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 - 바이킹에서 이케아까지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시리즈
김민주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한때 우리의 화두는 '유럽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자'였다. 그런데, 그 유럽에서도 중심부와 주변부가 있었다. 서유럽이 그 중심에 있고 동유럽과 북유럽이 그 주변에 있었다. 이제는 서유럽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스쳐 지나갈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미처 몰랐던 북유럽의 역사를 50개의 키워드로 풀어쓰고 있었다. 과연 북유럽은 어떠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을까?

 

1. 민족주의를 생각하게 한 '장 시벨리우스'

  "비평가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라. 비평가를 기리기 위한 조각상은 세워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유병한 장 시벨리우스! 그는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1865년에 태어났다. 핀란드의 낭만적 민족주의 작곡가인 그는 '핀란디아'를 작곡했고 수많은 핀란드인들의 가슴에 핀란드인이라는 민족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핀란드 정부는 그의 작품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가 살고 있는 저택 주변에서는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못하게 했으며, 비행기도 날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일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장 시벨리우스의 아버지는 핀란드계 군의관이지만, 어머니는 스웨덴계였다. 그의 부모가 그를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보냈기 때문에 핀란드의 문화를 접하면서 그는 낭만적 민족주의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장 시벨리우스의 몸에는 핀란드의 피와 스웨덴의 피가 섞여있다. 혈통으로 따진다면 그는 완벽한 핀란드인이라고 볼 수 없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허상일까? 낭만적 민족주의 작곡가 장시벨리우스를 혈통으로 그를 핀란드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도 우스운 일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민족이란 사피엔스의 상상의 창작물이니까.... 오히려 문화적으로 그가 어떠한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규정지었고, 어느 나라 문화를 더 사랑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사피엔스가 호모하빌리스를 비롯해서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고도의 거짓말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말한다면, 사피엔스의 상상의 무기인 '민족'도 버릴 수없는 무기라는 점이다. 그러하기에 민족이라는 개념을 버릴 수 없다. 상상의 무기를 버린 사피엔스를, 상상의 무기를 버리지 않은 사피엔스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인간의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키에르케고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쇠렌 키에르케고르! 그는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할 너무도 무거운 짊을 한꺼번에 짊어진 사람이다. 쇠렌 키에르케로그의 성인 '키에르케고르'는 '공동묘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원래 어버지집의 하녀였다. 또한 아버지는 임신한 하녀와 재혼을 한 것이다. 당시 교회법에서 재홈을 금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가수성 많은 키에르케고르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신을 저주했음을 고백했고, 자신의 자녀들이 일찍죽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아들에게 고백했다. 키에르케고르가 이러한 원죄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은 너무도 낭만적인 상상이다. 이브의 원죄로 인해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쫒겨났으며, 그래서 인류는 불행해졌고, 원죄를 속죄해야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러한 원죄는 인간의 삶을 너무도 크게 짖누른다. 이러한 원죄에 더해져서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짖지도 않은 원죄를 짊어져야했다. 결혼도 파국을 맞고, 교회를 비판하며 논쟁으로 삶을 살다가 거리에서 쓰러져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가 아닐지라도, 부모에 의해서 짊어지고 가야하는 원죄! 부모의 잘못으로 짊어져야하는 원죄의 가장 커다란 무게를 키에르케고르는 짊어져야했다. 이 원죄를 스스로 벗어던지지 못했기에 키에르케고르는 행복할 수 없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주인이 될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3.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행복한 가정을 꿈꾼 칼 라손

  너무도 강한 속박은 용수철이 튀어오르는 것 처럼 사람을 반대 방향으로 가게한다. 행복한 자신의 가정을 그림으로 그려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의 행복을 꿈꾸게 만들었던 칼 라손! 그의 어버지는 배에서 석탄을 때거나 곡물을 운반하는 잡역을 했으며, 주폭을 가족에게 일삼았다. 빈민가의 지겨운 삶을 살았던 그였기에 따뜻하고 아늑한 가정의 삶을 강하게 희구했나보다. 그는 '해가 비치는 집'이라는 제목의 화집을 발간해서 독일에서 3개월동안 4만부를 팔았다. 산업혁명의 전개되면서 전체의 부는 증가했으나, 사회불평등을 심화되었고, 역설적으로 인간은 불행해졌다. 그중에 한원인이 가정의 해체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는 조루주바타유의 말처럼,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아늑하면서도 따뜻한 가정을 많은 사람들이 욕망했다.

  세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전체적인 부를 증가시켰으나, 과연 인류를 행복하게 했는지는 생각해보아야한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하는지 칼 라손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이 책은 북유럽의 역사를 너무도 소략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나 북유럽의 현재와 북유럽이 가지는 의미를 이처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더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 북유럽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