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 원래 공부 못해 ㅣ 창비아동문고 244
은이정 지음, 정소영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가보니 한가운데에 뜀틀이 놓여있었다. 아이쿠, 오늘 뜀틀이야? 100M 달리기를 하면 19초의 장벽을 깨뜨리지 못 하는, 그것도 컨디션 좋고 운 좋아야 19초대에 겨우 들어오지 20초를 넘기는 게 자연스러웠던, 타고난 운동치였던 나는 뜀틀을 보고는 뛰기도 전에 먼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사뿐히, 가볍게, 우아하게 날아서 뜀틀을 넘지 못 하고 훌쩍 뛰어서는 뜀틀 위에 털썩! 그대로 올라타 버리는 나의 흉한 모습이 떠올라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괴롭고 불편하던지... 그 날은 유난히 맑고 따뜻한 봄날이었고, 하늘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싶을 만큼 파란 빛으로 쨍하게 펼쳐 있었고, 따스한 봄바람은 살랑살랑 가볍게도 불어댔건만, 아니나 다를까, 내 차례가 오자 난 변함없고 한결같이 뜀틀 위에 승마포즈로 털썩! 걸터앉고 말았다. 간절히, 정말 참 간절하게도, 그 순간 뜀틀이 정말 말로 변해서 따그닥따그닥 달려 운동장을 벗어나 주었으면, 하고 바라마지 않았다.
지금은 작고 펑퍼짐한 아줌마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반에서 크고 마른 편이었던지라, 선생님 보시기엔 키 크고 마른 아이가 뜀틀을 넘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으셨나 보다. 힘차게 달려가서 도움닫기를 한 후에 뜀틀 앞부분을 짚고 넘어야 한다고 누누이 반복해서 가르침을 펴신 후,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나만을 위한 개인지도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가르침을 펴고 몇 번을 다시 시켜도 여전히 못하는 나를 도저히 납득하실 수 없던 선생님은 “뜀틀의 높이가 너에게 맞지 않나 보구나.”하시더니 뜀틀 2단부터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몇몇 아이들이 나와서 뜀틀을 2단으로 낮추는 걸 도왔다.
난, 그 좋은 봄날 너무나 괴로웠다. 반 친구들은 뜀틀 주변에 조르르 일렬로 앉아서 날 ‘구경’하고 있었다. 몇몇은 즐거워 보였고, 또 몇몇은 따분해 보였고, 또 몇몇은 한심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2단부터 한 단씩 뜀틀의 높이를 높여가던 선생님의 노고와 몇 친구들의 수고는 눈물겹게도 실패로 끝났고, 난 선생님의 눈물겨운 실패에 너무나 송구스러웠을 뿐 아니라,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너무나 창피했으며, 무엇보다 날렵하고 가볍지 못한 내 몸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난 ‘원래’ 뜀틀을 못하는 아이라는 것이다.
우습게도 ‘원래 뜀틀을 못하는 것’은 그 날 이후 사는데 별 지장을 주진 않았다. ‘원래 달리기를 못한다’거나 또 ‘원래 바느질을 못한다는 것’은 학창시절 체육실기나 가사실기 점수에 약간의 피해를 주었을 뿐, 뭐, 그다지 심각한 사태를 몰고 온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공부에 대해서는 ‘하면 된다’라거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결사의 비장함이 풍기는 잣대를 들이댔지만 뜀틀과 달리기, 바느질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너그러웠기에 살기가 고달프진 않았다. 분명히, 내가 수렵생활을 하던 시절에 태어났다면 뜀틀과 달리기를 ‘원래’ 못하는 나는 그 사회의 심각한 문제아가 되었을 것이고, 몇 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갔어도 바느질을 ‘원래’ 못하는 나는 여자로서 심각한 결함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휴우~~~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이 책 속 ‘찬이’는 ‘원래’ 공부를 못 한다. 중간쯤 못 하면 그나마 좀 괜찮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정말 못 한다. 대신 밝은 성격에 부지런함, 동물을 돌보는 야무진 손끝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타고났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최고의 가치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선생님이 되어 처음 담임을 맡은 초보 ‘멋진 연희 샘’은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이 모두 ‘완벽’하기를 바란다. 그 ‘완벽’이라는 게 순전히 학습에 대한 요구다. ‘멋진 연희 샘’이 펴는 가르침도 순전히 ‘공부’에 올인이다. 그리고 멋진 연희 샘은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해 질 거라 믿는다.
그러나 선생님의 예상과는 달리 반 아이들은 표정이 점점 어둡고 굳어지고, ‘찬이’는 더욱 암울한 아이가 되어간다. 서로 순진하고 사이좋게 어울려 놀던 아이들은 학교 버스 안에서 선생님의 험담을 늘어놓고 찬이의 뒤통수를 때리며 ‘멍청한 놈!’이라고 비난을 퍼붓는 난폭함을 보이기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원래’ 못 하는 것 몇 가지쯤은 갖고 살지 않나? 그와 더불어 ‘원래’ 좀 잘하는 것 몇 가지쯤 함께 갖고 있고... 도대체, 우리의 어디에서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차이’와 ‘다름’ 덕분에 세상은 다양성을 획득하고 다채로운 삶의 재미, 개인의 매력과 개성, 재능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결말부분을 너무 서둘러 허겁지겁 끝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공부 제일주의(?)와 무한경쟁의 교육제도를 시골학교의 한 학급의 모습을 통해 참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다가 가슴이 찡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할 만큼. 세상의 많은 ‘찬이’들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아울러 뜀틀을 그 지경으로 못하고도 무사한 나의 인생을 위해서도) 짝짜자자자자자자짜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