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물론 인간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었던 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도 지나친 데다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니, 세계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부의 격차는 경악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세계의 최상위 부자 1%가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가 그만큼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이 수준까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언론 지면에서도 우리는 부유층이라는 말 대신에 초부유층(super-rich)이라는 말에 자주 접하게 되었다.


(6)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화석연료와 광물자원이 무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매일같이 대량으로 소모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을 그만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연장하고 확대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다. 애초에 말도 안되게 불합리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진보니 발전이니 번영이니 하는 말로 떠받들어오다가 마침내 지금과 같은 파국 직전에 내몰렸음에도, 여전히 미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

석유가 현대 경제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세계경제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는지, 우리는 이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에 근거하여 추리해볼 수 있다. , 그 이전까지 꽤 잘나가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책략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신유주의 논리였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5)

미래에 일자리 없는 세계는 오는 것일까? 사실 일자리 없는 세계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런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런 세계를 만들려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누군가가 인공지능에 돈을 대고 있고 또 누군가가 이 미래를 정해진 미래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그런 세계를 만들려 노력하며 이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없이도 경험과 상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을 여전히 필요로 하며, 로봇은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현실을 두고서도 마치 기술적 대량 실업이 예정된 미래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인간의 쓸모없음이라는 내러티브를 누가 생산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 없는 세상에 인공지능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 없는 미래, 인간이 더는 필요 없어진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89)

그때 인간의 활동이란 정치다라는 따위의 사고는 지식인 특유의 도착된 사고라는 게 명확해질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도, 혹은 지역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최소의 경우 촌락공동체나 마을회의에서도, 다양한 인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일정한 질서를 가져오는 장치이며 기술이다. 그것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사람에게 생의 충일감과 보람을 주는 것도, 극히 소소하나마 개인에게 허용되는 안심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태어나 실재(자연)과 교감하고, 함께 살아갈 동료를 찾아내는 것은 정치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귐에 정치가 깊숙이 들어오는 것이야말로 악이다. 정치란 일상의 인간관계 속으로는 들어오지 말아야 할 필요악이다. 정치에는 계산이 붙어 있지만, 사귐에는 계산은 필요 없다. 필요하지 않다기보다 계산이 들어오면 사귐은 죽어버린다.


(145)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발흥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90년에서 2017년 사이에, GDP 903%나 성장했다. 세계의 최대 은행 4개는 이미 중국의 것이 되었다. 경제분석가 매케스가 말하듯이, “갑자기, 모든 글로벌한 사태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발칸반도의 커져가는 불안정한 상황이건, 짐바브웨의 쿠데타이건,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내정치이건, 모든 게 중국과 관련되고 있다.” 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저 세계의 작은 고립된 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174)

측정 결과는 예정된 성화 릴레이 경로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극히 높은 수준의 세슘-137이 검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방사능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가장 먼 도쿄도 내의 세슘-137 방사능은 다른, 후쿠시마 원전에 보다 가까운 지역들과 비교해서 가장 낮았다. 따라서 도쿄 샘플의 세슘-137 방사능이 인체의 방사선 피폭량을 정량적으로 추계할 때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178)

축구 훈련 시설은 물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 성화 릴레이 등, 올림픽 행사의 상당 부분은 일본정부가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역에서 행해진다. 이것은, 선수들과 일반인들에 대해서, 일본 이외의 세계의 모든 다른 경기시설에 존재하는 피폭 기준보다 20배나 높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합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과학아카데미가 밝힌 대로 방사선에 있어서는 역치(유해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기준치)가 따로 없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위험성을 평가한다면, 올림픽에 참가는 선수들이 방사선 관련 질환에 걸릴 위험도 20배나 더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183)

결론은 이렇다. 일본정부는 올림픽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도 제염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서 16만 명의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마치 실험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피난민을 재차 오염된 지역에 귀환하도록 강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세계인들더러 믿으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이 피난민들에 대한 방사선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에 투입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은 후쿠시마 제1원전 재해 때문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 귀환을 강제당하고 있는 오염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과 일자리와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189)

이 올림픽은 역사상 최대, 최후의 눈가리개이다. 이런 눈가리개는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본래의 신체로,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원기 있게 웃는 얼굴로 뛰어노는 내일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 난 이 올림픽을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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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7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칠레. 작년부터 그곳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고 있단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시작했다는 시위. 그 동안 칠레 국민들 마음 속에 쌓이고 쌓였던 것이 폭발한 것이겠지. 아빠는 인터넷 뉴스의 헤드라인을 통해서만 뉴스를 접해서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어.

칠레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궁금증이 일어서 뉴스를 찾아 읽어보기도 했단다. OECD 국가 중에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이고, 공기업이 했던 사회기반산업 대부분이 사기업으로 넘어가 버려서 물가가 치솟았다고 했어. 전기나 건강보험 등 국민들의 복지와 관련된 사업은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공기업에서 운영하고, 모자란 금액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데, 그런 것들이 전부 사기업으로 넘어가 버리면, 그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 금액이 비싸질 수밖에 없게 된단다. 칠레 사정이 딱 그런 상황이었어.

우리나라도 빈부격차의 양극화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있는데 그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칠레의 일이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단다. 정부와 정치권은 칠레 사태를 보면서 그런 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요즘도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려고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꼴불견 정당을 보고 있으면 겨울임에도 열불 받게 하는구나.

문득 칠레 시위를 보면서, 칠레의 유명한 대통령 아옌데가 떠올랐단다. 예전에 아빠가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아옌데 대통령을 다룬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아옌데 대통령을 다룬 책을 구입하기도 했었거든. 구입만 해놓고 읽지를 않고 있었는데, 최근 칠레 사태를 보면서 그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읽었단다.


1.

아옌데는 1908 6 26일 칠레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할아버지가 의사였다고 하는구나. 아옌데는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변호사와 의사 중에 갈등을 하다가 의사가 되기로 했다는구나. (, 둘 다 되기 어려운 직업인데 둘 중에 선택을 하다니, 오늘날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이를 알면, 한 소리 듣겠구나..) 유년시절에 그는 충분히 부와 권력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노동운동과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서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어.

그가 청소년기였던 1920년대 칠레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기였다고 하는구나. 그 와중에 카를로스 이바녜스 대통령이 1927 97%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 사람이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고 나서 독재를 하고 나섰다는구나. 대학생이 된 아옌데도 독재에 맞서는 학생 운동을 했어. 의대학생회장이 되기 했단다. 그는 자본론과 마르크스에 관련된 책을 섭렵해서 읽었어. 학생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단다. 그의 대학시절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마치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 같구나.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니

독재체제에 대한 시위는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이 사임하게 되었어. 칠레에서도 일찍이 민주화 시위가 있었구나. 이바녜스가 불러나고, 전 내무부 장관인 에스테반 몬테로가 정권을 잡았어. 개혁을 위해 긴축 재정을 한다는 것이 군인인 수병들의 월급을 감축하는 바람에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2500여명이 죽기도 했대. 아무튼 독재는 끝났지만 혼란기가 이어졌어. 독재가 끝이 나고 망명하고 있던 마르마루케 그로배라는 장군이 돌아왔는데, 그가 공군참모총장이 되었고, 이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칠레를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선언했어. 이 사건은 미국과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하는구나. 남미에 사회주의공화국이라니.. 미국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칠레 정치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계기가 되었어.


2.

1933년 아옌데는 칠레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했단다. 칠레 사회당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는데, 그로 인해 잡음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이 남미에 간섭하기 시작했다고 했잖아. 그것은 남미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졌단다.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우파 정권에 의한 독재가 이루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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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지구촌 차원의 경제위기가 촉발한 혼란 속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제툴리오 바르가스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도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됐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마르티네스 장군이 소규모 공산당을 짓밟고 3만여 농민을 학살했다. 니타라과에서는 1933년 소모사가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암살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트루히요가 집권했다. ‘볼셰비즘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이들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30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차관과 쌍무협정을 통한 간접 통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계가 형성됐다. 미국이 힘이 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11로 맞상태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정치적 체제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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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는 독특하게도 비밀단체로 알려져 있는 프리메이슨에 가입도 했다고 하는구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현재에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옌데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것은 그 이유가 있었단다.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이것이 칠레의 사회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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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현실적인 보탬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옌데는 프리메이슨에 고결하고 숭고한 사명이 있다고 여겼다. 프리메이슨 회원은 현대적 기준을 활용해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소외도 실업도 저임금도 없는 사회,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내려 했다. 이를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 효과적인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폭넓은 문화적 혜택의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옌데는 이 같은 내용을 프리메이슨의 사명으로 채택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또한 노동계급 출신과 청년 지식인 회원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운영의 민주화에도 더욱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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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37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하원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어. 칠레의 좌파 계열 정당들은 인민전선이라는 연합을 만들었고, 좌파와 우파의 대결 양상의 첫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고 하는구나.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우파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페드로 아귀레 세르다라는 사람이 승리해서 대통령이 되었대. 그의 정권 하에서 아옌데도 1939년 보건부 장관이 되었어. 진보 정당은 지금이나 예나 분열에 상당히 취약한 것 같구나. 인민전선도 분열이 되어 같은 좌파까지 탄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는구나. 결국 사회당도 인민전선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정당이 되었고, 아옌데는 사회당 부활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한동안 역부족이었어.

...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에 대한 탄압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면서, 칠레도 좌파의 영향력은 극도로 줄어들게 되었어. 한동안 우파 진형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단다. 아옌데는 1952년부터 1964년까지 세 번이나 대선에 출마를 했지만, 고배를 마시게 되었단다. 1970년 다시 한번 대선에 나온 아옌데. 오랫동안 정권을 잡지 못했던 진보진영은 정신을 좀 차렸어. 분열을 해서는 정권을 잡지 못할 거라고 이제서야 깨달은 것인지사회당과 공산당은 연합하여 인민연합을 결성하였단다. 아직 공산당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활동이 쉽지는 않았어. 공산당은 그래서 아옌데에게 희망을 걸었어. 그가 대통령이 되면 공산당도 합법의 길이 열리니까 말이야.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정작 아옌데의 정당인 사회당보다 공산당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대.

아무튼, 1970년 대선에서 아옌데는 2%의 박빙의 승부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단다. 오랜만에 정권을 잡은 진보 진영..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했단다. 자유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보수 진영보다, 그래도 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진보 진영이 일반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될 텐데, 전세계적으로 아직도 진보 진영이 당선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구나.


3.

드디어 대통령이 된 아옌데.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개혁이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구리광산의 국유화라고 생각했어. 예나 지금이나 구리가 칠레의 경제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국적 기업이 구리 광산을 차지하고 있어서, 국부 유출이 심했다고 했어. 그걸 먼저 국유화하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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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아옌데는 구리 업계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사이, 칠레 정부가 차관을 얻기 위해 외국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또 정부 내 어느 누구도 미국과 칠레 간 불평등한 구리협정이 체결됐다거나, 미국계 구리 업계와도 별도의 협정을 맺었다는 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칠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구리 업계의 오만한 태도와도 모순되며, 칠레의 국가적 자존심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구리 재벌 6명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칠레를 포함한 국제 구리 시장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아옌데는 구리 생산을 감독하고, 생산된 구리를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업무를 총괄할 국영 구리 기업 창설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구리 생산원가를 파악함으로써, 칠레 경제의 중요한 부문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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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유아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우유를 무료를 배급하고, 일부 부유층에 몰려 있는 토지에 대한 개혁안도 내놓았어. 이에 다국적 기업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리고 미국도 좌파 정권인 아옌데 정권을 미워했어. 그들에게는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틈이 없었고, 인내도 없었어. 어떻게든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했어. 먼저 언론을 장악했어. 칠레 언론은 아옌데 정권을 공격했어.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 보수 언론들과 비슷하구나. 진보 진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깨고 거짓 선동하는 꼬락서니가 어쩜 이리 똑같은지이런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의 뒤에는 미국의 검고 커다란 손이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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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은 아옌데를 악마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미국은 아옌데의 정적을 적극 지원했다. 필요한 공작금은 아낌없이 투입했다. 오랜 세월 칠레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 정도 규모로 개입한 것은 칠레 선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CIA 칠레 지부는 1953년부터 우파 뉴스통신사와 교양 잡지, 주간 신문들을 지원해왔다. 1961년부터는 주요 정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반공 선동전을 확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선거관리위원회가 워싱턴과 산티아고에 설치되어, 칠레의 민주적 선거 절차를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 방식을 조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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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옌데 집권이 칠레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남미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만큼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하루라도 빨리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결국 그들은 무리수를 두었어. 군사쿠데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무력으로 친정권을 잡겠다는 의도였어. 아옌데는 보수파와 밀당을 하면서, 한가지를 실수를 하게 되는데, 육군참모총장에 친미극우파인 피노체트를 임명한 것이었어.

왜 그랬을까. 설마 군사쿠데타까지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야. 하지만, 피노체트는 군사쿠데타를 감행했단다. 탱크를 몰고 대통령궁으로 향했어. 그저 겁만 주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포탄을 날렸단다. 아옌데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통령궁에서 대비시켰단다. 최소의 경호원들만 남겨둔 채 말이야. 대통령궁에서 라디오 전파를 이용하여 방송할 수 있었는데, 그는 끝까지 국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으며, 쿠데타가 얼마나 불법인지 설명을 했단다. 그 장면을 한번 상상을 하면 얼마나 두려우면서도 힘들었을까 싶구나. 하지만 그는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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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군부 절대다수가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지난 1971년 제가 드렸던 말씀을 여러분께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차분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입니다. 저는 사도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닙니다. 저는 순교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민이 제게 부여한 과업을 완수하려는 사회적 투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리는 세력, 칠레 절대다수 인민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세력이 깨닫도록 할 것입니다. 순교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저는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반역의 무리에게 알리겠습니다. 듣게 하겠습니다.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칠레 인민들이 제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 뒤에야 저는 모네다궁을 떠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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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적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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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옌데 대통령은 결코 그들에게 죽을 수 없다며 자살을 선택하게 된단다. 대통령이 된 지 3년만에 그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며, 칠레의 개혁도 마감되었고, 칠레의 민주화도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이후 1990년까지 17년간 군사독재를 하게 된단다. , 우리나라의 군사쿠데타 후 독재 정권을 18년동안 하신 그 분이 저절로 떠오르는구나. 젠장.

피노체트는 17년 군사 독재를 하면서, 칠레를 오늘날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게 된 거야. OECD 1위 양극화 국가. 그리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고, 그는 결국 하야했단다.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그는 2006 9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고 하는구나. , 못된 짓을 하는 이들이 장수를 하는 것을 보면, 절대자라는 존재가 진짜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아니면 죽어서 가는 곳이 정말 행복한 곳이라서 못된 놈들은 최대한 늦게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


4.

아옌데가 군사쿠데타로 죽게 되고, 이후 들어선 군사쿠데타의 독재 정권이 오늘날의 칠레를 만들어놨고, 독재 정권이 물러난 다음에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오랜 독재 정권 기간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돌이키기는 쉽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단다. 만약 아옌데가 계속 대통령을 했었다면, 오늘날 칠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선거에 의해 몇 번 정권 교체가 되었더라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단다. 그 옛날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의식 있는 국민들이라면 지금의 잘못된 시스템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부디, 그들의 민주화 투쟁에 값진 열매가 열리길 바래 보면서 오늘 편지를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정치인들은 대체로 살아생전에 한 일 때문에 유명해진다.

책의 끝 문장: 살바도르 아옌데와 인민연합이 남기고 간 유산에 기대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옌데는 부와 권력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발파라이소에서의 삶의 현실적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시의 요동치는 정세는 아옌데를 부촌인 비냐델마르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프롤레타이아트의 항구도시에 걸맞게 했다. 1972년 레지스 드브레와의 인터뷰에서 아옌데는 스스로를 발파라이소 항구 출신을 일컫는 자랑스러운 ‘포르테뇨’이자, 포르테뇨 출신 첫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 P40

라틴아메리카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신생 국제연합(유엔) 무대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필수 천연자원을 싼값에 조달해온 상황을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해 마련한 마셜 플랜에 들어간 막대한 재원을 제공한 것도 결국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칠레 소수 지배계급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공의식은 이제 미국 정부 및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 공유됐다. 이때부터 이들 세 부류는 이른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된다. - P92

당시 연설에서 아옌데는 칠레의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그는 "현재 칠레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는 허울일 뿐이며, 권력과 생산수단을 손에 쥔 극소수만이 자유를 누리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초에 ‘지금으로서는’ 칠레에서 사회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당이 칠레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존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행 민주주의 체제가 선거 결과와 노동조합,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는 한, 그리고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장하는 한 우리는 법체제 안에서 활동해나갈 것이다." - P94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민주주의는 원칙과 사상, 이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이지, 단순히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P95

아옌데의 집권은 칠레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뜻했다. 아옌데 취임 이틀 뒤인 11월 6일 닉슨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닉슨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아옌데가 끼칠 영향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잠재적 지도자들이 칠레와 유사한 시도를 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아예 우리 손에서 떠나간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한다." 닉슨은 이런 식으로 말을 이었다. 이날 회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은 표면상 ‘냉정하고 적절한’ 입장을 이해하고, 칠레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며, 칠레의 모든 대외경제, 금융 분야 협력을 봉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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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는 공산주의 계획졍제 시스템에 전혀 불필요한 문자 그대로의 순수한 유통 부문이 필요합니다. 상품이 화폐로 교환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열심히 만들었는데 판매가 안 되면 말짱 헛일이니까요. 이 때문에 생산과정처럼 가치를 창조하지 않더라도 가치가 실현되는(화폐로 교환되는) 영역에서는 유통 부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유통 부문은 바로 이런 순전한 형태를 뜻합니다.


(98)

임직원 10만 명이 일하는 대기업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방식으로 직원 1명당 1시간씩 빼앗을 수 있다면 하루에 총 몇 시간을 빼앗나요? 임직원이 10만 명이니 무려 10만 시간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하루에 10만 시간씩 일을 해준다면 내가 부자가 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 잘 팔린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따지고 보면 노예 주인도 노예한테 시간을 빼앗았고, 봉건영주도 농노에게 시간을 빼앗았죠. 마찬가지로 <자본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가가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07)

아무튼 이번 시간에는 이윤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이윤은 빼앗긴, 착취당한 노동(잉여가치)’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잉여가치론입니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라는 것도 알았죠. 오늘 다룬 내용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필히 복습하세요.


(188-189)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물신주의(物神主義)를 얘기했습니다. 물질이 신이 됐다는 말이죠.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잖아요? 중세 서양에서는 신의 뜻이라면 아무리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일들도, 예컨대 마녀사냥이나 십자군 전쟁도 정당하다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전지전능한 신의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든 것의 꼭대기에 돈이 군림하고, 돈만 된다면 상식 밖의 일도 정당성을 획득합니다. 돈이면 어비어미도 없습니다.


(190)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가 어렵더라도 꾸준히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실시했다고 해요. 그런데 남한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병원이 운영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토지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고 하더군요. 땅은 자연의 선물인데,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고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니 이해할 수 없었다며, 토지는 공공재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겠냐면서요. 돈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고 개인이 땅을 소유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비상식으로 보일 수 있는 거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수한 현상을 보편적 현상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212)

마르크스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생산수단의 소유권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가 임금노예로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생산 활동의 주체로서 존중받고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죠.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가가 독점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공동체의 소유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소수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자원과 재원을 낭비하지 않고, 공동체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생산을 멈출 일도 없겠죠. 필요한 만큼 일하면 될 테니 쓸데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산업재해도 크게 감소할 테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이윤 창출이 생산의 목적이 아니라면, 이윤을 계산하는 일조차 없어지지 않을까요?


(233)

분노라는 감정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로봇은 아니잖아요? 만약 사람에게 감정이 없다면 잘못된 현실에 분노할 수 없겠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을 겁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에요. ‘이성만큼이나 감성도 중요합니다. 이성이 우리에게 방향타 역할을 한다면 감성은 추진력과 같은 것이니까요.


(294)

제국주의의 배후에는 독점자본의 이윤 추구 욕망이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점 자본의 출현이 필연적이듯, 국가마다 자본주의가 불균등하게 발전하면서 제국주의 국가가 생겨나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일지 모르겠군요. 이런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면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서서 약소국들이 함께 대응하지 않는다면,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횡포는 끊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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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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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달문이라는 조선 시대 한 광대이자, 거지 왕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김탁환님의 소설을 읽었단다. 김탁환님께서 다양한 소설을 쓰시긴 하지만,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이 조선시대를 배경을 한 소설인데, 이번에 읽은 <이토록 고고한 연예>도 조선시대 한 광대의 이야기란다. 달문이라는 사람이 지은이가 상상 속에 만들어낸 사람인줄 알았는데, 조선시대 실존했던 인물이더구나.

특히, 연암 박지원의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 달문이었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오래 전에 박지원의 단편소설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광문자전>이 있었던 것 같았어. 그래서 옛기록을 뒤져봤더니, 역시 아빠가 <광문자전>을 읽었더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뭐, 그렇지그래도 이번 김탁환님의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으면서 왜 낯설지가 않지?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아주 오래 전 읽은 박지원의 <광문자전>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럼, 김탁환님에 의해 재탄생한 달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려줄게.

 

1.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는 매설가, 즉 소설가를 꿈꾸는 모독이라는 사람이란다. 모독은 본명은 아니고, 자신이 글을 쓸 때 내세울 필명이었어. 하지만, 현실은 인삼가게를 물려받을 처지였단다. 아버지가 동대문의 유명의 인삼가게 사장인데, 아버지는 그 가게를 물려받기를 바랬고, 아들 모독에게도 별도 가게를 하나 차려주었어. 아버지는 물론 아들이 소설을 쓰는 것을 극구 반대를 했지. 아버지 몰래 소설을 쓰다가 걸려서 다 불에 타버리기도 했단다.

숙부가 한 분 계셨는데, 아버지와 달리 숙부는 모독을 지지해 주셨어. 모독은 우연히 수표교 아래 살고 있는 거치왕초이자 광대인 달문과 친분을 쌓게 되었어. 달문은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고, 눈썹도 없는 등 추한 외모를 갖고 있다고 했어. 달문은 거지왕초로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간적이고 예의를 지키는 그런 사람이었어. 자기 밑에 같이 있던 어린 거지가 죽자,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왕초 자리를 관두고 그곳을 떠났어.

모독의 도움을 받아 달문은 인삼가게의 점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달문이 적성에 딱 맞았어. 인삼들에 이야기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손님들에게 들려주었더니, 그것에 손님들이 몰렸어. 물론 매출도 많이 올랐단다. 인삼가게에 관심이 없던 모독이 시샘을 낼 정도였어. 숙부도 달문을 신뢰하여 달문에게 중요한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어. 많은 사람들이 달문을 좋아해서 달문을 찾아오기도 했는데, 어느날은 멀리 밀양에서 운심이라는 여자가 찾아오기도 했어. 한 눈에 봐도 기품 있는 기생인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모독은 한 눈에 반해버렸단다. 운심이 달문을 찾아온 이유는 산대놀이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 달문도 참가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야.

산대놀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자 무용을 이야기한단다. 달문이 했던 광대놀이도 포함해서 말이야. 아참, 아빠가 이 소설의 배경이 조선시대라고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때인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구나. 이 소설은 조선 후기 영조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즈음이란다.

 

2.

이번에 열리는 산대놀이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경연으로 열리는데, 각각 그들을 후원해주는 뒷배들이 있었단다. 우익 쪽에서 먼저 달문에게 부탁을 해서 우익 편에 서기로 했는데, 나중에 좌익 쪽에서 달문에게 또 자신에 합류하라고 왔어. 좌익은 의금부가 후원을 하고 있었어. 막강한 돈과 권력이 후원을 하고 있다는 소리야. 달문이 예전에 광대로써 화려한 경력이 있어서, 그를 반드시 끌어들이려고 한 거야. 하지만, 달문은 이미 우익과 약속을 했다고 거절을 했어. 좌익 쪽에서 돈으로 회유하고 협박도 했지만, 달문은 모두 거절했어.

우익에 달문이 있지만, 돈이 넉넉지 못해 좌익의 화려함을 이길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산대놀이는 우익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우익에 무대 장치도 만만치 않은 것이 누군가의 지원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어. 동대문 인삼가게도 그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단다. 그깟 산대놀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좌익을 후원했던 의금부의 자존심을 심히 상하게 한 것 같았어. 어느날 아버지와 숙부 그리고 모독이 운영하는 인삼가게 모두 테러를 당했어. 아버지와 숙부는 사라져버렸어. 모독은 도움을 받기 위해 달문을 찾아갔단다. 나중에 숙부를 만나게 되는데, 괴한들에게 아버지는 화살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했어. 정말 의금부의 짓이라고 하면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싶더구나.

..

이 일로 모독은 인삼가게에 진저리를 치게 되었고, 인삼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세를 주기로 했어. 자신은 소설 쓰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어.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이에 대한 분노로 소설은 복수로 일관되었단다. 세책방 쥐영감을 찾아가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었는데, 바로 퇴짜를 받았단다. 소설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어.

 

3.

달문이 어느날 찾아와서 조방꾸니를 동업하자고 했어. 조방꾸니는 기생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이야기해. 예상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달문은 기생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리고 돈을 잘 관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모독이 제격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하자고 한 거야. 그리고 달문과 오랜 친구이지만, 욱하는 성격도 있는 검객 표망둥이도 같이 합류했어. 모독은 처음에는 거절했어. 하지만 운심도 같이 한다는 소리를 듣고 하겠다고 했단다. 한동안 잘 운영되었어. 돈도 많이 벌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달문이 그만하자고 했어. 시작도 갑자기, 그만두는 것도 갑자기달문 스타일이었지. 돈벌이가 솔솔했던 표망둥이가 반대했지만, 결국 달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

모독은 다시 인삼가게를 열었어. 그리고 달문이 어떤 일을 도모하는지 모르겠지만,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간다고 했어. 그런데 대마도에서 화재사고가 나서 화상을 심하게 입고 부산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달문은 박문수 어영대장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박문수 대장이 직접 모독을 찾아왔어. 통신사의 화재사고 때 가지고 가던 특등 인삼도 같이 불탔다는 거야. 그 특등인삼들을 대체할 수 있는 인삼을 조달해 달라는 부탁이야. 모독은 재빨리 수소문해서 그 인삼들을 구해주었단다. 다행히 화재사고에 대한 대처를 빨리 할 수 있었단다.

달문은 일본을 다녀온 이후 사라졌어. 소식도 없이 어디론가 말이야. 모독은 달문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단다. 달문을 찾아 삼도를 돌아다녔어. 소문에 의하면 달문은 유랑단을 만들어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백성들에게 먹을 곡식을 나눠주기도 한다고 했어. 공짜로 말이야. 그를 찾아 달문의 행적을 쫓다가 우연히 숙부를 만났는데, 활빈당과 연루되어 되어 있었단다. 활빈당은 잘못된 나라를 뒤엎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모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홍길동이 이끈 것이 활빈당이라면 대충 이해할 것 같구나.

아무튼 달문의 행적을 쫓아다니다가 정작 달문을 만난 것은 함경도였단다. 달문으로 그곳에서도 두만강을 건너가려고 했어. 달문의 뜻을 막을 수 없었어. 모독은 달문과 헤어지고 한양에 돌아왔단다. 인삼을 팔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어. 달문에 관한 소설. 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잖아. 모독의 경험이나 주변 인물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달문 아니겠니. 그런데 어느날 의금부에서 모독을 잡아갔어. 달문이 역적 모의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달문과 친분이 있는 모독도 잡혀 들어간 것이야.

모독은 아는 바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말의 진실임을 누가 믿어주겠어. 나중에 달문을 비롯하여 여럿이 잡혀 들어왔어. 몇몇은 능지처참을 당했지만, 달문은 귀양가는 것으로 죄값을 치르게 되었어. 다행히 모독은 무죄방면 되었고 말이야. 그리고 모독은 달문을 소재로 한 소설을 끝맺음 하였단다.

달문이 꿈꾸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는 평생 자신의 삶의 기준은자유처럼 보였고, 더불어 사는 사회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구나. 비록 자신은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지만,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으니 말이야. 그도 활빈당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활빈당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달문의 삶이었어.

.

소설에 다소 우연이 잦긴 했지만, 소설이니까…. 그런데 지은이 김탁환님은 제목을 왜 <이토록 고고한 연예>라고 지으셨을까? 궁금하네. 그리고 소설이 들어가지 전에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의 구절은 왜 인용하셨을까? 알 듯 모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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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백치!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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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언제부터 달문이라는 이름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책의 끝 문장 : 강이 끝난 자리에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미쳤습니까? 처음으로 돌아간다고요? 그딴 일은 일어나질 않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지나 다시 봄이 와도 그 봄은 작년의 봄이 아닙죠. 마음에 품은 정인을 10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더라도, 그건 첫 만남과 완전히 다른 겁니다. 성진은 성진이고 양소유는 양소윱니다. 성진이 양소유의 삶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권한이 없어요. 그렇게 양소유의 삶이 마음에 안 들면, 성진과 양소유가 수표교에서라도 만나 맞짱을 뜨든가 해야죠. 양소유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코 베인 꼴입니다. <구운몽>이라 했던가요? 그 소설에서 가장 시시한 대목이 바로 거깁니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네요. 이걸 쓴 매설가가 누굽니까?"

"서포 김만중 선생이시네." - P49

"제목이 ‘구운몽’이니까, 꿈을 꿨다가 깨어나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어?"

"아, 정말, 몽몽 몽몽몽거리는 말씀만 하십니다. 깨어나긴 뭘 깨어납니까. 현실이 낮에 꾸는 꿈같고 꿈이 밤에 찾아드는 현실 같으니, 밤이든 낮이든 현실이든 꿈이든 어디서나 행복하면 그만입지요. 뒤늦게 깨어나면 뭘 하겠습니까? 욕심입니다 그건, 지금 누리는 행복보다 더 나은 행복이 있을 거라는 황당한 욕심!" - P50

"평범한 날들이 쌓여 오늘 이 모양이 된 거니까요. 사람이 사람이 되고 삼이 삼이 되려면 특별함이라곤 전혀 없는 하루하루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 P88

"그렇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다릅니다. 책임 없이 사랑하는 게 훨씬 더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땐 사랑만 해야 합니다. 사랑에 책임이든 뭐든 딴 걸 덧붙이면 안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엉뚱한 걸 사랑이라 붙들고 세월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 P315

"충격은 받겠지만 돈을 위해 각자의 삶을 헛되이 쓰는 것보단 훨씬 낫습니다. 도성에 사는 대부분의 백성이 돈 없인 하루도 못살겠다고 하지만, 상평통보가 없던 시절에도 그들은 잘만 살았습니다. 그게 세상에 나온 지 아직 70년도 되지 않았잖습니까?"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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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39)

엄마의 끈질긴 노력과 매일같이 행해지던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훈련 덕에 나는 차츰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는 법을 대강 익혔다. 초등학교 4학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적당히 무리 안에 섞여 있는 것도 가능했으니, 튀지 말라는 엄마의 소망도 이루어진 셈이다. 대부분은 그저 잠자코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침묵은 과연 금이었다. 대신 고마워.’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 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들을 넘겨 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여기까진 쉬웠다. 상대방이 내게 천 원을 내면 거스름돈을  이삼백 원 내주는 것과 비슷했다.


(51-52)

-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 사아아라아아앙. 사랑. 사랑사. 랑사. 랑사.

영원. 영원. 영원. .. 여어엉.워어어언.

, 이제 의미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백지였던 내 머릿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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