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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락 첫 번째 대화 “두려움과 떨림”
아밀리 노통은천황을 배알할때 사무라이들이 갖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단어로 일본문화를 설명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 말이 일본문화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오랜 동안 막부가 존재하였고, 그 막부가 통치하는 봉건시대가 지속되었던 일본! 그러면서도 막부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천황을 없애지 않고 일본을 통치했다. 사무라이들의 절대 복종! 명예를 중시여기는 그들의 문화가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강화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패망으로 치달으면서도 천황 한명을 살리려 일본의 군부는 항복시기를 늦추며 연합국과의 협상을 했다. 전선에서는 마지막 한사람까지 천황을 위해서 죽겠다면 치열하게 항전하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본토의 수많은 양민들도 천황한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물에 불과했다.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천황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천황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항복했다”고 일본의 국민들에게 말을 한다. 천황은 아직 살아있으며 그리고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천황은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그리고 아밀리 노통은 그의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간단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유미모토사에 1년 계약으로 취직을 하고 그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업무를 강요당한다. 훨씬 창의적인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단순한 숫자 처리,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상관에게 복종해야하는 회사의 문화 속에서 순응한다. 이를 개혁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 자신은 이 사실을 소설로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작가가 일본 사회를 상대할 수 있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었으리라....
우리 '다락'이라는 동아리의 토론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화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글귀에서 시작되었다. 후부키라는 여성과 아멜리라는 여성의 대립구도가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트랜디 드라마와 비슷해 보이지만 후부키는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명하복의 문화를 대표하는 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밀리라는 주인공이 후부키를 추월하는 것을 보고 질투하는 것이 여성들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우린 생각했다. 서열적이고 위계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모습이 아니며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짙게 잔존하고 있는 유산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직되고 지극히 비효율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이 어떻게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그러나 관료제적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선입관 부터 벗어던져야 했다.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 조직은 관료제화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관료제 속에서 창의적으로 모든 사람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수의 엘리트가 창의 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면된다. 사실 아멜리와 같은 창의적인 사람은 단순한 일에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을 위해서는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어쩌면 학력 인플래이션에 의해서 너무 고학력의 사람들을 생산하고 뽑은 결과가 아멜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발전한 이유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장인정신을 들수 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일본의 장인정신 말이다.
그리고 상명하복의 구조가 경쟁사회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상사’는 바로 사무라이가 모시는 ‘다이묘’이고, 자신은 다이묘의 말에 복종하며 다이묘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이다. 그래서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일본 경제 발전의 한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식회사 제팬이다. 외국제품을 사라고 일본의 수상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호소할 정도로 자국의 물품을 애용하는 일본인. 외국인의 눈에는 그들이 이해될 리 없다. 싼 물건이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싼 물건을 사야하지만 비싸지만 자국의 상품을 사는 일본인을 서양의 인물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 화두는 문화상대주의 였다. 일반사회 선생님인 노의환 쌤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미모토사에 온 아멜리가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문화, 그 일본의 문화를 비판하는 벨기에 여성의 글이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쁠 수 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서양의 문화를 비판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상당히 탁월한 지적이었다. 밖에서 안을 볼 필요도 있지만 안에서 밖을 볼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뇌리 속에 맴도는 것은 과연 문화상대주의가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화제국주의, 자문화 중심주의, 문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타 문화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를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학대를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성에 대한 할레, 중국의 전족, 인도의 수티(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같이 죽이는 풍습) 등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노의환 쌤과 차안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를 볼 때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해치는 문화는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노의환쌤도 약간 긍정적인 생각을 제시했다. 우리의 집단주의가 개인을 억압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편,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해서 노의환 쌤이 계속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집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속에서 나타나는 인식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두발규제 복장규제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두발자유, 복장의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촛불시위까지 하고, 학교에서 집단행동까지 하는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 전체를 위해서 두발, 복장의 규제는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마땅히 개인의 자유는 확대 되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확대가 긍정적인 면만을 보이는 것은 또한 아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주제들만 가지고 대화를 한 것은 아니다. 머리를 식힐겸 흥미로운 이야기도 했다. 후부키와 아멜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던 중에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포기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며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요즘 새로 들어온 신세대 여성들은 쎄련된 외모에 깔끔한 일처리를 한다. 이를 보고 살아 남기 위해서 전사가 되어 높은 직책에 오른 미혼여성은 신세대 여성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갖게 된다. 마치 여자 교장이 여선생님들에게 더 무섭듯이, 여자 상관이 여성에게는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미혼 여성분들이 자신들이 사회문제이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여쌤들에게 속으로 한마디 했다. '쌤들은 사회 문제가 아닙니다. -묵사마 어록 제1장-'
이어서 나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성우월의식, 성리학적 의식에 순응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 어느덧 '다락'모임을 정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조그마한 책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한 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다음 시간에는 유봉학 교수의 "한국문화와 역사의식"이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하기로 했다. 무거운 주제로 보이지만, 상당히 쉬운 글로 대중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이 씌여졌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읽을 꺼리가 있어 더욱 우리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