. 그런게 묘미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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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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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제법 인기가 있었다. 인터넷 상의 많은 분들이 이 책에 대해서 인상적인 글을 남기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구매도 했고, 기대가 컸지만 막상 보니 솔직히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그의 다른 소설도 보아야 겠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보았던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이 더 인상적인 느낌이다. 하여튼 기대가 너무 컸었나 보다.

 종이 동물원처럼 이 책도 단편집 모음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내기전에 상당히 긴 호흡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테드 창에 대해 워낙 몰라 이유는 잘 모르겠다. 창작의 고통은 역시나 엄청난듯하다. 종이동물원은 정작 종이동물원이 가장 별로였는데 숨에서는 숨이 제법 괜찮았다. 학자들은 우리와 여러가지 우주상수나 물리법칙이 다른 우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숨에나오는 우주가 그런 우주같았다. 우리 우주에서는 큰 질량을 가장 물질들이 생겨나 고온고압의 상태에서 빅뱅으로 짧은 시간내에 전우주가 퍼저나갔다. 숨에서는 이 물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공기의 흐름 기압차이다. 여기선 웬 로봇 같은 녀석들이 등장하는데 죽을 일이 거의 없지만 이상하게도 시스템 오작동이나 사고로 다시 부팅하면 기억이 모두 사라지며 녀석들은 이걸 죽음으로 생각한다. 한 개체가 자신의 뇌를 직접 해부해보며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억이 구성되고 언젠가 전우주로 공기가 퍼져나가 압력이 같아지면 공기의 흐름이 사라져 결국 자신들이 모두 죽을 수 밖에 없고 이 우주도 끝장난다는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다. 그래서 제목이 숨이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란 단편에선 역시 좀 비슷하게 평행우주 개념이 등장한다. 이 세계에선 프리즘이란 장치가 발명되는데 이 장치는 다른 평행우주를 서로 연결해서 통신이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양자역학에 의해 여러 우주로 분기되어 평행우주가 생성된다는 아이디어를 이용한 작품인데 이 프리즘은 통해서 다른 평행우주에 있는 자기 자신과 주변인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심지어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데이터에 큰 한계가 있어 프리즘은 오래사용하지 못해 사람들은 간헐적으로 사용하거나 문자적도만 주고 받는다.

 이게 나오니 이상스레 불행해지는 사람이 많았다. 평행우주의 다른 자기 자아가 선택한 것이 지금의 나의 선택보다 나은 경우가 많았던 것. 그 때 그 연인과 헤어진 것, 직장을 그만둔것 혹은 그만두지 않은 것, 혹은 도전을 한거과 하지 않은 것등, 분기상 만들어진 많은 다른 우주의 결과를 보며 현세계의 인간들은 절망한다. 이 프리즘으로 인한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까지 생겨날 정도다.

 또다른 인상적인 단편은 '소프트 객체의 생애주기'다. 가장 긴 분량이어서 좀 짧게 나오면 한권으로도 가능한 분량의 소설이었다. 근미래인데 가상세계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지구의 모습과 환경이 구축된다. 사람들의 일상은 양분화해 실제세계와 가상세계에서의 삶이 비슷한 수준으로 어우러진다. 한 회사가 이 데이터 어스라는 가상세계 플랫폼에 애완동물을 출범한다. 이 녀석들은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 객체로 매우 귀여운 외모로 만들어졌고, 마치 애완동물을 키우는 듯 주인이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여러방향으로 자라나는 다양성을 지녔다.

 초기 큰 인기를 누리던 녀석들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시점이 다가왔고, 개발사는 문을 닫게 된다. 세월이 오래지나 데이터 어스도 차기 플랫폼에 대체되었고, 오래전 만들어진 이 애완동물 녀석들은 차기 플랫폼으로 호환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무한히 광활한 가상의 지구에 몇몇 자신과 비슷한 개체와 주인들만 남게 된 것.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해간다.

 다양한 상상이 나온다. 이 애완동물들이 학습해나아가 직업을 갖게 되거나 수익성을 갖게 되는 것, 그래서 법인으로까지 인정이 되는 문제, 그리고 인간과의 섹스가 가능해지는 것 까지 말이다. 이 애완동물 프로그램들은 소설안에서 로봇으로도 이동이 가능해 물리적 세계에서도 생활이 가능하다. 물론 본인들은 오히려 갇힌 기분을 갖고 싫어하긴 했지만.

 다양한 상상과 과학이 가득한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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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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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우리가 부러워하며 앞서가는 성평등 국가들이 모인 곳이 서유럽이다. 하지만 그들의 성평등 상황도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진 않는다. 사실 역사를 조금만 살펴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는 유럽에서 여성참정권이 보장된 해만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는데 영국은 겨우 1928년이고 이 소설의 배경인 프랑스는 1946년에 이르러서야 도입되었다. 그러고보니 1948년인 대한민국과 큰 차이가 없다. 거기에 나름 유명한 고소득 복지국가인 스위스는 1971년이다. 거의 전세계 꼴찌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럽일지라도 100여년전에 태어난 여성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의 성평등의식 변화는 기술변화와 마찬가지로 상전벽해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소설로 담아낸것이 이책 '루거 총을 든 할머니'다. 루거총은 나치독일이 2차대전때 사용한 권총이다. 그걸 프랑스인 할머니가 갖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베르뜨 가비뇰이다. 소설의 배경은 2016년으로 베르뜨의 나이는 무려로 102세다. 이 노인은 경찰서로 연행되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중무장하여 집안에 있던 루거총과 22구경 장총으로 옆집 남자를 쏴서였다. 이유도 기가막히다. 한 연인이 할머니의 차를 훔치려다 눈에 띈다. 그들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를 세상에서 가장 중시하는 할머니는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도피자금까지 준 후, 옆집의 고약한 법무사차를 훔치라고 조언한 후 시간을 벌어주고자 그 법무사 녀석의 엉덩이에 구멍까지 내준 것이다. 거기에 좀더 시간을 끌어주고자 무장한 경찰녀석들과 대치하며 폭언을 퍼부우며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덤이다.

 경찰 벤투라는 이 엄청난 할멈을 연행하여 심문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에게 무서운 것이라곤 없었다. 심문을 하는건지 당하는건지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수사관 벤투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다. 우발적 범행을 보였던 것 같던 이 할멈이 사실은 연쇄살인마였던 것. 할머니의 지하실엔 무려 7명의 유골이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현재인 2016년과 할머니의 과거로 병행한다. 베르뜨는 가난한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남자복이 워낙 없는 집인지 외할머니도 어려서 남편을 잃었고, 어머니도 1차대전에 남편을 잃었다. 베르뜨가 1차대전 발발시점인 1914년생이니 아버지 없이 자란 셈이다. 그래도 집안 여자들은 수완이 좋았다. 외할머니는 장사를 하다가 증류기를 만들어 독한 술을 팔았고, 약했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 약간의 옷가지만 가지고 집을 떠나버렸다.

 베르뜨는 100년전 여성 답지 않게 가부장적이지도 않고 주체성이 있는 자아가 강한 여성이었다. 성적인 쾌락부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아름다운 외모를 자각하고, 성감대가 발달한 사춘기 이후 동네 남자아이들 그리고 같은 동년배 여아들과 동성애를 즐겼다. 정신적인 감흥은 없었다. 그냥 경험하고 싶고 즐기고 싶어서가 다였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보다 무려 20살이나 많은 동내 잡화점 가게 주인과 결혼한다. 가난했고, 할머니마저 노쇠하여 수입원이 마땅치 않던 베르뜨로서는 나름 최선의 현실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정신적 지주였던 외할머니는 그녀의 선택을 마뜩지 않다. 그를 보고 가슴이 뜨거워 어찌할줄 모르는가 그사람이 매일 아침에 곁에서 눈을 떠도 괜찮은가등의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이 남자는 베르뜨를 보고 반해 어찌할줄 몰라 결혼하지만 밤자리에서의 그녀의 대담함과 자유분방함에 곧 놀라고 당황한다. 곧 여느 남자처럼 아내를 다스리기 위한 폭력이 시작되고 베르뜨는 할머니의 죽음에도 무신경했던 이남자를 삽으로 쳐서 죽인다 .그녀의 첫살이이고 지하실로의 암매장은 이때 의식처럼 시작된다.

 다음은 2차대전중 그녀를 강간하려고 들어온 독일 군인 녀석이었고, 그녀석이 이후 그녀의 심벌처럼 되버린 루거총을 본의 아니게 선물하게 된다. 이 총은 어쩌면 나치보다 베르뜨의 손에서 더 많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베르뜨는 계속 이런 저럼 이유로 결혼이라는 실수를 한다. 사랑보다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경제적 이유에서, 혹은 그냥 외로워서였다. 그런 결혼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그녀를 손찌검했던 남편들은 나란히 루거총의 희생자가 되 첫남편 주위에 묻힌다. 이런 그녀에게 동네사람들은 공포와 멸시의 의미로 블랙위도우란 별명을 선물한다.

 그러던 그녀가 영원의 사랑을 만난다. 미군 루터였다. 흑인인 루터는 처음 본 흑인이었고 별천지의 세계에서 온사람 처럼 성평등적이었고,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낡은 성관습이나 고정관념에 얽메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분방하며 자아가 강한 베르뜨를 모두 받아주었다. 베르뜨가 정작 어울릴 수 있었던 사람이 미국 사회의 마이너 흑인이란 점은 작가가 당시의 시대상황과 지금의 시대상황을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보인다.

 하여튼 루터와의 만남은 더욱 극적이다. 처음 만난 1945년엔 루터가 기혼자여서 미국으로 돌아가야했지만 15년후인 1960년엔 아내와의 사별로 베르뜨 곁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은 그후로 무려 15년을 행복하게 같이 산다. 베르뜨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을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베르뜨를 다시 살인의 길로 이끈다. 연쇄살인마지만 공감가는 살인을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 책이다. 성평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과거로의 재밌는 여행이 이어지며 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정말 재미난 책이다. 추천한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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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