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들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84쪽

  

  누군가는 그들의 편에 서 있어야한다. 따뜻한 마음과 예리한 논리를 가진 학자와 변호사가 약자의 편에서서 그들을 변호해야한다. 따뜻한 감성만으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그들이 필요하다. 냉혹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한다. 그 한사람이 바로 김승섭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학자 김승섭은 의학공부만으로 시간이 부족한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2003년, 시험을 앞둔 친구들에게 함께 반전 집회에 나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을 받아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짜자고 햇살은 저렇게나 맑고 하늘은 끝없이 푸른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생명에 더 가슴 아파하는 그의 인류애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김승섭은 보통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보적 인사들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다. 산업재해로 자살한 노동자 추모집회에서 노동자와 대치하고 있는 전경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기회만가 주어진다면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만큼이나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 명령에 따라 그들을 진압해야 했던 젊은이들이 겪었을 상처에 대해서도 꼭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좌와 우라는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래로 고통받는 노동자의 고통에만 공감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강제로 군대에 끌려와서 악역을 수행해야만하는 20대 젊은이의 고통에도 그는 관심을 갖는다. 고통받는 자라면 그가 어느 진영에 가까운지를 따지기 보다는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고통을 학문적으로 밝혀내어 제도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학자가 김승섭이다.

  그런데, 김승섭, 그가 보호할 수 없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는 무엇을 할까?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한다."-219쪽


  2017년 5월 24일 육군 보통 군사 법원이 사적 공간에서 동성과 합의된 성관계를 맺은  A 대위에게 유죄를 선고하자 뭐라도 해야될 것 같아서 성소수자를 위한 집회에 참석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부당한 처벌을 막을 수 없다면, 성소수자의 편에서서 같이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게다고 그는 외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 고통에 없애줄 수 없음에 가슴 아파하며 같이 고통을 느끼는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김승섭이다.

  저자 김승섭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김승섭이 이 책에서 가장 먼저한 말은 말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한 상처를 몸은 기억한다는 말한다.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없다고 말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보다 우울증상 위험비가 더 높았다. 학교 폭력을 겪은 후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했던 다문화 가정 남학생들이 가장 아팠다는 연구 결과를 보며 나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도 학교 폭력 설문조사에서는 '해당사항 없음'을 클릭하는 우리 사회의 숨은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고통을 말하지도 못하는 깊은 상처를 가진 이 사회의 숨은 약자를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김승섭은 또하나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식량상태가 넉넉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과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연구한 결과이다. 이 연구서도 우리몸은 고통을 기억한다는 진실을 보여주었다. 사춘기 시절까지는 두 그룹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나, 40세가 넘으면서 생존율이 1.5배가량 차이가 났다. 우리의 의식은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 몸의 정직성을 알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김승섭은 '개인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총기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미국 시카고와 총기 소유에 엄격한 규제를 둔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비교연구한 결과를 비교했다. 잉글랜드/웨일스의 인구규모가 시카고보다 20배가량 큰데도 불구하고 시카고는 2016년 한 해 동안 762명이 죽었고,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571명이 죽었다. 국가가 자신의 안전을 개인에게 떠넘긴 미국은 강력한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안전을 통제한 잉글랜드/웨일스 보다 많은 댓가를 개인이 지고 있다. 어디 총기 규제 문제 뿐이랴! 보건, 복지, 교육분야에도 이러한 논리는 적용된다. 한국 사회는 복지와 교육 분야를 개인에게 너무도 많이 떠 넘기고 있다. 불안한 개인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여러개의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김승섭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일갈한다. 


  "노동자들이 해고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 입안작의 책무이자 역할이다."-102쪽


 우리 사회는 모든 고통을 개인이 감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복지를 늘려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보호하려해도 어리석은 국민은 어리석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사회적 안전망은 약화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수탈의 대상으로 보느냐, 주인으로 섬김의 대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개, 돼지 취급을 당할 수도 있고, 개개인을 숭고한 생명으로 존중받을 수도 있다. 

 당신은 거미를 본적이 있나요. 김승섭은 우리에게 물었다.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위험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 담배를 핀다. 따라서 산업안전 프로그램과 금연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 사업장에서 금연율이 올라간다. 우리는 거미줄 처럼 여러가지 요인이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증상만 보려하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보아야한다. 잘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듯,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서 고통받기도하고 슬퍼하기도한다. 그리고 기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국가도, 지구도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관계망과 개인의 건강을 연구한 결과에서는 친구, 부모, 형제, 자매 등 사회적 관계망이 개인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나의 건강도 사회적 관계망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준다.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의 심장병 발생율은 충격적이기까지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공통체인 로세토는 유달리 심장병 사망자가 적었다. 로세토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즐겼고, 비만인도 많았다. 그런데 심장병 사망자는 오히려 적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문화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로세토 사람들은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며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고 살았다. 자신도 곤경에 처하면 이웃이 도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가 나와 가족을 지켜준다는 공동체 문화가 심장병 사망자를 줄였다. 

  그러나, 로세토 마을의 공동체 문화가 붕괴하면서 심장병 사망율이 1940년에 비해서 1970년에 2배나 증가했다. 공동체 문화의 붕괴는 위기에 처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게한다. 이것은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심장병 사망율 증가로 이어졌다.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 마을 공동체 문화가 개인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국가와 지구로 확대시켜보자. 각자도생의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사회적 연대감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이 국민의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약육강식의 국제 사회보다는 약소국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이 더 행복한 지구인을 만들지 않을까? 우리 대한민국은 그러한 사회를 만들고 있을까?

  어느 세월호 생존 학생은 참사 이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서를 남긴다고 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저자 김승섭은 세월호 참사가 참사의 연쇄 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이 정권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면서 비극의 연쇄고리는 아직도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00초등학교에서도 대낮에 음주를 한 운전자가 인도를 걷던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했다. 같은 학교의 피해학생반 학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전 00 초등학교의 한학생은 어느날 갑자기 우리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보수 정권에서 끊이지 않는 참사의 연쇄고리는 우리 사회를 집단 트라우마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김승섭의 큰 울림이 담긴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 28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