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가재는 죽은 생물의 사체나 썩은 나뭇잎과 수초 등을 먹으며 물속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그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한 소녀가 살았다. 카야라 불리는 소녀는 가재와 같은 삶을 살아야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오빠와 누나도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상의군인인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 폭력을 이기지 못해서 카야의 오빠와 누나가 떠났고 마침내는 사랑하는 엄마도 그녀의 곁을 떠났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버지는 잠시 그녀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였으나 집나간 아내의 편지를 받고서는 다시 술에 빠져 행방불명되었다. 카야의 곁에 있어야할 가족은 그녀 곁에 있지 않았다.

가족이 떠나자 그녀를 보살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를 마쉬걸이라며 마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학교 아이들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자신을 보호해야했다. 카야는 두꺼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조디 오빠의 친구인 테이트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러나, 테이트는 대학에 진학하자 그녀를 떠났다. 그 빈자리를 체이스에게 내어주었지만, 현실이 싫어 도망친 곳은 천국이 아니었다. 체이스는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힘으로 여성을 정복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카야에게 결혼하자고 거짓말을 했다. 지역신문을 통해서 체이스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야 카야는 자신이 갑옷을 벗어던진 댓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았다. 가재는 값옷을 벗어던지는 순간 생명을 내놓아야했다.

그녀가 사는 습지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그곳에 가재는 썩은 나뭇잎이나 죽은 생물의 사체를 먹으며 물속을 청소한다. 가재는 물을 살리는 신성한 일을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가재의 존재는 다른 물고기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한다. 그녀가 사는 습지도 다양한 생명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물을 정화하여 생명을 살리는 곳이다. 그곳에 사는 그녀도 자연을 관찰하며 자연의 친구가 된다. 자신이 사는 습지가 할아버지 소유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밀린 세금을 내고 자신의 소유로 만든다. 그 누도 함부로 습지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녀가 습지의 파수꾼이 된 것이다.

카야는 단순히 습지를 보호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습지에 살면서 나비, 조개, 갈매기들과 교감하며 습지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습지 생명을 사랑했다. 습지에 대한 사랑의 결과를 기록해서 책으로 출판했다. 습지에 대한 사랑은 그녀를 자연생태 학자이자 훌륭한 작가로 성장시켰다.

그렇다면, 카야는 가재처럼 두꺼운 갑옷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할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갑옷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카야는 더 큰 사랑을 누릴 수 없다.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 생명 탄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듯이 갑옷을 벗어 던지면 받게 되는 상처를 이겨내야 더 큰 사랑을 누릴 수 있다.

카야는 체이스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카야의 삶에 불어닥친 최대 위기였다. 나는 체이스 살해 범인을 테이트로 보았다. 체이스가 카야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진정으로 카야를 사랑한 사람이 테이트이니 당연히 체이스를 죽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더욱이 암컷 반딧불이 수컷을 유인해서 잡아 먹는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이는 테이트라는 수컷 반딧불이 카야라는 암컷 반딧불의 유혹에 빠져서 체이스를 죽이고 교수형을 당한다는 암시로 읽혔다. 습지소녀의 성장소설이자, 생태소설인 '자재가 노래하는 곳'은 갑자기 법정 스릴러로 변했다. 나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리고 그 빗나간 예상이 소설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가재는 갑옷속에 자신을 숨겨야하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자신을 공격하는 자에게는 강력한 집게로 공격하여 자신의 먹이로 삼는다.

 

책장을 덮었다. 표지 사진을 다시 보았다. 아름다운 코와 매력적인 입술을 가진 카야의 모습이 영롱하게 다가왔다. 사회적 약자에게 덧씌운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 그녀가 매혹적이다. 주어진 삶을 원망하며 사회적 쓰레기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을 당당한 인격체로 인식하고 자신이 태어난 습지를 사랑하며 당당한 생태학자이자 작가로 성장한 그녀가 아름다웠다. 임제 스님이 말씀하신 '서있는 곳에 주인이 된다면 네가 서있는 바로 그곳이 진리의 세계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라는 법문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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