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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와 만나다 ㅣ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3
전호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하는 고구려인!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를 많은 사람들이 고대한다. 웅장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남긴 무덤속에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그 속에는 천여년 동안 잠들어 있는 고구려인들이 다시 깨어나 우리 앞에서 살아 숨쉰다. 그렇게 만나고 싶은 고구려인들이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절반은 북한에, 나머지 절반은 중국에 있다. 북한은 분단 때문에, 중국은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 때문에 자유로이 고분벽화에 다가갈 수 없다. 이제 '고구려 고분벽화와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서라도 채울 수 없는 갈증을 채워보자.
1. 중국과 다른 또 다른 천하!
우리들은 흔히, 고구려 고분벽화도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활발히 교류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그러나, 중국 남북조 고분 벽화와 고구려 고분벽화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안 국내성 지역 후기 고분벽화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하늘의 신인과 문명신들이 같은 시기 중국 남북조 고분벽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에서는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이었으나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중략) 6세기 이후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제가 사신이었던 것과 달리 중국에서는 여전히 생활풍속이었고 사신은 주요한 제재의 하나로만 여겨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우주적 방위신이 보호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가 묘사되었지만 중국 고분벽화에는 현실의 연장에 존재하는 내세가 그려진다." -96쪽
고구려인의 정신세계는 중국과 달랐다. 고구려인들은 주변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세계를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렸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주장하는 중국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구려가 고구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활한 만주 벌판을 누비며 초원길을 비롯한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주변의 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풍성한 식재료가 더해진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수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분벽화에서 하늘 세계를 받쳐 드는 우주역사라는 존재도 불교문화와 함께 동방에 전해진 관념이자 표현이다. 삼실총과 장천1호분 벽화의 우주역사는 전형적인 서역계 인물이다. 간다라 불교 사원 장식의 일부를 이루는 역사들과도 모습이 일맥상통한다. 조형 특징상 중국 한나라 시기 비단그림 속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중략) 이런 식의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인물 표현을 같은 시기 중국의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초원길을 통해 동방세계에 전해진 서역미술의 영향으로 볼 수밖에 없다."-78~79쪽
만약 고구려가 중국에서만 문화를 수입했다면, 고구려인들의 세계관은 중국에 얽매여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인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연하면서도 힘찬 모습은 중국뿐만 아니라 초원길을 통해서 중앙아시아와 서역의 문화를 흡수했다. 그리고 그 문화를 고구려인들만의 방식으로 융화시켰다. 이것이 고구려인들만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2. 사라지고 있는 고구려인의 모습들
천여년을 무덤속에서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 있었던 고분벽화가 20세기 초부터 이뤄진 조사와 발굴로 인해서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발굴 조사를 계기로 벽화고분 보존 환경이 이전처럼 유지되지 못하자 고분벽화는 빠른 속도로 훼손되면서 원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덤 칸 온습도의 심한 변화였다. 보존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무덤 칸의 벽과 천장, 바닥에 이슬이 맺혔다가 마르는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이 과정에서 안료가 녹아내리거나 변색되고 벽화가 그려진 곳에 곰팡이가 피어났다. 수분과 백회, 안료가 상호 반응을 일으키면서 염화칼슘과 탄산칼슘이 생성되어 벽화를 덮어 버리는 현상도 나타났다."-38쪽
발굴은 파괴라는 말이 있다. 발굴을 하지 않으면 고구려인들과 만날 수 없고, 발굴을 통해서 고구려인을 만나면 고구려인들이 남겨 놓은 벽화를 훼손시킨다. 발굴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학술적 발굴을 하고 나서는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철저한 보존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중국 학자들이 화학안료를 뿌려 얇은 막을 형성시켜 보존하려 했다가, 고분벽화가 변색되고 사라지는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보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고분벽화를 철저히 파괴시켰다. 그렇다면 근본적 대책은 무엇인가?
"고구려 벽화고분 보존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처음 만들어지던 상태로 돌이키는 것이다. 고분과 벽화에 대해 가능한 상세한 기록을 확보한 뒤,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하도록 폐쇄하는 것이다. 무덤 칸 내부의 온습도가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려면 불가피한 방법이다. 수산리벽화분의 사례와 같이 이미 훼손의 정도가 심해 벽화층이 벽과 천장에서 떨어져 나왔을 경우, 장기간 원형 복구 작업을 진행하여 석회층을 벽과 천장에 접합시키고 무덤을 폐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39쪽
'무덤을 폐쇄'하는 것이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존하는 가장 근본적이 대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분벽화를 직접 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는 우리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귀중한 보물일지라도, 우리 문화재는 반드시 후손에게 전해져야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 고구려인과 만났다.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도 고구려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한다. 근본적인 보존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라스코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일반인들은 라스코 벽화를 모사해 놓은 곳을 보도록 하여 벽화를 보존하는 외국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분벽화는 강서대묘의 사신도이다. 힘차게 혀를 내밀며 하늘을 바라보는 거북과 뱀의 모습이 대립되어 보이면서도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는 현무의 모습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고구려인들만의 방법으로 융화시키는 고구려인의 문화적 포용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힘차게 앞발을 내밀며 날아가는 청룡과 백호는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을 떠오르게 한다. 벼슬을 높이 치켜들고 힘차게 날개짓하는 주작의 모습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동북아를 호령하는 고구려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들과 대화하듯 그들과 만나게한다. 중국과 다른 고구려인들만의 아름다움과 힘찬 기상을 우리 가슴에 새겨준다. 그 고분벽화가 과감한 보존정책이 수립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지기를 두손 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