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대화 -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새로 읽는 관계사 시리즈
김연철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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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의 이명박근혜시기를 지나서 평화의 새벽이 다가왔다. 벅찬 가슴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산책로 대화를 지켜보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김정은과 트럼프의 싱가폴 회담을 바라보았다. 과거에서 머나먼 안드로메다의 이야기로만 들렸던 일들이 지난 일년 사이에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이때 지난 7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북이 대립을 넘어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걸어왔던 머나먼 여정이 궁금해졌다. 김연철 교수는 남북관계의 실무 경험이 있는 몇 안되는 전문가이다. 그의 눈을 빌려 위대한 평화를 찾아나선 남북한의 머나먼 여정을 살펴보자.

 

1. 무능한 대북관계의 시작 박정희 정권

  김연철은 현대외교에서 대통령의 외교 철학과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대 외교는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대통령의 신념과 철학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 '민중'이 역사의 중심이며, '지배자' 중심의 역사에서 탈피해서 민초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역사는 '민중'과 '지배자' 일방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탁월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현명한 민중의 지지가 없다면 탁월한 업적을 만들기 힘들며, 현명한 민중이라 할지라도 민중의 힘을 조직화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면 결실을 맺지 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북관계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탁월한 리더가 중요하다. 남한을 18년 동안 통치한 박정희는 남북관계를 통일로 이끌 인물이었을까?

  박정희의 그릇은 '민족의 통일을 위한 초석'을 담기에는 너무도 작았다.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시작된 데탕트를 박정희는 위기로 인식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신발을 신지 않는 모습을 보고, 어느 사업가는 그들에게 신발을 팔 수 있다며 희망을 보았지만, 어느 사업가는 그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다며 비관했다. 같은 사실이라하더라도 그사람의 그릇에 따라서 현실을 달리 보인다. 데탕트라는 시대의 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삼기 보다는, 기존의 반공 논리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박정희 정권은 위기의식을 가졌다. 불행히도 박정희의 이러한 세계관은 그를 추종하는 수구세력에게 그대로 복제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박정희 정권의 탁월한 업적 중에 하나인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에 박정희가 회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1972년 5월 31일 박성철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자, 박정희는 이를 거부했다. 북을 믿지 못하는 그는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이어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던 이후락을 교체하고 더 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았다. 민족의 통일과 번영보다는 정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박정희의 모습을 보며 그의 지도자로서의 그릇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박정희 정도의 그릇을 가졌다. 국민이 새로운 지도자로 대통령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남북관계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었다. 슬프지만, 모든 국민은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그릇을 갖기 마련이다.

 

2. 역사의 교훈 - 대화를 하지 않으면 남한은 왕따를 당한다!!

  '대북 정책을 둘러싼 한민관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관계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김연철의 글을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하면 남한이 동북아의 외교무대에서 운전석에 앉을 수 있지만, 북과의 대화가 단절되면 '코리아 패싱'이 시작된다. 이러한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일어난 직후, 존슨 미국 대통령의 대응은 참으로 현명했다.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허둥대지도 않았으며, 침착하게 국가 안전 보장회의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자유 토론을 하도록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을 때 보았던 케네디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울러,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과도 유사하다. '한비자'를 보면, 군주는 자신을 비워야하며, 자신의 마음을 신하에게 보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신하들이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하여 그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최종결정을 내려야한다. 이것이 신하들의 머리를 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토론과 대화 및 의견 청취의 위력은 극대화된다.

  북한과 미국의 불꽃튀는 외교전과 협상술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남한은 왕따를 당했다. 푸에블로호 협상 자체를 북한은 선전에 이용했으며,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미국에 제안해서 남한과 미국 관계의 균열을 유도했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북한만의 생존술이 발휘되었다. 미국은 돈으로 박정희를 달래며 제발 가만히 있어달라는 제스춰를 보였다. 1.21사태가 일어난 해이며,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강경한 보복을 목청껏 말할 수록 한국은 왕따의 수렁속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돌파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면 미국도 우리를 존중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김대중정권과 노무현 정권시기에 우리가 약소국으로서 동북아 외교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남북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중진국 리더'의 모범을 보였다는 외신의 찬사를 얻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과 대립만을 하려한다면 미국은 우리를 외면한다. 이는 박정히 정권 시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박정희의 아바타를 자처하는 정권에서 '코리아 패싱'이라는 용어가 탄생하며 박정희의 선례를 답습한다.

 

3. 남름 능력을 발휘한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전두환은 박정희 키즈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살펴보면 박정희보다 진일보안 모습이 보인다. 그는 86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북한과 대화를 했다. 단초는 1984년 북한의 수해물자 제공 수락에서 부터 시작된다. Give and take! 라는 말이 있다. 북한이 의례적으로 하는 수해물자 제공을 덥석 받은 전두환 정권은 수해구호물자를 가져온 북측 인사들에게 대형가방 1600개에 카세트 라디오, 전자 팔목시계, 양복지, 내의, 양말을 담아 보냈다. 공짜란 없다. 이시기 받기만 했다면 1985년 이산가족 상복의 결실까지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이 '교류와 협력'에 상당한 의견 일치를 보기까지 했다. 남북 철도 연결, 공동어로 구역 설정, 경협위원회 설치 의견 접근 등등.... 반공을 강조하는 보수정권에서 어떻게 이러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전두환 정권 시기에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노태우 정권의 합의에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어느 식물도 뿌리 없이는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전두환 정권을 이은 노태우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물론 과거 나도 노태우 정권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공산권이 무너지는 세계정세를 잘 파악하고 북방외교를 한 것이 노태우 정권이다. 공산권과의 수교가 더 늦어졌다면 엄청난 시장인 중국을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는 외교에서 만큼은 과거 냉전 시기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았다. 북방정책의 최종목표에는 '우리의 생활.문화권을 연변 연해주 등에 까지 확대시켜 나간다.'는 원대한 구상이 있었다. 얼마나 노태우의 장쾌한 구상인가! 냉전의 대결에서 벗어나, 새롭게 열린 중국과 러시아와의 교류와 협력을 넓혀 우리의 경제 및 생활 공간을 넓히겠다는 구상을 타 보수 정권에서는 하지 못했다. 그것을 노태우는 하고 있었다. 그의 원대한 구상은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도출해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남북의 평화정착을 바라지 않는 세력이 있다. 노태우 정권 시기에 '훈령조작사건'도 그러한 세력에 의해서 저질러졌다.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산가족 상봉을 이루라는 노태우 대통령의 훈령을 누락시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좌절시킨 사건을 읽으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통령의 말도 듣지 않고 민족의 이익을 외면하는 파렴치한 수구세력의 존재를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한다.

 

4. 무능력한 보수정권과 한반도 운명(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권)

  리더의 철학과 소신이 남북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김영삼 정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에 휘둘려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을 추진했으며, 남북관계는 더 없이 나빠졌다. 1993년 3월 19일 '서울 불바다론'을 말하는 북한 대표의 영상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북한을 비난했다. 그러나 김연철이 이 책에서 남측의 유도된 대결이었음을 밝힌다. 남측(송영대)대표가 "귀측 핵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하자. 북측(박영수)은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그쪽이 전쟁을 강요하는 데 대해서는 피할 생각이 없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라고 맞받아친다. 북한을 몰아 붙이자, 북한이 격렬하게 대응한 이 비밀 대화를 앞뒤를 잘라서 언론에 공개했다. 남북의 대결을 조장하는 한심한 행동을 김영삼 정권은 주저하지 않고 저질렀다. 그리고 1995년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김영삼은 '더 이상 남북 대화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만은 일관성 있게 지킨다. 외교에서 철학이 없는 리더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김영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은 김영삼 정권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기 10.4 선언에서는 평화협정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은 진보정권의 빛나는 업적을 폄훼하며 이를 무시했다. 2007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히 평화 협력 특별지대 구상, 백령도 인근 해역 해양 생태공원조성, 해주특구 개발'이라는 엄청난 합의를 했다. 대립의 어둠에서 벗어나, 상생과 평화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이 합의를 이명박은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북한 붕괴론의 근거한 이명박의 초강경조치는 5.24조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5.24조치의 피해는 남측이 북측에 비해 더 컸다. 남측이 45억 달러의 피해를 본데 비해서 북측은 8억 달러의 손해를 보았으며, 남한의 빈자리는 중국이 들어와 이익을 가져갔다. 얼마나 멍청한 조치인가? 이러한 멍청한 정책이 이명박정권에서 그쳤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행운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통일 대박론'을 외치며 이명박 정권의 정책을 계승했다. 박근혜 정권은 '결과로서의 통일'을 외치며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외면했다. 전형적인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통일론이다. 2004년 6월 15일을 기해서 남북은 대결을 접고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더 이상의 비난 방송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정권이 이를 재개했다. 물론 재 설치된 스피커에 방산비리가 저질러져서 북한에 남한의 방송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웃지못할 일도 발생했다. 멍청한 박근혜 정권은 남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대북방송을 재개하면 북한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남한이 빠진 경협의 자리는 중국이 치고들어왔다. 민족의 불행만 높이는 멍청한 정책으로 인해서 남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져들었다. 촛불혁명에 의해서 새로운 남북관계가 열릴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지금!! 과거의 시대로 되돌아갈 우려는 없는가? 불행히도 박정희와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를 추종하는 세력이 한국사회에는 존재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김연철은 '어떤 문명국가에서도 인도적 지원을 퍼주기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인도적 지원마져도 퍼주기라고 말하며 북한과의 교류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삐딱한 생각을 조장하며 정치적 이익을 누리는 정치인들이 있다. '70년의 대화'라는 책을 통해서 어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진 정권 혹은 리더가 집권하는가에 따라서 남북관계는 요동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 남북관계의 평화와 번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냉전 수구 논리로 무장한 세력들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오늘을 밝혀야한다.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지난 9년 동안 시민들이 깨어있지 못했기에 남북관계에 불행이 깊어졌다. 다시는 절망의 늪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깨어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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