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마법서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6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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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이런 제목을 가진 책에 끌릴 수 있구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어린이 책들 중에는 판타지를 담고 있는 책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렇지. 바다 마법서라니. 제목부터가 신비감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차라리 다른 책을 빌려올걸, 하고.

 

낯선 중국작가의 이름과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이라는 시리즈 제목에 기대서 조금 시큰둥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7개의 단편과 1개의 중편이 들어있는데 모두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돌고래 그림자>, <유리 고래>, <바다 상상화>, <환초 요정>, <바다로 보낸 편지>, <떠 있는 배>, <밀림의 신기한 배>, <바다 마법서>.  제목들이 적혀진 목차에서부터 비릿한 바다냄새가 날 것 같았다. 이 작가는 바다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판타지 동화 세계>(이재복 지음, 사계절>라는 책을 보면 '판타지 동화는 대개 주인공이 고립된 목숨이다.'(87쪽)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도 외롭고 상처입은 인물들이다. 당연히 애틋하고 아련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이야기에 감돌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신이 쏙 빠지도록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한 판타지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은 늘 약간의 우수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유명한 해리 포터마저도 얼마나 외롭고 끔찍한 유년기와 아동기를 지나왔던가! 그러니 이 책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외롭다한들 다른 판타지 책의 주인공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인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바다 마법서>를 제외하고는 판타지의 주인공들치고 무력한 것 같다. 대부분의 판타지 동화에서 주인공은 판타지 공간 안에서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고 구원을 실현하는 데 비해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적극적인 현실 극복보다는 현실 도피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면 판타지 세계에서 또 다른 혼란에 빠져버리거나.

 

그래서 난 주인공보다는 작가가 다루는 이야기 속 시공간에 더 매력을 느꼈다. <판타지 동화 세계>에서 저자는 판타지 동화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목숨은 두 가지 시간을 산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흐르는 시간이 있다. 자연의 시간이다. 일정한 규칙 없이 목숨의 내면에 들어 있는 간절한 바람이 무엇인가에 따라 제 맘대로 흐르는 시간이 또 하나 있다. 이 시간에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라. 마음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상상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판타지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간절한 바람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이렇게 목숨은 자연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을 함께 산다.' (<판타지의 동화 세계>,175쪽)

물론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마음의 시간이며 판타지의 공간이다.  하지만 '마음의 시간'이라든가 '판타지의 공간'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핀다 하더라도 안개에 싸인 듯 그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그마저도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것이 마음의 시간이자 판타지의 공간이 아닐까. 게다가 그 시공간은 개인적이고 중의적이며 해석이 모호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 작가는 그런 모호함을 참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이 환상으로, 환상이 현실로 변하는 그 경계에서 긴장하게 만든다.

 

작가가 이 책에서 고집하고 있는 '바다'라는 배경도 마음이 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지'라는 것,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의미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바다는 위안을 얻는 고향이자 생명의 근원지이기도 하고, 끝없는 탐험과 모험의 대상이며, 불확실한 미래라고도 볼 수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굉장히 큰 힘이 느껴진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를 읽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물음표 하나를 남기는 미스테리 환상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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