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번 월드컵 조별 리그 최종 전에서 최약체로 꼽히는 피파 랭킹 60위 대의 남아공에게 패하며 조 3위로 떨어졌다. 1무1패로 벼랑 끝에 몰려있던 남아공은 한국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하며 조2위로 32강에 오르는 기쁨을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남아공은 자국에서 개최한 2010년 월드컵에서도 사상 최초로 개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였던 국가다. 특히, 운동 능력이 좋은 흑인 선수들이 대부분임에도 유럽 선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없을 정도로 축구 기반이 약하다. 즉, 아프리카 국가 중에는 상당히 해볼 만한 상대였다는 의미다.
1승 2패로 조 3위가 된 한국은 멕시코가 다행히 체코를 대파해주며 비겨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번 대회 참가국이 무려 48개로 확대되며 12개 조 중에서 무려 8개 조의 3위 팀이 32강에 진출하기에 객관적으로 한국의 토너먼트 진출 확률은 높다. 다만 조 3위는 조 1위를 만나기에 한국의 월드컵 여정은 사실상 32강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번 더 질 만 남은 것이다. 특히나 지금 같은 경기력으로는 승리를 기대하기 더욱 어렵다. 경기력이 좋아도 축구 강호인 1위 팀을 이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 경기는 감독 수준에서 갈렸다고 본다. 경기 내내 잔디의 문제가 지적되었으나 그건 상대편도 마찬가지이니 할 말이 없다. 남아공 감독은 한국을 상당히 잘 파악하고 나왔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공격을 전개하다 허점을 내주지 않고 미드 필더 중앙 지역에서 함정을 파놓고 한국의 볼을 탈취해 효과적으로 역습을 전개했다. 한국은 골을 후반에 허용하긴 했으나 전반에 먹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남아공은 한국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볼 키핑력이 낮고, 미드필더가 취약다는 걸 잘 알았다. 거기서 함정을 팠다. 그리고 유일하게 탈압박 능력이 있는 이강인을 두 세겹으로 감싸 슛과 패스를 막았다. 그래서 오늘 이강인은 상당히 부진했다.
이러니 한국의 공격 전개는 앞선 두 경기처럼 매우 답답했다. 이는 사실 예고된 일이었다. 감독 홍명보는 아시아 최종 예선을 돌파 후 돌연 한국이 2010년 월드컵 이후 잘 써온 포백에 기반한 전술을 버리고 쓰리백으로 전환했다. 한국의 경기력이 아주 좋다곤 말하긴 어려워도 무패로 아시아 예선을 돌파한 전술을 갑작스레 버린 것이다. 이 때만 해도 이게 옵션 B 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모든 일정을 쓰리백으로 소화하면서 결국은 모두가 월드컵을 쓰리백으로 치루게 될 것을 알았다.
그런 이유는 감독이 겁을 먹어서로 보인다. 홍명보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로 참패했다. 첫 경기 잡아야 했던 러시아와 비겼고, 감히 첫 승 제물로 착각했던 알제리에 2:4로 대패하며 사실상 짐을 싼 뒤,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상대 한 명이 전반 초반에 퇴장 당했음에도 무기력한 경기로 0:1로 패배했다.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수비를 두텁게 하여 무너지지 않는 팀을 구성하려 했고 그 해결책이 쓰리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쓰리백이 한국과 안 맞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대표팀과 자신의 소속팀에서 포백을 썼다. 선수들은 대놓고 인터뷰에서 쓰리백이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감독을 밀어붙였다. 한국의 쓰리백은 단순해서 3명의 장신이 수비 라인을 구축하고, 양쪽의 윙들이 사이드로만 거의 움직인다. 그리고 한국은 선수들의 전술 이해 능력과 체력, 움직임, 전진성, 패스 능력이 모두 부족해 일본과 같은 패스 전개와 움직임, 전진을 통한 전통적으로 사이드 공격에 치중한다. 그럼 양 윙백이 경기를 풀어줘야 하는데 이들은 돌파 능력과 크로스 능력이 모두 현저히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이번 대표팀에 합류한 옌스가 어느 정도 그러한 능력을 확보했으나 감독은 이상스레 그를 외면하며 마지막 경기 후반에서야 투입했다. 남아공전 전반에 윙백쪽에서 제법 찬스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매우 아쉬운 선택이다.
한국 대표의 이번 전술은 수비에 치중하고 개인 능력이 출중한 소수에게 공격을 글자 그대로 맡긴 형태였다. 그러면 수비력이라도 성공적이었어야 한다. 공격이 답답해도 수비가 골을 허용하지 않으면 경기는 지지 않는다. 하지만 수비력 구축은 사실상 실패다. 우리 조는 마땅한 강호가 없었다. 그럼에도 매 경기 골을 허용했다. 여기에 공격은 3경기 겨우 2골을 넣은 만큼 매우 빈공이었다.
이 모든 책임은 결국 축구 협회로 향한다. 감독 홍명보를 임명한 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한국은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전술을 구사할 생각으로 그에 걸맞는 감독을 선임하고 그를 무려 4년 가까이 대표팀을 맡겼다. 이는 다른 국가의 정상적 축구협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지만 한국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장 성공한 2002 월드컵에서도 히딩크의 재임기간은 2년 정도에 불과했다. 무한한 훈련 시간과 권한을 부여했기에 재임이 짧았음에도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마땅히 빌드업 축구가 결과를 빚은 만큼 그를 이어갈 감독을 선임했어야 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축협 회장이 자기 마음대로 패스 축구와는 거리가 먼 클린스만을 임명했고 그 결과는 아시안컵 실패로 이어졌다. 한국의 카타르 월드컵 당시 경기력은 매우 유기적이어서 강호 우루과이를 30분 동안 볼을 거의 잡지 못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하지만 감독이 바뀌자마자 그런 모습은 바로 사라졌다. 비판에 직면한 축구협회는 그 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으나 결국 밀실에서 감독 홍명보를 임명한다. 한국의 기나긴 월드컵 역사상 단 한번도 우리는 한 사람에게 월드컵을 두 번 맡긴 적이 없다. 그가 현저한 성공을 한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며 실패한 감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홍명보가 한국 축구계의 성골인 고대라인이 아니었어도 그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을지 의문이다.
결국 우리는 32강은 가긴 갈 것이다. 하지만 구차한 1패를 더 추가하는 여정일 것이다. 골을 넣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며, 몇 골을 허용 하느냐가 관건 일 것이다. 월드컵 이후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우선 민주적으로 축구 협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축구 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체계적인 목표와 로드맵을 세우는데 실패하고, 매 월드컵마다 새롭게 모든걸 다시 시작하는 실패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그리고 이번의 경우에도 아시안컵 이후 실패의 자명한 징조가 보임에도 정몽규를 계속 뽑았다. 이미 부패한 곳이다. 그리고 기업인들도 더 이상 안될 것 같다. 한국은 현대가에 오래도록 축구를 맡겨왔다. 정몽준이 2002 월드컵의 성과를 냈지만 이젠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축구는 한국의 시민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다. 2002 월드컵이 한국민의 정신과 단합, 사회 경제적으로 남긴 성과는 매우 컸다. 그리고 축구협회는 국가의 세금 지원과 축구팬의 사랑으로 지속된다. 그런 만큼 축구협회가 더 이상 축구인의 소유란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감시와 견제, 그리고 민주적인 선출 구조를 갖고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도 마땅히 기회를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월드컵 실패의 역사는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 알아서 나와도 지속될 것이다. 일본을 넘어서는 일도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