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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책 '악의 번영'을 보면서 제목만 보고는 2007위기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 없이 계속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갖고 상당히 강렬한 붉은 색의 표지를 가진 책으로 들어갔다(흰색 표지를 벗기면 안쪽은 붉은 색이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바를 갈피 잡기가 힘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류의 대서사시를 들추는 것 같기도 했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처럼 환경 파괴에 의한 문명 붕괴를 경고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책 본연의 목적에 맞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 읽어보니 이 모든 걸 다룬책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가 좀 갈팡질팡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분명치 않았는데 읽으며 잡으려 했던 책의 주제를 나름대로 정리했다.
1.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주가 농업보다 앞선다는건 최근 연구가 밝혀낸 정설로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래도 농업이 인류역사상 매우 중요한 혁신이었던 것은 분명한데 신석기에 일어난 이 혁명은 1년에 평균 5km정도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풍요와 저장식량의 등장으로 왕이나 귀족, 성직자, 전사 같은 게으른 계급이 등장했다. 문명은 빠르게 퍼져나가 아나톨리아의 대장장이는 기원전 3500년경 청동을 기원전 1000년경엔 철을 제작했다. 관리들은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에서 문자를 중국에선 기원전 1300 경 문자를 만들어냈다. 기원전 13-11세기 경 항아리, 투구, 방패, 갑옷등을 제작하는 청동제련법이 넓은 지역에서 실용적 기술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후 기술발전은 산업혁명이전까지 정체한다. 로마는 실용주의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실상 기술발전이 매우 느렸다. 이전의 기술을 사회적으로 잘 활용했을 뿐이다. 이는 노예때문인데 기원전 225년경 60만이던 노예는 1세기 말엔 전 로마제국 인구의 무려 35%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노예는 그 수가 많아 가격도 쌌다. 노예가 일상적으로 보급되니 농촌의 소농은 붕괴되었다. 이들이 갈곳은 직업군인뿐이었고 그들이 직업군인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으로 또 다른 노예가 보급되어 다시 소농이 붕괴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로마는 노동을 사회적, 지적으로 정교화하지 못한체 노예제에 끈질기게 의존함으로써 생산의 공간을 회복할수 없는 주변으로 밀려나 붕괴한다.
로마이후 10세기 유럽은 엉망이었다. 북부에선 바이킹, 남부와 동부에선 이슬람과, 헝가리 침략자들, 그리고 중부에서는 강도에 대한 공포로 교역이 마비된 매우 폐쇄적인 상태였다. 당시 유럽은 농촌일색에 도시가 없었다. 영주는 모든 폭력을 독점했으며 잉여생산물을 획득했는데 교역이 없어 자신이 거둔 수취물인 소고기와 와인을 소비하느라 매번 영지를 돌아다녀야했다.
11-13세기가 되자 농업생산성이 향상되며 중세의 준자급자족적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다. 농기구가 늘고 개량되었다. 삽, 가래, 쟁기가 철로 만들어지고 쇠스랑이 나타나고 말의 목에거난 마구와 물레방아가 확산한다. 그 결과 경작지와 인구가 모두 증가하였다. 도시는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는데 고대의 도시가 로마처럼 소비의 중심지라면 이 시기의 도시는 장인으로 가득 찬 생산의 중심지였다.
노동에 대한 관점도 변화했다. 노동은 과거 신이 내린 형벌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14세기 경에 이르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중대한 죄이며 정신적 수치라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아직 육체노동을 멸시하긴 했지만 적어도 정신노동이라면 중시되었다.
유럽은 12-18세기 크게 발전하는데 이는 유럽의 지리적 요인과 관련한다. 로마제국 이후 유럽은 하나의 제국이 되지 못한다. 알프스, 피레네산맥, 영국해협은 자연적 장벽으로 새로운 유럽제국의 탄생을 방해하였고 여기에 의지한 영국, 프랑스, 스페인은 일찍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장벽을 갖추지 못한 중부의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러시아등은 근대까지 내내 흔들렸다. 유럽은 유라시아의 변방으로 세계를 휩쓴 몽골의 침략에서도 무사할수 있었다.
11-13세기경 화폐가 발달하며 중세영주의 권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중세 유럽의 봉신들은 영주에 공물을 바쳐야 했는데 영주는 40일간 봉신을 휘하에 둘 수 있었다. 하지만 화폐경제발달로 조세를 현물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납부하자 영주는 40일의 한계에서 벗어나 정규군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영주는 영국의 궁수, 스위스의 창병, 제노바의 쇠뇌사수를 고용하기 시작했으며 무기의 발달로 중세 봉건적 성격의 전쟁이 사라진다. 화포가 등장하여 영주의 성채는 단독으로 보호받기 힘들어졌으며 강한 영주가 왕이되고 영주들은 왕에 의탁할수 밖에 없게 된다. 페스트는 영주에게 날려진 또 하나의 직격탄이었다. 인구의 1/3이 절멸하여 노동의 가치는 귀해졌고 영주는 농노들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토지이탈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영주의 몰락과 잦은 전쟁으로 유럽은 폭력이 만연했다. 종교전쟁과 30년 전쟁은 그 정점이었다. 급격한 내부변화로 새로운 규제 원리가 필요해졌고 그 중 하나가 의회였다. 14세기부터 프랑스의 삼부회의, 스페인의 코르테스, 영국의 팔리아먼트가 나타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가의 재정적 요구에 맞서는 일을 했다. 영국은 대헌장으로 왕은 의회의 승인없이 세금인상을 할수 없게 되었고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왕국의 재정을 의회의 감독아래 놓는 것은 왕국에도 결국 좋은 일이었다. 이로써 은행가들은 위험이 줄자 안심하고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영국은 낮은 이자율로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영국은 낮은 금리로 군사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반면 프랑스를 그렇지 못해 경제가 파탄나 루이 16세의 운명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내부변화 원리는 국가민족이라는 새로운 정치모델이었다. 이는 도시국가와 제국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2. 산업화로 맬서스의 덫에서 벗어난 인류
농업생산은 수확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 그래서 산업화 이전 높은 사망률은 축복이었다. 부양인구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멜서스의 섹계에서 노동은 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농업이 수확체감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렵채집인의 2시간 정도의 노동은 농업생산자의 10시간 정도 노동과 맞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모든건 바뀐다. 오래 인류의 덫이었던 멜서스의 세계가 끝난 것이다.
농업시대에 인간과 토지는 상보적이었다. 인간의 노동을 투입할수록 농업생산물은 체감했지만 토지가 공급되면 어느 정도 많아졌다. 수확체감의 근본적 문제는 토지가 노동인구의 증가에 따라 같이 증가하는게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농업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다르다. 기계는 계속 공급이 증가할수 있었고 노동의 증가에 걸맞출수 있었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 인구의 증가는 충분히 부양이 가능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조업은 농업과 달리 규모수익 불면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1인당 소득도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며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물론 노동자 1인이 작동하는 기계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제조업도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지만 기술개발이 이를 극복해낸다. 기술개발로 노동자 1인이 움직이는 기계수를 늘리거나 한 대의 기계가 노동자 1인과 생산하는 양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때문이다. 더 많아진 인구는 선순환을 낳았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창조되고 소득도 늘어 소비시장도 커졌기 때문이다.
3.풍요로운 그러나 불안한 체제
교역이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역사적 거짓말이다. 1차대전은 역사상 가장 교역이 활발해 상호의존도가 가장 높아져 누구도 전쟁이 일어나면 손해를 보기에 일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하던 시기에 일어났다. 교역은 오히려 전쟁을 앞당긴다. 교역으로 한 나라는 기존에 확보하기 어렵던 재화를 비축할수 있게 되고 국력이 강해져 호전적이 될 수 있다. 1차대전 당시 독일은 그러한 나라였다.
패전후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강제로 세우게 되고 보통선거 도입과 완전비례대표등을 도입한다. 하지만 강압적 체제였기에 정당성을 얻기 어려웠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파와 우파에게 모두 비난받는다. 1차대전 이후 독일은 급격한 도시화로 계급이 불안정했으면서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귀족계급이 많은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사회가 매우 혼란했다. 거기에 전쟁부채를 갚으로고 프랑스 벨기에 군대가 루르를 점령하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통화를 남발해 초인플레가 발생한다.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새화폐인 렌덴마르크화를 도입해 안정되지만 기다리는건 1929년 경제위기였다. 극좌 극우정당이 세력을 얻기 시작하고 독일인들이 선택한 것은 나치였다.
미국에서는 1929년 10월 29일의 검은 화요일후 한달만에 주가가 무려 85% 폭락한다. 산업생산은 3년만에 절반으로 줄고, 인구의 25%가 실업상태가 된다. 자동차, 세탁기, 가구 같은 내구재 소비가 크게 감소했고 건설주문도 급감한다. 1차대전중 연합국의 식량 지원을 위해 당시 미국은 경작지가 크게 늘어난 상태였는데 경기 후퇴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해 농업종사자의 소득은 무려 70%나 감소한다. '분노의 포도'는 이런 배경하에 나온 소설이다. 1929년의 우기는 국제무역이 붕괴하지 않았다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교역은 1929년 이후 1933년까지 무려 1/3으러 줄어든다. 1929년의 위기는 사실 국제통화위기였다. 국제자본은 늘 그렇듯 취약해보이는 지역부터 자본을 거두어들였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폴란드, 독일은행이 차례로 파산했다. 영국, 프랑스 정도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간신히 버틸수 있었다.
셰이의 법칙은 공급은 자기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이 위기를 맞아 소비의 증대를 주장했다. 고용과는 무관한 소비 증가가 경제의 승수효과를 일으켜 위기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케인즈 주의를 숭상한 2차대전 이후는 자본주의 진영에서 영광의 30년이었다. 선두주자인 미국은 느리게 성장한 반면 추격자인 유럽국가들과 일본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선진국의 수준을 따라 잡는 것은 빠른 반면 따라잡으면 이후 스스로 길을 잡아 생산력을 증가시켜야 하므로 성장이 필연적으로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OPEC의 석유가격 인상으로 위기가 찾아온다. 케인즈 주의에 의하면 경기후퇴와 인플레이션은 동시에 일어날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동시에 일어났고 케인즈주의자들은 소비를 증대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급이었다. 단기적 유가상승과 장기적 생산성의 저하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해 1980년대부터 금융자유화로 일컬어지는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자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문제는 효율을 가로막는 정부와 복지국가였다. 이때부터 일어난 금융자유화와 신자유주의는 2007 경제위기와 지금의 빈부격차를 일으키게 된다.
4.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3가지 악
우선 폭력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폭력적 존재로 진화했다. 포식을 위해서 성경쟁을 위해서 그리고 농업혁명이후 집단 및 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는 사회문화적으로 그것이 공진화했을 것이다. 즉, 폭력인 인류역사상 늘 대비해야했고 행사해야 했던 것이다. 폭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적인 폭력과 공적인 폭력, 그리고 상상의 폭력이다. 유럽은 16-17세기 종교전쟁이라는 살육, 30년 전쟁이라는 광기이후에야 폭력이 간신히 수그러들었다. 이후 국가만이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수 있다는 인식이 확립되었다. 19세기 들어 이런 공적폭력이 줄어들자 부부간의 폭력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폭력이 오히려 증가하였다. 남성 사이 폭력이 줄면서 여성이나 아이를 향한 폭력이 만연했다. 공적 폭력이 가정으로 이동한 것이다. 1880년대 들어서야 어린 소녀에 대한 강간, 근친상간, 미성년자 학대에 대한 고발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졌다.
공적 폭력과 사적 폭력이 모두 잦아 들자 상상의 폭력이 시작된다. 공적 영역은 물론 사적 영역에 다핸 폭력이 엄격이 규제되기 시작한 18-19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공포과 폭력 소설이 크게 유행한다. 이런 소설이나 매체를 통해 유럽인들은 도시에서의 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위험한 계급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폭력이 줄어듬에 따라 폭력은 더더욱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폭력과 범죄를 다루는 엽기 소설을 읽는 것은 이러한 고통을 떨쳐내고 즐기기 위한 수단이되었다. 이는 현대로도 이어져 평화로운 국가일수록 공포영화와 엽기소설, 잔혹컨텐츠가 만연한다. 9.11테러는 물질적 폭력이었지만 선진세계 대부분 사람들에게 미디어로 전해진 상상의 폭력에 가깝다.
현대 세계에 폭력의 세 가지 종류는 언제든 폭발 직전이다. 오늘날 투치족이나 보스니아인, 구자라타의 이슬람 교도에 대한 폭력은 과거 유럽 종교전쟁 수준의 폭력이다. 거기에 상호증오에 의한 국가간 합법적 폭력 가능성도 여전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동중국해에서의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그렇다. 미국과 중국은 또 어떤가.
두 번째 악은 환경 파괴다. 오이스타인 달은 사회주의는 시장이 경제적 진실을 말하게 허용하지 않아 무너졌고 자본주의는 시장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게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네 가지 실수로 재앙이 일어난다고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 못하는 실수,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못하는 실수, 문제를 인식해도 이를 해결할 의지를 천명하지 못하는 실수, 마지막은 문제해결 의지를 천명하지만 실제 실천은 하지 못하는 실수다. 인류는 이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인류는 곧 90억에 달하게 되고 이는 인류가 지구로부터 갉아낼 부가 6배나 증가함을 의미한다. 18세기까지 인류는 주로 태양에너지에 의존했고, 사육하던 동물은 척추동물의 겨우 0.1%였지만 지금은 무려 95%에 달한다. 화석연료와 삼림파괴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초기 280ppm에서 지금은 388ppm 12세기 말에는 560ppm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구 한계를 명백히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어렵게 한다.
물도 중요한 문제다. 최근 큰 강들은 건기에 바다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수위가 급격히 줄고 있다. 갠지스, 나일강이 이미 그러하다. 만약 나일강의 수단과 에디오피아가 물 사용량을 늘린다면 이집트와의 갈등이 불보듯 뻔하다. 터키와 이라크가 건설한 댐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델타 삼각지대 90%를 파괴했다. 2050년까지 태어날 30억의 새로운 인구는 향후 지하수층이 무분별하게 개발된 나라에서 태어나야 한다. 중국은 물부족이 심각하다. 중국 밀의 절반, 옥수수의 1/3을 생산하는 북부평원의 지하수는 이미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관개용지에서의 농업생산량은 과거의 7-80%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들은 용수가 줄어드는 강 유역에 위치한다. 멕시코시티, 카이로, 베이징이 그렇다.
쓰레기의 양도 엄청나다. 성장은 산업생산성을 계속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재화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단축된다. 그 결과 제품 가격은 하락한다. 하지만 생산되는 재화량은 감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격이 낮아짐에 따라 쉽게 쓰고 버리는 경제가 성장한다. 재화의 가격이 그 재화가 일으키는 환경비용보다 낮아지게 되며 도시 밖에 쓰레기를 버리는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마지막 악은 저성장과 불평등이다. 1980년대 시작한 자유화는 2차대전 이후 질서인 포디즘과 복지국가, 케인스주의를 해체하여 상호협력의 세계를 파괴했다. 포디즘에 의해 대규모로 조직된 기업들은 비효율을 이름으로 1980년대 해체되었고 많은 부분을 외주화한다. 베버리지에 의해 촉진된 복지체제도 영광의 30년 이후 성장이 둔화되며 어려움에 빠졌다. 케인즈 주의도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영광의 30년 이후 패러다임은 바뀌었지만 선진사회를 지배한 것은 저성장이었다. 저성장에서 사람들은 불행하다. 사람의 행복에서 소득은 큰 요인이다. 연구결과 소득은 행복의 절반 가량을 좌우하고 가족관계, 건강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소득이 3배로 늘어난 시점에도 소득의 증가는 행복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최상위 부유층은 상당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부를 통해 느끼는 행복은 매우 효과가 짧고 상대적임을 의미한다. 즉, 고성장사회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들어오는 소득을 통해 자신이 바라보던 계층에 다가가거나 진입했음을 느끼며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저성장 사회에서는 이것이 사라지므로 소득 증가에 따른 행복을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소득이 늘어나는 체감 속도가 중요한 것이다.
1980년대 주주들은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2차대전 이후 기준인 노동조직 유형인 노동자의 경력 관리방식, 사회정책, 노동조합은 재검토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주주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규범은 기업의 전문지식과 핵심업무에 집중하는 것이고 경영자의 보수는 이를 위해 기업의 이윤과 연동되었다. 나머지 업무는 모두 외주화하였다. 외주화 서비스 업체를 서로 경쟁을 시작했고 점차 노동자 없는 기업이 나타났으며 세계화는 이를 가속화하였다.
중앙은행의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체제도 탄생한다. 이들은 이미 2007위기전 전통은행체제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달성한다. 이들은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등장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구조화 투자회사를 만든다. 이를 통해 건정성 규제를 회피하고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하나 동원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고수익 상품에 투자했다. 대출을 해주는 대신 대출을 증권화했고 모두가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나 돈이 되는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경제위기였다.
최근의 정보화는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유주의에 의해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한다. 정보는 디지털코드로 즉 상징 혹은 분자의 형태를 띨때 그것을 담을 물질적 형태보다 그 내용을 구상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영화나 잘만든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혹은 메타버스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런 류들은 일단 첫 재화를 생산하고 나면 두 번째 이후를 생산하는데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즉, 잉여가치의 원천이 전통 자본주의처럼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아닌 구상으로 이동하게 된다.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는 더 이상 잉여가치의 원천이 아니므로 기업으로부터 착취의 도구인 노동자조차 되지 못하고 외주화의 대상정도로 전락한다. 불행히도 이는 제조업에도 적용된다. 프랑스의 르노는 1950년대만 해도 전체차량의 80%를 스스로 생산했고 관련 지원 직종도 모두 직접 고용했지만 지금은 신제품 구상과 브랜드 홍보만 한다. 20%의 차량만 직접 제작하고 나머진 외주화한다.
이런 인터넷,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물인터넷이 가져오는 신경제에선 노동의 가치가 이렇게 폄훼되고 과거처럼 오히려 부귀와 명성이 관심사다. 비물질적 생산은 투여된 노동 시간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게 보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런 비물질적 생산은 규모 수익 체증의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신경제에선 진입장벽이 매우 낮음에도 생산자가 더욱 큰 시장을 장악할 수록 제품 구상에 들어간 비용을 빨리 회수하여 더큰 돈을 벌어 격차를 벌리므로 독점적이 된다. 플랫폼과 소셜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아마존이나 네이버, 구글등을 보면 딱 그렇다. 누구나 그들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그 거대한 선점효과를 당해낼 수 없다.
악의 번영을 보며 세 가지 악은 따로 노는게 아니라 모두 상호연계되어 공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성장에 빠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며 사람들은 잠재되 있던 3가지 폭력을 더욱 쉽게 폭발시킬수 있게 되었고, 경제성장은 지구를 오염시킨다. 책의 내용은 하나의 귀결고 깔끔하게 이어지지 않아 리뷰를 작성하며 나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보았다. 프랑스 저자의 책인데 명료함을 부족했지만 세계사의 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