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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독립의 역사 - 독립기념일로 살펴보는
알파고 시나씨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9년 3월
평점 :
팟캐스트 '매불쑈'를 통해서 알파고 시나씨의 목소리를 처음들었다. 박식하면서도 재미있는 캐릭터의 그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알파고는 왜? 한국에 왔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던중, 우연히 'YTN 세계를 만나는 시간, Now'에서 알파고 시나의 목소리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박식한 그의 방송은 금방 그가 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독립기념일로 살펴보는 세계 독립의 역사'라는 주제와 영국에서 부터 아프리카의 나미비아까지 독립을 위한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와 관련시켜 설명하는 내용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자, 그럼 알파고의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애국계몽운동과 실력양성운동을 다시 바라보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살피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항일 무장 투쟁이다. 그에 비해서 소극적이며, 심지어는 일제에 타협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애국계몽운동 혹은 실력양성운동에 대해서 평가절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예를 들어 애국계몽운동 혹은 실력양성운동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알파고 시나의 주장은 달랐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중심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강대국에 군사적으로 맞서 승리를 거둔 터기와 무장 투쟁과 실력양성운동을 동시에 펼친 한국을 비교한다. 타국의 독립운동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우리는 교육을 강조했다는 점이라 알파고 시나는 주장한다. 항일 무장 투쟁에 비해서 가시적인 행동이나 성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교육을 중심으로한 실력양성운동은 평가 절하를 당하기 쉽다. 그래서, 실력양성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일제와 타협하려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강한 나라가 약한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것을 합리화시켜주는 사회진화론에 매몰되었던 운동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일제에 비해서 앞도적으로 열악한 무기와 경제력 차이는 극복되어야할 과제였다. 일제와 맞서 싸울 경제력을 길러내고, 일제와 맞서 싸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장기적 항일운동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운동이다. 이스라엘이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국가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교육에 있었다. 낮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로 장사를 했고, 밤이면 히브리어로된 토라와 탈무드를 읽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역사를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교육시켰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교육이었다. 숲안에 있는 사람은 나무는 볼 수 있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숲밖에 있는 자는 나무는 자세히 볼 수 없으나 숲은 볼 수 있다. 알파고 시나는 우리에게 한국 독립운동의 숲을 보여주었다.
2.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항일운동을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은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라는 반론을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알파고 시나는 일본이 패망했어도 독립하지 못한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1945년 이승만은 "류큐국도 언젠가는 독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독립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차별을 받으며 류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채 일본의 부속품으로 살고 있다.
"오키나와 상황만 보더라도 일본군의 철수가 독립을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군사 철수 이전에 민족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삼일절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한국의 민족의식을 탄생시킨 사건이자 독립으로 가는 첫발이었던 것이다."
알파고 시나는 '한국의 민족의식'이라고 표현했으나, 나는 '독립정신'이라 표현하고 싶다.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제가 패망했다하더라도 일본의 부속품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가로 존속했던 오키나와는1879년 일본에 병합되고 1945년 이후 미국의 영토였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역사이다. '민족의식'이 없었던 류큐는 독립국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피흘리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숭고한 피를 흘린 우리 독립운동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3. 알파고의 '옥의 티'!!
알파고 시나가 우리의 역사를 서술하다보니 '옥의 티'가 보인다. 그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명성황후의 사진으로 인정받은 사진은 현존하지 않는다. 일부학자들은 일제의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알파고 시나는 과거 진위논쟁이 벌어지다가, 명성황후의 사진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진을 책에 실었다.
둘째, "쇄국정책"이라는 용어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수정해야한다. 우리는 중국을 비롯한 일본과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단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포함외교에 저항하며 그들이 요구한 '통상 수교'를 거부했을 뿐이다. "쇄국정책"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제 식민사학의 냄새가 나는 용어이다.
셋째, "구한말"이라는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일제가 '대한제국' 시기를 낮추어 부르기 위해서 사용한 단어가 "구한말"이라는 용어이다. 즉, '한말'이라는 말은 '대한제국 말기'라는 듯이다. '구한말'은 '옛날 대한제국 말기"라는 뜻으로 이미 망해버린 대한제국에 대한 경멸적인 의미가 담긴 용어이기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넷째, 한국의 항일 무장 투쟁을 설명하면서 1920년대의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전투, 1930년대 대전자령 전투와 흥경성 전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 항일 투쟁도 언급했다면 책의 깊이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알파고 시나는 책을 마무리하면 우리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투쟁하던 시기의 역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라를 잃은 1910년 8월 29일부터 전국으로 독립을 외쳤던 1919년 3월 1일 그리고 독립전쟁을 하고 광복을 획득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수치스러운 사건부터 자랑스러운 일 등 그 기간에 일어난 모든 일을 다 기억해야한다. 그래야 오늘날 떳떳하게 휘날리는 태극기와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246쪽
오늘 우리 자신을 바로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나의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기억 때문이다. 바로 우리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할때 역사는 살아 숨쉴 수 있다. 알파고 시나는 그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