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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ㅣ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무척 흥미로운 인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를 고려를 무너 뜨린 역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세계관도 성장하는 법!! 그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장했다. '왕조의 설계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를 만나고 싶어서, 몇년전에 '인간 정도전(문철영)'을 읽었다. 이제 그를 다시한번 만나고 싶어서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라는 책을 꺼내 읽었다. 이덕일 특유의 글재주로 풀어낸 '정도전'을 만나고 싶었다. 이덕일이 바라본 정도전은 어떤 모습일까?
1. 이덕일만의 필법
이전에 읽었던 '인간 정도전'이라는 책보다 이 책은 확실히 흡입력이 있다. 정도전을 다년간 연구한 교수의 책과 비교해도 그 깊이가 절대 얕지 않았다.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제작진과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묶어낸 이 책에는 정도전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배경이 되는 토지문제와 성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이 서술되어 있다. 연기자들이 당시 시대를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하다 보니, 정도전의 숨결보다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고민들을 강의에 담아내려 노력한 듯 하다.
이덕일의 필법이 흡입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를 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 말했다. 이덕일은 과거의 혁사를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소강사회'를 설명하면서, 현재의 스웨덴을 언급한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그의 설명방식은 역사와 마주하면서 오늘을 생각하고 내일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가 이덕일의 필법에 빠져들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덕일의 필법은 이책을 마무리하면서 빛을 발산한다. 고려말의 상황을 설명하며,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현실을 직면하고 우리가 나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고려의 구가세족이 다수 백성의 토지를 빼앗아 자신들 만의 나라를 만든 결과 고려는 망하고 고려의 왕족들도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지적하며, 부와 권력을 잡은 특권세력이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하는 오늘과 대비시킨다. 오늘날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질문하며 글을 맺는다. 독자들은 깊은 여운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이덕일 필법의 강점이다.
2. 알을 깨고 나오자!
이덕일은 '태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정도전의 행적을 지우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한다. 정도전을 태종 이방원이 반역자로 규정하고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이 행적을 지우지 않은 것은, 정도전이 조선 건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대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초 사관들의 건강한 역사인식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역사를 자기식대로 창조하여 가르치려 했던 '국정화 프로잭트'를 떠올리면, 조선초 사관들의 역사인식이 오늘보다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뿐이아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움을 받아 왜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없다. 왜? 없겠는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기록을 남겨 놓을 때,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록을 없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광개토대왕릉비가 없었다면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초 사관의 건전함이 없었다면,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에 관한 많은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지와라 세이카를 아는가? 모른다면 '강항'은 아는가? 역사에 관심이 있는분이라면 강항의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강항은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가서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주자학을 가르쳤다. 일본에 주자학을 전해준 강항을 생각하며 우리는 많은 우월감을 갖는다. 그러나 그후 일본의 학문은 일취월장하게 된다. 반면 조선의 성리학은 '성리학 유일사상'으로 파탄을 맞이한다. 윤휴가 주자와 다른 주장을 했다고 해서, 그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여버렸다. 우리가 일본에게 문화를 전수해주었고, 일본은 우리의 아류라는 우월감에 취해있을 때, 일본의 이토 진사이는 상인계급의 시각으로 논어를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덕일은 우리에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당부한다. 무조건적인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진 우리를 질타하고 있다. 이덕일이 강한 민족주의 사학자라고 평가한 내게는 이덕일의 이러한 주장이 너무도 신선했다. 우리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여! 라고 주장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덕일은 우리에게 냉정히 역사를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우리의 단단한 선입견이라는 껍질을 벗으라고 망치를 휘두르고 있다.
3. 아쉬운점
이덕일의 책을 읽으며 두가지 아쉬운점이 발견되었다. 75쪽에 '예기' 일부분을 인용한다.
"貨惡其弃於地也 不必藏於已 그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은 미워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몸기(己)자를 써야하는데, 이미이(已) 자를 써버렸다. 이를 바로 잡으면,
"貨惡其弃於地也 不必藏於己"라고 써야한다. 물론,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놓친 사소한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소한 실수를 줄여주길 바란다.
이덕일은 과전법을 비롯해서 고려와 조선의 토지제도를 자세히 설명했다. 각종 제도들은 글로만 이해하기에는 무척 힘든 것이 사실이다. 독자를 위해서 도표를 그려서 쉽게 설명해주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이덕일의 책이 읽기 쉽고 재미있다는 강점이 있으나, 독자를 위해서 도표를 그려 제도나 개념들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은 결여되어 있다. 도표를 첨가하는 친절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두번째 만나는 '정도전'!! 그를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유는, 우리 현실이 고려말의 현실과 닮아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전과 같은 위대한 개혁가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리가 정도전이 되어 우리 현실을 하나하나 개혁해 간다면, 고려말과 같은 소용돌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지난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시민들의 모습은 정도전이 부활한 듯한 모습이었다. 고려말에는 정도전을 비롯한 소수의 혁명파 사대부들이 개혁을 추진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다수의 민중들이 혁명을 요구하며 혁명을 추동하고 있다. 이점이 고려말의 현실보다 오늘의 현실이 더 희망적인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