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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근현대사 -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최병욱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쓴 베트남사'와 '베트남사'를 읽고서 베트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특히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베트남 근현대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서가를 찾아 헤매다가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베트남 근현대사'를 보게 되었다. 목차를 보니 연대기적 서술방식이아니라, 주제중심의 서술이었다. 기존에 읽었던 연대기적 서술 방식의 베트남사와는 분명 달라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의 역사와 우리와 너무도 비슷하지만, 너무도 대비된다는 사실을 새삼알게되었다. 그럼, 한국과 베트남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정리해볼 까한다.
우선, 이책은 베트남의 근대사에서 부터시작한다. 그 시작은 응우옌왕조의 최고 공신 보 따인에서 부터 시작된다. "나를 불태워라"며 자신을 희생해서 북진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서 통일 베트남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것이 베트남 근대의 시작이다. 보통 서양세력의 충격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과 베트남과의 차이이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물론, 1880년대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강력한 설득력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밖에 중국은 아편전쟁을, 일본은 미국의 페리제독의 포함외교를 강력한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베트남식 근대화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베트남 근대의 시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근대보다 확실히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럼, 공통점은 없는가? 중국의 오른쪽과 왼쪽 팔뚝에 해당된는 곳에 자리잡은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베트남이 황제를 칭했다면, 우리는 원간섭기 이후, 중국의 제후국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데 만족해했다. 두나라가 중국의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달랐던 것이다. 이러한 유교문화의 영향 속에서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방식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띈다. 우리나라에 의병운동에 해당되는 운동이 베트남의 근왕운동이다. 왕을 중심으로 외세를 배격하는 운동을 처절하게 추진한 것은 비슷하지만, 그속에서도 다른점이 너무도 많다. 베트남의 황제들은 수도를 탈출하면서까지 항불항전을 독려하였으며, 프랑스에 의해서 황제가된 바오다이 조차도, "식민지의 황제로 사느니 독립국의 평민으로 살겠다."며 절대독립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대한제국의 황실은 어떠하였는가? 왕자 이강을 제외하고서는 일제에 제대로된 저항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친왕의 경우에는 일제의 볼모로 사는 것에 만족해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철저한 항일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대한제국과 응우옌왕조의 질적 차이이다.
한편, 우리에게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의 약점과 강점을 알고, 서로의 약점을 서로의 강점으로 보충하려한, 비밀결사 '신민회'가 있다. 그리고 신민회의 독립전쟁방략은 이후 독립운동 방략에 계승되었다. 일제에 대항할 강력한 독립군을 기르고, 일제가 타국과 싸우는 최적의 시기에 독립전쟁을 일으킨다는 전략이 '독립전쟁방략'이고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방략과 괴를 같이한다. 그리고 나를 되찾고나서는 '공화제'국가를 세우려했다.
그럼, 베트남에는 누가 있을까? 바로 판보이쩌우가 있다. 판보이쩌우는 근왕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떠 '입헌군주제'를 추구하였고,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공화제'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까지 추진하려했다. 그러니 호치민 보다 판보이쩌우를 베트남 근대사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판보이쩌우가 가택연금으로 그의 정치적 활동이 마감된 상황속에서 동향 친구의 아들인 호치민이 그 바톤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일제가 패방하려는 결정적 순간에 전국적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달성한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하려했던 독수리 작전을 연상케한다. 우리의 독립전쟁방략이 계획단계에서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되었다면, 베트남은 결정적 순간을 잘이용하여 스스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그후 30년 동안의 1,2,3차 인도차이나전쟁, 즉 베트남전쟁을 한다. 우리가 외침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우리 조선왕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제외하고 전후 200년 동안 이렇다할 외침이 없었다. 실로 엄살이다. 그런데 베트남은 그 역사속에서 수많은 외침에 시달렸다. 시련은 베트남을 단련시켰다.
반면 우리는 분단되었다. 베트남이 전쟁이라는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아직껏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베트남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의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베트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시켜준다.
도이모이정책을 추진하는 베트남을 보면서, 이제 우리가 베트남의 쇄신에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어야할 시기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