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 간다고 김밥 싸느라 새벽부터 설쳤는데, 넣어간 과자만 먹고 도시락은 그대로 들고 돌아온 아들.
미우면서도 안쓰러워 그 자리에서 억지로 먹이고 나니 만화책 읽다가 쓰러져 잠들었다.
'이걸 싸느라고 엄마가 새벽부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해본들 박물관의 물고기 감상이 밥 먹는 것보다 즐거웠던 것을.
여름내 지겹게 내리던 비였는데 계절을 바꿔 맞는 그것은 늘 느끼던 온도가 아니다.
서늘한 표정의 하늘이 무심한 듯 냉정한 바람과 스칠 때 머금게 되는 그것은 이 계절이 가진 결빙된 마음가짐 같다.
좀 더 단단해지자, 좀 더 너그러워지자 마음먹어도, 어쩌면 이 계절은 그럴 뜻이 없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은 꼬리를 물고, 수용의 포화를 넘어선 상념은 이성의 감각을 마비시키며 부정의 암세포로 증식되어 간다.
위로는 받고 싶으면서도 모든 걸 드러내 보이긴 싫고,
내가 입은 상처는 동정받고 싶으면서도 감추고 싶은 건 프라이버시라고 스스로 위무하는
답답한 철장 속이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