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과 제왕 2 - 중원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이덕일의 주요 글쓰기 소재는 웅장한 한민족과 비운의 죽음을 이룬자들에 대한 장송곡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비통함과 웅대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기획한 '장군과 제왕 1,2'도 이러한 그의 글쓰기 소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구려계 당나라 사람으로 살았던 고선지 장군의 비운의 죽음을 소재로 1편을 썼으며, 그에 이어 고구려계 당나라 사람이기를 거부하며, 당당히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이정기의 치청왕국을 소재로 2권을 썼다. 1권에 비해서 2권에서는 이정기와 그의 치청왕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 이정기 없는 이정기 평전의 비극을 모면하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휘달렸던 고구려후예들의 웅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 이정기는 진정 고구려인이었을까?

  이덕일은 '장국과 제왕2'의 곳곳에서 이정기를 고구려를 부활시키려는 웅대한 의지가 있었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고선지가 당나라 사람이 되려 했으며, 당나라 현종의 부당한 죽음의 명령도 달게 받는 당나라의 충신으로 그려진 반면, 이정기는 장군의 길을 걷지 않고 제왕의 길을 걷는다. 웅대한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는 이정기와 그를 따르는 20만 여명의 고구려의 후예들은 치청제국을 세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발해의 피지배층이 말갈족이라면, 치청제국의 피지배층은 한족이라고 말한다. 치청제국과 발해의 공통점은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과연 이정기는 스스로를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여러대에 걸치면서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재미교포 2세 골프선수 중에서도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생각하는 행동과 말을해서 신문지상에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는데, 더구나 나라마져 망해버린 고구려의 유민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었을까? 이정기의 아들 이납은 나라이름을 '고구려'가 아닌, '대제'로 정하지 않았던가? 이정기 스스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힌 글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스스로를 고구려인으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고구려계 당나라 사람으로 생각했는지는 전적으로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가 고구려인으로서의 뜨거운 피를 느끼고 있었으리라 믿게 된다.

 

2. 역사속에서 배우는 교훈

  역사를 배우다 보면,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이 책 또한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첫번째 교훈은 외세를 끌어들이면 그 댓가를 톡톡히 보게 된다는 점이다. 당나라 숙종은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위구르군을 끌어들인다. 그 댓가로 위구르군이 철저히 장안을 약탈하도록 허용한다. 외세를 끌어들인 댓가를 무능한 지배층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당의 백성들이 겪어야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를 끌어들였다가, 명군의 횡포에 조선 백성이 약탈과 살육을 당해야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역사로 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부의 일에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인다면, 참혹한 댓가가 뒤따른다는 점을 지금의 수구세력들을 알아야할 것이다. P집회에 나갈때마다 성조기도 모자라서 이스라엘 국기까지 가지고 나가는 불쌍한 수구들은 언제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까?

  일을 이루려면 속도전에서 승리해야한다. 머리에 먹물을 들인 선비들하고는 일을 같이할 수 없다고 유응부가 말했던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유응부의 이 한탄스러운 말은 일을 결정하고 그 일을 이루는데 얼마나 속도가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당나라와 이정기 왕국과의 대결에서 당나라는 내부의 반란으로 스스로 몰락할 수 있었다. 주차가 당나라 덕종에게 반기를 들어 대진을 건국했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는 덕종을 재빠르게 추격했다면 당나라는 멸망하고, 대진의 생명도 연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에 취해서 때를 놓치고, 결국 반격을 허용하게 된다. 마치 안녹산이 당나라의 수도를 목전에 두고, 눈병으로 인해서 당현종 추격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 못해서, 아들의 손에 죽는 비운을 당한 것도 어쩌면 눈병으로 인해서 속도에서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명이 주어졌을때, 이를 실행해자. 천명의 때를 잃어버린다면, 그화가 다시 자신에게로 향한다고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3. 아쉬운점.

  이덕일은 다작을하고 있다. 그의 역사 서술에서 너무도 뻔한 그의 스토리 전개가 읽혀져서 박진감보다는 식상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그의 다작이 불러온 역효과일 것이다. 이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한국사보다 일천한 나에게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중에서 너무도 많은 인물들이 이를 힘들게 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역사를, 그것도 당나라 현종을 중심으로한 당나라 덕종까지의 역사를 이렇게 세세하게 알게 된 점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팟캐스트 '역사를 찾아서'에서 이정기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문에 이정기에 대해서 왼만큼은 잘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이정기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일천한 것이었는지를 새삼깨달았다. 망국의 한을 안은 고구려의 후예들이 겪어야 했을 비애를 생각하며 이 책을 덮는다. 한사람은 장군의 길을 걸으면서 당나라인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그리고는 비참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당나라인임을 인정받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사람은 당나라에 굽신거리며 살기를 거부했다. 당당히 독립왕국을 건설하여 제왕의 길을 걸으려했다. 그리고 4대 6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당당히 하나의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정기 왕국은 멸망의 길을 걷는다. 그와함께 고구려 후예의 자취도 사라진다. 장군의 길을 걸었던 고선지와 제왕의 길을 걸었던 이정기의 역사는 해외교포들이 걸어야할 길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