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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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 사색을 비롯해서, 신영복 선생이 쓰신 강의와 담론을 읽었다. 깊은 사색과 철학적 사유가 그리워 다시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펼쳐 들었다. 얇고 그림도 많아서 부담 없이 펼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전공이 역사고, 하는 일이 역사를 기르치는 일이라서 신영복 선생의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거나, 소품이 시대와 맞지 않으면 그것이 거슬려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 역사가가 아닌 신영복 선생의 글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설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라는 당신의 글귀"라는 문장이다. 많은 치적을 쌓기 위해서 무수한 인명을 해치고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피라미드를 신영복 선생은 노예가 건설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농민들이 농한기를 이용해서 건설했다. 건설의 댓가로 빵과 맥주를 받았다. 농민들로서는 농한기에 일자리와 먹을 것을 얻은 셈이다. 일종의 뉴딜정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건설은 정치일 수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정치라면, 농민들에게 일자리와 먹을 것을 주는 피라미드 건설은 좋은 정치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정치이기에 이집트 문명이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둘째, "'동의보감'의 찬술 자체가 허준의 기획이었고, 허준의 집필"이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에 거슬렀다. 홀로 서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룰 때 나무는 나무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허준이라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동의보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속에서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의서가 필요했다는 시대적 필요성에 동의한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허준과 같은 수 많은 나무들이 '동의보감' 저술에 참여했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을 괴롭혔던 양혜수도 그중 한사람이다. 내의원 의원들이 참여하다가 허준이 이를 유배지에서 완성한다. '동의보감' 저술을 허락한 선조와 완성된 '동의보감'을 출판할 수 있도록 명한 광해군도 그러한 나무 중에 하나이다.

신영복 선생은 허준을 가르쳐준 스승이 유의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설명이다. 물론, 허준이라는 나무가 홀로 태어날 수 없기에 유의태와 같은 스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는 아니다. 유의태는 허준이 태어난지 200년 이후의 인물이다. 시신을 해부했다는 설화도 허준 덕분에 의술의 혜택을 받게 된 민중들이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잡과라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소설일뿐 역사일 수 없다.

셋째, "하곡이 정작 자르고 왔던 것은 당시 만연했던 이기론에 관한 공소한 논쟁"이라는 표현이다. 하곡 정재두가 강화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기론 논쟁이 싫어서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곡 정재두가 겉으로는 성리학자인 것 처럼 살았지만, 병이 들어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자,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다. 일종에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부담을 벗었기 때문일까? 하곡 정재두는 죽지 않고 병석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으니, 주위의 성리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할 수 밖에....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양명학자임을 스스로 밝힌 그는 옥사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강화도로 찾아들었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이 진실일 수도 있으나, 나의 얇팍한 지식이 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다.

넷째, "황소가 당나라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여 궐기한 농민장수인 한"이라는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 황소는 학정에 견디지 못해서 궐기한 농민 장수가 아니다. 그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낙방하고는 반정부세력이된다. 이후, 소금 밀매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황소는 소금 밀매업자는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당나라의 형벌에 불만을 갖게 된다. 소금밀매업자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그도 난을 일으킨다. 민란이 일어나면 무조건 농민이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상상으로 학습하는 자의 어리석음이다. 민란의 참여자 대다수가 농민일지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은 일자무식의 농민이 민란의 주도자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을 이끌려면 이론과 실제 두가지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황소는 과거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로 머리에 학식이 있었으며, 소금밀매업을 통해서 조직을 움직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했기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할 수 있었다. 실사구시라는 말을 자주한다. 실제 역사가 그러한지 찾아본 이후에, 올바름을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좌석을 구하려 분주히 버스를 헤매던 40대 여성이 드디어 자리를 차지했으나, 자리를 차지한 그때야 비로소 목적지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화를 읽으며, ‘우리 삶도 이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말았음을 뒤늦게 깨닫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내일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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