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박물관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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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대했던 책이 아닙니다. 책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날벼락 같은 메시지가 왔다. 독서 모임에서 책을 추천한 분이 김동식 소설 인생 박물관첫편을 읽고 실망스럽다며 보낸 메시지이다. 벌써 책을 구입했는데, 책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답글을 보내지 않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읽고 나서 선생님의 메시지에 답하리라....

김동식 작가는 전문 창작 교육을 받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다. 인터넷 사진 속의 얼굴도 노동자의 모습이 물씬 풍겼다. 글을 읽으면서 날것의 느낌을 많이 느꼈다. 김동식 작가는 무서운 이야기만 썼으나, 이번 단편소설집은 따뜻한 이야기들을 골라 묶었다. 김동식 작품의 따스함에 녹아 있는 날것의 모습을 살펴보자.

 

'인생 박물관'에 실려있는 소설의 특징은 소재면에서 SF나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들이 많다는 점이다. '찰나를 사는 남자', '커튼 너머의 세상',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등등 상당수의 작품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에서 소재를 찾기보다는 평행 우주론, 저승사자, 천사, 다중인격 등등의 판타지나 전설의 고향에서 볼 법한 소재들이었다. 날것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물론, 그 날것의 냄새가 싫지는 않았다. 지친 일상을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여기저기에서 헐리우드의 SF 영화의 냄새도 풍겼다. 헐리우드는 우리 영화처럼 현실을 그리지 못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흥행이 된다는 상업적 공식과 초거대 자본의 힘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히어로물을 많이 찍어낸다. 그렇게 생산된 헐리우드 영화는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면을 직면하지 못한다. 설령 어두운 면이 있다할지라도 히어로가 나타나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망상을 심어준다.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헐리우드 영화의 씁쓸한 냄새가 김동식의 소설에서도 풍겼다.

물론, 김동식의 '인생 박물관'만으로 그의 소설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현실의 괴로움도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한다는 집착이 묻어났다. 작품에 등장하는 저승사자, 악마, 천사, 초현실적 설정이 불행한 현실을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그 속에서 씁쓸함도 밀려왔다. 그러한 '인생 박물관' 식의 고통해결이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메시아는 기다릴때만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동식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나레이터가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내', '남자', '중년의 남성', '죄인 아무개 지구인' 등등의 호칭으로 인물들을 부른다. 또한 배경 묘사가 거의 없다. 철저히 인물의 대화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상황 파악이 힘겹다. 작품 중에서 '작은 눈사람'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실망감이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원전의 어느 곳에서 어떤 문제로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을 했어야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소설에는 긴박감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너무도 거친 소설이다.

박완서 작가에게 어느 소설가가 평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는 소설을 읽다가 원고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이름 없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라는 부분에서 박완서 작가는 분노했다. 어디 이름 없는 꽃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식물도감을 찾아보고 꽃의 이름을 찾아내어 소설에 적었어야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박완서 작가는 했다. 김동식 작가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작은 눈사람'이라는 소설을 쓰려면 핵발전소에 대해서, 핵사고에 대해서 공부를 했어야했다. 철저한 자료조사 없이 글재주로 소설을 쓰면 그 허술함이 금방 드러난다. 이름 없는 꽃이 없듯이, 이름 없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작가라면 소설의 주인공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따스함을 보여야했다. 김동식은 날것의 냄새를 거칠음이 아니라, 신선함으로 느끼도록 세심한 노력을 해야한다.

 

책장을 덮었다. 날것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을 읽고 허술한 묘사에 실망도했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보다는 따뜻한 연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김동식의 '인생 박물관'이 그 허기를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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