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작은 책방>을 읽다 보면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결이 곱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고운 결만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흠칫 놀라게 된다.  그저 아름답기만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고..

<작은 책방>의 이야기에는 갇힌사람들이 등장한다.  꼬마 케이트, 일벌레 나라의 존왕자님, 일곱 공주의 어머니인 왕비님.. 그들 모두 갇혀있으면서도 미지의 밖깥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케이트나 존왕자님, 일곱공주의 어머니인 왕비를 제외한 이야기 속의 다른 인물들은 모두 밖깥세상을 두려워한다. 

존왕자님의 경우 갇혀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물리적 공간에서 갇혀있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예를 들면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서쪽 나라로 가면 안된다는 규범 같은 것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갇혀있다.  '서쪽 숲 나라' 이야기에서 서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서쪽 나라를 궁금해하며 엿보려 한다.  

'꼬마 케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케이트는 목장도 강도 숲도 가면 안된다고 금지당한다.  케이트가 모시고 있는 도 아씨는 그 곳에 가면 큰일이 난다며 두려워한다. 

'일곱번째 공주님'이야기에서 왕비님은 집시 출신이다. 궁궐 밖의 세상을 그리워하지만 임금님은 왕비님이 도망칠까 두려워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두려워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것은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 스스로 만들어낸 피해의식 들이다.  그것을 부수는 이들은 아직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고 있지 않은, 꿈을 간직한 꼬마, 어린이들이다.  그리고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거둬냈을 때 세상은 아름답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열려진다.  '서쪽 숲 나라'에서 서쪽 울타리를 넘어서자 아름다운 숲이 펼쳐진다.  글에 쓰여진 대로라면 낙원이 따로 없을 정도다.  서쪽 울타리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쪽 숲나라가 낙원으로 바뀐 건 '시'로 표현된 꿈 때문이다.  그래서 늘 꿈이 준비되어 있는 어린이들은  서쪽 울타리를 넘자 마자 낙원을 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대신들이나 어른들이 괜찮다고 여겼던 북쪽나라, 남쪽 나라, 동쪽 나라가 서쪽 나라보다 더 끔찍했다는 것이다. 그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눈은 사물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뜻일게다.   하녀 셀레나가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도 존왕자님의 셀레나에 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셀레나를 하녀가 아닌 자기 배필로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꼬마 케이트'는  '길'이라는 고정된 규범을 벗어난다. '길'은 목적지까지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안정된 코스다. 그러나 케이트는 오래도록 꿈꿨던 목장과 강과 숲으로 들어서는 쪽을 선택한다.  목장의 풀빛여인도 강에 사는 '강의 임금님'도 숲의 '춤추는 젊은이'도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마음의 벽, 선입견, 고정관념을 허물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피했던 대상은 친절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변화한다. 

'일곱 째 공주님'이야기에서 왕비님은 '머리를 길러야 한다'는 절대적인 규율을 내버린다.  일곱번째 공주의 머리를 짧게 자르는 대신에 자유와 꿈을 허락함으로써 일곱번째 공주에게 열린 세상을 선물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허물어야 할 서쪽 울타리 같은 것은 없는지,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면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사람을 내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나 사소한 관습이나 가치들 때문에 자신을 옭아매고 내 스스로의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님'이나 '보리와 임금님',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님'에선 등장인물 거의 다가 자기만의 논리에 빠져서 궤변을 늘어놓거나 그저 다수무리의 의견에 편승해서 무작정 쫓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리와 임금님'에서 이집트의 라임금님은 권력과 부의 힘을 과신하는 오만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고보면 엘리너 파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짧막한 이야기들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은 책더미 속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엘리너 파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창문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금빛 먼지들이 무리져 춤추고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쫓아가는 여자아이.  문득 나도 그런 책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과 구분되는 조금은 비밀스런 공간,  방해받지 않고 책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는 마법같은 공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