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강서성 남창에 있는 등왕각(滕王閣)은 호북성 무한의 황학루(黃鶴樓), 호남성 악양의 악양루(岳陽樓)와 더불어 중국 강남의 3대 명루로 이름이 높다.
등왕 이원영(630-684)은 당고조 이연의 22번째 아들이다.(많이도 낳았다. 아들, 딸 합해서 얼마나 생산했는지 알 수가 없다.) 성품이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종하여 멋대로 행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황족이므로 등현에 봉토를 받아 등왕에 봉해졌다. 이 등왕 이원영이 653년에 지금의 강서성 남창 서쪽에 도도한 장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신의 도락을 위해 멋들어진 누각을 짓는다. 바로 등왕각 되겠다. 그후에 홍주 도독 염백서가 등왕각을 중수하고 675년에 등왕각 중수 축하연을 연다. 이 잔치에 25세의 왕발이 우연히 참석하게 되는데,,,,,,,,,,,,,
왕발(王勃)(650-676)은 초당 시기 문인이다.(초당4걸 중 일인이다.) 말하자면 조숙한 천재로 6세에 이미 문장을 지었고 16세에 유소과에 급제하여 약관의 나이에 황제의 궁정에 출입하였으나 재능을 믿고 오만하고 방자하게 구는 면이 있어 사람들의 질시를 받았다. 장난으로 쓴 글이 당고조의 노여움을 사서 중앙에서 쫓겨나 지방을 방랑하는 중에 당시 교지현(하노이를 포함하는 지금의 베트남 북부지역으로 당제국 당시 이곳에는 교지현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흔히 당나라당나라하는 당나라는 나라가 아니라 제국이었다.)의 현령으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등왕각 중수 연회에 참석한다.
한편 홍주 도독 염백서에게는 글 좀 하는 사위가 있었는데, 등왕각 중수 잔치 때 사위의 재주를 자랑하고 싶어서 사위에게 이미 등왕각 서문 지어오라고 이야기해 놓은 상황이었고, 잔치에 참석하는 시인묵객들도 대충 이 꿍꿍이속을 알고 있었다. 잔치날, 염백서가 여러 손님들에게 등왕각 서문을 지어달라고 짐짓 청하자 사정을 아는 참석자들은 모두 주저주저하며 눈치를 슬슬보며 사양을 한다. 하지만 뭘 모르는 왕발은 손을 번쩍 들고 ‘그렇다면, 뭐 내가 한번....’ 하고 나서게 된다.
도독이 멀리서 보니 귀때기 새파란 젊은 서생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속으로는 비웃으며 어서 지어보라 건성으로 청하니, 지필묵을 받은 왕발이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다. (소문에는 글을 쓰기 전에 큰 사발의 술 한잔을 청하여 벌컥벌컥 마신 다음 입을 한번 쓱 닦고는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고도 하나 소생이 뭐 그 진위를 알 수는 없다.)
속으로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도독은 ‘어디 어린 놈 실력이나 한번 보자’ 하며, 문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비서를 시켜 그 내용을 계속 실시간으로 보고하도록 하는데, 그 문장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南昌故郡, 洪都新府(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는 신부라).
星分翼軫, 地接衡廬(성분익진하고 지접형려라)
남창은 이 고을의 옛 이름이고, 홍도는 새로운 부의 명칭이다.
별자리로는 익수와 진수로 나뉘고, 땅은 형산과 여산에 접해있다.
이거 뭐 별거 아니잖아.......이렇게 생각했으나.....
落霞與孤鶩齊飛(낙하는 여고목재비하고)
秋水共長天一色(추수는 공장천일색이라)
떨어지는 노을은 외로운 오리와 함께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더불어 한색이구나
문장이 이 부분에 이르자 염도독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자기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아프게 때리며 도 터지고 돌 깨지는 감탄을 터뜨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저 유명한 등왕각서가 지어지게 되었던 것인데, 왕발은 나중에 교지현에서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향년 26세.
등왕각서는 대단히 긴 문장이이어서 여기에 뭐 다 올리기도 그렇고, 위에 소개한 앞의 두 구절, 뒤의 두 구절 정도만 알고 있으면 어디가서 아는 척 이야기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듯합니다. 등왕각서는 고문진보후집에 나오는데, 이 글 쓸려고 서가를 뒤져보니 언제 팔아먹었는지 책이 없다. 아아 고문진보까지 팔아먹고 말았구나...다시 주문해야겠다.
추신
인터넷에 왕발을 검색하다가 나무위키의 왕발 설명을 보게 되었다. “평균 발사이즈보다 큰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남자는 대개 285mm, 여자는 255mm이상을 왕발이라 칭한다. 발크기는 손목에서 팔오금(팔 접히는 부분)까지의 길이와 비슷하므로 팔이 길면 발크기도 큰 경우가 많다” 우리 딸은 이제 중3인데 260mm 신는다.(아!! 내가 왕발을 낳았구나 ㅋㅋㅋ) 발크기 부분 이야기는 나름 신박한데, 왕발의 기준은 조금 바뀌어야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