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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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이 일을 왜하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할까? 지금 당장 돈벌이가 되지도 않으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일을 당신은 하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면서 '이 일을 누군가는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뭉우리돌의 바다'는 바로 김동우 라는 우직한 사진작가가 값진 땀방울로 찍은 주옥같은 사진들의 모움이다. 단순히 사진만 모으지 않았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사진에 글을 더했다. 김동우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 속에서 애절하게 불타오르는 뜨거움을 느낀다. 


  책은 인도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독립 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땅이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한국광복군의 흔적을 발견한다. 델리 레드 포트, 그곳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지이다. 낯선 곳에서 발견한 광복군의 흔적을 발견한 김동우 작가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와 독립운동 후손을 찾아다니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은 웅장한 사진과 심금을 울리는 글로 기록되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전에는 문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역사 기록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상과 소리,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김동우 작가는 글과 사진으로 잊혀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는 마음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녹아있다. 


  "이렇듯 사는 타인을 울려 슬픔을 퍼트렸고 생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쓰면서 다른 얼굴을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52쪽)


  1905년 4월 제물포를 출발한 영국 상선 '샌 일포드'호는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멕시코로 향했다. 바로 그 배위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김동우 작가는 그 장면을 아이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김동우 작가의 웅장한 사진들 감상하며, 그 사진속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심금을 울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인이라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예 같은 처우를 받으며 임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독립운동에 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독립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3.1혁명에 만세시위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대한사람이면 당연해 해야할 일이지. 그것이 독립운동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중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보훈혜택을 받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 이렇듯, 우리 한인에게 독립운동은 당연한 것이다. 물고기가 물에 대해서 말할 수 없듯이,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이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몰랐다. 

  멕시코에 이민 온 1000여명 중에 200여명의 대한 제국 군인 출신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한다. 1909년 숭무학교를 세워 군사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18명의 생도를 배출한다. 그들을 장차 연해주로 보내 무장 독립 전쟁에 나서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면서 숭무학교는 문을 닫는다. 

  숭무학교가 문을 닫는 것 보다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한 사건이 발생했다. 1916년 숭무학교 교장 이근영은 황민주, 이정구 등과 메리다에 나타난다. 그들은 과테말라 혁명에 참전할 용병을 모집했다. 고용금은 미화 5원이지만 승전 시 미화 300만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황민주, 이정구가 혁명군에게 받은 고용금을 가로채 도망가고, 이근영도 종적을 감춘다. 동포 청년을 혁명군에 팔아넘기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때 영웅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한 마음을 일평생 간직하기는 힘들다. 돈 때문에 30여명의 한인 청년을 총알이 빗발치는 밀림 속으로 팔어버린 그들의 파렴치함에 손이 떨려온다. 

  한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멕시코에서 쿠바로 떠난다. 그러나, 쿠바에서의 삶도 녹녹치 않았다. 쿠바 한인이 겪은 고통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이어진다.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된 한인들은 유치장에 갖힌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을 되찾길 바라는 한인들을 이용한다면 태평양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한인을 일본인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했다. 그랬다. 조국이 바로서야 재외 동포들도 바로 설 수 있었다. 조국이 식민지가 되어 재외 한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기에 타국을 떠도는 한인들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굳게 뻗은 뿌리가 되지 못한다면 줄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동우 작가는 미국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편이다. 많은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민을 갔다.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 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 그런데, 뉴욕한인 교회에서 김명래 라는 장철우 목사의 사모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다!! 

  무슨 우여곡절이 있기에 이 먼 미국 땅에 살고 계신걸까? 팔순의 이춘덕 여사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청산리 전투 마지막 생존자 이우석이다. 북로군정서 분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이우석은 해방 직후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엿장수, 장난감장수, 지게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아내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들은 코미디언 이주일이 그를 양아버지로 모시기도했단다. 김동우 작가를 만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까지와 자식한테 얹혀사는 삶이 너무 초라해요.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가족에게 남긴 게 도대체 뭐냐고요.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어요.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닌가 봐요."-424쪽


  독립 유공자 혜택은 배다른 남동생이 받아갔다. 자신은 '자식한테 얹혀사는 삶'이라 너무도 세상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사진작가 김동우에게 한풀이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뒤틀린 우리 현대사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친일파들이 자신의 친일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친일을 미화한다. 더 나아가서 토착왜구들은 독립운동가를 우롱하며 노골적인 친일을 한다. 이렇게 뒤틀린 우리 현대사 속에서 그녀의 한풀이는 이땅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모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한풀이가 아니었을까?


  '뭉우리돌'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을 뜻한다. 백범일지에 일본순사가 '지주가 밭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라는 말에 백범은 뭉우리돌의 정신을 품고 살겠다고 다짐하셨다. 저자 김동우도 백범의 뭉우리돌 정신을 품으며 독립운동 현장을 누볐다. 잊혀져서는 안될, 반드시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뭉우리돌들을 찾아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책의 사진을 통해서, 이 책의 글을 통해서 우리도 백범이 품었던 뭉우리돌 정신을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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