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지도는 넣어두렴.” 포피가 제안한다. “베니스는 미로 같은 곳이야. 방향을 절대 못 찾을 거야. 내가 늘 말하듯이, 길을 잃은 것 같거나 혼란스러우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돼. 마음이야말로 가장 믿음직스러운 길잡이란다.”

 

(180)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루시는 나에게 동정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쥐고 흔드는 캐럴 숙모와 할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딱 매트가 말한 대로, 할머니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내 간절한 바람을 다 억누르고 할머니 뜻대로 가는 나를 생각한다. 루시의 말이 맞을까? 루시나 나나 우리가 누군가의 애정을, 그 사랑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언젠가 얻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해왔던 것일까?

 

(269-270)

그래.” 포피가 대답한다. 하지만 반대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포피의 시선을 따라가니 리코가 연주하던 장소인 넵투누스 분수가 있다. 팔각형 분수대 중앙에 대리석으로 만든 넵투누스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그 주위를 웃고 있는 사티로스들과 청동으로 된 강의 신들과 물에서 솟구친 대리석 해마들이 둘러싸고 있다. 긴 세월 동안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도시로 돌아온 기분이 얼마나 묘할까. 이곳은 16세기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고, 포피가 리코와 손을 잡고 광장을 거닐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의 모든 조각상과 모든 분수가 포피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상기시킬 것이다.

 

(294)

나는 카프레스 샌드위치-껍질이 바싹한 빵에 신선한 모차렐라, 즙이 많은 토마토, 바질을 올린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에 조심스럽게 포피에게 낮잠을 권한다. 포피는 낮잠이라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는 듯 불끈한다. “공원에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왜 침대에 누워 있겠니?” 포피의 목소리는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쉬어 있다. “자연이 최고의 치료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445)

네 엄마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단다.”

나는 얼어붙는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겨우 두 살이었다. 그 두 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엄마는 아팠다. 나는 평생 궁금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병에 걸렸을까? 엄마가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엄마한테 성가신 존재였을까?

어떻게-?” 목이 꽉 조여 오지만 기어코 말을 잇는다. “어떻게 확실히 아세요?”

너는 천사였단다. 네 엄마는 너를 그렇게 불렀어.”

눈물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린다. 평생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저를 몰랐어요. 어떻게 자랐는지를. 그때 저는 그냥 갓난아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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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도 많았지만, 안 좋은 일이 더 많았던 2024년아~ 잘 가라~ 얼른~

....

알라딘 친구분들도 2024년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있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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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4-12-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다 종이책으로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전, 다 e-book입니다. 내년에도 건승하시고 자주 뵙겠습니다. 🙇‍♂️🙇‍♂️

bookholic 2025-01-01 23:5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대장정 님도 올 한 해 즐거운 독서 계속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책 소개와 좋은 글, 올해도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5-01-02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bookholic 2025-01-05 12:52   좋아요 1 | URL
메시지를 이제서야 봤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많으세요..
올 한 해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우리나라 출판계에 큰 경사가 있었단다. 다름 아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거야.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최초로 수상한 것이지. 아빠도 마음 속으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기뻐했단다. 그런데 한강 이전에 많은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작가들이 많았단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고, 번역이 잘 되어 널리 알려졌다면 이미 여러 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대하 소설 <토지>를 지으신 박경리 선생님이야.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저절로 나오는 대단하신 작가라고 할 수 있겠구나.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토지>가 워낙 대작이다 보니, 다른 뛰어난 작품들이 오히려 <토지>에 가려지는 느낌이 들더구나. 아빠도 박경리 선생님의 산문집은 두 권 읽었지만, 소설은 <토지> 전권 읽은 것이 전부였단다.

아빠가 토지를 읽은 것이 2002년이니 엄청 오래되었구나. 그래서 <토지>를 다시 한번 읽어볼 계획을 갖고 있어. 그러다가 문득 박경리 님의 한 권짜리 장편소설도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김약국의 딸들>을 이번에 읽었단다. <김약국의 딸들>은 대하소설 <토지>를 시작하기 전인 1962 년에 출간한 책이란다. 시대적 배경도 구한말부터 일제 시대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토지>와도 다소 겹쳐지는구나.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김약국의 딸들>을 쓰시면서 <토지>를 구상하지 않으셨을까 싶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작 <토지>에서 가려서 그렇지, <김약국의 딸들>도 탄탄한 구성과 전개되는 이야기, 인물 묘사 등 어느 하나 흠잡을 수 없는 명작이라는 것을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 되었단다.

그 시절 통영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어. 아주 실감나는 이야기이고, 군더더기 없는 전개로 금방 책장이 넘어갔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소설이 외국에 소개가 되었다면 박경리 님이 먼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더불어 나중에 너희들도 좀 더 크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어.

 

1.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통영이란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통영을 한번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어려서 너희들은 잘 기억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한 번 또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보니 큰 마음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시작은 통영의 풍경으로 시작한단다.

=====================

(9-10)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통영 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로 그 맛이 각별하다 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

김봉제, 김봉룡 형제가 있었어. 김봉제는 약국을 하고 있었고, 아내 송씨와 딸 연순이 있었어. 안타깝게도 연순은 어렸을 때부터 병을 앓고 있어 늘 신열이 있었어. 동생 김봉룡은 성격이 완전 개망나니였어. 첫 번째 부인은 일찍 사별했는데, 김봉룡이 죽였다는 소문이 있었어. 두 번째 부인 숙정과 결혼하여 아들 성수를 낳았단다. 그런데 숙정이 결혼하기 전에 숙정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있었어. 그 남자가 숙정을 잊지 못하고 찾아왔는데, 이걸 봉룡이 알게 된 거야. 그 남자는 도망을 갔는데, 봉룡이 쫓아가서 때려 죽이고, 집에 와서 아내 숙정도 때려 죽이고 도망을 가버렸단다. 갓난 아기 성수만 남았어. 결국 김봉제와 아내 송씨가 성수를 데리고 와서 양자 삼아 키웠단다. 김봉제에게는 남동생 말고 여동생 김봉희가 있었는데, 김봉희는 남편이 일찍 죽어 홀로 아들 중구를 키우고 있었단다.

….

성수는 김봉제의 집에서 자랐고, 김봉제의 딸 연순과 남매처럼 자라났단다. 김봉제의 딸 연순은 어렸을 때부터 병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결혼도 늦어졌어. 아무래도 당시에는 병약한 여자의 결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야. 강택진이라는 사람과 결혼시켰는데 강택진이라는 사람은 누가 봐도 성격도 안 좋았고, 김봉제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는 것처럼 보였어. 김봉제도 좀 내키지 않았지만, 딸이 처녀 귀신으로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 오늘날 같았으면 당연히 결혼을 시키지 않았을 것 같은데연순을 잘 따르던 성수도 반대했지만, 성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

연순이 결혼을 하고 나서도 김봉제는 사위 강택진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약국과 소작지는 성수에게 물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아내 송씨는 그래도 딸을 생각하여 사위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했어. 이걸 안 강택진은 장모님인 송씨를 이용하여 돈을 빼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김봉제가 갑자기 죽고 말았어. 아내 송씨가 약국을 강택진에게 넘기려는 것을, 봉제의 동생이자 성수의 고모인 김봉희가 우겨서 약국은 성수가 물려받게 되었어. 성수도 탁분시라고 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용환을 낳았어. 그리고 연순은 얼마 안 가 결국 죽고 말았단다. 연순이 죽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택진은 곧바로 재혼을 했어 아내 송씨는 이런 사위의 행태에 화병이 날 지경이었지. 그런 송씨에게 가장 큰 위안은 성수의 아들, 용환이었단다. 손주를 사랑하지 않는 할머니가 없겠지만 송씨에게 용환은 모든 것이었어. 그런데 용환이 일곱 살에 그만 마마로 허망하게 죽고 말았단다. 송씨는 이때 크게 충격을 받아 쓰러져 그만 죽고 말았어.

성수의 친아버지 김봉룡이 도망을 가기 전에 김봉룡을 따르던 하인 지석원이 있었는데, 김봉룡이 도망간 이후 지석원은 홀로 생활하다가 최근에는 의병 활동을 했단다. 그 지석원이 김성수의 집에 갓난아이를 데리고 찾아왔어. 아이의 엄마는 죽고 없다고 했어. 지석원은 그 갓난아이를 두고 몰래 길을 떠났단다. 그리고 얼마 후 지석원도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어. 김성수와 아내 봉시는 그 아이를 거둬들였단다. 그때가 경술년 국치가 있었던 1910년이었단다.

 

2.

그로부터 약 20년이 흘렀단다. 김성수는 약 10년 전에 약국을 그만두고 어장 관리를 하며 돈을 꽤 벌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성수를 여전히 김약국이라고 불렀어. 성수의 아내 분시는 한실댁이라고 불러서 이제 한실댁이라고 할게. 첫 번째 아들 용환이 죽고 나서는 딸만 다섯 명만 낳았단다.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 소설의 제목 속의 김약국의 딸들이 드디어 등장했구나. 그 딸들은 외모도 제각각, 성격도 제각각이었어. 소설 속에서 그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 그대로 발췌해 보았단다.

=====================

(85-86)

큰딸 용숙은 열일곱 때 출가를 시켰으나 과부가 되었고 지금 나이가 스물네 살이다. 둘째가 용빈이, 셋째가 용란이다. 그는 열아홉이며 그 다음이 용옥이, 막내가 열두 살짜리 용혜다. 고모할머니 봉희가 살아 있을 때 용혜는 봉룡이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돌아갈 날을 몰라 칠월 백중에 제사를 모실 때도 고모할머니는 용혜를 보고 언짢게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러나 김약국은 용혜를 두고 연순을 연상하였다. 입 밖에 말을 내지는 않았으나 어떤 때는 심한 착각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었다. 김약국은 연순이가 어릴 때 봉제 영감이 그랬듯이 용혜를 노랭이라 부르며 사랑하였다. 다른 딸들은 모두 머리털이 칠빛처럼 검었는데 용혜만은 밤색 머리칼이었다.

=====================

용숙은 일찍 과부가 되어 아들 동훈을 기르며 살고 있었고, 용빈은 서울에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었어. 홍섭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김성수는 홍섭의 부친 정국주가 악질 친일파여서 싫어했단다. 용란은 왈가닥 스타일인데, 하인 한돌과 밤마다 산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었단다. 참고로 한돌은 앞서 이야기했던 지석원이 맡겼던 그 아이였단다. 용란과 한돌의 몰래 사랑은 아버지 김성수에게 걸려서 한돌을 도망을 가게 되었어. 이 소문은 동네에 다 퍼져서 용란의 혼사길이 막히나 싶었는데, 얼굴이 예뻐서 그런지 그 지역 지주의 아들 연학과 결혼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연학에게 툭하면 얻어 맞아서 친정에 자주 오곤 했어. 연학은 아편도 하는 것 같았어.

김성수가 어장 관리를 한다고 했잖아. 그에게는 믿음직한 일꾼이 서기두라는 사람이 있었어. 사실 기두도 용란을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용란이 그렇게 말썽을 피우고, 결혼을 해서 상심이 컸어. 첫째 딸은 일찍 과부가 되고, 셋째 딸은 남편한테 얻어 맞아 친정에 자주 오고김성수와 한실댁은 마음 고생이 클 거야. 김성수는 둘째 딸 용빈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었단다. 반면 김성수의 고종 사촌인 중구의 아이들은 제법 건실하게 자랐단다. 첫째 아들은 의사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 태윤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어. 그런데 태윤이 일본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3개월을 살다 나와 귀국을 했단다.

….

김약국(아빠가 김성수와 김약국이라는 호칭을 번갈아 쓰는 점 양해바람)은 어장뿐만 아니라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기 위해 배 두 척을 투자했단다. 그런데 첫 번째 출항에서 배 두 개 모두 탈이 나서, 한 대는 표류하여 일본까지 떠내려갔다가 돌아왔고, 한 대는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단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어. 실종자 가족들이 와서 소동을 벌였지만, 김약국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 김약국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긴 했지만, 경제적 손실이 가장 큰 사람은 다름 아닌 김약국이었어. 이 일로 김약국의 가세는 크게 기울어지고, 김약국도 심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었어. 그렇게 힘든 시기, 김약국에게 위로가 된 것은 소청이라는 기생이었단다. 그래서 김약국은 소청을 소실로 두게 되었는데, 이 일은 딸들과 한실댁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단다.

 

3.

용숙은 아들 동훈이 아팠을 때 왕진을 온 의사와 정분이 나고 말았어. 소문이 이상하게 돌아 그 의사의 아이를 낳았다가 아이를 죽였다는 했어. 이 일로 재판까지 받게 되었지만 무죄 판결로 풀려났단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따가웠어. 그 의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참지 못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렸단다. 용빈은 대학 졸업 후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어. 남자친구였던 홍섭이 그녀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단다. 김성수에게는 어차피 잘 된 일이었지. 친일파 아들을 사위로 두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용빈은 막냇동생 용혜를 서울로 불러서 자신의 학교에 입학시켰단다. 가장 문젯거리는 셋째 용란이었어. 남편 연학은 아편쟁이뿐만 아니라 결혼 때부터 남자구실을 못하는 사람이었어. 연학은 늘 약에 취해 있어 용란을 때렸어.. 연학은 그 일로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는데, 시댁 식구들도 그게 낫다면서 연학을 경찰서에서 빼내올 생각도 하지 않았어. 용란도 거의 삶을 포기한 듯 폐인 같이 생활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한돌이 돌아왔어. 산에서 몰래 용란과 사랑을 나누다가 김성수에게 걸려 도망갔던 한돌. 용란은 다시 삶을 되찾은 듯했어. 누가 뭐라 해도 이젠 한돌과 따로 살림을 차렸어. 이 소문을 들은 한실댁이 찾아가 만류를 했지. 그러지 말라고그런데 하필 그날 용란의 남편 연학이 경찰서에서 풀러난 날이었어. 연학이 용란과 한돌의 집에 찾아온 거야. 여전히 약에 취해 있었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연학은 도끼를 휘둘러 한돌과 한실댁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단다.

용란에게 한돌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그렇게 비참하고 죽고 나서 용란은 결국 미쳐버렸단다. 용란은 친정 집으로 왔어. 용란이 미쳐 제대로 생활을 못하지 서울에서 공부하던 용혜가 내려와서 용란을 보살폈단다. 이제 김약국의 그 큰 집에는 한실댁도 죽어서, 김약국, 미쳐 버린 용란, 용혜 이렇게 셋이 쓸쓸하게 살고 있었어.

넷째 용옥은 어디에 갔냐고? 용옥은 아버지의 어장을 관리하던 서기두와 결혼하게 되었단다. 서기두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용란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김성수의 말에 따라 용옥과 결혼했단다. 용옥의 결혼생활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어. 서기두는 일 핑계로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용옥은 홀아비 시아버지와 시동생과 지내야 했어. 그런데 그 시아버지가 용옥을 음흉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단다. 그러다가 결국 터지지 말아야 할 일이 터졌어. 시아버지가 용옥을 강제로 성폭행하려고 했고, 용옥은 간신히 뿌리치고 도망을 가서 아기를 업고 서기두가 일하고 있는 부산으로 갔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때 서기두는 통용 집으로 오고 있던 중이었어. 부산에서 허탕을 친 용옥은 다시 통용으로 향했는데, 그만 용옥이 탄 배가 폭우로 침몰하게 되어 죽고 말았단다. 지은이 박경리 님께서 너무 가혹하신 것 같구나.

….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용빈은 아버지의 얼굴이 안 좋아 보여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진을 받게 했어. 조금은 예상한 대로 암이었어. 길어야 다섯 달밖에 못 산다고 했어. 용빈은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용옥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것이야. 그리고 김약국도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단다. 용빈은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통영을 떠나기로 했단다. 여전히 미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용란을 고향 친지에게 맡기고, 막내 동생 용혜를 데리고 통영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단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용빈과 용혜..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말고,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저절로 빌게 되더구나. 그만큼 아빠가 소설에 몰입되어 읽었던 것 같구나. 읽으면서 역시 박경리라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단다. 한 가족을 너무 가혹하게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말이야. 박경리 님의 또 다른 장편 소설들을 좀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최근에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 말들이 많이 상용되었다는 점. 그런 말들은 책 뒤편이 어휘풀이를 실어주어 또 좋았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책의 끝 문장: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



"논쟁에는 흥미가 없다. 하여간 너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 너의 그 크나큰 사상과 이상은 영웅들에게나 맡겨둬라. 네가 항상 말하는 그 영웅들에게 말이다. 너는 네 분수에 넘는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다. 너의 행위는 일보의 전진커녕 백보의 후퇴가 아니냐 말이다. 바로 이번 일이 그 표본이다. 넌 대체 뭘 했냐 말이다. 쓸데없이 아가리 놀린 것밖에 더 있었나? 그 아가리 놀린 것으로 누구 한 사람이 구제됐는가?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이라도 조선의 자주성에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 너는 매만 맞고 집안을 시끄럽게 했을 뿐이지 일본 놈의 통치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 P206

"나를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과소평가를 하는군. 허지만 난 언제나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부딪칠 것입니다. 반드시 무엇에 부딪칠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형과 같이 안일하게 산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고 죽은 겁니다. 역사는 없을 겁니다."
"역사가 없음 어떠냐? 역사는 곰팡내 나는 기록이지, 사람은 어떤 입지적 조건이나 생활양식 속에서도 그 당대를 살게 마련이니까."
"교묘한 회피군요. 물론 나도 역사는 그 당대에서 끝나는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끝나면 다시 시작되죠. 마치 사람이 죽고 또 사람이 태어나듯이……"
"되풀이되는 건 없으니만 못하다."
"왜 되풀이되는 거요. 진화하는 거죠."
- P207

새터 아침장은 언제나 활기가 왕성한 곳이다. 무더기로 쏟아놓은 갓잡은 생선이 파닥거리는 것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규환(叫喚) 속에 옥색 서린 아침, 휴식을 거친 신선한 얼굴들이 흘러간다. 새벽별은 밝고 축림, 전화도, 장대 방면에서는 호박, 고구마, 야채 등을 이고 지고 북문 안을 넘어서는 촌부들, 안뒤산 큰개, 작은개에서는 조개를 이고 충렬사를 지나오는 아낙들, 발개와 첫개에는 어장 배에서 생선을 받아가지고 판데굴을 지나오는 장사꾼들, 삼면 바다에서는 기관선으로부터 통구멩이까지 해초, 생선을 실은 어부들이 바다의 새벽을 뚫는다. 아니 그뿐이야. 통영 읍내에서도 비단 장수, 화장품 장수, 실 장수, 과일 장수, 본시장의 모든 장가꾼들은 서둔다. 이 무수한 움직임과 발소리들은 새터로 향하는 것이다. 새벽이 걷히고 옥색 아침이 서리면 읍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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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2-3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마지막으로 2024년은 시간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네요. 올 한해 bookholic 님을 글을 읽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 했습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가족과 행복한 새해 맞이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bookholic 2024-12-31 22:29   좋아요 1 | URL
늘 정진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마힐 님도 2024년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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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일본의 유명한 영화 감독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이 있단다.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기도 했고, 아빠가 좋아하는 아이유도 참여한 우리나라 영화 <브로커>의 감독을 맡기도 했어. 인터넷 서점에서 서칭하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책이 눈에 띄었단다. 제목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빠도 너희들의 아버지이다 보니 책의 내용이 궁금하더구나. 이 책은 소설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동명의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아빠는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없단다. 소설로 먼저 만나게 되는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제목만 보면 철부지 아빠의 성장 소설일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한 가족 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고 나서 보니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것 같구나.

 

1.

료타라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그는 아내 미도리와 여섯 살 난 아들 게이타가 있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단다. 대기업 건축회사에서 인정 받는 중간 간부였어. 그래서인지 엄청 바쁜 사람이었단다. 밤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거의 매주 출근했단다. 가정은 평범한 가정일지 몰라도 평범한 가장은 아닌 것 같구나. 미도리는 결혼 후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주로 하였고, 게이타는 명문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어. 그렇다 보니 여섯 살인 게이타는 입시 학원 다니며 벌써 입시의 압박을 좀 받고 있었어. 그 초등학교는 면접이 중요하다 보니 평상시에도 정답을 이야기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면접 준비를 위해서 거짓말 정답도 외워야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게이타가 태어난 종합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가게 되었어.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단다. 아이가 바뀌었다고 했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가? 날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상대방 가족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혈액형 검사를 하다가 알게 되었대. 병원에서는 미안하다며, 최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어찌 이것이 돈 가지고 될 문제인가?

병원 측 변호사와 료코, 미도리 부부는 상대방 부부와 만남을 가졌어. 료코는 내심 비슷한 환경의 가족을 기대했지만, 그렇다면 소설과 영화가 될 수가 없겠지. 상대방 부부는 자신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어. 상대방 남편의 이름은 유다이는 전파상을 하고, 상대방 아내의 이름은 유카리였어. 그쪽은 아내 유카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았어. 게이타와 바뀐 아이의 이름은 류세이. 그 밑으로 동생 둘이 더 있었어. 유다이의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 같지 않았어. 그래서인지 보상금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어. 병원 측 변호사의 입장은 일단 아이는 바꾸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했고, 적절한 보상금은 지급하겠다고 했어.

기른 정과 낳은 정..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이걸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니.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오래 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가을 동화>가 생각나는구나. 그 드라마도 두 아이가 바뀌었다가 중학교 때 알고 본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였거든.. 이렇게 이야기하니 그 드라마도 다시 한번 보고 싶네..^^

 

2.

다시 소설의 이야기를 해줄게. 료타는 회사의 상사의 의견을 듣고 두 아이 모두 자신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두 아이 자신이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가장 적합한 답이라고 생각했어. 더욱이 상대방 가족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고, 아이들이 셋이 있으니까 말이야. 료타는 아내 미도리에게도 자신이 해결 방법이 있다며 자신만 믿으라고 했단다.

정기적으로 병원 측 변호사와 두 부부는 만남을 가졌는데, 병원 변호사의 제안으로 주말에 하루씩 아이를 서로 바꿔서 지내기로 했단다.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게임이자 챌린지라고 이야기를 했어. 아직 진실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어. 료타의 집에 온 류세이. 자신의 집보다 좋긴 했지만, 너무 조용하고 지루했단다. 거기에 조금은 엄격한 식사 예절에도 적응을 하지 못했어. 다행히 미도리가 류세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주었단다.

유다이의 집에 간 게이타도 처음에는 적응을 하기 쉽지 않았어. 자신의 집은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데, 류다이의 집은 동생들뿐만 아니라 류다이까지 시끌벅적했어.  그리고 식사 예절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그랬어. 잠도 좁은 방에서 다 같이 잤단다. 게이타가 잠에 화장실을 못 찾아서 난처한 일을 당할 뻔했는데, 유카리가 도와주었단다. 역시 엄마들은 달라도 뭔가 다른 것 같아.

일주일에 한번씩 생활하면서 게이타가 더 쉽게 적응하는 것 같았어. 료타와 미도리는 류세이와 함께 나들이도 가고 놀이도 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단다. 하지만 류세이가 하는 행동에서 료타는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하고는 피는 못 속인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두 가족은 다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단다. 미도리도 자유분방한 유다이의 가족과 잘 어울렸는데, 료타만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처럼 겉돌았어. 하지만 료타 자신은 아빠로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아이들은 어려서인지 금방 함께 재미있게 놀았단다.

….

그리고 첫 재판이 열렸어.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확인되었단다. 아이들이 바뀐 것이 실수가 아니고 고의로 그랬다는 거야. 당시 간호사인 쇼코라는 사람이 자신은 불행한데, 행복해 보이는 료타의 가족에 질투심을 느끼고 일부러 아이를 바꾸었다는 거야. 쇼코는 재판장에 와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해 달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 사건은 시효가 지나서 쇼코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고, 병원은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서 보상금에 대한 액수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재판에 참석한 가족들은 모두 화를 내고 있지만, 료타는 침묵만 지켰단다.

….

얼마 후 두 가족은 또 함께 모임을 했는데, 그날은 료타도 잘 어울리면서 분위기가 좋았어. 그렇게 분위기가 좋다 보니 료타는 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단다. 두 아이를 모두 자기네가 맡고 싶다고 마리야. 유다이는 이 말을 듣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단다. 유카리뿐만 아니라 아내 미도리도 료타에게 뭐라고 했어. 료타는 지금까지 자신은 스스로 괜찮은 아버지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그는 빵점짜리 아빠였어. 이 일 이후로 료타와 미도리 사이도 안 좋아져서 싸우는 날도 있었어. 게이타가 자는 줄 알고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실수도 했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잘못 된 것일까. 이후 이야기는 결국 두 아이는 서로 집을 바뀌어 원래 혈연의 부모 집에서 지내게 되고, 그러면서 또 적응하지 못하고 길러준 부모님을 서로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하게 있단다.

하지만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았어. 두 가족이 자주 만나면서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지.. 아이들은 자주 교류하면서 아이들은 아빠도 둘, 엄마도 둘이라고 생각하고그런데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쉬운 이야기이지현실에서는 더 복잡한 여러 요소들이 있을 것 같구나. 이런 일의 정확한 정답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더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보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다룬 영화들이 많다고 들었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그런 맥락의 영화 또는 소설인 것 같았어.

하지만 이야기 소재가 다소 식상하였고, 결론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말이라서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더구나. 책은 우리나라에서 오래 출간되었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는 10여 년 전에 개봉된 영화더구나. .. 그 이후의 영화들은 그 식상함을 좀 벗어났으려나? 문득 우리나라 배우들과 함께 한 <브로커>라는 영화가 보고 싶구나. 평을 한번 보고 결정을 해야겠구나. 요즘은 영화 한 편 보는 시간도 아까운 시대에 살고 있으니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장난감 인형은 세 개뿐이었다.

책의 끝 문장: 이제는 누가 누구의 자식이고 누가 누구의 부모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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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0년대 후반부터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그 지역의 태양광 풍력 발전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실업률과 온실가스 배출을 동시에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 일본의 다국적기업들이 WTO 규정(내국민 대우)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중재재판부가 기업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 성공적인 정책은 애석하게도 몇년 만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인도정부는 홍수로 불시 큰 피해를 입은 우타라칸드주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 그곳에서 생산된 태양광에너지에 보조금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미국 기업에 제소를 당했다. 우리나라에 서도 자동차 탄소배출을 경감하기 위한 제도를 기껏 만들어놓고도 자유무역협정(FTA)에 발목이 잡혀 시행해보지 못하고 폐기한 예가 있다. 정부의 손발에 재갈이 물려 있는 이런 현실은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19)

둘째, 경제적으로도 동학농민혁명이 주는 가르침이 적지 않아 보인다. 현대사회는 화폐 중심의 신용경제를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하고, 대규모 산업만을 과잉 발달시키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극화와 자본집중을 불러일으켜 민생에는 도리어 큰 피해를 준다. 더구나 우리에게 익숙한 제국주의적 무역거래는 소수의 강대국의 편에서는 유익하더라도, 대다수 약소국의 처지에서는 영원한 빈곤의 원인이 될 뿐이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깨달음과 성찰이 있다면, ‘유무상자(有無 相資)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라는 동학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것이 옳겠다

 

(41)

넷째, 무엇보다도 해월의 사상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보다 더 실질적으로 현실을 규정하는 세계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세계이다. 생명과 의식이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보다 더 근원적 실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하나, 물리적 세계보다 더 실질적으로 현실을 규정하는 힘은 바로감정이다. 사람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해월의 동학철학은 바로 그 감정에 집중한다. 감정의 세계를 떠나서 한울님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기의 감정을 돌보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서 한울님을 섬긴다고 할 수가 없다.

 

(54)

원래 ˝농업은 자유무역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던 나라는 미국이다. 1951년에 미국은 농업조정법을 발동하여 네덜란드 유제품 수입을 금지했는데, 가트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내국법에 따라 외국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가트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결국 면제 인정을 받아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농업규모가 커졌던 것이다. 농산물 수출을 늘려서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이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우루과이 협상이 시작된 1986년 미국의 농업지 원 예산은 250억 달러로, 1982년보다 6배 증가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농산물 자유무역이라는 통상원칙을 새로 정립했다 1988년 처음으로 유전자조작식품(GMO) 판매를 승인한 미국으로서는 이를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세계 농산물 시장도 절실했다.

 

(69)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서세계화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더 많이 의지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본질적으로 권력관계를 일컫는 것이다. 이 힘은 특정 국가들에제재를 부과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행사되지만,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도 행사된다. 이러한 권력 행사야말로 제국주의의 특징이다. 세계화된 자본의 패권을 만들어내는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제재‘ 역시 가차 없는 제국주의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인 것이다. 즉 이른바탈세계화세계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81-82)

그러나 지난 30 COP 중심의 국제사회 공조는 성공하지 못했다. 파리협약 이후 지구 평균기온은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기후재난과 그 피해도 전례 없는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유럽연합 산하 연구 소인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2023 7월부터 2024 8월까지 14개월간 지구 평균기온은 1.5°C를 훌쩍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7조 달러, 한화로 9,600조 원이 넘는 금액이 화석 연료에 투자되었다. 국제사회는 1990년대부터 온실 가스감축을 위한 국제 공조를 본격화했으나 산업화 이전부터 1990년까지 누적 탄소배출량보다 1991년 이후의 탄소배출량이 훨씬 많다. 기후에 관한 국제 공조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탄소배출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지구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점은 COP의 역할에 대해 의 문을 갖게 만든다.

 

(104)

자연성이 되살아나도록 낙동강을 흐르게 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동반될 것이다. 녹조문제 해결은 기본이고, 평균 6m 이상이던 수심이 낮아지면서 지금 마치 호수와 같은 단조로운 구조가 습지, 모래톱과 낮은 물길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다양한 생명이 깃들 수 있게 된다. 온갖 동식물, 다양한 저서생물들과 곤충들이 자리를 잡고 온전한 생태계가 복구되면서 강이 원래 가진 뭇 생명들의 서식처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수질이 맑아져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한 식수를 얻게 되고, 녹조 독이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먹게 되고, 녹조 독이 없는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될 것이다.

 

(141)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가공식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최근의햇반사태는 결국 수입쌀 운용 정책이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데 이용되었다는 걸 보여줬다. 실제 2022 CJ제일 제당은 국내산 쌀을 사용하는 대신 수입쌀로햇반을 출시한다. 원재료의 가격은 3분의 1로 낮아졌지만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였다. 2022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만약 우리도 일본처럼 수입된 40t의 쌀이 사료용으로 사용되었다면 지금의 논란은 있을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남는 쌀운운하며 이런 시간 낭비는 하지 않을 것이었다.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2%를 휠씬 상회하고, 선진국인 호주 270%, 캐나다 195%, 미국은 130%이며,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일본도 30%가 넘어갈 정도로 국제적으로 식량주권을 위해 힘을 쏟는 시대에, 정작 우리 정부는 주식인 쌀의 감축을 농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144)

일반적으로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쌀을 시장에서 격리할 때, 농가가 보유한 쌀을 가장 먼저 매입해왔다.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진 것은 2024년이 처음이다. 정부는 그동안 네 차례 격리 발표를 했지만, 농민들의 나락은 단 한 차례도 매입하지 않았다. 그나마 정부에 팔면 조금 나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농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반면, 과거에는 농민들의 나락이 매입된 후에야 팔 수 있었던 유통업자들이 정부 매입곡을 독점하게 됐다. 정부가 농가의 경영 안정을 우선시하던 매입 방식(원칙)을 버리고, 유통업자들만 이익을 내는 방식으로 변경했다는 뜻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구곡 매입까지 강행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공공비축미 매입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비상시를 대비해 4t의 가루쌀을 공공비축미로 매입할 계획이다. 비상시를 대비하는 쌀은 언제든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밥쌀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가공을 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쌀을 공공비축비로서 무려 4t이나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물량의 8%에 해당한다. 참으로 이상하다.

 

(149)

어렵고 복잡한 애기가 아니다. 서울 강남에는 전봇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농촌의 산과 들에는 765kV, 500kV, 345kv 초고압 송전탑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 송전탑은 그 지역 수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도권 도시지역과 큰 공장들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원전 10(10GW)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 일부는 천연가스(LNG)발전소를 인근에 건설해 조달한다지만, 대부분의 전력은 동해안 원전과 서해안 풍력-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로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자면 동해안에서 경기도까지, 서남해안에서 경기도까지 초고압 송전선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 그 피해와 부담은 농어촌의 몫이다

 

(201)

위 대화들은 김 여사의직접 운용이 아니라 권오수, 이정필, 김기현, 민태균 등 주가조작 세력들과 내통한 정황이다. DM 대주주와 BP가 실무선수들과의 유기적 협력 아래 돈잔치를 한 것! DM 주가조작은 (객관적) 검찰 공소장 기준, 3년간(2009. 12.~2012. 12.) DM 임직원, 주가조작팀, 투자자문사,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들이 91개 실명(김건희 포함)의 계좌 157개를 동원, 101건의 통정매매 및 가장매매와 3,083건의 실제 거래(총 거래가액 650억 원)를 통해 2,000원대 후반의 주가를 8,000 원대까지 끌어올린 경제범죄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11 12 월까지만 쳐도 검건희( 14)와 최은순(9)은 총 23억 원을 벌었다

 

(216-217)

만약 폭력을 인류문명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리하여 그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문명이란 것을 구태여 동물 세계와 구별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 또는 폭력적인 상황을 얼마큼 줄이느냐가 인간됨의 척 도라고 말할 수 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복잡한 경제구조 따위 는 문명의 부산물일 뿐 인간됨의 수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는 뉴욕 월가의 증권맨이 아프리카 부시번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순수 인간적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인이 밀림의 원시 부족보다 더 비인간적인 경우가 많다. 핵가방을 손에 들고 세계인을 협박하는 강대국의 통치자가 들판의 늑대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을까? 폭력수단을 많 이 가지고 있는 국가일수록 야만적이다. 우리는 그런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지만 이는 엄청난 착각이자 오해이다. 이제부터 선진국을 구별하는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기준은 당연히 비폭력이다(또하나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에 밝히겠다). 생명평화사상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을 지지한다. 비폭력적 접근 만이 문명을 인간답게 만든다

 

(252)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성숙 단계입니다. 대의제와 양당제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이해하는 한 주권자 시민의 존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선거와 다수결, 주권 위임으로 대표되는 민주정은 사실 과두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가 소수 엘리트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권모술수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10, 20년 뒤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지금 우리 인류가 직면한 진 짜 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라고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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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4-12-27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저HVDC‘라는 이름으로 이미 올봄부터 전남 바다부터 인천 앞바다를 거쳐 서울로 가는 ‘바다밑 송전선‘ 삽질을 합니다. 해상풍력태양광이 지자체에 일자리를 베푸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 몇몇 업체와 전남 정치꾼 밥그릇은 엄청나게 살찌울 테지요. 생태환경 문제가 생태환경 잡지에 안 실린 지는 이미 오랜 일이라고 느끼는 바입니다.

http://kwangju.co.kr/article.php?aid=1701687600761355004
2023년 12월에 확정이고
2024년 1-2월 무렵부터 삽질을 했다고 하는...
그러나 언론사도 환경단체도 입을 다무는 8조 원짜리 사업을
해상국립공원 바다를 파헤쳐서 하지요.

bookholic 2024-12-28 22:23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어떻게 하면 해결이 될까요...ㅠㅠ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