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트우드 작가의 SF 단편인 줄 알았는데 SF가 아니었다. 작가의 성장 환경이 녹아있는 자전적 단편 소설이다. 사실상 ‘넬’이라는 여성의 10대부터 중년까지를 다루는 연작소설집이다. 넬의 삶이란 10대부터 너무도 고단하다. 그 고단함을 뿌리치지 않고 스스로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과연 스스로 원하는 삶이었을까.
머리 없는 기수이제 우리는 문 앞에 서 있다. 물체의 지속성은 내게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내가 일상적인 복장으로, 또는다양한 특별 의상과 분장을 걸치고 수년간 드나들 때 거쳐갔던 바로 그 문이다. 그 당시 나는 언젠가 머리가 허옇게센 여동생과 함께 바로 이 문 앞에 서게 되리라는 생각은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문은삶의 다음 단계로 연결된다.그 머리가 어디 갔는지 잊어버렸어. 나는 말한다. 머리 없는 기수의 머리 말이야. 그게 저장실에 있던 때 생각나니? 그 모든 장화랑 양궁 장비 기억나?어렴풋이 동생이 말한다.그 모든 것을 살펴봐야 할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가 정리해야 해. - P93
실험실의 소년들그러나 그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나섰을 때도 어머니는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고, 그러면 두 사람 모두 넘어졌다. 어머니는 눈 주위에 한두 번 멍이 들었고, 결국은 갈비뼈가부러졌다. 침대 옆 탁자 위로 넘어지고 나서, 침대로 다시올라가기 위해 병 안에 든 딱정벌레처럼 아픔을 무릅쓰고몸을 일으키려 애쓰다가 다시 넘어지면서 방바닥에서 오랜시간을 보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반대했지만) 낮동안 와 있도록 고용된 도우미에 의해 발견되었다.그런 후 어머니는, 비록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걷는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자신의 두려움에 분노하게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는 저항적 태도를 보였다. 어머니는 모든것에 저항했다. 시력 상실, 행동적 제약, 넘어짐, 부상, 두려움. 비참함의 근원이 되는 이 모든 것들에게서 손을 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불 아래로 도피했다. 화제 돌리기 같은것이었다.이제 어머니는 걸으려고 노력해도 걸을 수 없다. 근육이너무 약화된 것이다. 그렇지만 심장은 언제나 튼튼했고, 그덕분에 삶을 지탱할 수 있다. 어머니는 곧 아흔두 살이 된다. - P357
조경숙청소년 범죄의 이해돌이켜 보면 그건 내가 처음으로 겪을 뻔한 피해자가해자 중첩(Victim-Offender Overlap) 경험이었다. 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피해자가해자 중첩이라 부른다. 범죄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대표적인 예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경우다. 오랫동안 아내를 학대했던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죽임당하는 것이다. 1950년대에 이미 자주 발견되곤했던 이러한 유형의 사례를 피해자 유발 살인(Victim-Precipitated Homocide)라 부른다. - P39
이길호순서가 다시 문제가 된다. 참여 이전에 소년이 있어 광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게시물에 이끌려 올림픽공원에 흘러든 이들은 참여의 연쇄 속에서 비로소 참여자가 되고, 그 연쇄가 끊기면 참여자이기를 그친다. 사람이 먼저 있어 관계를 맺는다기보다 관계에 참여함으로써 사람이 된다는 것. 멜라네시아 민족지들이 오래전 포착했던, 동일자로서의 ‘개인(individual)‘과 차이화하는 참여적 인격으로서의 ‘분인(dividual)‘의 형상이 여기서는 게시물과 발걸음의 속도로 일어난다. [2] 이름은 그다음에, 대개 바깥에서 온다.광장이 유지되는 동안 이들은 규정에서 빠져나온익명으로 있다. 소년은 녹아 흩어진다. 참여함으로써만존재하는 익명의 마디. 나이도 성별도 좌우도, 그 자리에서는 잠시 불이 꺼진다. - P85
임지선영화제는 각종 행사 현장을 채운 20대 여성의 노동을 기반으로 매끄럽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좀처럼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이들에게 부여되는 ‘자원봉사자‘라는 이름 때문이다. 자원봉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20대 초중반의여성들이 봉사 활동에 자원하기는 하지만, 영화제에서봉사 활동은 축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구조적으로 단기간 동원되는 노동이다. 통상 자원봉사자는 무급으로또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하루 8시간 정도 일한다. 점점 더 많은 영화제가 ‘자원봉사자‘ 대신 ‘자원활동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표현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20대 여성이 수행하는 무급 노동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주체적인 ‘활동‘으로 격상시키는 표현의 변화는 영화제에서 20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업무와 노동 특성을 가린다. 여성이 집중 포진된 무급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 따라서 어렵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로 평가절하된다. - P113
최배은자연스럽게 갈등을 회피하게 되며, 가능하다면 갈등 요인을 미리 예측하여 피한다. 그렇게 도달하는 상황은 ‘고립‘이다.최근 청년들 사이에 나타난 ‘엄미새 (엄마에게 미친자식새끼)‘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친구나 애인을사귀기보다 엄마와 일상을 공유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늘어난 첫 번째 이유는 엄마가 가장 안전한존재라는 데 있다. 이때의 안전함은 물리적,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인 측면 모두를 포괄한다. 엄마와 친밀한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지만 엄마만을 신뢰하는 것은 문제다. 자기동일성을 확인하는 관계에서만안전함을 느낀다면 결국 사회적 관계에서는 고립적 상황에 놓일 수 있다. - P137
이예성비극은 아파하는 사람과 그를 위로하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을 선명하게 갈라 놓는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휘말리게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휘말림의 깊이와고통, 책임까지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사건의 안과 밖에 단단히 나뉘어 서 있기보다 서로의 삶에조금씩 흘러들고, 접촉하고,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역시 각자의 시간이 나란히 흘러가는 것만은아니었다. 서로 다른 물결이 만나듯 사람들의 시간은 접촉하고 뒤섞이면서 때로는 서로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 P176
한글날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이방인 영화 보기 위해 다시 책을 먼저 읽었다. 아니 영화 보기 전에 60페이지 정도 읽었고 보고 난 후 다 읽었다. 이 책 총 270페이지인데 소설은 130페이지 정도고 그외 미국판 서문, 서평, 해설, 작가 연보 등등이 절반이 넘는다.영화도 좋았다. 흑백화면을 뚫고 나올듯한 알제의 태양과 바다, 뫼르소 역의 벤자민 부아쟁의 무심한 표정. 원작과 거의 유사했다. 소소하게 다른 부분 이외 원작과 크게 다른 점은 죽은(뫼르소가 죽인) 아랍인의 누이(살인사건의 발단인 인물)가 법정에 참관하고 동생(인지 오빠인지?)을 애도하는 장면이다. 책은 아랍인 피해자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타자화와 차별을 말한다면 영화는 이름을 부여하고 드러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 같다.의미없음, 상관없음, 중요하지 않음, 할 말 없음의 일관된 태도의 뫼르소. 그 속에 그의 진정성이 있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그는 자기 삶을 놓아버린 것일까 삶을 다르게 살아간 것일까.영화 덕분에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은 이 책과 연결된 부조리 3부작의 하나인 시지프 신화를 읽어야겠지.