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한동안 300~600페이지를 넘다드는 책들을 읽었다. 너무도 두꺼운 책들을 읽다보면 너무도 먼길을 항해하는 피로감이 밀려온다. 이제 가볍게 나들이를 갈 수 있는 200페이지 내외의 책을 꺼내들었다. 과연 연휴기간 동안 들고다니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를 놀라게하는 새로운 지식의 보고였다. 과연 무엇이 나를 그토록 놀라게 했을까?

 

1. 나무에 대한 상식을 뒤집다.

 보통 나무는 살아있거나 죽어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나무를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부분은 껍질에서 안쪽으로 10cm 정도밖에 안되며, 모두 살아있는 것은 껍질 주위 1cm 밖에 되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고목의 껍질은 살아있는데, 고목의 안은 썩어가는 것을 흔히본다. 이를 살리려 고목안을 연기로 소독하고 시멘트로 메우기도 한다. 이러한 치료법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책을 통해서 그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아는 만큼 이해가 되는 법이다.

  회양목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보통 나무도장을 만들때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회양목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보던 정원수였다. 책속의 사진을 통해서 회양목을 확인하고 자세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회양목을 찾았다. 과연 학교에서, 정원에서 흔히보던 작달막한 나무였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마련이다. 이름없는 나무에서 회양목은 의미있는 나무로 다가왔다.

 

2. 나무도 사랑하고 슬퍼하며 갈등을 겪는다.

  연리지와 비익조를 아는가? 비익조가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한쌍이 같이 몸을 의지해야 날수 있다는 상상의 새라면, 연리지는 서로 사랑하여 두 나무가 하나가되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무이다. 가지가 뭍을 경우, 연리지이고, 몸통이 붙을 경우, 연리목이된다. 이를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으로 의인화한다.

  갈등이라는 말을 아는가? 갈은 칡을 뜻하고, 등은 등나무를 뜻한다. 다른 나무를 타고 혹은 감고 올라가서 태양빛을 독점하고, 다른 나무를 말라죽게하는 나무이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모습과 너무도 유사하다. 단순히 갈등의 한자를 해석하여 뜻을 이해하던 것이, 나무의 세계를 이해하고 살펴보니,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탁월한 단어라는 생각이든다. 또한가지 겨우살이를 아는가? 다른 나무에 붙어서 살면서 다른 나무의 수액과 양분을 빼앗아 먹는 기생충 나무이다. 그 나무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나무는 무척 고통스럽다. 인간사에서 보이는 모습이 나무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씁쓸하다.

  나무도 굶주리고 슬퍼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동물원의 동물들이 광활한 야생의 세계에서 벗어나, 좁디좁은 우리안에서 슬프게 살아야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식물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렇다. 분재를 당한 식물은 너무도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당신은 나무를 사랑한다며 분재하지만, 나무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란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고로쇠 수액을 먹은 적이 있는가? 이 또한 나무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다. 봄이 다가오자 자신이 비축한 양분을 올려보내 고로쇠나무를 생동하게 하려했으나 인간은 이를 뽑아 마셔버린다. 고로쇠 나무에게는 인간이 흡혈귀로 보일 것이다.

 

3. 옥토끼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가 아니다.

  어제 가족이 속리산 법주사에 갔다. 막내딸이 계수나무 잎이라며 잎을 들어 사탕냄새가 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달속에 사는 계수나무를 내 눈으로 직접본것이다. 막내딸이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계수나무잎 냄새를 맡아보란다. 솜사탕냄새, 꿀냄새가 났다. 우리가족은 막내에게 계수나무에 대해서 배웠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법주사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달에 있는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계수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옥토끼와 관련이 있을 수 없다. 계피나무, 육계나무도, 월계수도 계수나무가 아니다. 계수나무는 정원수로 심는 '목서'이다. 하마터면 잘못된 지식으로 자신을 뽑낼 뻔한 잘못을 이책이 막아주었다.

 

4. 나무에 얽히 역사를 바로 잡아주다.

  교과서에서 매향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단순히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올때를 대비해서 그대 사용한 향나무를 바닷가에 뭍는 행사라고 매향을 이해했다. 그런데, 향나무를 뭍으면서 고려인들은 향나무, 소나무, 참나무를 뭍어 질좋은 침향을 얻길 바랬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향나무나 소나무를 아무리 오래 묻어둔들 질좋은 침향이 될리가 없다. 교과서에서 피상적으로 알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고증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생각하는가? 보통 역사적 스토리와 등장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이 당시 기록과 부합하는가를 주로 따진다. 그런데 사극에 등장하는 나무가 과연 그시대 그 장소에 있었던 나무인지는 살펴보았는가? 플라타너스나 일본의 금송이 사극에 등장한다면 이는 엄청난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극을 보아왔다. 저자는 한발자국 더 나가서 문화재 주변에 있는 나무가 과연 그 문화재와 어울리는가도 질문한다. 임진왜란시기에 활약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문화재 옆에 일본의 나무가 있다던가? 도산서원에 일본의 금송이 있다면 과연 이를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있는가? 아는 만큼 보이는데, 알지못하니 눈뜬 장님이었다. 우리는.....

 

5. 그러나 동의 못하는 것들...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의 제작지역이 반드시 한반도 라고 단정할 수 없다. 라는 말을 한국학자의 글을 통해서 들으리라고 생각해보았는가? 박상진교수는 나무전문가 답게 목조반가사유상이 한반도와 일본에 서식하는 '소나무'이기에 그것만으로는 한반도에서 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탁월한 지적을 한다. 그러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비교해 본다면 한반도에서 같은 장인이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고 싶다. 나무만 본다면 박상진 교수의 지적이 일리가 있어보이지만, 나무 이외의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본다면,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은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박상진교수는 '훈도시 차림의 일본병사들'이라는 표현을 임진왜란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다. 물론 농담조의 표현이라고도 볼수도 있지만, 당시 일본병사는 얼굴은 물론, 손목까지 보호하는 갑옷을 입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거북선은 일본배를 당파를 사용해서 격파했을까? 박상진 교수는 나무전문가답게 배에 사용된 나무의 재질을 설명하며 치밀하게 논증한다. 즉 일본배가 편백나무를 주로 사용하는데 반해서, 우리의 판옥선은 단단한 소나무를 사용하고, 중요부에는 아주 단단한 참나무를 사용해서 배를 만들었기에 충분히 당파로 일본배를 침볼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도 물론 이에 동조한다. 그러나 거북선을 연구한 학자들 중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이 꾀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료를 찾아보고 결론을 내려야겠다.

 

  오랜만에 가벼우면서도 즐겁게 읽히고, 깊은 여운이 남는 책을 접했다.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넓어진 느낌이다. 이제 문화재답사를 가면서, 사극을 보면서 보다 많은 나무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 나무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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