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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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도올 김용옥은 그 무게를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그리고 '도마복음'을 만나면서 그 무게를 벗어 던졌다. 자신을 무겁게 억누르는 한국 기독교의 복음주의가 참다운 예수의 모습이 아니란 사실을 '도마복음'을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의 치열한 사상탐구의 모습에서 나의 고통을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가난한 집안의 나는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녀야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다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이러한 나는 그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좋은 아이였다. 때로는 구타를 당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2학년 담임 선생은 이러한 나를 부던히 싫어했다. 학교에서 실시한 IQ 검사에서 우수한 지능지수가 나오자, 그는 나를 2시간 동안 두둘겨 패면서 컨닝을 했다고 자백하라며 다그쳤다. 두시간 동안 맞으면서도 나는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당시 내 주변에 있었던 학생들은 나보다 IQ가 낮게 나온 학생들 뿐이었다. 겉으로는 '하느님'을 찾으면서, 자신보다 약하고, 가난한 나를 무참히도 짖밟았던 이들이 '크리스찬들'이었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라는 성경의 말은 그들 세계에서만 통하는 말이었다. 위선적인 기독교를 보면서, 세상을 살아왔다. 그때, 도올 김용옥을 만났다. 그는 당당히 한국 기독교의 위선적인 모습에 강한 일갈을 가하며 나의 가슴에 감동의 물줄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도마복음'을 만났다. 적을 때려 눞히려면, 적의 논리를 알아야한다. 한국의 크리스찬들이 왜곡하는 예수를 바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어린시절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치유받고 싶었다. 그래서 곧바로 '도마복음2'를 읽어 내려갔다.

  하루에 한문장, 때로는 한주에 한문장, 때로는 한달에 한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연습장에 영어 원문을 적으며, 모르는 단어는 찾아가며 읽었다. 때로는 새로운 환희에 무릎을 쳤고, 때로는 진실을 마주하지 못하는 한국의 '크리스찬들'이 무척 불쌍해 보였다. 진정한 예수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제 참다운 예수를 만나보자.

 

 

1. 믿으면 진실을 볼 것이다! 라는 크리스찬들의 거짓말

 And he said, "Whoever discovers the interpretation of these sayings will not taste death."(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이 말씀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초등학교 시절, 산골짜기 까지 선교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집에 허락받지도 않고 들어와 포교를 했다. 나의 이성적 질문에 그들은 "믿으면 진실을 볼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신이 있다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그대로 묵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질문에도 그들은 "하느님을 믿으세요"라는 말만을 할뿐이다. 이 질문은 '크리스찬인 당신들이 실은 나를 왕따시키고, 나를 구타하고 있소. 만약 신이 있다면, 불쌍한 나를 왜? 구원하지 않소?'라는 질문이었다.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조하는 그들의 모습은 사이비신자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현실의 문제에 뿌리두지 못하고, 공허한 말들만을 늘어 놓는 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나, '도마복음'은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해석하라'(interpretation) 도마는 말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며, 자신이 직접 예수의 부활을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예수의 쌍둥이 '도마'다운 말이다. 그렇다. 한국 기독교는 깨달아야한다. 끊임 없이 재해석 되고, 끊임 없이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해야하거늘 그들은 거대한 예수의 그늘을 무기삼아 질문하지 못하고, 스스로 해석하지 못하게 강요한다. 참다운 예수와 만나는 첫 관문은 끊임 없이 해석하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도마는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다. 스스로 해석하라!! 그러면 진리를 만나게 되고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2. 천국은 하늘에 있지 않다! 크리스찬들의 두번째 거짓말!!

  Jesus said, "If those who lead you say to you, 'Look, the kingdom is In heaven,' then the birds of heaven will precede you. If they say to you, 'It is in the sea,' then the fish will precede you. Rather, the kingdom is inside you and it is outside you'(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가 하늘에 있도다'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집에온 포교자들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포교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 믿고 천국가세요"라고 말한다. '천국'을 풀어보면, '하늘 나라'이다. 하늘에는 구름과 공기밖에 없는데, 무슨 천국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천국에 가는 조건은 교회에 다니는 것뿐이라는 괴변도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학교 1학년 시기, 수학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포교를 했다. 한 친구가 질문했다.

"그럼, 우리 조상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지옥에 갔겠네요."

당돌한 친구의 질문에 수학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는님이 보기에는 한줌도 안되는 존재들이에요."

수학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신들과 같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하는 무리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예수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논리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들이 믿는 신은 정의롭지 않다는 말이되니, 스스로를 크리스찬이라는 말하면서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그들의 말은 스스로의 종교를 부정하는 일이다. 지하철에서 종종 듣게 되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을 도마복음 속에 우리가 만나는 예수가 본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예수님은 말하신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면, 새가 먼저 천국에 갈 것이요. 천국이 바다에 있다면, 물고기가 천국에 먼저 이를 것이다.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도 있다. 그렇다. 우리 안에 천국이 있고, 우리 밖에 천국이 있다. 죽어서 천국간다는 말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자! 우리가 하찬케 여기는 주변의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자! 예수님은 진정으로 한국 기독교를 위해서 꾸짖고 있다. 귀가 있는 자여, 들어라! 도마복음 속의 예수님의 말씀을.....

 

3. 종말론을 짖거리는 자여, 거짓된 말을 그만둘 지어다. 크리스찬들의 세번째 거짓말

The followers said to Jesus, "Tell us how our end will be." Jesus said, "Have you discovered the beginning, the, so that you are seeking the end? You see, where the beginning is the end will be. Blessed is the one who stands at the beginning: That one will know the end and will not teste death."(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시작에 서 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이야마로 종말을 알 것이니,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안히라리라.")

  거리에서 포교하는 자들이 자주하는 말이 있다.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큰 목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해대는 말들을 들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언어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것도 죽음을 무기삼아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는 광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한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때로는 성조기나, 이스라엘깃발을 들고 나타난다. 코로나 19의 확산 위험 속에서도 집회를 하며 자신들의 주장만을 떠들어 대는 그들을 바라보며 과연 진정한 예수님은 그들을 어찌 평가할 것인지 궁금하다.

  도마복음 속에서 만난 참된 예수의 모습은 한국 교회에서 만나는 예수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종말론을 말하는 자들에게 너희들은 시작을 발견하였느냐?라고 반문한다. 시작도 보지 못한 것들이 끝을 말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랴! 철학자 강신주가 대중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죽음을 걱정하기 보다는, 꽃이 질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꽃피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종말론에 두려워하기 보다는 오늘, 나의 삶을 꽃피우기 위해서 노력하자. 오늘을 꽃피운다면, 아니, 최소한 오늘을 꽃피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면, 내일 종말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아쉬움은 남을리 없다.

 

4. 예수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하는말, 금식하지 말라, 기도하지 말라, 구제하지 말라

  Jesus said to them, "If you fast, you will bring sin upon yourselves; and if you pray, you will be condemned; and if you give alms, you will do harm to your sprits."(예수께서 그들에게 가라사대, "너희가 금식한다면,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죄를 자초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정죄되리라. 그리고 너희가 구제한다면, 너희는 너희 영혼에 해악을 끼치리라.")

 어느 교회가 아프카니스탄에 선교단을 파견하여 교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 넣은 사건이 있었다. 여행을 자제하라는 안내판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던 그들은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수도 있는 위기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후로, 한국의 크리스찬들은 반성을 했을까? 아니면, 위험한 지역에 선교를 하는 것은 크리스찬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을까?

  선교하고, 기도하고, 이웃을 구제하는 것은 크리스찬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는 우리에게 금식하지 말라, 기도하지 말라, 구제하지 말라고 말한다. 진정한 마음에서 일어난 순수한 금식, 순수한 기도, 순수한 희사가 아니라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도마복음 속 예수는 말한다. 그런데, 지난 몇달 동안 언론에 비친 기독교는 어떠했는가? 코로나 19의 확산 위험 속에서 종교 집회를 자제해달라는 질본의 호소를 뒤로하고 주일예배를 강행했다. 결국, 교회 집단 간염이라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고 말하는 모교회가 종교집회를 통해서 코로나19를 집단 간염시켰다. 이러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도마복음 속의 예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기도하지 말라! '너희는 정죄되리라'

 

5.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홀로 서라!

Jesus said, "Perhaps people think that I have come to cast peace upon the world. They do not know that I have come to cast conflicts upon the earth: fire, sword, and war. For there will be five in a house: there will be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 father against son and son against father, and they will stand alone."(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던지러 온 줄로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 땅위에 충돌을 던지러 온 줄을 알지 못한다. 불과 칼과 싸움을 선사하노라. 한집에 다섯이 있게 될 때, 셋은 둘에, 둘은 셋에, 아비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비에게 대항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기 홀로 서게 되리라.")

도마복음을 읽다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그중에 한 구절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기보다는 충돌을 선사하러 왔다. 가정에서 아비와 아들이 충돌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기 홀로 선다. 아들은 아버지라는 거대한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하나의 온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없다. 아들은 아버지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충돌을 통해서 이들은 홀로설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발달단계상의 과정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각기 홀로서게 될리라.'라는 말을 통해서, 타인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뜻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한국 기독교가 신자들을 교회에 혹은 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이는 엄청난 말씀이다.  숫타니파타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진정으로 깨달은 자들은 통하는 것이 있나보다. 그래, 정복한 왕국을 버리고 가는 왕처럼, 그대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

 

도올 김용옥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철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서술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다음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경"이라는 말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성령에 의하여 쓰여진 특수한 문헌이며 인간의 지혜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이러한 황당한 거짓말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어야한다."-381쪽

 

성경을 '인간의 창작물'로 보는 도올의 모습은 대학시절 내가 품었던 의문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학교 3학년 시절, 한국 사상사시간이었다. 교수님은 한국 사상사를 강의하는 중간 중간 성경을 말하며 은연중에 포교를 했다. 한국 사상사를 보다 밀도 있게 듣고 싶었던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질문했다.

"종교가 시대의 위에 있어야합니까? 시대가 종교의 위에 있어야합니까?"

나의 질문을 교수님이 이해하지 못하자, 나는 달리 질문했다.

"시대가 변하면 교리도 변해야합니까, 아니면, 시대가 변해도 교리는 변하면 안됩니까?"

교수님이 답하셨다.

"종교에는 부활과 같은 영적인 것이 있기에 함부로 말할수 없죠"

나는 반박했다.

"부활은 포교를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교수님은 순간 말을 얼버무리더니, 나의 이름을 물었다. 순간, '나의 학점은 날라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나의 학점을 A+를 주었다. 교수님은 성경도 '삼국유사'와 같은 역사서로 사료비판을 해야한다는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었다. 도올 김용옥도 '도마복음'을 풀이하면서 성서는 재해석 될 수 있으며, 인간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의 처절한 절규를 들으며, 지난날 부던히도 내가 외쳤던 말들이 메아리쳐 들려왔다. 도올은 '도마복음 2'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끝맺고 있다.

 

"신을 믿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것도 자유이다."-382쪽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급우들로부터, 거리의 포교자들로부터 나의 자유를 압살당해왔다. 그들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나를 대접했다. 나는 신자가 되고 싶지 않은데 나를 신자로 만들려 폭력을 가하기 까지 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폭력이다. 논어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己所不欲勿施于人)'이라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데로 남을 대접한다면, 그것은 폭력의 모습을 띈다. 진정으로 인본주의를 실천하려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논어의 황금율을 가슴에 새겨야한다. 그럴때만이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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