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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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국이 있다. 기록도 주변국에 의해서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는 그런 제국도 있다. 바로 유목민족들이 세운 제국이 기록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신기루와 같은 제국들이다. 그래서 이희철의 '튀르크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 책에는 흉노 제국에서부터 돌궐제국, 위구르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광대한 역사를 서술했다.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 제국은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제국이다. 그러하기에 이들 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 보고 싶었다. 그들은 어찌하여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서는 홀연히 사라졌을까?

 


  초원의 최강자 흉노 제국은 중국을 괴롭히며 세력을 과시한다. 중국 한나라는 화평을 위해서 공주를 흉노 선우의 아내로 바친다. 그녀들을 화번공주라한다. 매년 비단을 비롯한 수많은 물품이 한나라에서 흉노로 바쳐진다. 이러한 모습은 돌궐제국과 위구르제국으로 이어진다. 

  강대한 제국도 내부에서 시작된 균열에 의해서 순식간에 무너진다. 흉노제국은 한무제의 공격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서흉노와 동흉노로 분열되더니, 동흉노는 다시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열되었다. 

  흉노의 뒤를 이어 제국을 건설한 돌궐제국도 제1 돌궐제국의 경우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열하고 내부 부족의 반란으로 멸망했다. 물론, 수나라 장손성이 돌궐의 내부 분열을 획책한 면이 있다. 제2 돌궐 제국도 중국의 이간책과 유목부족의 이탈과 반란으로 세력이 약화되고 결국은 멸망의 길을 걷는다. 

  위구르 제국 또한 지배 씨족 간의 갈등으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 한번 제국이 세워지면 5백년 동안 지속되는 것이 우리 역사의 일반적인 모습인데 반해서 튀르크 계열의 유목제국은 흉노 제국을 제외하고서는 우리처럼 장기간 국가를 유지한 경우가 드물다. 물론 중국의 내부 분열책이 작동하기도 했지만, 외부의 분열책에 너무도 쉽게 분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목제국의 태생적 한계로 때문으로 보인다. 

  유목제국의 태생적 한계란 무엇일까? 유목민이 세운 제국이기에 이동할 수밖에 없다. 잦은 이동은 문화를 축적하기가 농경민족보다 어렵다. 더욱이 유목민족을 하나로 묶어줄 민족적 자각을 이루기가 너무도 힘들다. 부족단위로 이동하며 생활하기에 민족의식보다는 부족의식이 강하고, 국가의 이익보다는 부족의 이익이 더 중요시된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가 중국의 분열책에 쉽게 균열되는 이유이다. 

  그래서일까? 튀르크 계열의 유목민들은 돌궐문자와 위구르문제를 만들며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노력하기도했다. 특히, 위구르족은 정착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제국은 멸망했다. 서쪽으로 이동하여 세운 셀주크 제국도 짧은 대제국 시기를 지나서 여러 셀주크국으로 분열한다. 

  이러한 유목제국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며 600년 대제국이 건설된다. 바로 오스만 제국이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가 당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돌궐계 유목민의 도움 때문이다. 탈라스전투의 승리로 이슬람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아아시아 내류으로 전파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 튀르크 세계에 이슬람교가 퍼진다. 슬람교를 받아들인 튀르크인들은 오스만 제국 시기에 화려한 제국의 꽃을 피운다. 서아시아에 정착한 튀르크족은 티무르제국의 공격으로 한때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한다. 이슬람교로 제국을 하나로 묶고, 탁월한 그들의 전투력으로 서아시아를 비롯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동유럽을 위협한다. 

  강대한 세계 제국 오스만이 쇠퇴한 원인은 무엇일까? 학자마다 다양한 원인을 제시하겠지만, 나는 제국의 전성기에 쇠퇴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 쇠퇴의 씨앗은 무엇일까?

  첫째, 제국의 강력한 군대 예니체리가 쇠퇴의 씨앗이었다. 씨앗을 뿌리면서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 알 수 없다. 햇빛과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며 탐스런 꽃을 피울 수도 있지만, 폭풍우와 가뭄에 꽃을 피울 수 없을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일은 그 씨앗이 내가 원하는 꽃을 피울 수 없고 독초로 자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니체리라는 군대를 만들었을 때는 크리스트교를 믿는 청소년들을 개종시켜 술탄의 충실한 군대가 되길 기대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제국의 팽창이 중지되자 전리품이 사라지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보수만으로는 살 수 없어 부업을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때마다 보수를 올려받기를 원했고 풍부한 보너스를 바랬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술탄을 죽이고 마음에 드는 새로운 술탄을 앉히기도했다. 예니체리라는 씨앗이 제국의 독초로자랄지 누가 알았겠는가!

  둘째, 오스만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이끈 술레이만 대제의 황후 휘렘 술탄이 제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휘렘 술탄은 자신의 아들을 술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총리 이브라힘파샤를 처형하고 차기 술탄으로 지목된 무스타파를 죽였다. 아무리 탁월한 군주라할지라도 자신의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그는 탁월한 군주라할 수 없다.

  조선의 세종과 정조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과 정조의 가장 큰 차이는 세종 이후에 조선은 계속해서 발전하였지만, 정조 사후 조선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왕권에 걸림돌을 미리 제거한 태종이 세종에게 있었으나, 정조에게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할아버지 영조가 있을 뿐이다. 영조는 정조에게 정치적 족쇄를 채워 놓았고, 정조는 그 족쇄를 벗어 던지기 전에 세상을 하직했다. 그리고 조선은 쇠퇴해갔다. 

  술레이만대제는 앞선 탁월한 술탄의 기반위에 나라를 운영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면 후계자를 잘 세웠어야했다. 그는 그러지 못했고 제국은 쇠약해져갔다. 

  셋째, 무리한 원정으로 제국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술레이만대제시기 제국은 최대 판도를 자랑했다. 급속한 팽창과 이로인한 피로도는 싸여만 갔다. 제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내부 산업을 활성화시켜야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이를 외부에서 수입했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내부의 산업을 발전시키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그러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제국의 팽창과 이렇게 얻은 부를 외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해서 해결했다. 

  그리고 제국의 팽창이 멈추자 제국은 급속히 쇠퇴해갔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재정이 악화 되었다. 예니체리에게 충분한 급료와 보너스를 줄 수 없었다. 무리한 원정에서 오는 피로도를 낮추면서 경제적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선택했다면 오스만 제국의 쇠퇴는 늦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팽창에서 오는 이익을 생각하며 앞만 보며 달려온 제국은 팽창이 멈추자 쇠퇴의 길을 걷는다.

 


  "북방 유라시아의 주인공은 세계사에 커다란 영향을 남긴 '튀르크'족과 '몽골족'이었다. 튀르크족으로 북방 유라시아에서 최초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것은 흉노였다."(21쪽)


  몽골 다문화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그 학생은 나에게 몽골에서는 흉노의 역사를 몽골의 역사로 배운다며 그것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나로서는 몽골의 역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남긴 역사기록이 없기에 흉노를 몽골의 역사라 단언할 수 없었다. 이희철 자자의 '튀르크인 이야기'에서는 흉노의 역사를 튀르키예의 역사로 규정하며 역사서술을 하고있다. 그리고 현재 '예니 튀르크예 전략 연구원'에서는 튀르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오스만제국의 역사에 머물고 있는 그들의 역사를 흉노 제국과 돌궐제국으로 확장하며 자신의 뿌리를 재조명하고 있다. 어쩌면 흉노의 역사는 몽골의 역사이기도하면서 튀르키예의 역사일수도 있다. 튀르키예와 몽골의 흉노 역사에 대한 치열한 뿌리찾기를 바라보며, 역사는 기록하는자, 기억하는자의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떠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올바른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새로 정립하는 것은 제국 발전의 기초임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ps. 좋은 책이지만 옥의 티가 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E.H카의 말"(8쪽)

   =>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은 크로체가한 말이다. 수정해주길 바란다. 

   책에 지도한장 없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도가 수반되어야한다. 힘들겠지만, 튀르크인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지도를 첨부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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