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도 김씨 김수로 사계절 아동문고 85
윤혜숙 글, 오윤화 그림 / 사계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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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그 속에서 여러가지 벽을 만나게 된다. 사람마다 다 나름의 역경과 고난이 있듯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저마다 부딪치게 되는 벽이 있으니까.  책을 읽는 나는 그 벽 앞에서 힘들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으쌰으쌰 응원하기도 하고, 답답함에 열불이 나서 냉수를 들이키기도 한다. 어린이책을 읽으면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안타까움도 응원도 열불도 배가 되곤 한다.

 

'김수로'는 12살 남자 아이다. 아빠는 '김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로 귀화한 인도인이다. 아, 써놓고 보니 이 말도 틀린 말이다. 수로와 김하산씨가 듣는다면 펄쩍 뛸 일이다. 제대로 고쳐 말하자면  김수로의 아버지 김하산 씨는 인도인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로 귀화한 우리나라 사람이다. 아들인 수로가 보아도 '크고 깊은 눈, 두툼한 입술, 숯검댕처럼 굵은 눈썹, 까무잡잡한 피부만 아니면 나도 가끔 우리 아빠가 인도 사람 맞나 헷갈릴'(p.17)정도로 김하산 씨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완벽 적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로에게는 아빠가 원래는 인도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되는 고민이 있다.

 

수로네 세 식구는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깐깐하고 엄격한 대목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아빠를 싫어한다는 게 수로의 고민이다. 수로 생각에 할아버지가 아빠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빠가 인도 사람이기 때문인데 책에 또다른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수로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서류상 절차상 '한국인'으로 인정은 받았다고 해도 사람 사이에서 심정적(?)으로 '한국인'으로의 대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우리 나라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다문화 가족의 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온 다른 국적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붙이고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니 할아버지가 외출하신 틈을 타서 할아버지의 목공방에 숨어들어 목공작업에 열심인 아버지를 보며 '내 소원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른 집들처럼 서로 친해지는 거'(p.10)라고 하는 수로의 소원이 이해된다. 어느 날 인도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냐는 수로의 질문에 김하산 씨는 '순례자'였다고 말한다. 히말라야를 아마 스무 번도 넘게 오르셨을 거라면서.

 

"인도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아. 무엇에 얽매이는 게 싫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세상을 배우는 거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인도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떠돌이 병을 앓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 같았다. 대목인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평생 한뎃잠을 주무셨다. (p.89)

 

온정성을 다해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아갈 집을 짓는 대목 할아버지로서는 머무는 데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순례하는 인도인들의 관습과 가치관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비록 똑같이 '떠돌이병'을 앓았다고 해도 병의 증상과 원인이 다른 병인 셈이다. 그러니까 김하산 씨가 인도 사람이어서 싫은 이유에는 이런 충돌과 갈등들이 함께 들어있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보듬어 앉는 '집'이라는 공간을, 그것도 나름의 완고한 철학과 고집을 갖고 짓는 대목이라는 것은 인도인 사위 김하산을 결국엔 보듬어 안을 것이고 수로의 소원은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또 하나의 큰 고민은 얄미운 외사촌 종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수로와 한 반인 종수는 교실에서 '패밀리가 떴다'라는 게임을 벌인다. 김씨와 이씨 성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네 조상이 더 잘났는가를 따지는 건데, 수로가 은근슬쩍 김씨 패밀리 쪽으로 다가가자 종수는 수로에게 '우리 나라 사람이긴 한데 토종이 아니'(p.44)라고 하며 수로를 혼란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집까지 가는 길에 시장골목을 걸으며 '저 상추는 토종일까, 외래종일까? 뽀바이가 좋아했으니까 시금치는 토종이 아닐지도 몰라.'(p46)라며 혼자 고민에 빠질 정도로.  이 고민의 해결은 12살 남자아이 같지 않게 의젓하고 생각 깊은 같은 반 친구 태석과 멋진 담임 선생님에 의해 해결된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기 성의 시조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 준다. 화산 이씨인 태석이는 자기 시조는 베트남의 가장 오래된 리 왕조의 왕자였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가야국의 김수로 왕과 결혼한 인도의 공주 허황옥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로와 선생님의 몸에는 똑같이 한국인과 인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인도 김씨도 한국인의 성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어느 김씨세요?"

"네, 저는 인도 김씨입니다."해도 아무도

"네? 인도 김씨요? 그럼 인도에서 오셨어요?"하는 바보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될 거다.

지금 베트남에서 온 리 왕조의 왕자나 인도에서 온 허황옥 공주의 후손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듯이.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우리는 다같이 섞여 살게 되어 있으니 '가짜'니 '토종'이니 '다문화'니 하는 말들이 다 쓸데없고 부질없고 무의미한 말이고 편견이라고, 그런 옹졸한 마음에 잡혀있지 말고 빨리 사이좋게 섞여 살아갈 궁리를 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김수로나 김하산 씨보다 더 힘든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 곁에 '이태석'같이 똑똑하고 줏대있고 의젓한 친구가 있을까?  수로네 담임 선생님처럼 센스있고 멋진 분이 계실까?  특히나 '이태석'이라는 아이는 너무 멋지고 이상적이라 좀 현실감이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진짜로 그런 아이, 그런 선생님이 계실까 하는 의문을 접고 '이런 친구, 이런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하는 작가의 착한 바람이 깃든 거라고 이해하자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무거우니까.

 

문득 나의 시조가 궁금해져서 찾아 봤다. 놀랍게도 나의 시조는 기원전 117년 신라 건국 이전 부족국가 시대의 촌장이다. 2,100년도 전의 까마득한 이야기가 내 안에 있었구나. 그 까마득하게 오랜 시간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엔 수 많은 사연과 사건들이 얼룩져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야말로 '다문화'라는 말로는 모자랄 세계 문화의 응집체이자 인류 모든 혈족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걸까?) 사정이 이렇다면 시조를 따져서 우리끼리는 같은 핏줄이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의 성씨의 기원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혼인으로 섞인 피만 따진다 쳐도 내 안에는 온갖 성씨, 온갖 민족들의 피가 다 흐르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2천년 전의 시조의 끈을 잇고 있는 우리가 참 독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핏줄에 대한 집착이 무시무시하다는 뜻일 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어린 김수로와 김하산 씨들의 고단함을 손톱만큼 알 것도 같다. (소심하게나마 으랏차차, 힘내세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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