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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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흡연하지 않습니다. 그저팔 뿐이지요. 우리는 그 권리를 젊은이, 가난한 사람, 흑인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둡니다."-31쪽


  담배회사 알 제이 레이놀드의 광고모델로 활동하던 데이비츠 괴릴츠가 흡연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해서 사장이 한 답변이다. 담배를 피는 당신은 알 제이 레이놀드 사장이 말한 부류 중에서 어느 부류에 해당되는가? 젊은이인가? 가난한 사람인가? 흑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멍청한 사람인가? 당신에게 담배를 팔면서도 담배회사 사장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라는 책에서 김승섭 교수는 담배를 팔기 위해서 담배회사들이 펼치는 사악한 저주가 묻어있는 판촉행위를 소개한다. 저소득층 여성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푸드 스탬프에 한갑당 25센트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그녀들에게 자신은 돈을 절약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담배 판촉을 늘리려는 속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최저 소득 위에 있는 여성보다 저소득층 여성이 1.72배 높은 흡연율을 기록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하루 하루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사회적 약자들에게 발암물질을 팔기 위해서 최소한의 양심마져 던져버린다. 

  그들의 사악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담배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지만,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연기 없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상상되는가? 금연 운동 슬로건이 아니다. 연기나는 연초담배 연기 없는 전자담배를 피우자는 슬로건이다. 2017년 필립 모리스는 '연기 없는 세상' 재단을 만들고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한다. 담배회사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과학자들을 어떻게 섭외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하던 데렉 야크를 재단 이사장에 앉혔다. 전자 담배가 연초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자담배는 연초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주장을 하며 전자담배 판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지식을 생산하며 대중을 멍청한 사람으로 남겨두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질서를 내면화합니다. 그 사회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름답다고 뛰어나다고 규정하는 것들을 그 사회 전체의 표준이 되곤합니다."-174쪽

  

  사회적 약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있다. 오히려 지식권력자들이 생산한 질서를 내면화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아닌데도 이토 히로부미를 탁월한 인재라 칭찬하는 친일적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하는 정치인이 있는 것도,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 진보 정당을 빨갱이라고 욕하며 보수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지식을 생산할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돈에 혈안이 되어 지식권력을 장악한 그들에게 우리들은 어떻게 저항해야할까? 담배는 해롭다는 진리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그들을 멍청하다고 말해야할까? 담배회사에 유리한 근거를 들이대며 담배를 끊는 것이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해야만 할까? 이에 대한 이해를 김승섭 교수가 흑사병이 유행할 당시의 어리석은 유럽인의 행태를 설명하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잘못된 광신도들은 조롱하기란 쉬운 일이다. (중략) 그러나 이들은 비난하기에 앞서 이 고행단들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공포를 기억해야만 한다."-220쪽

  

  거대한 재앙 앞에 나약한 도시민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비난은 쉽지만 대처는 힘들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야하는 가난한 노동자에게 가장 값싼 휴식을 제공하는 것은 한까치의 담배일 수 있다. 사회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담배회사의 사악한 판촉을 막을 수 없다. 

  그럼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김승섭 교수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누군가는 사회적 약자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한 지식,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한 지식을 생산해야한다. 그러한 지식을 생산해야만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진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에서 김승섭 교수는 자신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 조사를 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리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와 조사, 글쓰기가 단번에 우리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물방울이 모여서 큰강을 이루듯이, 김승섭 교수가 생산한 지식이 우리 사회를 바로보는 안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땅의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함께 노력하여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이다. 물론, 지식권력을 가진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힘든 그 싸움이 외롭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는 깨어있는 동료 시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ps. 김승섭 교수의 의견을 대부분 존중한다. 그러나 다음의 글에는 동의할 수 없다. 


   "OECD 국가 중 다른 인종에게 가장 적대적인 한국인들이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가해 행위가 문제로 인지되지 않을 만큼 한국사회에 인종차별이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177쪽


  우리사회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일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유튜브 'Q언니'에서 세계를 두르두르 다녀본 Q언니는 유럽 거리에서 백인남성에게 얼굴에 침을 맞았다. 그때 그녀는 무서워서 반항할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폭행을 당하며 "고홈 옐로우 멍키" 소리를 들어야하는 우리들이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까? 영국의 경우 유색인종이 거주지에서 경찰에 범죄 신고를 해도 그들은 출동조차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보다 더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있는가? 겉으로는 인종차별적이지 않은 척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종차별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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