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박노자에 대한 나의 인상은 좋지 않았다. 외국인이면서 한국국적을 얻었고, 자유로운 외부자이면서 내부자로서 마음껏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그였기에 우리의 현실을 또다른 오리엔탈리즘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안중근의사를 인종주의에 매몰되었던 것처럼 쓴 글을 읽었을 때! 더이상 박노자의 글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라는 책이 눈에 뛰었다. '승려는 왕에게 절해야 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주제에서 부터, '화랑들이 변태여서 부끄러운가'는 도발적인 주제들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잘하는 박노자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이를 자신의 글로 녹여냈다. 넓은 지식과 자신의 눈으로 예리한 매쓰를 들이대는 그의 글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1부에서 동아시아의 휴머니즘의 계보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회주의 소련에서 자라난 박노자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능력에 따라 일을 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 그런한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마르크스! 그리고 박노자는 이러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절대권력에 저항했던 중국의 승려 혜원, 경쟁은 진보의 어머니라는 자신의 견해를 취소하고 유교의 균무빈, 화무과 사상만이 세계를 서구식 폭력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양계초, 사회주의적 냄새가 나는 초기 불교 경전등을 통해서, 동아시아에서의 가능성을 밝혀 놓았다. 박노자는 현대의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이상화된 공산사회, 즉, 능력에 따라 일을 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의 오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이러한 이상을 받았다.

2부에서는 백인에 대한 추종에 대한 비판과, 미국에 대한 사대적주의적 사고관, 절대 권력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한국도 여전히 탈피하지 못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메이지 모델'이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극단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라는 지적은 뼈아팟다. 일본을 증오하지만, 일본을 모델로 삼아서 경제개발을 시도했다는 일각에서의 지적과 삼성이 일본의 모대기업을 모델로 해서 발전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는 우리 한국의 학교 현실이 자신이 연구했던 괴뢰 만주국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친일파가 집권하고 한국을 일본을 모델로 이끌었기에, 한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을 따라가게 되었고, 개인이 없고 국가와 조직만이 있는 일본의 병폐를 한국도 갖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이것을 깨버리지 않는 인상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윗사람에 대한 맹종의 문화! 우리 사회 곳곳에 병폐로 스며든 이것을 우리 주변에서 부터 깨버리자!

 3부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서 새로운 면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친일파였다가, 을사늑약 이후에, 항일투사로 변신한 이준열사, '애국' 없는 애국계몽운동, 잊혀진 영웅 최재형, 김일성에 대한 평가,  생시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보다 죽음으로 이루어낸 것이 더 많았는 민영환! 등등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나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고종이 즐긴 전등이나 자동차, 커피와 달리 '근대'라는 것은 국가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절대군주가 외국의 후견인들에게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라는 뼈아픈 지적이다. 고종을 이태진교수와 그의 제자들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고종이 가졌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지 못한다. 그리고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도 나의 수준에 맞는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노자는 바로 그 지적을 해주었다. 근대라는 것은 통채로 살수없는 것인데, 근대를 통채로 사려했던 고종의 어리석음! 고물 화물선을 바가지써가며 샀던 고종의 어리석음은,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4부에서는 한국사회의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죽인여자,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 민족이라는 경계선, 신여성의 명암 등등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이 상당부분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마초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친구들 중에서도 남성우월적이고 성추행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이가 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이 멀기만 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했다.

5부에서는 피를 먹고 자란 일본신문, 티벳불교에 대한 서구인의 또다른 편견과 미국의 의도, 처음 알게도니 예로센코, 중러 군사훈련의 목적 등의 소재가 소개되었다. 그중 나의 관심을 끈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지위를 획득했다기보다는 '유생토호'라는 전근대적 신분을 '자본가'라는 근대적 신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라는 한국 재벌에 대한 날카로운 박노자의 지적이다. 일본에 비해서, 아니 서구에 비해서 존경은 커녕, 비난을 받는 한국의 재벌들! 그들이 왜? 존경을 받을 수 없는지를 날카롭게 박노자는 지적하고 있다. 일부 신문기자나 필자들은 기업인을 존경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비난한다. 한국경제를 먹여살리는 것이 이들인데, 너무하지 않냐는 비난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지위에 올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가능했고, 한국의 노동자의 땀 덕분에 가능했다. 그들이 과연 서구의 존경받는 기업인과 같은 노빌레스오빌리쥐를 실천했는지 나는 묻고 싶다.

 

책장을 덮었다. 박노자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박노자의 한계도 분명하다. 소련이라는 파쇼적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랐고, 유대계 혼혈인 집안에서 자랐기에 권력, 권위, 인종적 편경, 남성우월주의 등등의 사회적 억압구조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저항의식이 돋보이지만, 그는 외부자이기에 우리의 내면을 깊이있게 보기에는 한계가분명있다. 한예로, 장준하의 반공을 지적하며, 어떠한 통일도 선이라고 말했던 장준하의 모습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독재와 맞서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던 그의 최종적 도달점을 아울러 지적했다면, 그가 외부에서 온사람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노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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