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한글역주 - 도올 선생의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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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 1948년 6월 14일생으로 올해 나이 72세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연을 하는 철학자이다. 일생을 고전과 힘든 씨름을 하던 그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책 '논어 한글 역주'를 시작으로 '대학 한글역주'를 읽고, '중용 한글역주'를 읽었다. 고전은 단번에 읽어 버리기 힘든 책이다. 일명 '사서'로 불리우는 책들은 하루 한줄씩, 일주일에 한줄씩 적어가며 음미해야 그뜻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책에 메달려서도 안된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음미하며 곱씹어봐야 겨우 그 의미와 맛을 느낄 수 있다. 유튜브에서 '도올-중용, 인간의 맛(1~36강)'을 보면서, 책을 함께 읽었다. 도올의 '중용한글역주'를 읽으며 놀라운 것은, 고전에 대한 학설도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한다는 사실이다. 이토오 진사이의 중용 3분설, 타케우찌 요시오의 중용2분설을 비롯한 기존의 정설은 '중용'이 자사의 초간 이후에, 후대학자들이 제1장과 21장 이후를 추가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무덤에서 발견된 곽점본 죽간이 출현하면서 기존학설들이 무너졌다. 도올 김용옥은 '중용한글역주'를 저술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학설들을 종합해서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고 중용을 해설하였다. 끊임 없이 절차탁마하는 노학자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낀다. 도올 김용옥! 그가 '팔만대장경 판본보다 중용한줄이 낫다'라고 극찬한 중용의 맛을 맛보자.


1. 민폐 종교인에게 경종 울리기.

우리는 좀비들과 살고 있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일부 목사의 독단적인 말을 무조건 추종하는 좀비들이 모여서 코로나19를 옮기는 숙주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집회를 금지시키자,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며 발악을 한다. 놀이 공원은 허용하면서 종교집회는 금지한다며 생떼를 쓴다. 중용 28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자왈 우이호자용천이호자전생호금지세반고지도여차자재급기신자야(子曰 愚而好自用賤而好自專生乎今之世反古之道如此者災及其身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리석으면서도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려 하고, 신분이 낮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 하고, 지금 세상에 태어나 지금 세상의 법도로 살고 있으면서도 옛날의 도로만 돌아라려고 하는 자들이 많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칠 수밖에 없다.)


 어리석은 자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며, 현정권을 비판한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황당한다. 한예로 문재인 대통령이 금20톤을 뇌물로 받았다.라는 내용은 너무도 황당하다. 우리 한국은행에 있는 금보다도 더 많은 금을 물리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없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며, 행동을 제멋대로 하고, 민주 정권 시기를 살면서 깡패가 활개치는 자유당 정권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려한다. 결국 그들에 의해서 코로나 19 재앙이 그들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도 미친다. 

  그들은 또 말한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나는 그들에게 유학의 "예법"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공자가 말하는 "예법"이나 제식은 현재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류의 교리가 말하는 제식이 아니다. "예법"은 "예배"가 아니다. 모든 "예배"란 결국 "귀신에 대한 복종과 찬미와 희생"을 의미한다. 유교의 "예"에도 "배"는 있으나, 그 "배"는 신 앞에 무릎을 꿇는 "절"이 아니라, 신에게 경외감을 표현함으로써 신을 차단시키는 인문의 결단이다. "예법"은 신에 대한 "신앙"을 유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사이에 거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주대의 예법 사회가 진행되어도 서양의 종교전통에서 문제가 되는 사회병폐는 일체 발생하지 않았다. -123~124쪽


  원시유가에서는 '교회가 교회를 탄압'하는 잘못이 벌어지지 않았다. 신에게 경외감을 표현하고, 신에게 거리를 확보한다면, 종교가 인간을 억압하는 서양 중세의 병폐는 없었을 것이다. 중세시기 흑사병이 전유럽을 휩쓸고 다니는데도 사람들은 교회라는 밀폐된 공간에 모여서 구원을 빌었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서 흑사병은 더 쉽게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일부 교회의 대면예배와 소모임이 코로나 19를 전파 시키고 있는 현실은 중세 흑사병의 유행과 너무도 유사하다. 그들은 "예배"가 아닌, 유교의 "예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2. 못난 정치인에게 경종 울리기

  적폐세력들이 개혁세력을 비판하는 아이런이한 정치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독재세력들이 하던 방식으로 검찰권력과 국정원, 경찰 등의 권력기관을 이용해서 폭압 통치를 했다면, 찍소리 못하고 숨죽였을 세력들이, 민주세력이 집권하면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외친다. 민주적 헌법에 의해서 국가조직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적폐세력이 집권하면 민주적 시스템이 망가진다. 민주 세력이 집권하면 그들은 민주적 시스템을 이용해서 민주세력을 비판한다. 이에 대해서 중용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왈 문무지정 재방 기인존즉기정거 기인망즉기정식(子曰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문왕과 무왕의 훌륭한 정치는 목판이나 간책에 널브러지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는 흥할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는 쇠락하고 말 것입니다." -중용 20장


  훌륭한 정치에 대한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할지라도, 그 가치를 실현할 사람이 있으면 정치는 흥하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정치는 쇠락하게 된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서 사회와 국가가 움직여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이 갖춰졌다한들, 이를 현명하게 움직일 사람이 없다면, 민주적 시스템은 쉽게 붕괴한다. 적폐세력의 못난 행동에 두눈 부릅뜨면서 감시하는 깨시민이 되어야한다. '깨어있는 참된 시민'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는 현명한 투표가 행해져야한다.

  깨어있는 백성, 깨어있는 시민들이라면, 어리석은 정치인들의 사탕발림말에 속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많이 배웠다고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자라할지라도, 인생의 지혜를 갖춘자라면 몸으로 참된 정치인과 어리석은 정치인을 구분할 수 있다. '중용한글역주'에 소개된 '회남자'의 일부분을 살펴보자. 


 동언이신 신재언전야(同言而民信 信在言前也동령이민화 성재령외야 (同令而民化 誠在令外也) 똑같은 언어로 말을 해도 백성들이 그 것을 믿는 것은 그 믿음이 바로 언어 이전에 있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내리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는데도 백성들이 그것을 받아들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지도자의 성의가 그 정령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234~235쪽


  아무리 사탕발림말을 국민에게 한다할 지라도 현명한 국민은 적폐 정치인들에게 믿음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바보 노무현'과 그의 친구를 지지하는 것은 '바보 노무현'과 그의 친구들의 말 이전에 그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민주세력이 보여주었던 '성의'가 너무도 감동적이기 때문에 민주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적폐세력이 뭐라해도 그들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적폐세력의 막장행동 때문이다. 말보다는 '정성(誠)'과 '애정(情)'이 먼저라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적폐세력은 명심해야할 것이다. 

  중용에는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세력을 배려하는 말도 있다. 중용 20장을 보자. 


 성신 유도 불명 호선 불성호신(誠身 有道 不明 乎善 不誠乎身矣)자기 몸을 성실하게 하는 것은 방법이 있으니, 선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몸을 성실하게 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중용 20장


  자신의 몸을 성실하게 해야 수신제가 치국평천하할 수있다. 갈피를 못잡고 있는 수구세력은 사회가 원하는 정도를 걷지 못하고 있다. 일정한 목표없이 민주세력을 물어뜯고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몸을 성실하게 하기 위해서 우선 수구세력은 사회의 '선'을 명료하게 인식해야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할 수록 그들은 자신의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이 사회의 '선'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려 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적폐세력일 수 없다. 수구세력이 적폐에서 벗어나,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하는 대열에 참여하길 바래본다. 


3. 배우고 가르치는 자에게 경종 울리기

  유학은 교육을 강조한다. 중용에도 학문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내하는 글이 있다. 


 박학지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널리 배우십시오. 자세히 물으십시오.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분명하게 사리를 분변하십시오. 돈독히 행하십시오. - 중용 20장


  학문을 배우면서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사리를 분명하게 판단하고, 돈독히 행하는 자세야 말고 참다운 배움의 자세이다. 학급의 급훈으로도 손색없는 명문이다. 

  그렇다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좋은 글귀는 없을까? 중용 22장에 교사들이 가슴에 담으면 좋은 글귀가 있다. 


   유천하지성 위능진기성(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 능진기성 진인지성(能盡其性則 能盡人之性 )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이라야 자기의 타고난 성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다. 자기의 타고난 성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게 되어야 타인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다. -중용 22장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에야한다. 교사는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온전히 발현해야, 학생들의 재능을 온전히 발현시킬 수 있다. 못다핀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자신의 재능을 발현시키지 못한 교사는 학생들의 재능을 온전히 발현시킬 수 없다. 교사가 온전히 자신의 재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부단히 절차탁마해야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열심히 재능을 가록 닦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다. 옥을 갈고 쪼듯이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고 부족한 점은 채울 때만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 

  중용14장에는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가슴속에 새겨듣는다면 좋은 글귀도 있다. 


  정기이구어인즉무원(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상불원천(上不怨天) 하불우인(下不尤人)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뿐, 타인에게 나의 삶의 상황의 원인을 구하지 아니 하니 원망이 있을 수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 하며,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치 아니 한다.-중용 14장, 391쪽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행이나, 자신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린다.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방어기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불행이나 잘못을 외부에 돌리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것이다. 그래서 중용에는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뿐, 타인에게 나의 삶의 상황의 원인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또한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타인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을 절대 존재에게 돌리거나, 자신보다 힘이 약한 아랫사람에게 돌리지 않는 유교 철학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 학교 현장의 교사와 학생이 이러한 마음 가짐을 가진다면, 학교는 보다 즐겁고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4. 세계 정치인들에게 경종 울리기

  트럼프라는 세계에서 가장 별난 정치인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이 무섭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생각하며 미리 견제를 하고, 중국은 발톱을 숨기고 힘을 키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벗어나,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대국굴기(大國崛起)'를 하려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있는 글귀가 중용에 있다. 


  후왕이박래 소이 회제후야(厚往而薄來 所以懷諸侯也) 가는 것은 후하게 하고 오는 것은 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제후를 회유하는 것이외다. - 중용 20장, 509쪽

  

  남녀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베풀어야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가는 것이 후해야 오는 것이 후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이 후하게 주고 박하게 받으려하지 않고, 서로 작하게 주고 후하게 받으려 한다면 두세력 사이의 불화는 끝이 없을 것이다. 춘추 전국 시대를 살았던 공자와 공자의 손자 자사가 추구했던 평화로운 시대는 더 갖으려는 욕심보다, 보다 많이 배풀려는 풍성함이 이루어낼 수 있다. 

  유교의 황금률이라할 수 있는 문장을 살펴보면, 중국과 미국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시제기이불원 역물시어인(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자기에게 베풀어보아 원하지 아니 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지어다. - 중용 13장, 353쪽


 이 문장은 '논어'에도 실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남에게 강요한다면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타인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물질문명을 선한 것으로 여기고 타문화를 야만적으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자신의 문화를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반면, 유가에서는 자기에게 베풀어 보아 원하지 아니하는 것은 타인에게도 강요하지 말라한다. 내가 싫은 것은 타인도 싫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싫어하는 것을 타인이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강요하지 않았다고해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문화를 절대선으로 여기며 강요한다면 이는 새로운 문화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용'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일까?


  물병육이불상해 도병행이불상패(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저 대자연에 피어나는 만물들을 보라! 저 만물들은 서로 같이 자라나면서도 서로를 해침이 없다. 저 대자연을 수놓은 무수한 길들을 보라! 저 길들은 서로 같이 가면서도 서로 어긋남이 없다. - 중용 30장, 608쪽


  불교의 화엄세상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광활한 들판에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장엄하게 제각각 피어있는 세계!! 그 세계가 바로 화엄의 세계이다. 놀랍게도 '중용'에도 그 화엄의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대자연에 피어난 수많은 꽃과 풀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수많은 세상의 길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은 세상! 바로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이다. 

  우리 세상이 이러한 화엄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서로 못난 것도 없으며, 잘난 것도 없다. 제각각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수놓으면 된다. 미국을 따를 필요도 없으며, 중국을 따를 필요도 없고, 나와 같아지라 강요하지 않는 세상!! 그것이 바로 화엄 세상이다. 어떠한가! 시진핑과 트럼프는 화엄세상을 이땅에 만들 용의가 없는가?


5. '중용'에 경종 울리기

  '중용'은 좋은 고전이다. 그러나, 고전의 모든 부분이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고전이 만들어지던 시기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한 부분도 엄연히 존재하기 대문이다. 고전을 맹종하고 고전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른 도그마에 갖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중용'이 좋은 고전이기는 하나, 우리 삶에 적합하지 못한 구절들을 살펴보고 현대적 의미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해보자.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군자지도사 ''미능일언 (중략)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소구호신 이사군 미능야) 군자의 도는 넷이있구나, 나 구는 그 중 한가지도 능하지 못하도다! (중략)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중용 13장, 364쪽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잘 섬긴다면, 제대로 국가가 잘 통치될까? 임금이 신하에게 요구하는 것은 절대적 복종일이다. 선조처럼 백성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왕권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임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다면 백성의 삶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또한 신하는 특권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옹호하며 백성들의 삶에 반하는 정책을 입안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대동법이 전국으로 확대되는데 10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는 신하들과 조선의 양반 지주들의 반발 때문이다. 요즘, 사법부의 사법농단에 대한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사법부가 특권 세력화 되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도 검찰이 특권세력화 되었기 때문이다.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섬긴다면, 기존의 특권세력이 이익은 증대되겠지만,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수정해야할까? '백성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잘 섬겼는가?(所求乎民 以事君)으로 수정해야한다. 나라의 기반인 백성의 마음으로 임금을 섬겨야 나라가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유효한 문장이 될 것이다. 


 去讒遠色 賤貨而貴德 (거참원색 천화이귀덕) 所以勸賢也 (이권현야) 모함하는 이들을 제거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물을 낮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김은 현인을 권면하는 것이외다.-중용 20장, 508쪽


  재물을 낮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김은 현인을 권면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이의를 달아본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재문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 즉, 돈을 귀하게 여긴다.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절대빈곤의 상태에 빠지면, 덕을 갖춘 선비로서의 품위조차도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덕'과 '재물'을 대비시켜 마치 '덕'과 '재물'이 상극인 것처럼 표현한 것은 오늘날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덕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에 주인이 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로 수정해야한다. 돈에 노예가 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삭막해질 것이다. 그러나 돈에 주인이 된다면, 돈을 의로운 곳에 쓰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돈을 더러운 것으로 여겨 가난에 허덕이기 보다는 돈에 주인이 되어 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 해야한다. 


  仁者人也 親親爲大 (인자인야 친친위대) 인이라는 것은 발음 그대로 인입니다. 사람의 근본바탕의 감정이지요. 인의 세계에 있어서는 가장 친근한 사람을 친근하게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용 20장, 478쪽


  '親親爲大 (친친위대)'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친족을 친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가장 친근한 사람을 친근하게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 혈연을 중시여기는 우리와, 관시를 중시여기는 중국 사회의 모습이 '親親爲大 (친친위대)'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학연과 지연, 혈연을 중시여기는 우리의 풍토가, 각종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지는 결과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한다. 중용의 여러 문장 중에서 우리가 이부분을 가장 유의해서 읽어야한다. 친한 사람을 친하게 대하는 것과, 친하다는 이유로 각종 불합리한 특혜를 준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이다. 친함이 지나쳐, 불합리한 특혜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親親爲大 (친친위대)'를 주의해서 해석하자.

  '중용'의 일부 문장이 현재 우리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있지만, 놀랍게도 현재에도 유효한 문장이 많다. 그중 한문장을 살펴보자. 


 군자지도 조단호부부(君子之道 造端乎夫婦) 기지야 천지(及其至也 察乎天地) 군자의 도는 부부간의 평범한 삶에서 발단되어 이루어지는 것인, 그 지극함에 이르게 되면 하늘과 땅에 꽉 들어차 빛나는 것이다.-중용 12장, 346쪽


  보통 유학이 여성을 비하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논어'에도 소인과 여자는 다루기 힘들다는 공자의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중용'에는 '부부'를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시작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조화로운 관계가 군자의 도가 시작되는 시초라는 말은, 독신을 사제의 조건으로 여기는 타종교와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음과 양의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는 유교와 달리, 일부 종교에서는 본성과는 배치되는 독신을 강요한다. 참다운 깨달음은 부부의 인연을 맺으면서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니 유교의 합리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도가에서 은거하는 방법중에서 산속에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사는 것보다, 군중 속에서 은거하는 것을 가장 높은 경지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부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룬는 것을 중시여긴 점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유학이 여성 비하적이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중용'은 4서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있다.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이요 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요 修道之謂敎(수도지위교)니라"라는 장엄한 문구로 시작하는 '중용'은 불교와 같은 고차원적 철학서적보다는 읽기가 약간 수월했다. 이 책을 읽을 때 박학다식한 도올 김용옥의 풍부한 설명이 '중용' 이해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때로는 도올이 인용한 많은 책들이 중용의 글귀보다도 더 가슴에 와닿았다. 특히 '순자-불구'편의 한구절이 인상 깊다. 


  "하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높음을 예찬하고, 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후덕함을 존숭한다. 사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의 예견된 움직임에 따라 삶을 설계한다. (天不言而人推高焉(불언이인추고언地不言而人推厚焉(지불언이인추후언), 四時不言而百姓期焉(사시불언이백성기언).)"


 대자연은 아무런 말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대자연을 숭상하고 그에 맞춰 살아간다. 사람도 그와 같은 도량을 갖춘다면 주변 사람이 추앙하지 않겠는가! 스승이나 부모가 대자연과 같이 살아간다면, 학생들과 자녀가 참다운 사랑을 받으며, 참다운 사랑을 베풀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중용'을 덮으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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