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암 송시열에 대해서는 많이 그 이름을 들어보았다. 그러나 그에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를 대학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정작 그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서인, 노론에의해서 스승으로 모셔지는 대학자라고 하지만, 그는 왜? 우리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까? 특히 하회마을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경모의 대상이 되는데, 왜? 대전의 송시열과 관계된 유적지는 그러하지 못할까?

 

이 책은 이러한 나의 의문을 잘 풀어주었다. 송시열 그는 만들어진 성인이었다.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아야할 성인의 모습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군자는 화하지만은 같아지지 않아야하거늘 그는 화하지 못했고, 김석주와 같은 권력실세와 같아졌다.

 

학자라면, 자신의 주장이 있어야했다. 자신만의 독창적 주장을 해야하는 것이 학자이거늘, 그는 주자의 해석만을 쫒았다. 오히려 주자와 다른 주장을 한다하여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대학자가 아니었다. 남의 주장만 반복해서 전하는 이른바 3류학자였다. 자신의 독창적 주장을 하지 못하는 앵무새 학자였다.

 

결국, 그는 정권의 승리자인 서인, 노론의 스승이었다. 그러하기에 노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권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가 성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국사교과서에서 효종과 함께 북벌을 추진하려다가 효종의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있다.

 

이 책은 이덕일의 탁월한 안목과, 과거의 허상에 대한 도전이 돋보이는 책이다. 송시열에게 씌여진 가면을 벗겨가면서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였다. '조선왕조 실록'에 3천번이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는 노론이 300년 정권을 누렸다. 그의 가면을 벗기는 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한국사 교과서에는 그가 효종과 북벌을 위해서 노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대학자로 묘사되어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