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님의 글에서 하나의 화두를 발견.
모든 사건에 날짜로 명명하기.
3.1 운동, 8.15 광복처럼 3.5 첫 미팅, 12.9 첫미팅.
정말 부러운 저장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냄새, 감촉, 그 상황의 분위기, 기분으로 기억하는 내가 왜 암기과목이 파이였는지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숫자로 기억하는 게 한 가지라도 있는지, 내 전화번호도 기억 못 해서 가끔 남푠에게 걸어 확인하는 지경인데.
고딩 땐 싸우다가 '너 언제 어디서 몇 시에 이런 말 했자나~'하고 확인시켜주는 친구가 참 존경스러워서 싸우다 말고 손 붙잡고 진지하게 그 기억력에 관해 얘기를 나눴던 적도 있었다.
첫 키스?
푸하하~~한 잔 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이긴 했는데, 바람이 살랑살랑했던 건 기억이 난다. 술 마신 뒤라... 더워서 그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나? 아님, 진짜로 시원한 날이었나?
내 첫사랑이 과연 누군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기억이 없다.
두근두근 설레임에 초점을 맞추면 너무 조숙한 녀자가 되고, 키스라도 나눈 사이여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적용하자면, 마음을 줬던 그 수많은 남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역시 내 머릿속에는 분류와 분석의 냉철한 영역이 부재다.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노오란 봄날, 개나리가 눈에 벅차다고 했던 나의 감탄사에 뿅 가서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선배.
마를린 먼로의 육감적인 사진을 교과서 곳곳에 꽂아두신 세계사쌤의 아득한 눈빛을 사랑한 그때의 나.
연분홍 여린 향기로 빨강 머리 앤의 사과꽃 흉내를 냈던 봄날 교정의 내 벚꽃.
이것이 내가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바보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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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바보같애 바보같애... 쪼옥~

Bflat 2012-04-29 15:27   좋아요 0 | URL
바보니까 바보같이 살란다 나는~푸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