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주 옛날 이야긴데요. 천상에 거하는 신선들도 심심할 때 가끔은 지상에 내려와 인간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씩 하고, 아주 드물었지만 운좋게 천상의 선녀와 결혼한 지상의 사내들도 있었던, 인간들이 동아줄이나 선녀의 옷자락 같은 것을 붙잡고 천상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했던, 그런데로 아직은 천상과 지상이 서로 교통하고 있었던 그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 비슷한 이야기입죠.....

 

오랜 옛날, 중국 강하군이라는 곳에서 辛某라는 사람이 술집을 하고 있었어요. 어느날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쳤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는 선비 한 사람이 와서 외상술을 좀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어요. 이 신모라는 사람이 또 마음이 좋아서 거절하지 못하고 선선히 외상술을 주었어요. 그날로부터 이 거지 선비는 뭐 맡겨놓은 사람처럼 매일같이 와서 큰 잔으로 딱 한 잔 술을 얻어 마시고는 돈은 한 푼 내지 않고 휘잉~하니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어요. 그러기를 반 년 넘어 했던 것인데요. 그래도 우리 무던하신 사장님은 조금도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입니다.(멋지시다!!! 사장님!!)

 

그러던 그 어느날, 선비는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 동안 밀린 술값이 꽤 많을 것인데, 내가 본시 돈 같은 것은 없으니 술값 대신으로 그림을 하나 그려 주면 안될까?' 원래 돈 받을 생각도 없었던 사장은 뭐 그러시든지 했어요. 그러자 이 거지 선비는 손님들이 안주로 먹다가 남긴 귤 껍데기로 술집 벽에 학을 한 마리 떡하니 그리니 이게 곧 '황학'이 되었어요.

 

(이외수의 벽오금학도를 보면 백학이 천년을 살면 온 몸이 검어져서 현학(玄學)이 되고, 이 현학이 다시 천년을 살면 온 몸이 금빛으로 밝아져서 금학(金鶴)이 되는데, 신선들 주위에 백학이야 수다하지만, 금학은 신선들이 한 백명은 모여야 한마리 날아올까 말까 한다는 길조 중의 길조요, 영물 중의 영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선비가 귤껍데기로 그린 황학은 일종의 금학이 아닐까 혼자 생각보아요.)

 

그런데 눈알 튀어나오게 신기하고 입딱 벌어지게 놀라운 것이, 술집을 찾는 손님들이 그 황학을 보고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면, 벽 속의 이 황학은 그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것인데요. 세상에 이런 일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려고 신씨의 술집에 구름처럼 모여든 것은 당근지사. 그러는 수년이 지나는 동안 신사장은 그야말로 수억만금을 벌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 어느날 그 선비가 다시 술집을 찾아오자 사장님은 선비에게 무엇이든 바라는 게 있다면 다 들어 주겠노라고 했어요. 선비는 잠시 피시시~ 웃더니 뒤적뒤적 누더기 옷소매에서 피리를 꺼내어 불기 시작했어요. 황홀한 천상의 소리에 모두들 넋을 놓은 채 듣고 있자니, 하늘로부터는 찬란한 오색 서기가 내려오고, 벽에 그려 놓았던 황학이 문득 꿈틀꿈틀하더니 춤을 추며 벽에서 떨어져 나와 선비 옆에 사뿐이 내려 앉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선비는 아니 신선은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버리고는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녕~~ 신사장이 그 자리에 아름다운 루()를 세우니, 이름하여 황학루 되겠습니다.

 

그로부터 무심한 세월은 또다시 무심하게 흐르고 흘러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서로 교통하기를 그만 두어버린 그 어느 때쯤에, 당나라 시인 최호가 여행 중에 이 황학루에 와서 옛 전설을 생각하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력한양수)

春草處處鸚鵡洲(춘초처처앵무주)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려

이곳에는 헛되이 황학루만 남았네

한 번 떠난 황학은 돌아오지 않는데

흰 구름만 천년두고 유유히 흐르네

맑은 물에 한양의 나무들 또렷하고

봄풀은 앵무주에 무성하구나

해는 지는데 고향은 어디쯤인가

강위에 안개 서리어 시름겹게 하누나

 

송의 엄창랑이라는 사람은 '당인의 칠언율시라고 하면 마땅히 최호의 황학루를 첫재로 꼽아야 한다'고 했다 하며, 이백도 황학루에 왔다가 이 시를 보고는 붓을 집어 던졌다고 전해지나 그 진위를 알 수가 없으며 다만 이 시를 흉내내어 등금릉봉황대를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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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3-02-13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등왕각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문득 황학루가 생각나서, 이 글은 2003.10.2.(20년 전!!!!!) 알라딘에 올렸던 글인데, 사진도 넣고 내용도 조금 고쳐서 다시 올려봅니다.

은오 2023-02-13 13:22   좋아요 2 | URL
20년이요???? 알라딘 고인물을 넘어선 화석이시네요 붉은돼지님..... 10년이셔도 놀라운데 😮🫢

붉은돼지 2023-02-13 13:31   좋아요 2 | URL
제가 사실 금학타고 닐리리~ 피리불며 신선되어 승천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어요
은오님!! 알라딘을 잘 부탁해요~

은오 2023-02-13 13:33   좋아요 0 | URL
아닠ㅋㅋㅋㅋㅋㅋ안돼요 오래오래 웃겨주세요 ㅠㅠ

잠자냥 2023-02-13 14:12   좋아요 1 | URL
은오 님 2003년에 태어난 거 아니심? ㅋㅋㅋㅋㅋ

은오 2023-02-13 14:19   좋아요 0 | URL
2003년이면 거의 저 태어났을때네요... 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차이가 꽤 납니다요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02-13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우한을 가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요? 저도 황학루는 꼭 가보고 싶어요.

붉은돼지 2023-02-13 14: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기 우한이네요 코로나 관련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ㅜㅜ
저도 나름 중국에 관심이 많아 가보고 싶은 곳이 수두룩한데, 아내가 짱깨는 싫다고 해서....ㅜㅜ
아직 중국에는 한번도 못 가봤습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3-02-15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습니다.
목소리로 듣는것처럼.
시인은 황학루에 얽힌 옛이야기를 재밌게만 기억할 수 없는 상황이었나봅니다.
헛되다하고 시름겹다 하니...!

붉은돼지 2023-02-15 10:01   좋아요 1 | URL
시인은 자기도 황학이 춤추는 거 한번 구경하고 싶었는데 구경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ㅎㅎㅎㅎ
아니면 신선이 되고 싶었는데 잘 안되어서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